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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7:1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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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7장 19절-30절. (13. 04. 07. 주일오후)
19절-30절: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하심으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하나 숨길 수 없더라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아래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찌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음식은 다 깨끗하다. 물질을 악하다고 하면 안 된다. ‘악하다. 선하다’ 하는 것은 인격을 가진 도덕성을 가진 인간에게 하는 말이다. 독사가 사람을 무니까 사람들은 독사를 악하다고 하는데 독사에게는 짐승으로서 자기 본능으로 사람을 무는 거지 독사가 인격이 있거나 이성이 있거나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을 문 독사가 악한 것은 아니다.
모든 물질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룰구원을 위해 만드신 것이므로 물질 자체가 선하다가 아니라 그 목적이 선한 것이다. 음식물은 사람이 먹음으로 기운을 돋우어 자유롭게 힘 있게 활동하도록 만들고, 그 찌꺼기는 뒷간으로 들어간다.
악한 생각이란 인간 자기를 지은 존재목적인 영원 궁극적 결과적으로 구원이 없는 생각을 말한다. 생각을 하게 되면 생각한 대로의 말을 하게 되니 악한 생각이라 할 때는 악한 말이나 행동도 포함해서 하는 말로 알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사람이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 허물만 있는 매미 껍데기처럼 허무한 사람이 돼버린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 궁극적인 면에 해당되는 말이니 우리도 그런 마음을 품고 말을 해야 한다.
또한 악한 생각은 임시성적으로 좋게 해 주려는 것이기도 한데, 그러나 임시성적으로 좋게 해 주기는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영원 궁극적인 구원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목적해서 임시적으로 좋은 말을 해 주거나 책망을 하기도 하는 때는 이것은 악한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선한 생각이 되는 거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언행심사는 전부는 우리의 영원 궁극적인 구원이 목적적으로 들어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 영원 궁극적인 구원에 목적을 두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일반세상은 아무리 좋은 말이라고 해도 영원 궁극적 구원은 없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의 날마다 생각하는 사고방식 이해타산 모든 행동이 영원 궁극에 목적을 가진 정신 사상을 가지고 움직여야 그게 선한 사람이다. 악한 사람은 그 면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볼 때 안 믿는 사람들은 영원 궁극적 목적이 없는 삶, 영원 궁극적인 목적이 없는 도덕성 인격성이다.
그래서 간음, 음란이 뭐냐? 간음은 현장에서 혼외관계를 갖는 것. 음란은 음탕하고 난잡한 사람. 일반적인 뜻은 돈을 받고 아무나에게 자기 몸을 팔고 음탕한 말을 하는 것. 이게 음란한 사람이라. 영적으로 만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것을 돋보고 세상 것을 부러워하고 신앙에 지조 없이 여기 좋다 저기 좋다 하며 따라가는 사람. 음란한 정신이구나.
그 다음에 도적질이란, 일반적으로 남의 물건을 빼앗는 일을 하고 훔치는 사람이다. 도적질에는 미래적으로 상당히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성격을 띠고 있다. 반란 때 보면 남의 물건을 막 약탈한다. 그것도 도적질이다. 영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은 물질과 하나님의 창고에 들어오는 것을 자타의 구원이 아닌 곳에다 마구 낭비해 버리는 것. 이것도 도적질이다. 남의 소유를 자기의 유익을 위해 또는 자기의 세상살이에 마구 써버리는 것.
십일조도 안 내면 도적질이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으로 아예 정해 놨다. ‘전부는 하나님의 것이지만 아홉은 네가 써라. 그리고 하나는 나를 다오. 그 하나는 네 것이 아니다’ 하시는 거다. 그런 의미가 들어있다. 전부는 하나님 것인데 아홉은 나에게 쓰라고 했는데 만일 나에게 하나만 쓰라고 했다면 얼마나 힘이 들까?
그리고 목사님들 세계에도 도적질이 많은데 부지런히 피땀 흘려서 한 다른 사람의 설교를 슬슬 훔쳐다가 팔아먹고 하는 게 다 도적질이다. 그런 목자는 근성이 도둑이다. 남의 것을 함부로 마구 써버리는 것은 감사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다. 사람 얼굴이 철면피다.
사람은 고상한 인격성이 있는 건데 저질적으로 살며 깨닫지 못하면 문제다. 자기는 아무 것도 안 하고 남의 것을 마구 써버리고 감사한 줄도 모르고, 그렇다고 해서 자기 것을 남에게 주는 것도 아니고, 이건 이기주의이다. 이게 다 도둑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쓰면 참 요긴하게 쓴다. 구원이 아닌 곳에 함부로 쓰면 낭비요, 이건 감사도 아니고 그 속에 도적의 질이 들어있다. 모든 살림살이에도 이게 성질적으로 다 들어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 살인은 남의 목숨을 끊는 것은 육신적인 살인이고, 영적인 살인은 영인성장을 못하게 만드는 것. 이건 안 믿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거짓 종들 속에 많이 있다.
영인성장을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영직인 살인인데, 영적 깨달음을 무시하고 인정정실에 매여 있으면 영적 살인을 하고도 그게 영적 살인인 줄을 모르게 된다.
교회에서는 교인들을 영적 살인에 눈을 띠워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그 면에 눈을 감기려면 육적 인정정실로 가게 하면 영적인 면은 딱 막혀버린다. 십계명에 ‘살인하지 말라’고 했는데 인도자들은 이 말씀에서 영적 살인을 생각해야 한다.
영적 살인을 안 하고 영적 면에서 살리는 일을 해 나가면 육적 살인도 안 하게 된다. 그런데 영적 살인을 모르게 되면 육적인 면에 매이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영적 살인이 돼버린다. 쉬운 예로 ‘오늘 주일인데 하나님 말씀 들으러 가렵니다’ 하면 부모가 의례히 하는 말이 ‘집일도 바쁜데 가지 말라’ 하며 거기에 매이게 하면 영적 살인이다. 몰라서 그렇게 하는 것인데, 영적 살인을 모르면 지금 말하는 여러 가지 죄악성이 다 들어가게 된다.
그 다음에 간음. 간음의 일반적인 뜻은 부부가 아닌데 성적 관계를 가지는 것. 영적으로는 주님은 당신 피로 우리 몸을 사셨으니 우리 몸은 주님의 것인데,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면 살수록 존귀 영광스러워지고 기뻐지고 행복해지는 건데 그 주님을 버리고, 주님의 사랑을 버리고 세상에 속한 것을 자기의 정신적 쾌락과 향락으로 삼는 게 간음이다.
그 다음에 탐욕은 일반적으로 부당한 욕심을 말한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자기의 어떤 유익을 위해서 마구 끌어들이는 그 마음. 영적으로는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세상 것을 끌어들여 자기의 관할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 그러니까 탐욕에는 강압과 억압과 협박과 공갈 등이 들어있다.
그 다음에 악독은 마음이 독하고 독살스럽고 성미가 악한 성미고 심술이 많다. 영적으로 보면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깎아내리는 험담들.
그 다음에 속임은, 남을 속이는 것. 이건 아주 교활성이 들어있다. 당장 눈앞에 마음에 들게 하는 말을 하지만 미래는 없게 만드는 말. 영적으로는 눈으로 보이는 세상 것을 자랑을 해서 임시성만 보게 하고 영적 면에서 소경이 되게 만드는 것. 성경을 말하고 예수는 말을 하지만 그 성경을 가지고 구원에 손해 되게 하고 ‘아이구, 속았구나’ 하며 영원히 가슴을 쥐어뜯게 만들어 놓는 결과가 온다.
사람이 사람에게 속는 일들이 많은데 속는 사람들은 여러 말 할 것 없이 그 원인이 자기에게 있다. 저 사람이 날 속였다? 자기가 그만큼 어리석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자기가 속은 것이다. 그러면 상대는 영리한 거냐?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상대는 그만큼 교활성이다. 거기에 사람들은 쉽게 넘어간다. 많이 넘어간다.
그러면 그런 자들에게 왜 넘어가느냐? 자기의 이해타산이 눈에 보이고 임시성에 들어있으면 그냥 넘어간다. 속을 수밖에 없는 자기의 머리의 수준이다. 어리석으면 속아 넘어간다. 교활성에 속지 말아라.
그 다음에 음탕은 주색과 호색에 빠져서 절제가 안 되는 것. 영적인 면에서는 영적 감각성의 마비요 화인 맞은 사람이다. 불경건이요 절제가 없고 규모가 없다.
일반적으로 보는 것과 영적 면으로 보는 것은 다르다. 영적인 면에서는 성격 성질 성분 면으로 들어간다. 그런 성질 성분 성격이 그 사람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고 그런 행동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 다음에 흘기는 눈은 자기 기준에 못마땅해서 자기 눈동자를 굴려서 옆으로 보는 것. 이런 사람은 사람을 늘 옆으로 보지 바로 안 본다.
눈동자를 굴려서 사람을 옆으로 보면 안 된다. 그러다가 깡패들을 만나면 ‘너 왜 째려보느냐’ 하고 얻어맞게 된다. 사람은 바로 봐야 한다. 영적으로는 거룩한 성도를 외모로 취하는 것이 흘기는 눈이다. 사람을 표면만 보고 논하는 것.
그 다음에 훼방은 남을 헐뜯고 비방하고 중상모략하고 모독하는 것. 이건 분쟁의 요인이다. 영적으로는 인간 육을 기준하여 그 사람의 신앙을 비방하고 중상모략을 하는 것으로, 이런 짓은 성령의 일을 방해한다. 이게 성령훼방이다.
그 다음에 교만은 일반적으로는 잰체하고 뽑내며 방자함인데, 영적으로는 자기 자랑 즉, 자기 속은 비어 있으면서, 자기 속에 말씀도 없으면서 과거사 자랑, 육에 속한 자랑을 하는 것. 이런 사람은 낮아지게 돼 있다. 자기 자랑을 하는 것은 자기가 높아지려고 잰 체 하는 건데 교만하면 결국은 낮아지게 돼 있다. 많은 사람이 있는데 자기밖에 없는 것처럼 자기만 떠드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많다.
그 다음에 광패는 미친 사람처럼 도리에 어긋나고 난폭한 것. 영적으로 보면 자기의 참 실상을 깨닫지 못하고 종교적 영웅성 허영심에 빠져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도 참 많다.
영의 눈으로 보면 누구든지 이 열두 가지에 다 결려있다. 영적인 면의 이걸 못 보면 눈에 나타나 보이는 그런 짓을 행동으로 하게 된다. 영적인 뜻이 들어있는 말씀을 일반개념으로만 말하면 사람이 영적인 면에서 바로 못 선다. 사람을 바로 앉히려면 마음부터 정신부터 바로 앉혀야 하는데 행동 겉모습 모양새를 가지고는 바로 안 된다. 하나님 앞에 중심을 바로 놓도록 해야 한다.
23절: 모든 악한 것이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자기 속에 그런 게 없으면 안 나오고, 있으면 나오는 거다. 설령 그런 행동이 밖으로 나와도 성경을 안 보고 못 깨달으면 자기 속에 그게 들어있는 줄도 모른다. 이런 더러운 것이 선악과 먹은 인간 속에 다 들어있다. 네 속에도 내 속에도 다 들어있다.
이런 악한 것이 예수 믿는 사람 속에도, 안 믿는 사람 속에도 공통적으로 들어있으니 이런 속화되고 더러운 것들이 밖으로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 없는 자기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리의 사람으로 자기를 부지런히 그리스도화 시켜라. 하나님의 것을 넣으면 하나님의 것이 나올 것이고, 인간의 것을 넣으면 인간의 것이 나오는 거다. 못 깨닫고 알지 못하면 무식이 나오게 돼 있다.
사람은 세상 것이 유전된 것을 따르면 사람이 속되고 저질스럽고 하나님 보시기에 더러운 자가 돼버린다. 세상 것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나온 유전된 것을 따르면 속되고 저질스러운 사람이 된다. 이방종교는 다 그렇다.
24절-30절: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말씀을 마치시고 그곳에서 일어나셨다.
그곳에서, 그 집에서 일어나셔서 다른 곳으로 가시는 뜻은 악하고 더러운 마음에서 진리를 잡고 일어나라는 뜻이고, 또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으로 따라가서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 역사를 보라는 뜻이다.
그곳에서 떠나 두로 지경의 한 집에 들어가셔서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지만 자신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아무도 몰래 무엇을 하시려고 했을까? 식사를 하시려고? 피곤해서 낮잠을 주무시려고? 아니면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잡아 죽이려고 하니까 숨으시려고?
이 말씀의 뜻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어느 곳으로 가서 계시든지 예수님으로부터 구원 얻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로 주님을 찾게 해 주신다는 뜻이 들어있다.
또 한 뜻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구원도리와 이치를 가진 하나님의 신실한 종은 어느 곳에 있어도 감추어두지 않고 드러내신다는 뜻이 들어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 복음증거에 참 수종자는 신의 주권적 역사요 곧,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에 숨길 수가 없다는 뜻이 들어있다. 예를 들면 소문난 병원은 멀리 있어도 환자들이 찾아간다. 소문난 음식점은 멀리 있어도 찾아간다. 좋은 향기가 나는 꽃에는 멀리서도 나비나 벌이 날아온다.
영모의 미모성으로 교양과 덕을 잘 쌓은 여성이나, 영능의 실력과 하나님의 정의롭고 고상한 성품을 잘 입은 남성에게는 하나님께서 일부러라도 찾아가셔서 은혜를 베푸신다는 의미도 들어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예수가 마구간에 계서도 수만 리 타국에서 별의 인도로, 성령님의 인도로, 각성적 영감과 조명적 영감으로 박사들이 찾아왔다. 솔로몬 왕의 지혜를 들으려고 스바여왕이 수만 리를 멀다 않고 찾아왔다.
이 집회에(주-포도원제일교회 정례집회) 진리도 듣고 점심도 주니 목사들이 참 좋아했는데 ‘이제는 점심을 스스로 해결하라’ 하니까 점심 안 준다고 안 나오는 목사가 있다. 이건 거지다. 자기 배를 채우려는 목사다. 똥보다 더 더러운 마음을 가진 목사다. 어느 노회 목사인지 자기 배로 하나님을 삼는 목사들이 많다.
나는 성경을 보면서 나를 보는데, 성경은 주로 교회 목회자보고 하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목사도 성도고 교인도 성도니까 성경을 보고 교인을 말을 안 할 수가 없는 거다. 일반 불신자들을 말하면 안 된다. 성경을 불신자보고 말을 하게 되면 교인은 고칠 게 없는 의인이 돼버린다.
25절: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어머니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물어 물어 찾아와서 많은 사람이 보던 말던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아무도 모르게 숨으려고 하는데 누구에게 발각이 된 거냐? 주님을 찾는 사람에게는 찾아진다는 것이다. 아쉽지 않으면 찾지 말라.
우리가 생각해보면 “이 어머니가 딸을 고쳐주려고 ‘구원의 예수님께서 어디 계시나’ 하며 얼마나 찾아 헤매면서 물었을까” 하는 심정이 생각이 된다.
다른 교회에서 뭐가 비뚤어졌는지 그곳에서 은혜를 못 받는 어느 교인이 우리교회에 대해 묻기에 수원에 있는 교회들을 다 돌아보고, 아니면 대한민국을 돌아보고 그래도 나갈 교회가 없으면 우리교회로 오라고 했는데 그 분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나를 모르는 사람은 아닌 것 같던데 왜 다른 교회는 다 돌아봤으면서 우리교회만 쏙 빠졌나?
아마도 교역자들 공부시간에 나오는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우리교회 소문을 들은 것 같은데 ‘왜 그 목사님이 우리교회를 안 가르쳐줬지’ 하는 생각이 된다. 왜 스승교회에는 안 보내느냐? 우리교회에 오면 그 교인이 잡히기 때문에? 이건 도무지 스승과 제자로서의 관계성이 아니다. 그런 사고 발상을 가진 목사는 못 쓴다. 자기가 못 가르치면 자기보다 더 잘 가르쳐 주는 교회에 가라고 해야 한다. 어느 병원에 가서 그 병을 못 고쳤다고 하면 ‘어느 병원에 가 봐라’ 하는 게 사람의 마음인데 되지 못한 목사가 참 많다. 정말 저질스럽고 저주스럽다.
목사들은 그 도덕성이 아무리 못해도 일반차원을 올라서야 한다. 목사의 도덕성이 일반차원도 못 올라서면 영적 말씀을 들을 차원은 안 되는 거다. 예수 믿는다고 하기 전에 안 믿는 사람들로부터 욕을 얻어먹고 있는데. 한 번 생각을 해 봐라.
이 어머니가 딸을 고쳐주려고 예수님을 얼마나 찾았을까? 이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마치 숨바꼭질하는 것처럼 숨어서 한 시라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 여기 있다’ 하고 툭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원 되신 예수님을 적중하게 찾으면 일 복은 터지는데, 일을 크게 해 보려는 욕심만 부리게 되면 일도 놓치고 예수도 놓치고 구원도 놓친다.
더러운 귀신이 들려있으면 모든 악한 성질은 다 들어있다. 이게 귀신들린 거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이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은 자기 속에 그 속성이 있으니까 찾아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걸 보면 모른다.
모든 악한 성질이 다 들어있는 여자가 있는데 교양도 없고, 덕도 없고, 심술이 얼굴에 덕지덕지 끼어있고, 욕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고, 집도 잘 나가고, 껄렁껄렁한 남자들과 잘 돌아다니고, 난잡하게 놀고, 담배도 피우고, 술 먹고 길바닥에 쓰러져 있고, 가게마다 외상값 다 깔려있고, 밥 해 먹을 줄도 모르고, 빨래도 안 하고, 옷도 안 다려 입고, 남의 물건을 제 것처럼 쓰고 미안한 마음도 없고, 구멍 난 옷을 입고 돌아다니고, 모르는 남자가 없고, 남이 옳은 말을 하면 듣기 싫어서 눈을 흘리고, 자기는 해 준 것도 없으면서 ‘남이 나에게 안 해 주나’ 하고, 제 멋대로 살아놓고 ‘나는 착한 사람이다’ 하고, 자기는 손끝도 까딱 안 하면서 남보고 게으르다고 하고, 무엇이든지 자기 기준이요 자기 위주라면 이런 딸이 시집을 가면 잘 할까? 불 보듯 빤한 거다. 그런 딸에게 자기 아들을 주고 싶으냐?
그런데 이런 사람이 있다. 단순히 육신의 장애자보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으면 이 사람은 결혼을 시키면 안 된다. 그런데 어찌하든지 떠맡기려고 한다. 자기 성격 자기 버릇 남 안 준다. 엄마 이세벨은 들개 밥이 되었고, 그의 딸 아달랴는 남편을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남편이 창자가 흘러나와 죽었다. 이게 남 얘기냐? 너에게는 한두 가지도 이런 게 없느냐?
두로는 상업적인 도시다. 스로보니게 족속의 여자는 헬라인이다. 헬라는 그리스, 로마 옆에 있다. 근방에 마게도냐가 있고, 동쪽으로는 이탈리아 곧, 로마가 있다. 어쨌든 헬라는 세상에서 유식한 철학자들이 많은 곳이다.
그런데 잘 살아보자고 그 상업도시로 왔는지, 아니면 유대인 남편과 가정을 꾸렸는지 모르겠지만 이 어머니는 분명히 유식한 어머니였을 것 같다. 영리하고 똑똑하지만 하지만 어린 딸이 더러운 귀신 곧, 악령이 들렸다.
우리 인간은 생겨질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 생명과 먹고 세상을 통치 지배하고 자기를 다스리고 땅에 편만하라고 했는데 선악과 따먹은 후에는 하나님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물질만족 현실주의로 저질화 됐다. 이렇게 되니 사람은 이성 없는 짐승이 아닌 고로 영적 정신적 만족을 채울 길이 없다.
이런 존재가 크고 작은 사건 환경이, 마찰 충돌 대립이 많은 이 세상에서 육체적 고난과 고통을 어떻게 헤쳐 나가며, 또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근심 걱정과 번뇌와, 사단 마귀의 유혹을 어떻게 뿌리칠 수 있겠느냐? 위에서부터 구원의 손길이 안 뻗치면 인간에게는 구원이 없다. 거기에서 헤어 나올 길이 없다. 예수님은 위로부터 오신 구원이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예수님을 찾으면 구원이 된다. 예수님의 속성이 입혀지고.
젊은 어머니가 땅에 꿇어 엎드려 어린 딸에게 붙은 더러운 귀신을 쫓아주기를 간구했다. 자녀를 위한 기도는 자기 마음에 들도록 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 기준에 맞도록 기도가 들어가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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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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