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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玄關)의 번데기

마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451 추천 수 0 2016.04.27 23:5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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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12-13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6.1.17 주일예배 http://sungamch.net 춘천성암교회 

현관(玄關)의 번데기
막1:12-13
2016.1월17일 주일 설교원고입니다.


어디론가 가려면 그리고 뭔가 새 일을 하려면 집을 나서야 합니다. 집과 세상을 구분 짓는 그 경계를 우리는 현관이라고 부릅니다. 주택의 정면에 낸 출입구로 요즘은 그저 신발을 벗어놓는 장소를 현관이라고 하지만 실상 현관은 불교사찰의 첫 번째 문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불교에서 현관이란 현묘한 도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속세를 떠나 영원한 극락세계로 떠나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붙박이 신발장이나 서 있는 허접하고 작은 공간이 아니라 이렇게 현관은 큰 의미를 가진 단어였습니다. 그리고 불교도가 아닌 사람들은 이 현관을 누에고치에 비유했습니다. 현관 할 때 현(玄)자는 원래 누에가 고치를 짓기 위해서 자기 입에서 실을 뽑는 행위와, 누에가 그 고치 안에서 변신하여 나비가 되는 신비한 변화를 형상하는 단어가 바로 현관의 그 ‘현’자의 뜻입니다.

누에는 몸을 8자로 움직여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실을 뽑아냅니다. 그 행위를 작고 여리다는 뜻으로 ‘요’라고 부릅니다. 이 지속적인 행위로 고치를 짓는 것을 현이라 하는 거죠. 이렇게 누에가 고치를 지을 때 밖에서는 볼 수 없지만 고치 안에서는 천지가 개벽하는 변신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그 안에서 전혀 예상 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지죠. 그게 뭡니까? 실을 뽑아 고치를 짓던 누에가 자신이 애써 지은 집을 뚫고 나방이 되어 나오는 겁니다. 마치 그동안 지은 고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훌쩍 버리고 나방이 되어 가물가물하게 날아 나오는 이것을 뭐라고 하는가하면 ‘玄(현)’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 가물가물하면서 누에고치를 뚫고 밖으로 나오는 그 경계가 바로 ‘현관’인 되는 겁니다.

그러니 현관이란 오늘날에는 신발짝이나 벗어 놓는 허접한 공간을 의미하지만 실상은 이승에서 영원한 세계로 나아가는 문이고, 누에가 번데기로 머물지 않고 나방이 되어 새로운 세계로 가물가물 날아오르는 문이 현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관은 번데기가 되느냐 나방이 되느냐를 경계 짓는 문입니다. 생사고락의 질고로 고통스러운 이승에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죽음과 질병과 고통이 없는 영원한 천국으로 넘어갈지를 구분하는 선입니다.

우리는 해마다 새해가 되면 각오를 새롭게 하고 새 길을 떠납니다. 새로운 것들을 풍성하게 얻기를 바라며 집을 나섭니다. 현관을 나서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새해의 현관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현관이란 단어의 뜻대로라면 완전히 질이 다른 변화된 내가 되려는 행위가 현관을 나서는 것입니다. 나비를 꿈꾸는 것이지 고치 안에 갇혀 펄펄 끓는 가마솥에 들어가 죽은 번데기가 되려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술안주나 되려고 우리가 그토록 밤낮으로 애써 일하고 수고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를 믿는 것도 이 현관을 나서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누에고치가 작은 집을 현묘하게 지은 다음 그걸 뚫고 가물가물 아주 큰 새로운 세상으로 날아가는 것처럼 우리도 죽음에 갇히고 질병에 갇힌 세상을 뚫고 영원한 세상으로 날아가려는 것이 아닙니까?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는 일에서도 번데기나 되려고 교회 다니고 이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의 짧은 생이나 신앙이 번데기가 되지 않고 나비가 되어 큰 세상으로 날아가는 현묘를 일으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프랑스의 인류학자 <반 즈네프>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려면 세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고 합니다. 번데기에서 멈추지 않고 나방이 되려면 이른바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는 거죠.

첫 번째 단계가 뭘까요?
‘분리’의 단계입니다. 뭘 분리해야 하느냐 하면, 과거로 상징되는 모든 것들을 의도적으로 잘라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신발을 벗어야 했듯,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기 전에 고향땅을 떠나야 하듯이 말입니다.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한 세계와 의도적으로 단절해야 하는 겁니다. 그게 경험이든, 지식이든, 습관이든, 버릇이든 뭐든지 끊어야 하는 단계입니다. 이 끊어버림을 혁신이라고 합니다. 이때 ‘革(혁)’자는 소의 가죽을 벗겨낸 모양입니다. 소의 가죽을 얻으려면 몸통에서 잘 분리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몸통과 가죽을 나누는 일도 모자라서 기름기나 털도 제거해야 하는 거죠. 이걸 뭐라고 하죠? 무두질이라고 하죠. 그렇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가죽을 몸통에서 잘 분리해 낸 후 연기에 그을려 가죽을 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가죽을 또 잿물에 담가 털과 기름기를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뭘 의미하는 겁니까? 자구 잘라내야 좋은 가죽을 만들 듯, 사람도 참 자아를 이루려면 처음엔 과거의 자아를 잘라내야 하는 겁니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가차 없이 버리는 행위가 기독교에서는 할례였고 세례입니다. 여러분이 창세기 1장1절을 읽을 때 ‘태초’라는 단어를 읽게 됩니다. 그 ‘태초’의 뜻이 뭔지 아십니까?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바라]라는 단어는 제사를 드릴 때 올리는 빵의 볼품없는 가장자리를 잘래내서 반듯한 빵으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허접한 것을 잘라내다 입니다. 그게 창조입니다. 마치 국수를 밀고 그 꼬다리를 잘라 내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안식일’이라고 하는 그 단어 ‘사바스’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안식일은 ‘습관적으로 지내던 날들을 멈추고 처음으로 돌아가다’입니다. 이 모두 ‘끊어’버리는 행위요 의식 아닙니까? 현관을 나서거나 들어서는 사람은 ‘분리’해야 합니다. 끊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현관의 의미가 없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전이’와 ‘통합’의 단계입니다.
우리말로 옮겨 보면 ‘서서히 스며듬’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가 단시간에 일어나는 일이라면 스며드는 일은 시간이 좀 걸립니다. 오래된 자아를 소멸시키는 오랜 기간의 투쟁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끊는다고 단박에 끊어지는 건 없습니다. 자신의 몸이나 의식에 밴 습관이나 행동이나 가치관을 제거하고 새로운 자아를 만드는 창조의 시간은 간단하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새로운 단계를 진입하려는 이는 오래된 자아를 점점 소멸시키고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여 새로운 자아를 점점 늘려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시간은 문지방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불안한 시간입니다.

이 단계에서 스승은 외부에 있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스스로 만든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데, 그걸 고독이라고 하는 겁니다. 절대 고독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 단계에서 고독은 자신을 위한 최고의 선물입니다. ‘고독’은 보통 사람을 성인이나 위인으로 탈바꿈시킵니다. 모세의 시내산과 그 체류기간이 그것이고, 예수가 머문 광야와 40일, 바울이 아라비아 광야에서 40일을 지낸 까닭이 그것입니다. 그들은 고독을 통해 과거를 끊고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이게 바로 현묘지도(玄妙之道)로 나아가는 두 번째 문입니다. 이 단계(절대 고독)에서는 자기 자신을 응시하고 자신 안에서 최선을 찾으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이어집니다. 이를 ‘숭고하다’하는 것입니다. 이런 수준이 되면 남의 눈치나, 체면이나, 거짓이나, 변명 같은 걸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알았기 때문에 묵묵히 걸어갑니다. 그걸로 그는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줍니다.  

세 번째 단계는 충분한 전이 단계에 거한 자가 자기 자신도 모르게 들어서는 ‘통합’의 단계입니다. 이쯤 되면 이 존재는 자기가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만약 자기가 이 세 번째 단계에 들어섰다고 확신하거나 발설하는 순간 그는 타락하게 됩니다. 자신의 오만이 그를 처음의 자리로 돌려보내기 때문입니다. 이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사람을 설명하자면  있고 없음, 살고 죽음, 높고 낮음, 비난과 칭찬과 같은 세상의 희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감사와 웃음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현관을 나가서 과거를 끊어버리고 새로운 자아에 점차 스며들다가 마침내 영원한 나라에 든 이들을 성서에서 수없이 읽고 듣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이들입니다. 결국 우리의 믿음이란 그런 분들의 믿음을 쫓아 나도 문 밖으로 나서는 것이고, 나설 뿐만이 아니라 그들처럼 과거를 단하고 새로운 자아에 물들어야 하는 것이며, 그래서 마침내는 번데기가 아닌 나방이 되어 새 세계에 날아올라야 하는 겁니다.

현관이 신발이나 벗어놓는, 신발의 흙이나 터는 그런 용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현관은 이 세상을 벗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문입니다. 누에가 고치 안에  그대로 있으면 나방은커녕 번데기가 됩니다. 예수를 믿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새 해를 산다는 뜻도 이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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