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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1:1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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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기성 목사 |
참고 : |
https://cafe.naver.com/bibleforest
교회 그리고 개척
(막11:15-18)
유대인들은 1년에 한 번씩 제사 드리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12살이 넘은 사람이라면 의무적으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 제사 드리기 위해서 올라갔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예배드리기 위해서이지요.
그런데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빈손으로 갈 수 없었어요. 제사 드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를 속죄할 제물을 가지고 가야 만 했지요. 그래서 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양을 가져가기도 했구요. 가난한 자들은 비둘기라도 가지고 갔습니다.
또 이스라엘 땅은 로마의 식민지로 있었기에 로마의 화폐가 유통되었어요. 그래서 성전에서 헌금을 드릴 때는 로마의 화폐는 불결하다하여 성전에서는 로마의 화폐로 헌금을 드리지 못하게 했지요. 그래서 성전에서 헌금을 드리려면 돈을 환전도 해야 했습니다.
가까운 곳은 모르겠지만,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먼 곳에서 양을 끌고 성전에 올라가기가 힘들지 않았을까요? 먼 곳에서부터 양을 끌고 오다보면 양이 상할 수도 있고, 제물 드리기에 불합격판정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성전에 와서 양을 사서 제사를 드리기 시작했지요.
그러다가, 성전 안에 바리새인들, 제사장들, 서기관들 즉 교회 안에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자기들의 사업으로 독점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전 안에서 양도 팔수 있게 해 주고, 비둘기도 팔 수 있게 해 주고, 돈도 바꿀 수 있는 자리를 내어 주면서 자릿세를 받고, 커미션 관계를 유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전 안에서 구매한, 양이나, 비둘기만 받는다는 독점권까지 주어서, 다른 곳에서 좋은 양이나 염소 그리고 비둘기를 가져와도 퇴짜를 놓아서, 성전 지도자들과 결탁한 사람들에게만 독점권을 주었지요.
명분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을 위한 편의를 위해서라고, 실제로 그런 면도 없잖아 있었지만, 그들은 엄청난 이권을 챙겼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성전 안에 종교지도자들 모두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전하는 일보다는 거기서 생기는 이권과 권력에 눈이 점점 멀어가게 되었지요.
그래서 오늘 예수님이 정말 말씀하신 것처럼, 기도하는 성전을, ‘예배하는 곳이 아니라,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하는 소리를 들을 만큼 그렇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분노하셨어요. 거룩한 분노였지만, 예수님의 분노를 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채찍으로 그들의 상을 엎으시고, 내 쫓으시며 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한국교회 그리고 우리교회는,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이곳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교회가 작고 가난할 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교회를 위해서 희생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된다는 것은, 정~말 십자가를 지는 일 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는 것이고, 힘들고 어려운 길 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 감당하기 어렵고, 늘 예수님의 고난의 십자가를 생각해야만 살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거의 사라져 갔지만, 예전에 교회 성전 입구에는 ‘성미 함’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성미’ 거룩한 쌀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명분은 교회에 올 때, 집에서 먹는 쌀을 봉투에 담아 교회에 가져오게 하고, 그리고 그것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워 주는 제도가 독특하게 우리나라 교회에서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난한 자가 바로 목사님들 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성미 함에 쌀이 채워지기 시작하면, 그것을 목사님 가정에 가져다주었지요. 어느 날, 교회에서는 성미 함 없어졌어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그만큼 목사님들이 먹지 못하는 가난은, 없어 졌다는 것을 의미했어요.
그래서 1970년대, 1980년대에는 누구에게나 신학대학은 미달이었습니다. 일반대학 갈 성적은 안 되고, 그래도 대학을 가고 싶으면 신학대학을 가면 다 받아 주었습니다. 미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지요. 그러면서 대형 교회가 나오고, 천명 이천명 만명, 몇 만명이 되는 대형 교회들이 우후준순처럼 나오기 시작했지요. 교인들이 많아지니까, 교회 재정도 많아지기 시작했지요.
1980년대 후반으로 들어가고, 1990년대를 들어오면서 신학대학에 점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너도 나도 목사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문교부에서 정식으로 인정하는 신학대학을 들어가기 위해서, 제수도 하고 삼수도 하는 사례들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가난해도 목회하고, 어려워도 목회하고, 힘들어도 그 길을 가겠다고 하는 소명을 가진 자가 많아졌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는 않은 것입니다. 그것은 그 길을 가면 먹고 살 수 있고, 아니 잘 살 수 있고, 더 잘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인식의 변화가 점점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교회가 먹고 살만 하고, 점점 돈이 많아지니까, 그 안에는 기득권 세력들도 생기게 되고, 갑과 을의 관계도 생기게 되고, 그리고 그 교회에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안수 집사,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되어 그곳에서 뭔가 얻는 어떤 인간적인 만족감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권사, 안수 집사, 장로가 되기 위해 선거 운동도 하게 되었고, 목사님들은 목사님들이 모이는 노회의 노 회장, 총회장이 되고 싶어, 선거 운동도하고, 그 가운데 부정과 부패가 오고가는 일까지 우리 한국교회에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교회는 개척교회라서 서로 안하려고 하는데, 어는 대형 교회에서는 서로 여전도회 회장이 되고 싶어서, 그렇게 선거 운동을 한 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들어오는 이권이 장난이 아니래요. 간단히 예를 들어, 1년에 봄과 가을에 바자회를 하는데, 외부에서 그 바자회 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여전도회 회장에게 줄을 대고, 뭔가를 챙겨주지 아니하면, 교회 앞마당에 자리를 깔 수 없기 때문이지요.
교회에서 모두다 부담스러워하는 자리를 점점, 그 자리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하는 그러한 양상도 보이게 되고, 큰 교회 목사님들은 은퇴 후에, 아들 목사에게까지 교회를 물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라고 이런 저런 변명들을 하지만, 부를 세습하고, 자신이 가진 권력을 세습하는 욕심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그리고 저를 포함한 모든 목회자의 모습과 교회에서 뭔가 인간적인 만족감이나, 이권을 차지하려는 모습은, 예수님 당시의 성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우리를 드리는 곳입니다. 하나님께 우리는 제사하는 곳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어떤 인간적인 만족과 어떤 권력을 행사하고 이권을 챙기고 하는 것은,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런데 교회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런 유혹들이 많아 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 한국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분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코 그 채찍을 피해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생각합니다. 과연 예수님이 우리교회도 들어오셔서 분노하실까? 채찍을 만드셔서 우리가 하는 교회의 모든 것을 업으실까? ‘이걸 교회라고 너는 하고 있나?’ 예수님의 분노와 채찍을 생각하며, 정말 조심스럽게 교회를 세워 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개척하면서 지금까지 제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정말 예수님이 여긴 교회가 아니라 하시며, 채찍으로 모든 것을 엎으시면 어쩌나? 라는 마음으로 교회를 시작했고, 그리고 3년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두려움을 가지고 교회를 세워야 했습니다. 잘못하면 예수님이 교회를 엎으실 수 있습니다. 무섭고, 두렵고, 떨림으로 교회를 해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지 않는가? 를 생각해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에서 충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것을 통하여 이권을 챙기려고 하는 일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 저와 여러분은 발버둥 쳐야 합니다.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장본인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교회를 시작한지 이제 3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3년 동안 참 고생 많았지요. 교회가 시작할 때부터 저와 함께 하신 분들도 있어고요, 그리고 중간에 같이 합류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작고 가난할 때가 행복이고, 축복일 수 있습니다. 작고 가난할 때는 참 좋은 교회였는데, 점점 사람이 많아지면 질수록, 우리는 이러한 모든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좋은 교회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바른 교회를 만드는 것 이었습니다. 정직한 교회를 만드는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목사의 잘못으로 교인들에게 상처 주는 목회는 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돈이야 이미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려고 할 때, 저는 가난을 선택했기에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가난은 불편해도 두렵거나 무섭지 않았습니다. 목회자의 길로 들어설 때, 가난은 저와 가정에 따라 다녔지만, 그때 마다 주시는 은혜에 더 감동함이 많았습니다.
개척을 하면서 최소한 나 스스로 먹고 살기 위해 목회를 하지 말자였습니다. 정말 바르고, 정직하며, 그리고 교회가 작아도, 하나님의 눈길이 머무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3년을 뒤돌아보면서, 과연 얼마나 하나님의 눈길이 머무는 교회였을까를 생각하고, 혹 예수님이 채찍을 만드시지는 않았을까? 두렵고 떨림으로 교회를 세워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늘 떨림으로 예수님의 채찍을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투명하게 교회를 운영할까? 어떻게 하면 좀 더 목사가 교회에 주인인 것처럼 만들지 말까? 소수 기득권자들만 이 교회를 운영하지 못하게 할까?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격도 없지만, 그래도 교회를 세워가는 복을 받을 받기 위해, 억지로라도 끌고 가면서 교회를 세워 보고자해서, 헌신하도록 자리를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감내라 대추 내라, 믿음 없는 말과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리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좌지우지 못하게 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것 위에, 믿음의 법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하면 가르칠까? 를 고민하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3년여 동안 부족하지만, 그 일을 해 가고 있습니다. 교회의 모든 재정은 ‘완전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그리고 교회의 모든 지출은 ‘전자 영수증’ 첨부를 원칙으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회 카페 홈페이지에 보면, 한 주간 얼마의 수입이 들어왔고, 얼마의 헌금을 사용했는지에 대한 완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는 성도가 모르는 돈은 없어야 합니다. 내가 드린 헌금은 보람되게 드리고, 쓰이는 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까지 보는 것이 헌금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돈이라고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막아 놓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돈은 누가 제일 많이 쓸까요? 담임 목사님이 제일 많이 쓰지요. 그래서 저부터 목회를 위해 사용되는 모든 지출은 영수증 첨부를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교회에서 30만원 이상이 되는 돈에 대해서는, 목회자가 마음대로 쓰지 못하도록 회의를 거쳐 가부를 묻고, 사용할 수 있도록 잠금 장치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것은 교회 일을 하는 성도님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내 돈이면, 아까워서 또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는데, 내 돈이 아니고 교회 돈이라 생각하니 마음대로 낭비하여, 사지 못하도록 막는 것입니다. 돈이라는 것은 천만 원을 써도, 안 아까운 돈이 있고, 천원을 써도 아까운 돈이 있습니다.
10개만 사면되는데, 내 돈 아니고 교회 것이라고, 20개 사놓고, 사 놓은 줄도 모르고 다음에는 또 사고, 창고 여기저기에는 쌓이고 또 쌓여, 우리가 드리는 헌금을 내 돈 아니라고 우습게 여기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내 돈 쓰는 것처럼, 아까워하고, 절약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또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저희 교회는 임대 계약서는, 제 이름만 올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무권사님들의 손도장도 다 들어가 있어서, 목회자 혼자 마음대로 못하도록 막아 놓았습니다. 어느 특정인의 교회가 될 수 없고,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다 아시지만, 우리교회에서 안수집사, 권사, 장로 직분을 받으려면, 직분받기 위한 헌금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 오히려 평생 헌신할 것을 감사해서 직분 받으실 때, 30만원 축하금을 드리도록 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드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부서들이 바른 교회, 정직한 교회를 만들기 위한 밑거름으로, 각 부서별로 연혁을 써가도록 하였습니다. 본인들이 맡고 있는 일에 대해 안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맡아서 하는 식으로 하지 말고,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 억지로라도 그 십자가를 지어, 복을 받은 구레네 사람 시몬처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헌신하기로 했으면, 그 일에 대해 꼼꼼히 일을 하고, 메모하여, 어떻게 하면 다음 인수자가 나의 헌신을 본받아, 바른 교회를 만들어 갈까를 배울 수 있는 증거로 남기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교회만 다니면 되는 줄 알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정직을 꿈꾸며, 바른 교회를 만들어 나가는 밑거름의 역할을 하여, 정말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복을 받고, 죽어 천국에서도 복을 받는 성도가 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 주간 또 하나의 고민과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결단했습니다. 모두 다 골고루 자신의 의견을 참여할 수 있는 교회 안에 회의 제도를 만들어야겠다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희 교회는 교회의 전반적인 행정과, 바르고, 정직하게 일을 하기 위해 ‘비전회의’를 합니다.
그런데, 늘 비전회의를 하면서 저는 고민하였습니다. 의장인 제가 어떤 제안을 하고, 가부간의 결정을 하지요. 어떤 의견에 대해 “동의 하십니까?” 라고 묻고, “동의 합니다” 라고 하면 “제청해 주세요” 라고 말하지요. 어떤 한 분이 ‘제청합니다’ 라고 하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끝내 버린다는 것이지요.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이야 큰 문제는 없지만, 나중에 교회가 커지면, 성도들은 원치 않는데, 목사인 제가 원해서 이것은 꼭 통과해야겠다 싶어 몇몇 분에게, 제가 안건을 내고 ‘동의 하십니까?’ 라고 할 때, 얼릉 동의 하라고 시키고, 또 다른 분에게 부탁하여 얼릉 ‘제청합니다’ 라고 시키고 끝내면, 이것도 문제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회의를 하면서도 너무 일방적이지 않는가? 골고루 의견을 청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그런 권리를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건강하지 않을 수 있고, 정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에 부담감으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이러한 회의 방식을, 이제는 없애려고 합니다. 모든 안건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가부간의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개개인 모두, 찬성 반대를 정확하게하고, 개개인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합니다.
물론 믿음이 연약하여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그 모든 것도 이해시켜야 하고, 믿음의 방법으로 설득시키는 것도, 우리들의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첨예하고 어떤 의견이 대립할 때, 목회자는 기도하는 시간을 주고,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서, 은혜의 법칙으로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정직한 교회를 만드는 지름길이라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한걸음 조금씩이라도,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일에 동참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자랑스런 말씀의 숲 교회 성도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이 성전에서 채찍을 드신 모습을 기억하며, 건강한 교회, 바른 교회, 정직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눈길이 머물고, 흡족할 수 있는, 그런 교회를 우리 만들어 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3년 동안 우리는 그런 교회를 꿈꿔 왔고,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교회를 만들어 갈 때, 그리고 그런 교회에 동참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이 땅에서도 받고, 우리가 죽어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의 축복을 다 받으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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