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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2:28-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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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기성 목사 |
참고 : | 네이버 카폐 "말씀의 숲 교회" |
그런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막12:28-34)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도 못가고, 집에만 있잖아요. 누가 제일 머리가 아플까요? 엄마래요. 아이들하고 엄마들하고 집안에서 전쟁이래요. ’세끼 밥해주랴, 간식 주랴‘ 꼼짝도 못한대요. 그래서 어제 뉴스를 보니, 엄마들이 그런대요. ”애들아, 제발 한끼만은 대충 먹자“ 어떤 엄마는 진짜인지 농담인지 모르지만 하도 먹을 것 달라하니까 미워진대요.
사람들의 말 속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사랑이지요. 사람의 마음속에 사랑이라는 감정만 넘쳐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우리 마음 한 복판에는 그렇지가 않지요. 마음의 감정에는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다른 감정들이 더 많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요.
미워하고, 꼴 보기 싫어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감정이 더 많이 우리 안에 있어요. 그것이 저와 여러분 안에,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무시하면 안 되지요.
최고의 약이 ‘사랑’이라면, 최고의 독이 ‘미움’이래요.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면, 미움 받는 그 사람이 손해를 볼 것 같지만, 의외로 미워하는 내가 손해를 본대요. 건강상으로, 심리적으로, 여러 가지로, 손해를 본대요.
그래서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것이 굉장히 자해적인 부분들이 많이 있대요. 미워하는 상대방은 잘 모르는데, 미워하는 나는 내 몸에 이상이 오고, 몸이 경직이 되고, 마음의 쓴 뿌리가 생기고, 그것으로 우울해 지고, 내 안에 미움 때문에, 내가 까칠해 지는 것이죠.
오늘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해서 질문을 했어요. 배우려고 질문한 것이 아니라, 떠 보려고 한 것이죠. 그 사람 안에도 미움이라는 감정, 시기라는 감정이 있었던 것 같지요? ‘십계명 중에 어느 계명이 제일 큽니까?’ 라는 질문이에요.
예수님은 ‘몇 번째 계명이 가장 크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예수님의 대답은 심플하면서도, 명쾌했어요. 십계명을 둘로 나누었어요. 일 계명부터 네 번째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다. 다섯 번째부터 열 번째 계명은 사람에 대한 계명이다! 둘로 나누셨어요.
나 외에 다른 신 두지마라. 우상 만들지 마라. 내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안식일 기억하라... (1계명부터 4계명까지인데, 복잡하게 생각하지마라) 그냥 위로 하나님 사랑하면 된다!
부모님 공경해라,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말 하지 마라, 탐내지 마라! (5계명부터 10계명인데, 그것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라) 그냥 이웃을 사랑하면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마음으로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면 된다! 하셨지요.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듯이, 십자가는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면, 그것이 ‘십자가의 완성’ 이라고 이야기 하지요. 율법사가 미움의 감정을 가지고 질문하니, 예수님은 사랑으로 그 질문을 풀었어요. 사랑이 답이랍니다.
사랑! 말이 쉽지, 사실 그렇게 쉽지 않는 것 아닐까요? 여러분, 우리 자신을 가만히 보면, 사랑한다고 하면서 미움이 더 많잖아요. 사랑한다고 하면서 내가 말하는 말의 대부분은, 미움의 감정이 나오고, 싫어함의 감정, 비판하는 마음이 더 많이 나오지 않나요?
그러니까, 우리 속마음에서 나오는 것, 솔직하게 드러내 본다면 사랑이라는 무게보다, 미움, 그리고 시기, 질투의 무게가 내 안에 더 많다는 것을 인정하셔야 해요. ‘사랑하면 되지’ 하지만, 정말 사랑 쉽지 않아요. 진짜 사랑 쉽지 않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정말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말로만 입으로만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예수님의 사랑으로 꽉 차 있어서, 한 순간도 예수님 놓치지 않는 그런 사랑하면서 살수는 없을까?
첫 번째는 우리는 그 사랑을 사모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냥 우리가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사랑을 사모해야 한다고 말해요.
여러분, 오죽 했으면,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써서 보내는데, ‘사랑하라! 네 마음대로 사랑할 수 없으니, 사랑을 은사 중에 하나로 만들었겠어요?’ 그리고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는데(고전12:31),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겠어요? 사랑이 쉬운 게 아니기 때문이죠. 사랑이 힘들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뭐가 없으면?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사도바울이 말을 하지요.
성경은 더 큰 은사, 그 사랑을 하나님께 달라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라고 해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그 사랑을 사모하기 위해서 부단히 하나님을 향해 연습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나님. 사랑의 은사를 주세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마음으로 이웃을 정말 내 몸은 아니지만, 내 몸 비슷하게라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주세요. 부단히 노력해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우리 마음 안에는 사랑보다, 미움이 자동적으로 만들어져 나오기 때문에, 너 힘으로 혼자 할 수 없으니, 하나님의 힘을 빌어,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사모하라는 것이죠. 그래서 사랑은 은사이고, 우리가 끝까지 사모해야 할 최고의 것이죠.
예) 저는 아침마다 잠에서 깨면, 하나님을 먼저 고백하고자 했어요. 그것이 하루아침에 쉽게 되지 않지요. 부단한 노력을 해야만 해요. 그런데 이제는 그냥 거의 무의식적으로, 거의 습관이 되어 진 것 같아요.
새벽 4시가 되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지는 순간, 의식이 깨어난 순간, 그 첫 마음과 생각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제일먼저 고백하지요.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하나님 사랑해요!! 이 고백을 가끔은 할 수는 있어요. 생각날 때 마다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매일 하기는 정말 힘들어요.
그냥 되지 않아요. 노력해야 해요. 1년, 5년, 매일같이 이 고백에, 첫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려면,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런데, 노력하면 어느 순간 그것이 나의 습관이 되어 버립니다. 내 몸에, 그래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마음으로 사랑하려고 하고, 그 사랑으로 용서하고,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이 생기는 것이죠.
그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사랑이구요.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나를 위해 내어 주신, 그 사랑을 조금씩 배워가는 것이죠. 그래서 세상에서 배울 수 없는,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서 그래도 조금이나마 나오게 되는 거에요.
그 사랑 안에는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내어 주었던 희생이 담겨져 있구요. 그 사랑 안에는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고, 우리를 살리는 헌신의 마음이 담겨져 있구요. 그 사랑 안에는 우리가 정말 힘들어하는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그 사랑이 담겨져 있어요.
예)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말 들어 보셨지요? 사랑의 원자탄 하면 손양원 목사님과 그의 아들들 동인, 동신이가 생각나실 거예요. 1948년 여수순천 반란 사건 때,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을 모두 잃었어요. 두 아들 모두 믿음으로 잘 자랐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만 폭도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지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그런데 손양원 목사님의 슬픔은 잠시,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나서, 아들들의 장례식에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려 드리지요.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녀 나오게 하시니 감사!” “미국 가려던 아들, 미국보다도 더 좋은 천국 가게 하시니 감사!” 아들들의 장례식 때, 아홉 가지 감사를 올려 드리지요.
그런데, 그 감사 중에, 정말하기 힘든 감사를 올려 드려요. ”내 아들 죽인 원수를 회개시켜,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하는 마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 그 감사를 올려 드리는 것이죠.
내 아들을 죽였는데, 그 원수를 양아들로 삼는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주셔서 감사!! 와~~ 이것이 가능할까? (저와 여러분이라면 가능할까요?) 그런데 내가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능케 하셨다는 것을, 손양원 목사님이 지금 감사하고 있다는 것이죠. 우리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할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는 이런 사랑을 생각하면,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 인간의 마음으로는 도저히 힘들기 때문이죠. 하나님이 그 마음을 주시지 아니하면, 절대로 그 사랑을 우리 마음에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믿음의 길 위에서, 우리는 그 사랑을 사모하며 사는 것입니다. ”내 안에 ‘미움’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작아지고 소멸되게 하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이 내 안에 더욱 자리 잡게 하셔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인내하고, 참으며, 용서하고, 이해하고, 덮어 줄 수 있는, 그 사랑을 내게도 주옵소서“ 라고 우리는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두 번째,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있어요. 그것은 이웃 사랑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순서를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첫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두 번째가 이웃을 사랑하는 거예요. 오늘 예수님도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첫째 되는 계명이 하나님 사랑이고, 그리고 두 번째가 이웃사랑이라고 가르쳐 주셨지요.
만약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가 되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이웃을 먼저 사랑하면, 자선 사업가이고요. 휴머니즘이에요. 그러면 하나님 없이 사랑하는 것은, 자기 연민일 수 있고, 자기 욕심에 빠질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한 결과를 내가 자꾸 확인하려고 하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내 안에 깨닫고 느끼면, 내 힘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이름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그 자리에서 빠질 수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완성될까요? 내 앞에 원수가 나타나야지요. 내 앞에 원수가 나타나 봐야 알아요. 그런데 ‘원수’라는 단어가 쫌 그렇다면, 이렇게 표현해 볼까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원수를, 여러분 방식으로 표현해 보면 이런 것이겠지요? 같이 밥 먹기 싫은 사람, 살짝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전화 오면 전화 받기 싫은 사람, 카톡오면 열어보기 싫은 사람, 왠지 주는 것 없이 마음이 불편한 사람, 없을 때 헌담하고 싶은 사람, 꼴 보기 싫은 사람! 등.
이런 사람 꼭 있고요, 이런 사람 꼭 만나고요, 이런 사람 주위에 자주 있어요. 이런 사람이 우리가 말하는 ‘원수’가 아닐까요? 이런 사람들이 내 앞에 나타나 봐야, 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지요.
그 불편한 대상, 예수님께서 너의 원수라고 말하는 대상이 나타나야 나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가를 파악할 수 있어요. 내 안에 예수님의 이름이 어느 정도 효력을 발생할 수 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아직도 난 멀었구나’ 깨닫기도 하고, 기도하고 그래도 안 되면 또 기도하고 계속 기도하는 것이고, 반대로 밉지만, 정말 싫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하고,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면서 넘어갈 수 있다면, ‘내 믿음이 이정도로 컸구나!’ 를 알 수 있지요.
여러분,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원수’는 누구인가요? 혹시 저인가요? (우리 옆을 보면서 한번 눈빛으로 물어봐요? 혹시 저예요?)
원수가 나타나 봐야 내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마음으로 내가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원수를 내 앞에 세워놓고 내 믿음이 어는 정도인지를 꼭 가늠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정말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내 안에 미움보다, 큰 사랑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분노보다 큰 용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복수보다 내 안에 큰 이해가 있다는 것을 확신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면, 우리가 안 해 봐서 그렇지,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있다는 거예요.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진정한 이웃 사랑은 언제 완성이 되나요? 그 불편한 대상을 향해서, 미움의 마음을 버리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 그때!! 예수님이 주시는, 그런 사랑을 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원수가 등장할 때 긴장하지 마세요. 왔구나! 하고, 기도와 믿음으로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진짜루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왔구나’ 하고 믿음으로 꽉 안아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안되면 또 기도하면 되고, ‘하나님, 내 힘으로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도와 주세요, 기도하면 분명 됩니다.(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그런 사랑을 하며 살 수 있을까요? 그 사랑의 은사를 달라고 간절히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 앞에 나타난 여러분의 ’원수‘가 어떻게 보이는지, 세워놓고 가늠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만든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진정한 사랑이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진정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믿음으로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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