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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86 추천 수 0 2022.07.25 1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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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2:49-53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249-53: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49-51: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공로로 다 구원을 받았다. 알기 쉽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 구원을 기초, 기본, 그루터기, 기본구원이라고 한다. 이 기본구원을 받은 사람은 믿음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부활이 있다. 이 기본부활은 순전히 예수님의 피공로로 된 것이다.

 

그 다음에 이것을 기초로 해서 인간 자기가 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사건을 만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신앙정조 팔지 않고 그걸 이겨나갈 때 하나님의 성품이 자기 인격화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 깨달아져서 붙는 실력화 능력화 되는 것을 이룰구원이라고 한다. ‘너희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기본구원을 받았느냐? 그러면 말만이 아니라, 말이 문제가 아니라 본인 자체가 하나님의 화평의 사람으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사람으로 만들어진 게 있어야 그걸 이룰구원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구원이라고 하는 거다.

 

병에서 예수 믿고 나서 건강으로 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속성 인격 성품까지 구원이 된 거냐? 그건 아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보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 주님으로 말미암아 육신의 병이 나았다든지 귀신이 나갔다든지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았다든지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았다든지 하는 그 속에는 영적인 의미가 들어있는 거다. 영적인 의미, 이게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원 뜻이다. 우리 인간이 영적 면에 대해서 모르니까 눈에 보이는 것을 들고 와서 우리에게 영적인 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 거다. 세상 모든 만물과 사건 환경이 다 그렇다.

 

눈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느니라.’ 창조 때도 말씀으로 되었고, 역시 모든 크고 작은 사건 환경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의중이 들어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에서 하나님의 그 의중을 알아서 믿어나가는 것이 인격적 애정적 수수관계성으로 믿음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법 이전에 법보다 우선적이 된다. 그런데 이것이 안 되면 법 아래로 떨어진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믿으면서 일반차원도 안 되면 일반사람들에게 밟힌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몸은 이 땅에 살지만 그 정신은 하늘의 것으로 박혀 있어야 한다. :에서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되게 해 주겠다는 의미가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세상 쪽으로 생각을 해서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앉혀주는 것으로 알고들 있다.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의 인격도 없는데, 성경을 깨달은 것도 없는데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그 사람은 천국에서도 높은 자리에 앉는 거냐?

 

요즘 보면 기독교인은 물론이고 세상 사람들로부터도 유명하다는 소리를 듣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법정 앞에 서서 평신도 판사에게 재판을 받고 있으니 세상에 그런 꼴이 어디 있느냐? 세상을 재판하고 판단할 너희들이거든 어째서 세상 앞에서 판단을 받느냐 그 말이다. 이게 무슨 꼴이냐? 이건 하나님이 통탄을 할 노릇이다.

 

인간 편에서 볼 때 일단 예수를 믿어놓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고, ‘예수님은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고 살아나셨다고 말을 한다. 진정 마음으로 그렇게 한다면 이건 기본구원의 의미에서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아직 만들어진 것은 없으니 만들어져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진 이룰구원 또는 성화구원도 또한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하는 거다. 기독교인들이 이걸 정확히 모르면 별스런 이단과 거짓들이 다 나오게 된다.

 

기독교 일반적으로 볼 때 예수 믿는 사람은 다 구원 얻은 것으로 생각을 한다. 그 말 자체는 맞는데, 기본구원을 얻었다면 이룰구원 차원에서 현재적으로 주님을 닮은 게 있느냐? 이게 되지 않으니까 교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밟히는 것이다.

 

세상 법정 앞에 서는 교회 지도자들이 자기들끼리 다투는 것이라고 생각할 런지 모르겠지만 자기들의 그것으로 인해 온 교회가 밟히는 걸 안다면 그런 짓을 할까?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어디를 가던 네 교회 내 교회가 없는 거다. 다 하나님의 교회이다. 그런데 내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힘을 안 쓴다? 그러면 네 교회는 어떤 교회냐?

 

우리는 주님이 만드신 교회다. 이건 기본으로 깔고 있는 거고, 더 나아가서 현재 이룰구원으로 나가는 정신과 사상이라면 그 사람은 모두가 주님의 교회요 내 교회다. 내 교회는 주님의 교회다. 다 내 형제들이요 부모들이다. 다 같이 복음의 짐을 짊어지고 나가는 하늘의 백성이다. 그럼에도 네 교회 내 교회가 있느냐? 굳이 그걸 따진다면 복음이 아니라 비복음이란다면 그건 내 교회는 아니다. 역시 주님도 그건 내 교회가 아니라고 하신다. 예수 믿는 정신을 알고 분별할 줄을 알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니 세계적은커녕 한국교회만 생각을 하더라도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무척 가슴이 아프다. 그런 사람들이 내가 어렵다고 해서 나를 돕는 사람들은 아니다. 내가 굶을 때 도와주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다 예수님이 피공로가 있다는 점에서 염려 걱정이 된다.

 

무엇이 구원 받은 사람이냐? 기본구원은 전제를 하고 이룰구원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 간단히 말해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사람으로 주님을 닮은 것이 구원 받은 것이다. 사람이 그렇게 돼 있으면 구원 받은 사람이라. 그러니 “‘, 구원 받은 사람은 저렇게 사는구나이게 들어가야 하는데 기본구원은 받았음에도 이룰구원 면에서 왜 저 모양이냐? 저거 밟히고 있구나. 밟히는구나.” 옳은 이치를 계속 가르쳐 줬는데도 자꾸 그렇게 산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징계에 의해서 밟히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성문 밖에 쫓겨나가서 밟히는 게 있다. 밟히는 게 뭐냐? 하루 세 끼 밥 먹고 사니까 이게 사는 건가보다한다면 이건 일반적 정신 사상이다. 믿는 사람이 그 정신 사상으로 떨어져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밟히고 있는 사람이다. 밟히는 사람이 어떻게 머리가 되겠느냐? 누가 그런 자기의 소리를 듣고 전도가 되겠느냐?

 

사람 낚는 어부가 뭐냐? 나를 따라오면 즉, 길이요 진리요 생명을 따라오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해 주겠다. 이게 전도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정신이 없는데, 이치가 없는데, 인격과 성품이 없는데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교회에만 데려오면 그게 사람을 낚은 것이냐? 아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에 화평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이 일 이 역사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책임을 지시고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 일을 한다 그 말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과 화평케 하는 일을 한다. 이게 주님의 십자가의 중보사역이다.

 

우리를 하나님과 화평케 해 주시려고 당신이 중보한 것이다. 하나님과 원수 되어 살던 우리를 당신의 죽음으로써 피공로로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 이치를 어기면 안 된다. 교회는 그 교훈을 가지고 그 아들의 일을 이어받아 하는 것이다. 교회가 그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과 화목 화평케 하는 것. 그러니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면 그건 하나님과 의사대립성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평이 되는 거다. 그러나 하나님과 의사적 단일이 아니고 대립 마찰 충돌을 일으키면 이건 화평이 아닌 하나님의 재앙이다.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실 때는 이 세상에서 선악과 먹고 저주 받고 타락된, 그리고 그 죄 아래서 멸망 받을 사람들의 세상목적의 그 화평을 이뤄주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다. 세상화평이 아니다.

 

인간들끼리의 화평은 그 누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거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구원이 안 되는 것은 당신이 십자가에 죽을지언정 그 소원을 들어줄 수가 없다. 예수님의 십자가 속에는 그 면이 들어있다. 즉 바리새교인들이 세상화평 세상평화를 부르짖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정죄를 당해서 십자가에 죽을지언정 그들의 그 소원은 들어주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그 이치도 들어있다. ? 우리 주님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멸망을 받는 짓은 죽을지언정 하지를 않더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화평의 일을 하시는 거지 당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지언정 네가 원하는 세상과의 화평은 들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뒤로 나가면서 보면 이런 예수님으로 인해서 아들과 아비와 딸과 어미가 막 불화가 일어난다.

 

내가 십자가에 죽을지라도 하나님과 화목이 안 되는 것은 안 들어주겠다하시는 것을 또 한 번 뒤집어서 보면 하나님과의 화평이란다면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라도 하겠다하는 것도 들어있다. 이렇게 해석을 해도 이룰구원, 저렇게 해석을 해도 이룰구원이다. 이치가 맞기 때문에.

 

예수님의 화평은 인간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 안에 든 화평이지만 인간들끼리 손잡는 화평은 구원이 없는 화평이다. 이 인간끼리의 화평은 마귀의 역사로 된 것인고로 결국은 세상심판으로 끝을 내버린다. ‘하나님과 화평이 안 되는 것은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어서라도 내가 끝내겠다하는 것이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셨는데 일점일획이라도하는 이 말이 집 태우고 세상 태우고 하는 그 면을 말하는 거냐, 인간 자기에게 하는 말이냐? 인간 나에게 들어있다. 호리라도 남김없이 회개치 않으면 거기서 못 나온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회들이 그것과는 상관이 없이 살고 있다. 그러면서 일점일획이라도하는 걸 어디에 붙이느냐? 세상을 심판하고 없어지는 그 면에 붙인다.

 

누구 때문에 세상을 심판하는 것이냐?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세상을 말하는 것이지 인간이 안 사는 자연물질을 뭐하려고 심판을 하느냐? 인간이 사는 네 세상, 네 안에 영적인 성전을 지을 줄은 모르고 몸의 안과 밖을 알게 달게 하느라고 너의 모든 것을 거기에 투자했구나. 그러니 그런 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세상 구정물을 방망이로 두들겨 빼야 들어갈 수가 있는 거다. 그게 심판이다. 사람이 아파야 내가 뭘 잘못했구나그걸 생각을 한다. 안 아프면 그걸 잘 생각을 안 한다.

 

예수 믿는 자라면 모두가 하나님과의 화평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과의 화평을 모른 채, 예수님과 의사적 대립 마찰 충돌성의 그 상태를 모른 채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 면에서 이탈된 곳에서 열심히 충성봉사 하면서 자기의 목숨을 바친다고 해도 이건 주님과 원수 짓을 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면 그런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 남에게 속아서 이용을 당해도 미칠 지경인데 자기가 좋아서 했는데 이게 심판으로 결과가 나온다면 어찌 되겠느냐?

 

우리가 보면 남에게 속아 넘어가면 속은 그 사람을 어리석다고 하는데 자기가 자기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은 덜 어리석은 것이냐, 더 어리석은 것이냐? 기독교 신앙은 그런 면을 알아야 한다. 모르면 그 모양이 된다. 그 면을 모르고 믿다가는 자기 일생 산 것이, 예수 믿은 게 공쳐버리게 된다. 수십 년 예수를 믿어도 사람이 하나도 바뀌지 않고, 교회에서 직분을 가지고 있어도 신앙하는 이치가 하나도 안 맞는 사람이 있는데, 이건 성령의 눈으로 보면 뭐가 씌었구나이렇게 되는 거다.

 

52-53: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 그렇다면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 그냥 쉽게 일반적인 개념으로 우리 집을 평화롭게 만들어 주옵소서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고, 또한 저 사람만 예수를 믿으면 우리 집이 평화롭겠는데그렇게 생각을 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좀 더 나가서 예수 믿는 본인이 먼저 하나님과의 의사단일 그것부터 찾아야 한다. 그리고 온 가정이 하나님의 의사단일로 들어가는 것. 그러면 평화나 화평은 저절로 찾아오는 거고, 그 가정은 심령천국이 된다. 심령천국이 안 되면 가정천국이 안 된다. 심령천국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 채 가정천국을 찾으려면 죽을 때까지 해도 안 된다.

 

세상을 보면 창세 이후 인간이 타락된 이후 인간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지 분쟁이 일어난다. 생명과를 따먹으라고 했더니 선악과를 따먹은 직후부터 분쟁이 일어난다. 분쟁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서로가 남 탓이다. 그리고 자기 허물은 잘 안 보이고 남에게 너 왜 벗었느냐이렇게 들어간다. 그러니까 선악과를 따먹어 놓으면 자기 눈이 남부터 들어가는 거다. 이거 고쳐야 한다. 자기부터 보고 자기부터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나는 따르려고 하는데 저 사람부터 안 따르니 나도 안 따른다하면 그게 뭐냐? 어두운 굴속에서 저 사람이 캄캄하니 나도 캄캄하다하고 있으면 불은 누가 켜느냐? 아무라도 켜면 그 사람의 뒤를 따라가게 된다. 원리가 그렇다. ‘저 사람이 좋아지면 내가 좋아지겠는데하는 건 원리가 틀렸다. 불을 보면 그 불을 따라가야 한다. 불을 보고도 안 따라가다가 구덩이에 떨어져도 그건 어쩔 도리가 없는 거다. 그러면 자기 어리석음으로 자기가 죽는 것이다.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으면 분쟁이 일어난다. 그러니까 생명과를 적극적으로 따먹어야 한다. 그런데 보통 말하기를 사람이 선악과를 따먹어서 타락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말은 맞기는 하지만 생명과부터 안 따먹어서 선악과를 따먹게 된 것인데 이 생명과는 생각은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어서 인간이 타락이 된 것으로만 말을 하면 이 사람은 살아가면서 생명과를 따먹기는 힘이 들게 된다.

 

사람들 간에 지식이 다르면 목적도 달라지고, 이렇게 되면 이해타산 평가성도 달라지니 여기에는 분쟁이 일어나게 돼 있다. 안 일어난다가 아니라 일어나는 거다. 지식이 달라지면 일어나게 돼 있다. 또 세상에서는 자기 뜻대로 안 해 주면 분쟁이 일어난다.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면 분쟁이 일어난다. 그렇게 되는 제일 핵심적인 원리는 생명과를 안 따먹었기 때문이다.

 

생명과를 안 따먹었다는 것은 이미 선악과 따먹고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목사님들의 설교가 중요하다. 설교가 잘못되면 교인들이 한꺼번에 쓰러지든지 통째로 먹히든지 한꺼번에 망할 수도 있다. 그런데 교인들이 그 중요성을 아느냐? 모른다. 자기만 하나님과 바로 상대하면 된다? 지금 자기 지식이 비뚤어져 있는데 하나님과 바로 상대가 되는 거냐?

 

인도자 또는 목자가 하나님의 본질의 것을 교인들에게 주지 않는다면 그건 생명초가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보면 교회에서 지식적으로 세상 넓은 길 사망 길 심판의 길로 끌고 가는 것을 흔히 볼 수가 있다. 가까운 교회 교인들을 보면 주일날 예배 마치고 교회에서 나오면서 가게에 들어가서 사서 먹고 한다. 주일날 물건을 사지 말라고 하면 율법적이다? 율법적으로라도 바로 해 봐라. 이 세상에서 머리가 된다. 이치도 깨닫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성문적으로도 안 하고. 그럼 이게 뭐냐? 이건 자기 스스로 법이 돼서 자기 스스로 사는 거다. 그러면 교회라는 기준이 어디 있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포로로 잡혀 갔느냐?

 

분쟁은 나라끼리 만이 아니라 동족끼리도 일어나고, 한 집안에서 부모형제끼리도 일어난다. 세상에 분쟁이 없는 곳이 없다. 자식인데도 남보다 못한 자식이 있다. 부모인데도 남의 부모만도 못한 부모도 있다. 아내와 남편인데도 불구하고 아예 없느니 만도 못한 부부도 있다.

 

그런데 앞 절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분쟁을 일으키러 오셨다고 했다. 이게 말이 되느냐? 유엔은 분쟁을 일으키자고 하는 거냐, 평화롭게 살자고 하는 거냐? 세상평화를 외친다. 그런데 예수님은 분쟁을 일으키러 오셨다고 하는데 세상평화를 따라가는 게 낫지 그 예수를 왜 믿느냐?

 

인간을 만든 주님께서 인간의 속마음을 더 잘 아실까, 유엔이 더 잘 알까? 유엔 총회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서 그것도 또 달라진다. ‘교회목사가 어느 주의로 나가는 목사인가하는 거기에 따라서 교회가 또 달라진다. 손님들이 타는 객차를 무엇이 끌고 가느냐? 기관차가 끌고 간다. 기관차가 안 가면 다 선다. 가다가 기관차가 뒤집어지면 뒤의 객차도 다 뒤집어진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예수님께서 분쟁을 일으키러 오셨다고 했으니 성도들이 예수님의 정신을 따르는 이상 세상에서 평화와 화목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하늘에서 뭐라고 노래가 나왔느냐? ‘하늘에서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했다. 그러니까 기뻐하심을 입지 않는 자들에게는 평화가 아니라는 말이다. 땅에서 기뻐하심 입은 즉, ‘예수 그리스도 피공로로그 말이다. 그 사람들에게는 평화로다. 화목, 또는 중보에는 이런 의미가 들어있다. 그런데 이걸 갖다가 세계평화에 붙이느냐? 그러면 앞뒤가 안 맞는 거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의 오심과, 본문의 말이 안 맞게 된다. 그럼에도 왜 그런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

 

우리가 분쟁도 분별을 해야 한다. 의롭고 선한 분쟁이 있고, 악하고 나쁜 불의적인 분쟁도 있다. 그러니까 무엇을 기초로 해서 나온 것이냐가 굉장히 중요한다. 인간창조의 존재 자체가 구원을 염두에 두고 그 소원 목적을 놓고 인간 자기를 만들었다. 믿고 안 믿고 간에 인간이란다면 이게 기본적으로 다 들어있다.

 

예수님이 분쟁이 된 것은 인간을 지으신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대로 인간구원을 주장하고 가르치다 보니 저주받고 타락된 사람들이 그 구원을 안 받겠다고 하며 그 소리가 듣기 싫다고 하니 그들의 그런 정신상태가 예수님께 대하여 분쟁을 일으킨 상태가 된 것이다.

 

아버지가 말을 하는데 자식이 마음에서 그 말을 안 받고 있다면 그게 속에서 대립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한 집안 식구 중에서도 예수님의 진리생명의 말씀을 영접한 자는 인간구원을 주장하게 되니 여기서 사람마다 의사적으로 주장적으로 분쟁이 일어나게 된다.

 

하늘의 지식은 사람을 생명 길로 인도하고, 땅의 지식은 심판 받을 멸망 길로 인도한다. 이것은 합의할 수 없는 분쟁이다. 예수님 앞에는 합의가 없는 분쟁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세상 끝날 때까지 분쟁이다.

 

하나님께서 일으키는 분쟁은 그 안에 선이 들어있고 의가 들어있고 구원이 들어있는데 인간들이 일으키는 분쟁은 이건 없고 여기는 심판이고 멸망밖에 없다. 영도 육도 다 죽인다. 인간이 영을 죽일 수는 없지만 이룰구원이 안 된다는 뜻이다.

 

선악과 따먹고 저주 받고 타락된 세상은 인간들끼리 아무리 평화를 부르짖어도 평화는 없다. 하나님께서 분쟁을 일으키는 그곳에 옳은 진리교훈이 나간다면 여기는 성령님의 역사가 강하고, 진리가 없는 곳에는 하나님의 주권에서 허락된 마귀가 분쟁하는 것이다. 그 너머를 보면 하나님께서 옳은 것을 찾으라고 하는 뜻이 들어있는 건데 그걸 모른 채 눈앞의 것만 찾는 게 인간들이다.

 

이제 분쟁의 원인을 알겠느냐? 교회든 세상이던 어디든 왜 분쟁이 되느냐? 지식이 안 맞아서이다. 지식이 다르면 가치판단 평가성도 달라진다. 소원 목적성도 달라진다. 그래서 각자 주장을 하게 되니 안 맞는 거다.

 

가정이던 친구들끼리던 교회들끼리던 어디든지 보면 생명과를 먹은 지식과 선악과를 먹은 두 가지 지식으로 대립이 돼 있다. 창세 이후로 선악과 따먹은 이후로 이렇게 돼 있다. 그러니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선악과 따먹은 그 지식이 신앙인 것처럼 호응하지 말아라. 믿는 사람들은 생명과 먹은 지식을 가지고 일반지식은 활용적으로 들어가야지 일반지식이 자기 주격적 지식이 되면 그 사람은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녀도 주님과 팽팽하게 대립이 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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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8 누가복음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눅12:39-44  김경형 목사  2022-05-09 36
1307 누가복음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눅12:35-40  김경형 목사  2022-05-02 71
1306 누가복음 너희 소유를 팔아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눅12:33-38  김경형 목사  2022-04-25 73
1305 누가복음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눅12:29-33  김경형 목사  2022-04-18 131
1304 누가복음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 눅12:22-28  김경형 목사  2022-04-11 145
1303 누가복음 가상칠언 눅23:33-43  강승호 목사  2022-04-05 226
1302 누가복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눅12:20-24  김경형 목사  2022-04-04 122
1301 누가복음 첫 제자들의 출가 이야기 눅5:1-11  정용섭 목사  2022-04-03 95
1300 누가복음 하나님 말씀의 성취 눅4:14-21  정용섭 목사  2022-04-03 99
1299 누가복음 내가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눅12:12-21  김경형 목사  2022-03-29 74
1298 누가복음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눅12:11-12  김경형 목사  2022-03-21 52
1297 누가복음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눅12:8-10  김경형 목사  2022-03-15 97
1296 누가복음 아흔아홉을 보는 눈과 하나를 찾는 마음 눅15:1-7  허태수 목사  2022-03-12 145
1295 누가복음 성령과 불 눅3:7-18  정용섭 목사  2022-03-08 126
1294 누가복음 빈 들에서 눅3:1-6  정용섭 목사  2022-03-08 154
1293 누가복음 늘 깨어 기도하라! 눅21:25-36  정용섭 목사  2022-03-08 258
1292 누가복음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눅12:6-9  김경형 목사  2022-03-07 86
1291 누가복음 선한 이웃이 되라 눅10:25-37  강승호 목사  2022-03-06 173
1290 누가복음 두려워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눅12:4-7  김경형 목사  2022-03-01 127
1289 누가복음 때가 임박하니라 눅21:25-36  강승호 목사  2022-02-09 148
1288 누가복음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눅12:1-5  김경형 목사  2022-02-07 93
1287 누가복음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눅23:33-43  강승호목사  2022-02-03 174
1286 누가복음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눅12:1  김경형목사  2022-01-31 100
1285 누가복음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고 눅11:52-54  김경형목사  2022-01-25 105
1284 누가복음 저희는 죽이고 너희는 쌓는도다. 눅11:46-51  김경형목사  2022-01-18 110
1283 누가복음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눅11:42-46  김경형목사  2022-01-10 81
1282 누가복음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눅11:40-44  김경형목사  2022-01-03 73
1281 누가복음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1] 눅11:37-39  김경형목사  2021-12-28 116
1280 누가복음 첫 성탄을 맞는 축복(성탄) 눅2;25-33  전원준목사  2021-12-22 473
1279 누가복음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눅11:34-36  김경형목사  2021-12-22 178
1278 누가복음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눅11:29-33  김경형목사  2021-12-16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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