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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과 바늘귀

누가복음 최주훈 목사............... 조회 수 212 추천 수 0 2022.08.22 07: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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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3:22-31 
설교자 : 최주훈 목사 
참고 : 중앙루터교회 

(교회력설교)20220821성령강림일후 열한번째주일 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

눅13:22-31

좁은 문과 바늘귀

 

오늘의 교회력 복음서 본문은 누가복음 13:22 이하 말씀입니다. 각 성 각 마을을 두루 다니며 가르치시던 예수님의 일행이 예루살렘 성에 가까이 왔을 때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께 묻습니다.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습니까?”(눅 13:23)

그런데 이제부터 특이한 건, 주님이 질문한 이 사람에게 직접 답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눅 13:23을 확인해 보시면, “어떤 사람”이 물었는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답을 하십니다. 여기서 “그들”은 예수님 앞에 있던 ‘모든 사람’을 뜻합니다. 참 이상하지요!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구원의 문제는 한 개인의 관심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궁극적 관심사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모두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지요. 

오늘 함께 묵상할 본문은 매우 짤막하지만, 단순하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서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리고 세상 끝날 일어날 구원은 무엇인지를 포괄합니다. 이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지 함께 성경을 보도록 하지요.

 

이상한 줄거리

 

우선 오늘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여러모로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의 문제를 물었을 때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라’(23)고 답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으면, 그 문이 뭔지 상세히 설명해 줄 법도 한데 이어지는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24절부터 이어지는 내용을 확인해 봅시다. 좁은 문 들어가는 일과 ‘문을 안 열어주는 집주인’ 비유(25-28), 그리고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된다’(30)라는 결론의 말씀이 도대체 논리적으로 연관이 있긴 한 건가 싶어 생뚱맞기까지 합니다. 

 

도대체 ‘좁은 문’은 무엇이고, 이런 생뚱맞은 줄거리로 예수님은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이럴 때, ‘성경은 성경이 해석한다’던 루터의 말을 떠올려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난해한 말씀이나 본문을 만나면, 그와 연결된 맥락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다른 본문을 찾으면 성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3장(22-30절)을 마태복음 19장(16-30절)과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서로 줄거리가 달라서 상관없을 것 같지만, 결정적으로 몇 가지 비슷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둘 다 구원의 문제로 시작하는데, 마태복음에서는 부자 청년이 영생의 방법을 묻고, 누가복음에선 어떤 사람이 구원을 묻습니다. 

그 후에 전개하는 방식은 조금 다릅니다. 하지만, 두 복음서 모두 마지막 구절인 30절에서 완전히 같은 말씀으로 종결됩니다. 이것으로 보아 이 두 본문은 한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눈으로 기록한 본문이라고 할 수 있고, 이 두 복음서 본문은 서로의 의미를 보충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낙타와 바늘귀

 

이 둘을 비교해 읽으면서 무척 특이한 건, 누가복음에 없는 ‘낙타와 바늘귀’(19:24) 이야기가 마태복음에 나온다는 점입니다. 우선, 이 이야기부터 해야겠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보다 쉽다’(마 19:24)라는 주님의 말씀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부자가 천국 들어가는 게 어렵다고 말하기 위해 예수님이 이런 과장법을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고, 또 다른 해석은, 원래 ‘밧줄’(카밀로스, κ?μιλο?)이라는 단어를 어떤 사람이 철자 하나를 잘 못 옮겨 적는 바람에 ‘낙타’(카멜로스, κ?μηλο?)라고 오기(誤記)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원래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건 바늘구멍에 밧줄을 넣기보다 어렵다’였는데, 밧줄이 낙타로 변했다는 것이지요. 

 

다양한 해석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이제부터예요. 예수님이 낙타와 바늘귀를 말씀하실 때 ‘바늘귀’는 우리가 아는 그런 실 넣는 바늘구멍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에 실제로 있던 ‘작은 문’의 명칭, 아니면 실제로 있던 ‘개구멍’이라고 설명하는 해석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왔을 때 이 이야기를 했다는 점입니다. 

이 해석에 따르면, 예루살렘 성은 도적이나 이방 군대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해가 지면 큰 성문을 닫는데, 늦게라도 들어와야 하는 주민과 상인들을 위해 높이 1m 정도의 작은 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문 이름이 바로 ‘바늘귀’(eye of a needle)였다라고 설명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늘귀라는 문이 워낙 작다 보니, 어른도 몸을 숙여야만 간신히 들어올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적국의 기마병이 말타고 들어올 엄두는 감히 낼 수 없는 그런 문이지요. 이런 문을 만든 건 순전히 성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기발한 장치라고 보면 될 겁니다.

 

당시 시대상을 생각해 보면, 늦은 밤 성문이 닫혀 있을 때 낙타에 짐을 싣고 상인들이 성에 도착할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일단 검문을 하고 낙타에서 모든 짐을 다 내린 다음 해야 하는 일이 사방 1m의 작은 돌 문에 낙타를 쑤셔 넣어야 합니다. 상상해 보면, 이게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낙타가 거기 들어가려면 일단 무릎부터 꿇린 상태로 네 다리를 묶은 다음 살살 끌어도 될까 말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억지로 밀어 넣으면 낙타가 가만히 있을까요? 난리도 그런 난리가 아니었을 겁니다. 제가 낙타를 안 키워봐서 잘 모르겠는데, 누구 말로는 낙타는 원래 무릎을 안 꿇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좁은 문으로 집어넣는 건 거의 불가능하거나 진땀 빼는 일인 건 확실합니다. 

 

그럼 아예 낙타가 그 좁은 문으로 들어 갈 방법이 없냐? 그건 아닙니다. 일설에 의하면, 옛날 상인들은 낙타가 어릴 때부터 무릎을 꿇고 몸을 낮춰 조금씩 움직이며 바늘귀 통과훈련을 시켰다고 합니다. 일종의 조기교육이지요. 훈련 없는 낙타는 무릎은 굽힐 수 없어서 절대 좁은 문(바늘귀)을 통과할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19장에서 유대인들에게 이 바늘귀 이야기를 했을 때, 거기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예루살렘 성 구석에 있던 그 작은 ‘바늘귀’ 문을 떠올렸을 겁니다. 이와 함꼐 그 문을 통과하는 번거로운 과정도 떠올렸을 겁니다. 그러면서 ‘아, 그래. 부자가 천국 가는 건 그렇게 힘든 것이구나’ 하면서 말입니다. 여기까지가 '바늘귀는 실재했던 작은 문'이라고 말하는 이들의 해석입니다. 

 

앞서 제가 세 가지 해석을 소개했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게 쉽지 않다’는 말씀을 전하려고 예수님이 과장법을 사용했다는 첫 번째 해석 외에 나머지 두 해석은 반론이 만만치 않습니다. 

밧줄을 낙타로 오역했다는 주장은 고대 성경 사본과 유대 랍비 문서들을 연구해 보니, 예수님이 말씀하신 낙타 비유가 이미 다른 사람들도 사용하고 있다는 게 밝혀졌고, 심지어 어떤 문헌엔 낙타 대신 코끼리가 나오기도 한다는 걸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역이라는 해석은 이제 더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해석입니다. 

 

문제는 세 번째 해석인데요, 바늘귀라는 문이 실제로 있었다는 주장은 예루살렘 성에 그런 이름의 문이 있는지 고대 문헌에서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간혹 예루살렘에 성지순례 다녀왔다는 분들이, 거기 갔더니 예루살렘을 잘 아는 여행가이드가 이게 ‘바늘귀’라는 이름의 문이라고 설명했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은 거니까 그냥 믿거나 말거나 재미있는 이야기 정도로 흘리시면 됩니다. 

 

마지막 날 좁은 문 

 

다시 돌아갑시다. 우리의 관심은 누가복음 13장에 나오는 ‘좁은 문’이 무엇이냐에 달려있습니다.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바늘귀’가 그 ‘좁은 문’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실제로 있든 없든 큰 문제는 아니에요. 왜냐하면, 둘 다 의미는 통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라고 하십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는 게 낙타를 쑤셔 넣듯 번거롭고 어려워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게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서는 ‘좁은 문’(바늘귀)의 반대말을 생각하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좁은 문의 반대말은 ‘크고 넓은 문’입니다. 이건 어린아이도 다 아는 상식이지요.

 

큰 문은 큰길 끝에 나타나고, 작은 문은 좁은 길 끝에 나타납니다. 1세기 예수님 당시라면, 큰 대로를 따라가 나오는 문은 어디일까요? 그것은 분명히 대제국인 로마일 겁니다. 황제의 나라, 문명과 권력의 나라, 그곳이 큰길을 걷다 만나는 크고 넓은 문, 즉 로마제국으로 통하는 문입니다.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라고 가르칩니다. 그곳은 제국의 반대편, 황제가 통치하는 나라가 아닌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여기 들어가길 힘쓰라고 말씀합니다. 이곳은 집주인인 하나님이 한 번 문을 닫으면 결코 들어올 수 없고, 슬피 울며 이를 갈고 후회해도 통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온 사방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모두 일어나 그분의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혈통이나 성별, 부와 가난, 지혜의 유무, 서열과 상관없이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수도 있고, 나중 된 자가 맨 앞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시작할 나라는 모든 시간과 공간, 물질과 영을 한 손에 쥔 주님이 모든 것을 심판하며 새 창조를 완성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때가 되면 누군가에겐 공포와 파국의 순간이고, 누군가에겐 영광과 은혜의 때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마지막 날 일어날 사건을 가르치려고 누가복음 13장에서 회개를 선포하고 여러 비유로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들려주십니다. 좁은 문, 그것은 넓고 편한 제국의 길에선 만날 수 없는 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주님의 길을 걸어갈 때만 만날 수 있는 문이 좁은 문입니다. 좁고 불편한 길, 좁은 문이기에 누군가의 눈에는 바보 같은 여정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신앙의 눈으로 보면, 이 좁은 길, 좁은 문이 복되고 영광스러운 나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신앙의 삶이라고 부릅니다. 

 

유아세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라는 오늘의 복음서 말씀이 오늘 함께 축하할 유아세례와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십계명 사도신조 주기도로 일상을 채우고, 늘 성서를 읽고, 성찬으로 거룩한 사귐을 나누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경건하게 살길 서약합니다.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은 욕망을 따라 걷는 제국의 삶을 거절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제국의 삶엔 숨겨진 좁은 길, 좁은 문을 찾아 걸어갑니다. 이 신앙의 삶은 십자가의 길이기에 누군가에겐 우매한 인생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우매하고 이해할 수 없는 길을 갈 수 있는 이유는 같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받은 닮은 꼴의 사람들이 같은 믿음, 같은 소망 가운데, 서로의 곁에서 격려하며, 같은 길을 함께 걷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걷는 신앙의 길 끝에 좁은 문을 열면, 거기서 주님은 당신의 약속대로 우리를 기쁘게 맞아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좁은 길을 함께 걸어갑시다. 세례를 통해 우리를 부르시고 당신의 소유로 만드신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저와 여러분을 기이한 빛 가운데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맞아주실 것입니다. 바라기는 믿음의 길을 걷는 모든 성도에게 주님의 선한 인도가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멘.

 

교회의 기도

 

모든 만물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당신께서는 모든 시간과 공간을 손에 쥐셨습니다. 당신의 다스림이 세례 받은 우리에게서 드러나게 하소서. 세상에 숨겨진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 드러나게 하소서. 

우리의 육체를 죽일 수 있는 세상의 권세를 두려워하기보다 육체와 영혼을 능히 죽이고 살릴 수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신뢰하게 하옵소서. 

 

영원한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약속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유산으로 갈라진 세상의 징검다리를 놓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우리가 던지는 징검다리 조각이 불의와 불법에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오니 탐욕과 불법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닌 공정과 상식, 그리고 위로와 사랑이 통하는 나라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이 일을 위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이 교회의 모든 신자가 일상 속에서 세상을 살맛 내도록 녹아드는 소금 되게 하여 주옵소서. 눈과 입과 귀에 달콤한 길을 걷기보다 진리 가득한 십자가의 길을 가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소서. 그 영원한 힘이 우리 안에 차고 넘치쳐서 우리를 통해 상이 쉼을 얻고 그리스도의 나라를 듣고 볼 수 있게 하소서. 

세례 받은 이들과 오늘 주님의 세례를 받는 이를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부르셨으니 당신이 세우신 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뜻을 섬기며 이웃과 더불어 살게 하소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며 하나님나라의 잔치로 초대하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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