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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1:2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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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2018.4.15 주일 희망의교회 http://hopech.kr |
표적과 등불
눅11:29-36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하던 4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기적을 베푸시면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광야는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추울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전혀 얻을 수 없는 거칠고 메마른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하시며 인도해주셨고, 매일 만나를 내려주셨으며, 반석에서 생수를 내주셨습니다. 이백만 명 이상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엄청나고 놀라운 열 가지 재앙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갈라 마른 땅으로 건너가게 하신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광야에서 헤아릴 수 없도록 많은 기적을 보면서 지냈습니다. 그들은 매일 기적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려운 일이 생긴다 해도 자신들과 함께 하시며 돌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해결해주시리라 믿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하며 불순종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에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읽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말 믿음 없고 못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일 나에게 광야의 이스라엘이 경험했던 놀라운 기적을 한 가지만이라도 보여주신다면, 나는 오직 하나님만 온전히 신뢰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기적을 보여주신다면 당신의 믿음은 흔들림 없는 굳건한 믿음이 되겠습니까?
저는 목회를 해오면서 기적이 믿음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많이 확인했습니다. 어떤 분은 병을 고쳐주시면 잘 믿겠다고 하더니, 병이 나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영영 교회를 떠나버렸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를 체험하고도 얼마 되지 않아 믿음이 식어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기적이 믿음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생깁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일어납니다.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보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자, 그 사람이 다시 보며 말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랐는데,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었는데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왜곡하며, 예수님을 귀신의 패거리로 치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나라가 서로 분쟁하면 어떻게 설 수 있겠느냐고 하시면서 그들의 악의적인 주장을 반박하셨습니다. 역사를 보면 내분이 일어난 나라들은 다 망했는데, 이것은 사탄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신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의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것은 곧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하여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만일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라면 귀신 쫓아내신 것으로는 부족하고,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16절) 이들이 말하는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란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을 때 하늘에서 만나가 내린 것이나, 엘리야가 기도하여 하늘로부터 불이 내리게 한 이적과 같은 것을 가리켰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메시아라면 그러한 이적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수많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셨고 병을 고치셨으며, 죽은 자를 살려내기도 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셨으며, 바람과 바다를 명하여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이적들은 예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증거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열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들을 보았더라면, 그리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을 들었더라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메시아이심을 얼마든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들은 마음이 완악하여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만일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라면 하늘로부터 오는 이적을 보여야 한다고 요구했던 것입니다.
요나의 표적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요구를 거절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29-30절)
앗수르의 수도였던 니느웨 사람들은 매우 악하고 타락한 자들이었습니다. 이제 니느웨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사람들이 멸망당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요나를 보내사 심판을 경고하며 회개를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욘1:2)
요나는 이스라엘의 원수인 니느웨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만일 하나님의 명령대로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며 회개하라고 외친다면, 그래서 니느웨 사람들이 정말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니느웨 사람들을 용서해주실 것이었습니다. 요나는 이것이 싫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원수인 니느웨는 심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 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욘1:3)
하나님께서는 폭풍을 보내셔서 결국 뱃사람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지냈습니다. 그 동안 요나가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당했겠습니까?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로 결단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흘 만에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셨습니다. 그제서야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욘3:1-4)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가 선포한 말씀을 듣고 왕으로부터 짐승까지 재를 뒤짚어 쓰고 회개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에 내리시기로 하신 심판을 철회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동안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사흘 동안 무덤에 계시다가 부활하실 것에 대한 예표였습니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30절) 마태는 이 말씀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마12:40)
요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이방인들이었으며 심판이 임할 정도로 죄악이 심했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전한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용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요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요나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시는데도 유대인들은 회개하지 않았고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심판날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유대인들을 정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32절)
스바 여왕
예수님께서는 또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찾아온 스바 여왕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31절)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 그의 소원을 물으셨을 때, 솔로몬은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지혜뿐만 아니라 부와 재물과 영광까지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얼마나 놀라운 지혜를 주셨던지 세상 모든 왕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천하의 모든 왕들보다 큰지라 천하의 열왕이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그의 얼굴을 보기 원하여 각기 예물을 가지고 왔으니”(대하9:22-24상)
예수님께서는 그 중에서도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찾아온 스바 여왕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역대기는 기자는 이 일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질문으로 솔로몬을 시험하고자 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니 매우 많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향품과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솔로몬이 그가 묻는 말에 다 대답하였으니 솔로몬이 몰라서 대답하지 못한 것이 없었더라”(대하9:1-2)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먼 곳에서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 또 솔로몬이 나라를 통치하는 모든 것들을 보고서 놀라고 감탄했습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와 그가 건축한 궁과 그의 상의 음식물과 그의 신하들의 좌석과 그의 신하들이 도열한 것과 그들의 공복과 술 관원들과 그들의 공복과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는 층계를 보고 정신이 황홀하여 왕께 말하되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진실하도다 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본즉 당신의 지혜가 크다 한 말이 그 절반도 못 되니 당신은 내가 들은 소문보다 더하도다”(대하9:3-6)
성경은 스바 여왕이 솔로몬에게 엄청난 예물을 드렸으며, 자기가 원하는 것을 솔로몬에게 받아 돌아갔다고 기록했습니다. 후에 사람들은 이 여왕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녀가 솔로몬에게서 하나님에 대해 듣고 돌아갔으며, 아마도 돌아가서 하나님을 섬겼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먼 곳에서 찾아왔는데, 지금 유대인들은 솔로몬과는 비교조차 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등불과 눈
이 말씀을 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눈과 등불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33-34절)
등불은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밝히기 위해서 켭니다. 캄캄한 곳에서 우리는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빛을 밝히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몸에서 눈이 등불과 같습니다. 우리 몸에는 수많은 지체들과 감각기관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눈의 역할이 가장 큽니다. 그래서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눈이 성하면 우리는 사물을 잘 볼 수 있고, 거기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눈이 나쁘면 몸이 건강해도 행동에 많은 지장을 받게 됩니다.
등불이 비추고 있다 해도 눈이 나쁘면 볼 수 없습니다. 등불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눈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몸은 우리의 모든 행실과 삶을 가리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항상 말씀의 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를 감화하시며 인도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눈이 나쁘면 빛이 비쳐도 볼 수 없듯이, 마음이 완악하면 말씀을 듣지 않고 성령의 감화하심에 무관심합니다. 눈이 성하면 빛을 통해 사물을 잘 분별하며 바르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착하고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말씀을 잘 듣고 깨달아 순종합니다.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러면 우리는 가장 바르고 복되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35-36절)
당신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빛이 비치고 있습니까? 당신은 그 빛을 밝히 보고 있습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고 있습니까? 말씀을 사랑하며 깨닫고 순종하여 살아가고 있습니까?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귀를 기울여 그 인도하심을 따라 행동하고 있습니까? 늘 회개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삶은 빛으로 가득하고 어둠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도 그 빛을 비추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5-16)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의 눈입니다. 단순하고 겸손하며 진실된 마음이 중요합니다. 스바 여왕은 먼 곳에서 찾아와 하나님께서 주신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고 돌아갔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용서받고 심판을 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솔로몬이나 요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빛이 비추고 있었으나 눈이 성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음이 완악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눈은 성합니까? 당신은 진실되고 겸손하며 단순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 말씀을 듣기 위해 얼마나 마음을 기울이며 힘쓰고 있습니까? 공부나 일, 취미를 위해 투자하는 것보다 더 힘써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 듣고 배우는 기회를 힘써 붙들어야 합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집중하여 설교를 들으십시오. 진지하게 말씀을 읽고 묵상하십시오. 반드시 목장 모임에 참석하여 말씀을 나누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당신을 정죄할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당신을 정죄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 때 핑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말씀이 있으며,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단순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순종하십시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8:15) 진실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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