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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의 외식

누가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358 추천 수 0 2019.01.09 23: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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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1:37-54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2018.4.22 주일 희망의교회 http://hopech.kr 

바리새인들의 외식

눅11:37-54


  예수님께서 몸의 등불은 눈이라고 하시면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눈은 우리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진실되고 겸손하며 단순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빛 가운데 살게 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인정하시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완악하고 우둔하여 말씀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성령의 감화하심과 인도하심을 외면하고 살아가면 하나님 백성다운 모습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당신의 눈은 혹시 어둡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손 씻는 일


  어떤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점심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37절) 이 바리새인이 어떤 의도로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평소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적대시하며 비난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좋은 의도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바리새인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회가 있으면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하기 원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식사 전에 반드시 손을 씻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날 식사하시기 전에 손을 씻지 않으셨습니다. 이 바리새인은 그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38절)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식사 전에 손 씻는 것은 위생적인 이유가 아니라 의식적인 이유에서였습니다.
  엄격한 유대인들은 밖에서 돌아왔을 때나 식사 전에 반드시 손을 씻었습니다. 그것은 밖에서 부정한 것이나 부정한 사람과 접촉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지키는 전통에는 손을 씻을 때 사용하는 물의 양과 씻는 방법이 자세히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것은 율법에는 없으며, 바리새인들이 만들어낸 전통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유전을 만들어 그것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율법을 어긴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율법의 정신을 놓침


  바리새인의 초대를 받아 식사 자리에 앉으신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손을 씻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이 바리새인은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으신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겉으로는 깨끗하고 거룩하게 보이지만, 안에는 탐욕과 악독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39-40절) 바리새인들은 그릇은 깨끗하게 했지만, 정작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죄는 버리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율법을 형식적으로만 열심히 지키는 바리새인들에게 율법의 정신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41절) 율법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형식적으로만 지켰고 사랑은 버렸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켰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은 외면했습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바래새인들의 자랑이요 자부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의 형식적인 준수에만 열을 올렸고 율법의 참된 정신과 교훈은 놓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율법준수는 그들을 변화시키지 못했으며,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바리새인들의 철저한 율법준수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되어 버렸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도 되지 못했습니다.


    화 있을진저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 같지만, 정작 율법이 가지고 있는 정신은 버린 바리새인들에게 화를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42)


  율법은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토지의 소산에 대한 십일조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 텃밭에 심은 모든 채소, 심지어는 양념이나 향료로 사용하려고 울타리 밑에 심은 약간의 허브 종류에 대한 십일조까지 철저히 드렸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율법을 철저히 지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정작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형식적인 율법준수에 지나치게 집착한 반면에 율법의 진정한 정신과 핵심인 공의와 사랑은 버렸습니다. 십일조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며 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모든 재물과 자신이 가진 것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십일조는 철저히 드렸지만, 가난한 백성들과 억압당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백성들을 착취하고, 그들을 죄인으로 여겨 상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지나친 명예욕과 교만을 책망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43절) 그들은 언제나 높은 자리에 앉기를 원했으며, 대우받고 존경받기를 좋아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인사는 단순한 문안 인사가 아니라 존경의 의미로 하는 인사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의 교만을 잘 보여줍니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책망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44절) 율법에는 사람이 시체에 접촉되면 칠 일 동안 부정하게 되며, 정결하게 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평토장한 무덤은 표시가 잘 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르고 그 무덤을 밟기 쉬웠고, 그러면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이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여, 마치 평토장한 무덤처럼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부정하게 만든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들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 바로 외식입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경건하고 거룩하며 믿음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고,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온갖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도 진정한 믿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과 과시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철저히 지켰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탐욕과 악독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법입니다. 그 법을 온전히 지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버리며 회개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다윗은 율법을 철저히 지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속사람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율법준수는 형식적인 것이었고, 그들의 마음속에는 온갖 죄악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본래 ‘외식’이라는 말은 배우가 무대에서 가면을 쓰고 어떤 역을 연기하는 것을 가리켰습니다. 배우가 연기하는 동안에는 그 역할에 충실합니다. 그러나 무대에서 내려오면 그 배우는 그가 맡았던 배역과는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이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맡은 한 가지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그들의 종교생활과 철저한 율법준수는 그들이 맡았던 배역일 뿐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그들의 인격과 생활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율법준수는 위선이었던 것입니다.


    지기 어려운 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자, 어떤 율법교사가 듣고 있다가 이렇게 항의했습니다.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다”(45절)


  율법교사는 율법에 정통하며, 율법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율법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 해석과 그 적용을 전문으로 하는 자들로서, 유대 사회에서는 지도층 인사들이었습니다. 율법교사는 모두 바리새인들이었으며, 때로는 서기관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율법교사들은 바리새인들 중에서도 가장 권위 있고 전문성을 갖춘 율법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자, 이 율법교사는 자기들까지 모욕하시는 것이라고 항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교사들도 마찬가지로 화가 있을 것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46절) 율법교사들은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을 연구하고 해석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잘 지키게 하려고 세분화된 조문들을 무려 613가지나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조문들은 너무나도 많고 복잡하여 일반 백성들이 그 모든 것을 암기하여 지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율법교사들은 이렇게 율법을 지키기 어려운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백성들에게 지기 어려운 짐을 지웠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그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 섬기는 일은 지기 어려운 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축복이요 특권이며 영광입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 순종하기를 힘쓰십시오. 그리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마음으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죄인인 우리가 감히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영광의 하나님을 만나 뵙게 되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이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율법교사들은 복잡하고 어려운 계명들을 만들어 하나님 섬기는 일을 지기 어려운 짐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반복되는 죄악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신 역사였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선지자들이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후에 유대인들은 이러한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어 치장했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47절) 유대인들은 조상들이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인 것을 애석해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비석을 세움으로써 자신들은 그 선지자들을 인정하고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48절)


  문제는 이들이 그렇게 하면서 자신들 시대의 선지자들의 말은 듣지 않고 핍박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죽은 선지자의 무덤을 만들면서, 지금 살아 있는 선지자들의 말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49절) 그들은 최고의 선지자였던 세례 요한의 말을 듣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아들까지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더 큰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50-51절)
 
    열쇠를 가지고 문을 닫음


  예수님께서는 율법교사들이 그들에게 맡겨진 본분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백성들을 망하게 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52절)


  율법교사들은 율법에 정통하며 율법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자들로서, 율법을 해석하고 적용하여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백성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맡은 자들로서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하여 백성들이 알아듣기 쉽게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율법을 지키기 어려운 계명들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율법의 형식적인 준수만 강조하고 율법의 핵심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사장시켜버렸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도 율법을 지키지 않고, 백성들도 율법을 지키지 못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마태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23:13)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오늘 말씀을 맡은 목사와 목자, 교사, 그리고 부모들은 이 말씀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자신이 말씀을 잘 깨닫고 순종할 뿐만 아니라, 성도들과 학생과 자녀들에게 쉽고 은혜롭게 감동적으로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말씀에 굳게 서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얼마 전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이 다시 기억났습니다. “내가 사람들을 너에게 많이 보낼 테니 그들에게 잘 설명해주도록 해라.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주어라.” 이 말씀을 듣고서 얼마나 가슴이 뜨거웠는지 모릅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들


  예수님께 이렇게 책망을 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회개했을까요? 그들은 오히려 격분하여 예수님을 대적했습니다.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53-54절)


  회개할 줄 모르는 자들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누구나 잘못하고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며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돌이킨다면, 얼마든지 용서를 받고 은혜를 힘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수 없고 은혜를 힘입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소망이 없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말씀을 듣고 묵상하면서 책망을 받고 찔림을 받을 때 즉시 회개합니까? 이제 열심을 내어 하나님께 집중하여 살아가자는 안타깝고 간절한 권면을 진지하게 듣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회개하기를 힘쓰며, 열심을 다하여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외식에 빠지는 것입니다. 겉모습은 믿음 좋은 그리스도인처럼 보이는데, 속은 전혀 그렇게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굳어지고 심해지면 바리새인들처럼 되어버립니다. 정직하고 진실되게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기를 힘쓰십시오. 특히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여 마음을 다해 듣고 묵상하며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 인내로 결실하는 성도, 믿음과 인격과 삶이 말씀으로 온전히 새로워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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