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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7:1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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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참고 :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
장애인에게 복음을
누가복음 7:18~23
2018. 4. 15(장애인주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기준 삼아 1989년부터 4월 셋째 주일을 ‘장애인주일’로 제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이는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에 대한 주님의 사랑을 함께 나누고자 함입니다. 장애인주일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다 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엄한 존재임을 재확인하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며, 장애인의 권리와 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책임과 사명을 다짐하고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2008년 4월 <장애인 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어, 교회에게 장애인 선교를 위해 더 많은 기도와 관심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애를 가진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음을 성서는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 가운데 있는 장애인들을 차별하지 말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보호하고 돌보라고 명령하십니다. “너는 청각장애인을 저주하지 말며 시각장애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14), “시각장애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 27:18)
입이 둔하여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고 주저하는 모세를 향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가 시각장애인을 만들었으며 누가 청각장애인을 만들었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출 4:11)” 하나님은 장애인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동역자로서 장애인을 세우셨음을 천명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봅니다. 지금 세례 요한은 헤롯이 자기 동생의 아내와 저지른 불륜행각과 그가 저지른 악행에 대해 비판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일로 인해 체포되어 옥에 갇혀 있었습니다(눅 3:19-20). 옥에 갇혀 있는 세례 요한의 소망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 모든 악을 제거하시고 유다를 다시 다윗 시대의 영광의 나라로 회복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기대하고 있던 예수님의 사역은 바로 그러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통해 듣고 있는 소식은 그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보내 당신이 약속된 메시아가 맞느냐?고 물으라고 한 것입니다(19절).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갔을 때 마침 예수님께서 무리들의 질병을 고치고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고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시는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이 질문을 받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너희 스승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자가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전하라고 하십니다(22절). 그리고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23절).
세례 요한이 선포했던 메시아는 이스라엘의 악을 제거하고 다윗 왕국을 재현할 분이었습니다(사 9:7, 단 7:14). 그가 헤롯왕을 향해 담대하게 그의 죄악을 질책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아가 오시면 악인을 심판하실 것임을 담대하게 선포했었습니다(마 3:7-12). 이제 메시아가 등장했으니 조만간 헤롯왕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이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옥에 갇혀도 전혀 두려울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옥에 갇힌 후 그에게 들린 예수에 대한 소문은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상대하는 자들은 유대 사회에서 아무런 영향력도 힘도 갖고 있지 않은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상대로 말씀을 가르치고 그들의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그 땅의 악을 제거하고 자신들을 압제하고 있는 로마인들을 몰아내고 다윗 왕국을 재건하는 일은 예수님에게 관심 밖의 일로 보일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에 왔다 가신 후 이스라엘에 달라진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들인 교회가 등장한 것뿐이었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에 심각한 사회 분열과 갈등만 일어났을 뿐입니다. 세례 요한이 기대했던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이 옥에 갇혀있을 때도 예수님은 그를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으셨습니다. 철저히 그를 외면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다정다감한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러나 제가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예수님은 그러한 분이 아닙니다. 결국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 그 어떠한 실제적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천국에 합당한 자로 만들어 가시는 분입니다. 눅 6:20절을 보면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라고 말합니다. 제자들이 가난하게 된 것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신의 직업과 가족을 다 버린 탓입니다(눅 5:11). 예수님은 자신 때문에 가난한 삶을 경험하고 있는 제자들을 보시며 복이 있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해져서 천국을 소유한 자가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 때문에 천국을 소유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예수님 한 분으로 모든 것을 소유한 자입니다. 믿음은 신자에게 이러한 복을 보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알게 되고 그분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한 자가 되었다는 것 하나 때문에 이 세상 것 다 잃어버려도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며 오직 예수님 한 분을 증거하며 그분을 자랑하며 사는 자들이 신자입니다(벧전 1:6-9).
그러나 이러한 믿음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은 현실적인 삶의 환경이 나아지지 않거나 더 나빠지게 될 때 이러한 자기 사정을 돌보지 않고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으로 인해 믿음의 실족하게 됩니다. 신자가 힘써야 할 것은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인가를 힘써 배우는 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소외당한 많은 병인들과 장애인들을 가까이 하시며 치유하여 주십니다(마 4:24, 14:1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들린 자, 간질장애인, 지체장애인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주시니라.” 제자들이 와서 사람들이 장애의 원인이 개인의 죄, 혹은 부모의 죄인가라고 물었을 때,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함(요 9:3)”이라고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장애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 우리의 형제요 자매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장애인 주일을 지키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장애인의 존재의 의미를 되새겨보기 위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안에서 장애를 가진 형제, 자매를 발견하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장애인들은 교회에 가서 일반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시설에서부터 각종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장애인과 함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라고 나라에서 정해놓았습니다. 오늘은 교회가 장애인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우리 비장애인들은 어떻게 장애인들과 함께 동행할까 고민하면 장애인들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장애인들의 흉내로 그걸 예술이라고 춤을 만들고 인간문화제 까지 칭호를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참 무지한 역사였지요. 예수님의 생각을 잘 깨달아 예수님을 흉내내야 성도입니다.
교회는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똑같이 예배드리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왜 장애인들을 섬겨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섬기라고 명령 하셨기 때문입니다.
2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눅 7:22)
구약에 이미 이사야 61장 1-2절에 은혜를 베푸는 해와 모든 고통 받는 자를 치료하는 해를 선포하였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7:22에 맹인(시각장애인). 못 걷는 사람(지체장애). 나병환자(한센병). 귀먹은 사람(청각장애). 이런 장애인들을 위하여 메시야(예수님)가 오셔서 회복시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은혜의 날을 정해 놓으신 것은 메시야가 오시는 그날 우리 장애인들이 온전한 사람으로 메시야가 회복 시켜주신다고 하셨습니다.
22절에 결과를 보고 우리 주님이 요한에게 판단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삶에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앙망하며 기도하면 꼭 그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회복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 회복 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면에 회복의 중심은 메시야 주님이 되셔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의 몸이 영광의 몸으로 바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이 불편한 육신이 불편한 육신이 아니라 모든 육신이 회복되어 사슴과같이 뛸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망의 그림자가 지나갑니다. 우리 하나님은 시각장애인 같은 장애인들을 모독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장애인(복지)과 더불어 함께하지 않는 교회는 가식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는 장애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며 주님의 사랑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4장 4절 이하에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지체장애인이 나옵니다. 전에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급히 도망하다가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무엘하 9장 3절~11절 이하에 다윗 왕이 장애인에게 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항상 므비보셋과 함께 한상에서 식사할 것이라 했습니다. 이 마음이 우리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8절에 보면 므비보셋이 ‘죽은 개 같은 나를 돌보시나이까’라고 합니다. 11절에 보면 왕자중 하나처럼 나와 함께 먹을 것이라 다윗은 말했습니다. 모두가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시면 우리 하나님께서도 좋아하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마음을 품고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장애인과 함께 하는 교회,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는 교회,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하는 교회, 예수님 마음으로 신앙 생활하는 교회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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