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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5: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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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18.6.10 주일예배 설교 여의도순복음교회 |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15:11~20]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사람들이 멀리하고 꺼려하는 죄인들도 가까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을 보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수군거리며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한 가지 비유를 들어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1. 아버지를 떠난 아들
아버지를 떠난 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산을 받아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둘째 아들이 먼 나라로 떠난 것은 아버지가 없는 세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간섭만 없으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떠난 삶은 죄짓고 방탕한 삶이요,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허기를 채울 수 없는 궁핍한 삶이었습니다.
오늘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면 마음에 흡족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그러나 고달프고 비참한 생활뿐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떠난 이후, 모든 사람이 평생에 땀 흘리고 수고하고 있는 고달픈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보고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실상을 잘 보여줍니다. 욥기 14장 1절에 보면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전도서 2장 23절에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고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2.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둘째 아들이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자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로 결심을 합니다. 우리들도 하늘 아버지께 죄를 지어서 답답하고 고통스러울 때, 비로소 하늘 아버지께 돌아가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회개란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호세아 6장 1절에 “오라 우리가 야훼께로 돌아가자 야훼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라고 말씀하며, 요엘서 2장 13절에도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야훼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상처를 싸매고 치료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들은 가지고 있던 재산을 당시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자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고달픈 삶을 살아가던 그는 품꾼들조차 배불리 먹는 아버지의 집을 떠올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잘못된 길로 갈 때,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우리를 돌이키게 하십니다. 불이 났을 때, 소를 외양간에서 끌어내려고 하면 소가 겁을 먹고 나오지 않습니다. 그럴 때 소 앞에서 소구유를 뒤엎어버리면 따라 나옵니다. 밥그릇이 있는 이상 안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잘못된 길로 갈 때,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우리를 돌이키십니다. 고통 가운데서 올 데 갈 데가 없게 되면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나를 살려주시옵소서”라고 고백하며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배부르고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고난을 당하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가던 제자들은 무서운 풍랑을 만나자 간절히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마태복음 8장 25절에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도 인생의 풍랑을 만나면 새벽 기도도 하고 철야 기도도 하고 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도 하면서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하고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것을 우리가 생애에 체험하는 것입니다. 인생에 고난의 풍랑이 불 때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32절로 33절은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는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사람은 고난을 통과할 때 낮아지고 깨어지고 변화되고 하나님께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낮아지고 깨어지는 우리 인생을 둘째 아들 형편에서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아들은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그 마음이 낮아지고 깨어졌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아니라 품꾼으로 살겠다는 낮아진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께 돌아갈 것을 결심했던 것입니다. 잠언 28장 13절에 보면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고, 시편 34편 18절에는 “야훼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낮아지고 깨어진 마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고 은혜로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3.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버지는 날마다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올 때, 마을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수치를 당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다른 사람보다 먼저 아들을 만나려고 달려갑니다. 그리고 아들이 “제가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말하기 전에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을 보면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장을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이처럼 큰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마음에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 44장 22절에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아버지는 방탕한 삶을 살다가 돌아온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기고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로서 아들의 지위를 완전히 회복시켜 준 것입니다. 스바냐 3장 17절에 보면 “너의 하나님 야훼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놀랍지 않습니까? 이사야 30장 18절에는 “그러나 야훼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반면 첫째 아들은 아버지가 동생을 환대하는 것을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그를 설득합니다. 누가복음 15장 31절과 32절에 “얘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합니다. 첫째 아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둘째 아들은 불쌍히 여겨서 살려주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그를 기쁘게 받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며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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