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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3: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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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3장 7절-14절.
7절-9절: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나쁜 열매가 동서남북 어느 가지에 붙어있었든지, 둥치이든 가지이든 전부는 다 잘립니다. 뿌리에다가 도끼가 이미 놓였다고 그랬단 말이요. 그러니까 나무가 사람 같으면 ‘빨리 좋은 열매를 맺었다면 도끼에 안 잘릴 수 있었다. 열매를 맺지 않아서 둥치를 잘라버리는구나’ 그것도 있겠지만 이건 아예 질적 면에서 뿌리에 도끼가 들어있단 말이요. 질이 아니다 그 말이요. 이건 아예 질이 아니다.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이건 아예 질이 아니다. 기다림이 없고 이건 아예 신앙의 본질이 아니다 그 말이요.
큰 교파 큰 교단 작은 교파 작은 교단 어떤 단체이든 여럿이든 혼자이든 교파와 교단이 있든 없든 그 육적 세상적 종교적 이질적 그 정신 사상에 열매를 맺은 자는 하나님에게 찍혀서 불속에 고통 속으로 던지우게 되는 것이다 그 말이요. ‘불속이다’ 그러면 고통이다 그 말이요. 고통 많이 당하고 있지요. 당해봤고 또 당할 가능성이 있고. 그래서 이 나무보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사람 나보고 하는 말씀이니 사람이 불속에 던져진다면 불속은 고통이니까 죽기 전까지 원망소리 비명소리 신음소리 날 터이니 어떻게 살아갈 마음이 나겠어요? 아무튼 재앙의 큰 고통이 어떤 식으로 주어질는지 우리 모두는 자기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사람들은 예수 믿는 것을 어떤 식으로만 알고 있는가? 성수주일 잘 지키고 헌금 잘하고 전도 잘하고 새벽기도 잘 나오고 사회봉사 잘하고 성령 신비체험 많이 하고 큰 건물 짓고. 아마 교인들에게 묻는다면 그 대답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런 것을 좋은 열매라고 말을 할 것이다 그 말이요. 그럼 우리는 그거 하지 말라 그 말이지요? 그 말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이방인들도 그렇게 볼 것이라 그 말이요. ‘아, 저 집은 교회 열심히 나간다’ 그러고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것을 기준삼아서 말할 것이라 그 말이요. 세상은 그럴 수밖에 없는 거고.
그래서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의 대답과 예수 믿는 사람의 대답이 똑같이 나온다면 안 믿는 사람이 수준이 높은 겁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그 수준이 안 믿는 사람처럼 낮은 겁니까? 낮은 거요 높은 거요? 낮은 거지요. 예, 낮은 거요. 그 수준이 똑같아. 믿는 자들이 일반수준을 못 벗어났구나. 일반수준을 못 벗어났구나. 그런 정도를 가지고 기준삼아서 ‘믿음 좋다. 신앙 좋다’ 그래놓으면 이건 일반수준을 못 벗어난다. 신앙차원이 낮다 그 말이요. 사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지적을 받은 이 유대종교인들의 차원과 똑같다 그 말이요. 예수님으로부터 지적을 받은 유대종교인들의 차원과 오늘날 교인들의 차원이 똑같다 그 말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진리생명의 말씀으로 인격화 실상화 되는 이 성품입니다. 질이 그렇다 그 말이요. 이것이 좋은 열매입니다. 좋은 열매. 사람을 낚는 어부란 바로 이런 신앙을 말하는 겁니다. 본질화 시키는 신앙으로 맺어질 수 있도록 하는 그게 사람을 낚는 어부다 그 말이요. 단순히 그냥 ‘안 믿는 사람 교회 데리고 왔다.’ 안 데리고 오는 것보다야 낫겠지요. 그것으로 다가 아니다. 학생들이 학교 들어가면 문만 들락날락하면 돼요? 선생님으로부터 열심히 듣고 배워서 실력을 이제 올려야지요. 예수 믿는 이치도 마찬가지다. 교회만 들락날락 횟수만 채우는 이거 믿음 없는 거요. 정신 바짝 차려야 돼요.
그런 수준은 얻어맞는 거다. 이게. 왜 얻어맞는 거다? 그거는? 왜 얻어맞는 거냐? 세상의 풍조가 날마다 바뀌는데 거기에 대처하는 지혜가 없다. 그러니까 그것으로부터 얻어맞는다. 여지없다. 그거는. 맞게 돼 있다. 안 맞는다가 아니고 맞게 돼 있다. 우리 모두 자기가 어떤 면으로서든지 고통을 당하거들랑 상대 남만 세상 환경만 탓하지 말고 자기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비뚤어진 것이 상당히 많을 거다. 그걸 가만히 질을 잡아나가야 된다. 우리교회 교훈은 그렇다. 질을 잡지 못하면 어느 정도 건강하고 몇 시간이나 몇 년이나 몇 살이나 건강할는지 모르지만 그 건강도 네 정신 마음에 따라서 그것도 고통 중에 들어가게 돼 있다.
참 그 대방동 김박사가 일리 있는 말을 해요. ‘성질내지 마라. 성질내면 간에서 벌써 열이 오르고 눈에서 핏대 선다.’ 눈이 막 충혈 되고 핏대가 선단 말이요. 그게 간으로부터. 주로 간에서 역할 되는 것이 참 많은 모양이요. 예, 그래서 이걸 이제 생각을 하면서 성경구절을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모든 병은 마음에서 나온다. 예, 간하고 한 번 연결시켜봐라. 우연한 게 아니다. 이게. 그러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말씀밖에 더 있겠냐? 그 마음 다스리지 못하고 대부분 보면 악한 습성이라든지 선악과 따먹은 그 요소를 예수 믿으면서 계속 빼기도 하고 말씀성을 집어넣어야 하는 건데 그거와 상관없이 물질적 개념으로 뭐가 자꾸 형편이 펴지는 이런 자꾸 사고방식으로 예수 믿어. 그건 틀렸다. 안 고치면 수 년 수십 년을 믿어도 너는 고통으로 들어가 있게 되는 존재다. 건강하더라도 이룰구원 차원에서는 시간만 넘겼고 성장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이제 목사님들과 교훈을 많이 접하게 되니까 내가 ‘전도사님들, 뭐가 전도사냐? 목사 뭐가 목사냐? 다 틀려먹었다.’ 그러니까 ‘너만 제일이냐’ 그럴 거라. ‘그래, 나만 제일이다. 어쩔래?’ 정신이나 똑바로 가져야지. 근데 정신이 다 틀려먹었다. 정신면에서 틀려먹었다. 자세가 기본자세가 틀려먹었다. 교인들을 끌어 모아다가 하나의 종교사역적 목적이 아닌 겁니다. 교회는. 진리인격화 실상화 하나님의 본질의 온전화 성품화라 그 말이요. 그러면 이 말만 갖고 생각해보면 ‘목회가 아니로구나’ 그런 느낌이 들어요. ‘나부터 만들어져야겠다’는 그런 느낌이 든단 말이요.
말은 ‘이치적으로 한다’ 그러면서 나부터 만들어지지 못하면 성령님은 더 잘 아시는데 성령님이 입에 붙어가지고 역사하시겠느냐 그 말이요. 마음은 악령의 감화로 돼 있는데. 속성이 성령의 감화성으로 인격화 돼 있지 못한다면 이건 아무 소용없다. 하나의 종교인밖에 안 된다. 그러니까 성령의 열매로 인격화 돼 있지 아니한다면 찍혀 불에 던져지는 거다. 이건 고통으로 던져지는 거다. 자기 속에 독소가 나온다 그 말이요. 이제.
예수 믿으면서 자기 속에 하나님의 것과 다른 그런 요소를 철두철미하게 고쳐달라고 그래요. 안 그러면 그것이 병의 원인이 돼가지고 그게 다방면으로 자리를 살살 잡아 들어가요. 그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는 것이 암이라고 하는 것은 이게 죽기 직전까지 그게 커지면서 사람이 잘 모른단 말이요. 그러니까 암이 자기 속에서 주격이 돼가지고 모든 영양분을 다 빨아먹고 자기 속에서 생산적인 그걸 전부 다 사망으로 바꿔놓는단 말이요. 결국은 고통을 받고 죽는다 그 말이요.
암만 떼어내면 산다고 또 그러지요? 우리 입장에서 그 떼는 것도 좋지만 그게 생길 수 있는, 아닌 말로 참 하나님 앞에 비뚤어진 요소가 있다면 이것부터 고치자. 어쨌든 우리는 성경 하나님 말씀을 믿어야 돼요. 모든 병은 마음에서부터 난다. 그럼 마음을 다스려라 그 말이지요. 마음을 잘 다스려라.
10절-14절: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하고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이게 쭉 보면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리이까’: ‘무엇을 하여야 하리이까.’ 묻는 이들이 신앙정신과 사상의 혼합성을 가진 유대인들인가 아니면 세상의 부귀영광을 소원 목적하여 사는 이방인들인가? 만일 이방인들로 본다면 세례요한이 그들에게 한 말은 이방사상의 말이 돼버립니다. 그 이치를 잘 알아야 돼요. 이방사상의 말이 돼버린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기본구원이 전제돼야 되는 건데 그게 없이 된 말이라면 그냥 이방사상의 말이 돼버려요. 아니면 비록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 신앙사상은 진리단일로 되지 못한 세상을 향한 혼합적인 신앙들을 가졌기 때문에 무리라고 하는 표현이 된 것이 아닌가?
일반적으로 사람이 많으면 무리라고 하는데 그런데 ‘사람 많다. 숫자 덩어리 크다’는 식으로 돼 있지만 우리는 그 속에 개개인마다의 소원 목적이 단일 되지 못한 제각각 그 말이요. 그러니까 그런 면을 보았을 때 단일이 되지 못한 것은 이건 혼합이요 혼성이요 혼돈이요 혼잡이라 그 말이요. 그러니까 무리들이라 그러면 그 면을 먼저 생각을 한다 그 말이요. 이해됐습니까? 오늘날 자기 속의 그 사고방식이 무리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면 안 된다 그 말이요. 세상사람들이 흔히 갖는 소원 목적적인 면에서 그런 이해타산의 사고방식을 가지면 안 된다 그 말이요. 가졌다면 자기는 무리신앙이라. 신앙도 아니지. 사실.
그럼 예수 믿어도 자기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쏙쏙 빠져나가고 제 갈 데로 가고 그런데 흡수 돼버리고 사는 거지요. 그 이치를 알아야 된다 그 말이요. ‘누가 교회 나오네. 안 나오네’ 그게 문제가 아니고 어디 가서 붙었느냐에 따라서 ‘신앙의 정신이 이게 무리로구나. 이게 단일사상은 아니로구나. 하나님과 같지 않구나.’ ‘나하고 같지 않다’ 그게 아니고 ‘하나님과 같지 않구나.’ 그런 면을 볼 줄 알아야 된다 그 말이요.
무리적인 그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앞에서도 말했지만 도끼에게 찍히면 어떻게 될 거요? 나무뿌리에 도끼가 놓였다면 그 뿌리가 잘리면 자기는 죽는 수밖에 없는 거요. 신앙 면에 죽는 거고, 그 다음에 이방인들의 발에 밟혀서 세상을 힘들게 살다가 죽는 거고. 뭐 자기가 그렇게 살다가 죽는다는 데야 하나님인들 어떻게 강권적으로 할 수 있나? 그건 안 돼요.
그리고 세례요한의 말은 일반적인 표현 같으나 아닌 하나님의 뜻을 담은 말임이 틀림이 없다 그 말이요. 계시가 들었다 그 말이요.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볼 때에 어떤 전제를 하고 봐야 한다. 무슨 뜻으로 그 말씀을 하셨는지 그 뜻이 있다 그 말이요. 성경 전체 어느 구절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담은 계시의 말씀인 겁니다. 그래서 이 말씀 역시 지금 우리의 이룰구원을 담고 있는 계시의 말씀인 겁니다.
묻는 사람들의 직업과 종류가 있는 것은 무리들입니다. 그렇지요? 마음이 같지 않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무리들이 세례 받으러 나온 것을 보면 불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가 무섭긴 무서웠던 모양이요.
자, 그래서 옷 두 벌 있는 자는 뭐라 그랬어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주라.’ 아, 그러면 그 말대로 보면 옷이 없어서 지금 홀딱 벗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 말이지요? 문자대로 본다면? 각 집집마다 옷 몇 벌씩 있어요? 두 벌만 있어요? 그 참 시골서 해미에서 목회하면서 양복 살 돈이 없어서 장날 되면 그 뭐요? 땅색 비슷한 잠바는 주로 여름에 입으니까 그 여름잠바 그거 입고 이제 잠바입고 설교하고, 잠바도 고급 잠바가 아니지. 싸구려니까 후줄그래하지. 잠바 입고 설교하고 잠바 입고 심방가고 잠바 입고 목사님 집회하는데 올라오고. 그러니까 옷이 있어야지. 벗고는 안 되는 거고.
옷이 없으면 그 하나만 달랑 입고 나가고 그러는데 옷이 여러 벌 있으니까 ‘오늘은 뭐 입고 나가지? 무슨 장소인데.’ 그 우리 집에 넥타이가 상당히 많아요. 산 것도 있고 누가 준 것도 있고 또 시청 다니는 사람인가? 내버렸어. 그런 사람은 약간 고급적이거든. 내버려. 그걸 내가 다 주웠어. 누가 사주고 한 이런 걸 가만 비교해 보면 넥타이 질감이 확 달라진단 말이요.
그런데 여기서 이게 옷 소리냐?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누어주라.’ 그런데 가난한 살림을 살다보니 사왔는데 아무리 봐도 몸에 안 맞는다. 그래서 ‘이게 이 사람에게는 맞겠구나’ 하고 그 사람에게 준다면 뭐 금방 사온 옷이니까 그런 경우는 괜찮은데 이게 입다가 제 몸에 안 맞아가지고 남 준다는 게 좀 그래요. 그거는 느낌이 그래요. 근데 어린애들은 이게 한 달 만에 두 달 만에 애들 몸이 확확 달라지니까 입는 거 바꿔 입어도 돼요. 돌려 입고. 금방 내버리고 하니까 비싼 것 했다가는 낭비성이 많을 수가 있어요. 안 그러면 자꾸 ‘새 옷 새 옷, 좋은 옷’ 하다가요 그 애가 커 봐요. 그 다음에 자꾸 그런 정신을 갖게 돼요. 그럼 그 돈을 다 어떻게 감당을 할 거요? 남편 월급 타오는 건 쥐꼬리만 한데 만날 백화점 돌아다니면서, 아이고,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요. 그거. 그것도 교훈이란 말이요.
사람이 절제할 때는 절제하고 해야지요. 그런데 있는 데도 불구하고 청승맞게 그러면 그것도 나는 영이라고 잘 안 봐요. 분수라고 하는 걸 알아야 돼. 분수. 자기의 분수. 자기의 분수가 있잖아요? 생활의 어떤 적당한 선들이 있잖아요.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옷이 두 벌이 있으면서 한 벌도 안 주고 아마 가만 보고 있었던 모양이요? 그래요? 세례요한의 때는 옷을 벗은 사람이 그렇게 많았었나? 말하자면 그렇게 홀딱 벗고 살 정도로 못 살았냐 그 말이요. 그러니까 이게 지금 과연 옷에 관한 말인가?
옷을 벗고 있다면 부끄럽고 수치스럽지요? 그 수치스러움을 흉만 보고 손가락질 하지 말고 가려주는 사람이 되라 그 말이요. 이해됐습니까? 남의 수치를 가려주는 사람은 넉넉한 사람이 아니겠느냐? 그렇지 않아요? 그 마음이 참 넉넉하다. 풍성하다. 따뜻하다. 인간이 아니면 누가 남의 수치를 가려줄 수 있겠느냐? 짐승이 해요? 개가 해요? 소가 해요? 사람이 해야지. 남의 수치를 가려주는 것. 물고 뜯으면 뭐가 돼요? 개가 되지요. 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물고 뜯으면 개요. 가려주는 사람.
그럼 가려준다는 게 뭐요? ‘아,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다’ 그 말이요? 교회도 안 나오는데 ‘그 사람 교회 잘 나와’ 하는 게 가려주는 거지요? 가려준다는 게 뭐냐? 사람 앞에 가림도 되겠지만 그것보다 더 올라가서 하나님의 재앙을 받지 아니하도록 하나님 앞에 그 사람이 회개해서 부끄러움이 가려지도록. 하나님 보시기에 그 말이요. 그러면 이제 ‘인간관계성에서 어떻게 해야 되겠다’ 하는 지혜가 나오게 돼 있지요.
두 번째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하라. 짐승은 먹기 위해서 살고 일반사람은 살기 위해서 먹고 예수 믿는 자기는 그럼 왜 살아요? 구원 잘 이루기 위해서 살고. 다른 말로 예수 잘 믿기 위해서 살고. 자기는 먹을 것이 넉넉한데 한 끼도 먹지 못하고 배고파하는 사람을 지나칠 수 있겠느냐? 못 본척하고. 요건 또 일반적인 말이지요? 일반적인 말을 하는 것은 일반적인 이치를 가지고 영적 면으로 끌고 들어와서 생각을 해보라는 계시입니다. 또 굶고 있는 사람을 옆에 두고 어떻게 자기 혼자 배터지게 먹을 수가 있을까? 그 사람이겠느냐? 짐승이지. 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느냐?
이방인들도 육의 양식 정도는 나눠먹을 줄 압니다. 이방인들도. 우리 기독자는 영의 양식도 나누어 먹을 줄 알아야지요. 영적 면에 배고파하는 사람. 영의 양식, 다시 말하면 가르쳐 주려고 그러고 깨닫게 해주려고 그러고. 나눠먹는 거요. 깨달음에 배고픈 그걸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 일반차원에서도 사람을 생각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예수 믿는 사람이 일반적인 차원도 못 생각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서도 일반은혜 차원을 모른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겠느냐 그 말이요. 못 받는다. 못 받아. 먹을 것이 없는 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 힘이 오르도록 하고 또 구원을 이루도록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느냐? 그렇지요? 거기에도 지혜를 잘 써야 돼. 자칫 잘못하면 이용당하기 쉬워.
그 다음에 이 세리들에게는 정한 세 외에는 더 거두지 말라고 그랬어요. 정한 세 외에 더 거두는 것은 불법이지요? 백성의 원성과 폭동을 일으킬 수 있고 법을 빙자한 강도짓이나 마찬가지가 되지요. 자기의 부의 축척과 뇌물로도 또 쓰게 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지요. 돈 사랑하지 말아요. 돈을 사랑한다는 증거는 사람의 사정보다 돈을 더. 다시 말해서 사람을 위해서 돈을 쓸 줄 모른다고 하는 것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필경은 들어있다. 그러면 이제 여러 가지 악을 저지르게 된다. 행동적으로도 나오는 거지만 그 사고발상이 하나님의 법을 떠나서 이제 자꾸 머리를 쓰는 거지요.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 자기 당대뿐만 아니고 자기의 후대로 내려가면서 많은 죄와 고통이 따르게 된다.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 거기에는 자기가 돈을 풍성하게 많이 가져도 사람의 마음이 허황되고 바람 들기 쉽고, 돈 많으면 어딘지 모르게 어깨가 으쓱할 거고. 그런 사고방식의 교훈이 자꾸 은연중에 내려가면 그 다음에 어떻게 되겠어요? 후대가 어떻게 되겠느냐? 볼 것 없다. 쓰레기 되는 거다. 이제.
참고로 교회의 헌금은 쉬운 예를 든다면 하나님 앞에 갈 때는 빈손 들고 가지 말고. 예, 감사헌금은 감사할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하는 것이고, 특별히 하는 헌금은 구제헌금과 건축헌금 등 특별히 돌발적인 어떤 상황이 나타났을 때에. 모양새가 안 좋은 것을 정해놓고, 모양새가 안 좋은 헌금들이 있어요. 이를테면 아기 돌 헌금. 어느 교회가면 봉투에 인쇄돼 있어요. 돌 헌금 생일헌금 환갑헌금 장례헌금 주중헌금 월정헌금 연중헌금 사업개시헌금 이사해서 새 집 헌금 대학입학헌금 군입대 헌금 등등 이런 것이 인쇄물로 정해져 있다면 무엇인가 모양새가 참 안 좋다.
참 그 아직도 못 잊는데 우리 이OO집사님 동생 죽을 때에 죽기 전에 하나님 앞에 감사헌금을 하고 죽었어요. 그런 사람 있어요? 죽기 전에 하나님 앞에 감사헌금 하고 죽은 사람 있어요? 아마 쉽지 않을 것. ‘죽기 전에 어떻게 하면 안 먹은 거 좀 실컷 먹고 죽자’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어. 그거 참 생각들을 바로 해야 된다. 신앙인지 아닌지 하는 것은 자기 머릿속에서 나오게 돼 있어요. 이를테면, 또 그럴라. 내가 욕먹을 소리가 될는지 모르겠고. 어쨌든 신앙 믿음 쪽으로 하나님 앞에 진정성을 가지고 한 번 생각을 해봐라. 무슨 말이냐? 이 소리하면 ‘아이고, 목사가 돈을 밝히는구나’ 그 소리해도 돼. 내 양심은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하는 거니까.
이를테면 머리 홀딱 깎고 끝내는 죽는 병이 뭐요? 백혈병. 그 죽을병은 정말 하나님의 어떤 기적이 나타나지 않는 한, 물론 백혈병도 사람의 나이에 따라서 이게 아마 희망을 좀 거는 그런 치료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예를 들자면 나이 드신 분들 서운하게 들릴는지 몰라. 평소에 있으면서도 별 볼일 없이 살다가 병이 들었다. 죽을병이 들었어. 그럼 나아도 별 볼일이 없다. 그런 죽을병에 걸리면 나아서도 얼마 못 살고 죽어요. 또. 그러니까 고런 경우 백혈병이나 암 그런 거 병원에서 하다 끝내는 죽는 건데 돈 많이 들어가는 거지요? 그거? 그럼 이왕 죽는 거 죽는 속도는 빨리 죽고 나중 죽고밖에 없어요. 따진다면. 그 돈을 정말 하나님 마음이 뜨겁도록 하나님 마음이 감동이 되도록 좀 그런 마음을 가지고 헌금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 다음에 살려주고 안 살려주고 하는 그건 당신의 일이고. 참 그 가만히 생각하면 참 믿음의 마음 믿음의 정신을 바로 쓰는 사람이 극히 드물구나.
솔직히 말해서 우리교인들 돈 안 벌면 뭐로 먹고 살아요? 얻어먹고 살아요? 깡통 들고 얻어먹고 사느냐고요?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은 은연중에 하나님 앞에 일반은혜를 받고 있다는 증거예요. 그리고 십일조 얘기 나왔으니 봉투에 쓰세요. 감사헌금도 봉투에 쓰고. 자기 이름을 쓰세요. 그래야 이게 서식적인 그런 면에서 공정하게 쓸 수가 있어요. 목사님들 모임에 ‘제발 회비에 이름 좀 쓰라’ 그랬더니 어떤 목사님은 이름을 엄청나게 크게 써버렸어. ‘자, 봐라’ 하고. 이게 일종의 반항적이란 말이요. 반항적. ‘나도 알고 하나님만 알면 되지’ 그렇게 하지 말란 말이요. 이룰구원이라면 이렇게도 순종 저렇게도 순종. 교회 일을 하는데 바로 하기 위해서 하는 소리란 말이요. 교회에서 광고하고 다 어떻게 하거들랑 다 이게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하는 얘기에요. 모양새가 안 좋은 헌금이 참 많아요.
부자교회는요 주소들이 있기 때문에 교회 안 나와도 세금쟁이 모양으로 십일조 받으러 가요. 참 무서워요. 이게 받으러 가는 그걸 칭찬을 해야 되나? 이게 좀. 어쨌든 참 그게 안 내서 그렇겠지. 덕이 안 된다. 십일조마저 안 낸다면 떼먹고 그러면 이게 하나님의 일반은혜가 하나님의 기본적인 은혜가 끊어져 버려요. 멀리 있더라도 십일조 내고 그러면 복음이 가요. 가는 거요. 가잖아요. ‘하나님의 자녀가 있구나.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가 거기 살고 있구나.’ 어찌하든지 위해서 기도가 나가는 거고 그 역사가 가는 거예요. 한 번씩 심방을 가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고. 그 은혜요. 은혜. 많고 적고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 기본적인 자세요. 그게.
낼 마음이 없으면 내지 말아요. 아까운 인색성이 들면 내지 말아요. 하나님만 알고 자기만 알면 됐지.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취급을 하시나 이제 가만 두고 보라고요. 그리고 신앙 믿음으로 마음을 단속하고 행동을 단속하면서 지혜롭게 살면서 일 년을 딱 계산해 보고, 아무렇게 살면서 일 년을 계산해 봐요. 어느 쪽이 훨씬 유익이고 이익인지 꼭 한 번 해 보라고요. 예를 들자면, 더 쉬운 예를 말씀을 드릴게요. 자기 몸을 항상 물로 아침저녁으로 깨끗이 씻고 몸을 깨끗하게 보존을 해서 일 년 동안 살아보고, 그 다음에 몸도 안 씻고 그냥 아무렇게 살아봐요. 발도 안 씻고 머리도 안 감고 살아보라고요. 그럼 확실히 표가 날까요? 표 안 나지? 표 날까요?
이게 지금 참 들은 말인데 참 강대상에서 할 말이 아닌데 여자가 얼마나 안 씻었으면 냄새가 나가지고 어느 목사님이 해어졌데요. 도대체 그럼 그게 제 정신이겠느냐?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지만. 그런 건 제 정신이 아니지요. 우리 여자분들, 물어봅시다. 제 정신 아니지요? 여자가 그렇다면? 하루만 갔다 와도 이게 사람 몸에 냄새가 나기 마련인데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우린 잘 씻는 편이지요? 참 하나님께서 물 많은 축복을 준다는 게 복이에요. 정말 복이요.
자, 점심시간도 됐는데 이 그 뒤에 뜨거운 물 조심해요. 어린아이들은 자라니까 이게 잘 뛰어다니고 한 번 데면 이게 정말 큰 고통이에요. 평생 고통이 될 수 있어요.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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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이상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을 창조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진리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분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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