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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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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4장 1절-4절.
1절-4절: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우리가 식당이나 어떤 큰 회사에 또는 가정에 보면 성경구절 쓰여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뭐냐? ‘처음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케 되리라.’ 그 집에 붙여놓은 사람들 있을 거고. 식당에도. 그런데 붙여놓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면 그건 좋겠는데, 이를테면 ‘가화만사성’ 또 뭐 ‘입춘대길’ 하는 식으로 ‘처음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케 되리라.’ 무슨 말이죠? 식당에 붙여놓았다면 무슨 뜻이죠? 이방인들이 구하는 거와 똑같습니까 다릅니까?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붙여놓은 건데? 제가 말씀드리는 게 되게 까다롭습니까? 성경구절 써서 식당에 붙여놓으라는 거요? 그것도 거의가 그럴 거요. 예, 거의가 그럴 거요. 무슨 말이냐? 그런 분들이 주일날 제대로 지키는 줄 압니까? 그것도 또 보면 교회직분을 가지고 있어. 직분 가지고 있어요. 이거 참. 어떻게 교회에서 가르치고 자랐기에 이 모양일까?
교인들이 주일 지키는 이건 기본적이에요. 이건 아예 말하나마나 기본적이에요. 기본도 못 지켜서 신앙생활 믿음생활이 잘 될 줄 압니까? 말도 되지 않는 소리. 기초가 안 놓여있는데 어떻게 신앙 믿음이 올라가. 말도 되지 않는 소리지. 성경은 뭐요? ‘신앙 믿음’ 하는 게 뭐요? 도대체가? 세상속화 된 그런 가르침으로 말할 바에야 성경은 볼 필요가 없어요. 정성만 들이고 공만 들이면 되니까. 그럼 기독교가 그런 건가? 기독교가 그런 건가? 그런 식이라면 오늘날 기독자들이 바리새인들의 그 신앙 따라갈 줄 압니까? 못 따라가요. 못 따라가면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책망한 것처럼 오늘날 기독자들이 바리새인들을 책망해요.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면서 그런다면 그래도 이해가 가겠는데 이건 예수님의 교훈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이 가고 있어요. 그 정신 사상의 질이 그래요. 성분이 그렇고 성격이 그렇고 질이 그래요. 신앙의 질이 그래요. 예수님과 전혀 상관없이 간다.
우리교회서는 다른 곳에서 직분 따가지고 왔는지 와서 땄는지 그저 줬는지 모르겠어요. 주일날 제대로 못 지키면 자동적 왕따가 돼요. 누가 왕따를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 스스로가 벌써 그건 신앙양심이 살아있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있구나 하는 그걸 자기가 느껴요. 왜 그러냐? 자기의 신앙양심이 자기의 신앙의 위치의 수준을 자기 스스로가 말을 한다.
그러면 이제 나오는 소리가 ‘교회가 사랑이 없다’ 아, 이렇게 나오는 거요. 이제. 교회가 사랑이 없다? 사랑이 뭔데요? 그 사람을 존귀 영광스럽게 영원히 영광중에 또는 행복하게 능력자로. 이게 사랑이요. 사랑 있는 사람은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면 그렇게 길러. 근데 이게 뭔가가 잘못 됐어. 이치가 잘못돼가지고 자녀 낳고 기르는 면에서도 그 면은 전혀 없고 제 맘대로 내버려두는 것. 성격 고친다고? 그래, 선악과 따먹고 나온 그 성격 그대로 둘 거야? 나무를 잘 자라게 하려면 어릴 때부터 자꾸 세우더라. 자꾸 세워나가더라. 맞잖아요? 가만 내버려두면 제대로 교육이 될 것 같아요?
우리 모두 어른 된 입장에서 자기의 성격이나 성질 게으름이라든지 모든 면에서 예, 조상을 부모를 원망할게 아니라 ‘아, 요런 면에서 이게 내가 잘못 알고 잘못 길러져 나왔구나.’ 그럼 어른 된 입장에서 고쳐서 나가야지. 고쳐야지. 젊은 사람만 예수 믿습니까? 젊은 사람만 고쳐야 됩니까? 늙은 사람도 고쳐야 된다. 늙은 사람도 예수 믿어야 된다 그 말이요. 죽는 사람도 예수 믿어야 돼. 왜? 회개를 하고 가야 되니까. 맞잖아요? 오늘날 신앙의 이치가 없어.
‘처음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케 되리라.’ 어쩌면 마귀 말하고 똑같으냐? 주일날 제대로 안 지킬 것 같으면 아예 그 성경구절을 떼어내 버리지. 달력도 보면 어느 교회 목사이름도 있고 전화번호도 있고 그렇더라. 그러니 이게 뭐로 보일까? 이방 불신자들이 음식 사먹으러 와서 그거 제대로 볼 것 같아요? 그 사람 신앙 좋다고 볼 것 같아요? 밟고 들어간다. 정신면에 밟고 들어가.
제가 다시 말씀을 드리면 그 여주에서 권사요. ‘주일 지킵니까?’ 그러니까 아, 이게 마음속에 뭔가 좀 미안했던 모양이야. 워낙 바빠서 못 지킨다고. ‘당신 날탱이요. 엉터리요. 가짜요. 당신 나일론 권사요.’ 지금도 생각하면 그 식당에 음식 맛도 그렇고 비싸기는 비싸고 속에서 자꾸 그 생각이 올라오면 분이 나. 구원이 뭔지 모르면 마귀 짓을 하면서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을 해요. 어떻게 보면 마귀의 수준보다도 못한데 그래요.
성도의 생활문제는 마귀의 말에 순종에서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맞잖아요? 마귀 말에 순종하면 자기 생활문제가 풀리겠습니까? 과연 그렇다고 그러면 너는 이제 죽었다. 왜? 이 사람의 인격적 차원은 전혀 이건 중단된 채 마치 짐승이 자꾸 잘 먹어 들어가. 그럼 이 어찌 되겠어요? 돼지가 어떻게 해야 값이 나가요? 살이 많이 쪄야 값이 나가지요? 예, 만일에 돼지가 사람처럼 생각을 한다면 밥을 먹겠어요 안 먹겠어요? 안 먹을 거다. ‘병들어서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나 살 안 찐다’ 그럴 거요. 세상성질의 살이 쪄가지고. 그게 ‘육의 살이 졌다. 몸이 살쪘다’ 그렇게만 보지 말고.
몸에 살을 찌우려면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밥 금방 먹고 계속 드러누워 버리세요. 그럼 자꾸 돼지처럼 돼져나가요. 나중엔 숨쉬기도 힘들어요. 돼지가 그래요. 살 빼려면 안 먹으면 되지? 맞잖아요? 그런데 또 가만히 보면 그만큼 먹어줘야 돼요. 굶었냐? 그만큼 먹어줘야 돼요. 위를 적게 만들지 않는 이상은. 그런 게 있더라고요. 한꺼번에 또 먹어버려.
사람보다 물질세상을 먼저 만들어놓은 것은 육신생활 문제 해결목적이 아니고 영적 문제 잘 되게 하느라고 물질세상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자, 그러면 인간을 먼저 만들어 놨습니까 물질을 먼저 만들어 놨습니까? 물질 먼저 만들어놓고 인간은 나중에 만들어 놓은 이유가 뭐지요? 먹고 살라고. 그렇지요? 쉽게 말하면. 그거밖에 생각이 안 듭니까? ‘먹고 마실 것은 하나님인 내가 준비를 이미 해 놨다. 그러니까 걱정을 하지 마라.’ 이해가요? 그 해석이. 그렇게 이해갑니까?
그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놓은 것은 지음을 받을 때에 고건 이질이요. 하나님의 본질에 적중성으로 신령성으로 들어가 있는 게 아니고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완전하지만 하나님의 본질과 비교해 볼 때는 이게 이질이라고요. 타락된 이질이 있고 타락 안 된 이질이 있어요. 처음 만들 때 타락은 안 됐어요. 그러나 이질이에요. 그런데 인간을 만들어놓고 코에다가 하나님께서 뭘 불어넣었습니까? 입으로 생기를 불어넣었다. 이 무슨 뜻이냐? ‘인간아, 너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예수님이 대답했지요? 마귀시험에서. 해석은 그렇게 들어가는 거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럼 밥 먹지마라 그 말이냐’ 이런 말을 할 거야.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 때문에 주린 것이지 예수님 당신 잘못으로 주린 것은 아닙니다. 맞지요?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우리의 구원이란다면 굶어도 좋고 아무리 먹을 것이 많이 있어도 구원이 아니란다면 우리의 구원이 아니란다면 안 먹더라. 그러니까 먹는 이치를 어기지 마라. 그 말이 무슨 말이요? 구원이 된다면 먹고 구원이 안 된다면 먹지를 마라. 그게 먹는 이치. 아, 생각을 해봐요? 독약 먹고 자기에게 구원이 됩니까? 안 먹어야 구원이지. 영양가 있는 음식을 때에 따라서 먹는 것. 그건 바른 이치지.
왜 오늘날 이 기독자들이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이 절대 정확한 이치는 먹으려고 하지 않고 세상부자 되고 눈요기 되고 재미있는 그 맛을 보고. 그게 예수 믿는 거냐? 시장에 가면 구경거리 많습니까? 왜 구경을 시켜주는 거요? 원래 세상은 그래요. 왜 구경을 시켜주는 거요? 보암직 먹음직 탐스럽게 한 그걸 보여주고. 그 뱀장사 엿장수 그런데 가면 입에다가 바람소리 내가면서 한참 뭐라고 지껄이지요? 왜 그러지요? 붙잡아 두려고. 사람 자꾸 붙잡아 두려고. 그래야 딴 사람이 ‘뭔가’ 하고 가서 보지.
그 어릴 때 시장이 아니라 이렇게 동네마당으로 약장사가 들어옵니다. 그러면 1인 2역으로 하모니카 불고 챙챙이 달고. 참 신기하지 않아요? 어릴 때 보는 눈이. 그래, 딱 가서 보니까 조그마한 지게 위에 돌을 딱 올려놨어요. 무거운 돌을. 약장사가 하는 말이 ‘요거 조금 있으면 지게가 걸어간다. 돌을 짊어지고.’ 그 어릴 때 생각을 하면 그게 안 되는 게 아니요? ‘저게 언제나 걸어가나?’ 계속 있어도 딴 소리만 뺑뺑 돌려 한 시간 두 시간 구경 했나? ‘저게 언제 걸어가나?’ 그거 보려고. 걸어가긴 뭘 걸어가요. 그러니 몰라가지고 속아서 그거 쳐다보느라고 시간만 가고 다리만 아프고 배만 고프고.
이 기독교 안에도 그런 세계가 많다. ‘부자가 되어야 전도가 잘된다. 건물을 크게 잘 지어야 교인이 많이 몰린다.’ 이런 발상들이 이런 정신 사상이 누가 말한 것하고 똑같아요? 마귀 말하고 똑같아요. 그렇게 같게 들립니까? 예수님이 그 말했습니까? 예수님이 가르치기를 ‘세상에 부자가 돼야 전도가 잘 된다’ 예수님이 그렇게 가르쳤어요? 안 가르쳤지요? 예수님은 그렇게 안 가르쳤어. 그런데 오늘날 목사님들이 그런 말하면 다 ‘아멘’ 하지요? ‘부자가 되면 전도가 잘된다. 천일기도 만일기도.’ 이거 왜 이치를, 정신 사상 안 보이는 면에 신앙사상적으로 그 이치를 왜 못 따질까? 참 이거.
자, 아합 왕 밑에 선지자들이 몇 명 있었어요? 사백 명. 400대 1. 누구? 미가야. 누구 소리 들었어요? 아합 왕이 누구 소리 들었어요? 쉽게 말하면 400명이 말하는 목사소리를 들었습니까 미가야라고 하는 목사가 말하는 소리 그걸 믿었습니까? 어느 쪽으로 믿고 싶어요? 지금 성경에 나타났으니까 그렇지 오늘날 신앙 면에서 질적으로 따질 줄 모르면 이건 분명히 400명이 아니라 4명만 같은 소리하면 따라가게 돼 있다. 이거 안 따라가나? 400대 1이야. 그게 안 믿어진다 그 말이요. 그게 안 믿어진다.
우리가 예수 믿고 ‘기독교는 예수 믿고 따른다’ 그러니까 ‘예수 예수’ 하니까 예수님 말씀인데 거짓된 종들이 이 예수님 말씀을 거짓된 자기의 소원 목적에 붙여가지고 말을 하면 꼭 예수님 말처럼. 이게 왜 말만 듣고 그러냐? 그 말이 나오는 그 정신 사상의 뿌리가 어디 박혔는지 왜 그걸 캐려고 안 그러냐? 참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참 어리석다.
마귀가 말한 것하고 예수님 말한 것하고 그 목적이 같습니까? 마귀도 성경구절을 써요. 예수님한테 성경구절을 갖고 와요. 그러면 성경구절은 누가 말한 거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거요. 그럼 마귀가 그 성경구절을 들고 썼어. 그럼 예수님이 ‘아이고, 그 성경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그 말씀에 내가 순종해야지’ 그러면 마귀에게 지는 겁니까 이기는 겁니까? 쉽게 말해서 자기 아버지가 다른 사람의 옷을 입고 아이한테 나타났어요. 그럼 아이가 봤을 때 ‘아, 우리 아버지 옷이네. 아버지’ 하고 따라갑니까? 이치가 그래요? 왜 그렇게 어두울까? 신앙의 질을 판단하는데 왜 그렇게 어두우냐?
왜 어두운지 아십니까? 뭣 때문에 그럴까요? 하나님의 뜻,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하나님께서 너를 만든 네가 인간출생 세상에 왜 사는지 재세목적 기간에 나그네 생활하면서 네가 뭘 하고 가야 될지 모르는구나.’ 네가 너를 모르니 자식을 난들 어떻게 기를 것이며. 생각을 해봐요 이치는 빤한 거 아니냐? 그냥 한 방에 나가는 거 아니요? 인간창조 원인 동기 목적을 모르는데 한 방에 나가버렸지 뭐 뭘 딴 걸 이런 걸 저런 걸 뭐.
처음 사람 아담을 만드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통치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생명과를 먹으라고 한 겁니다. ‘생명과 따먹고 통치 지배하고 땅에 편만하라. 선악과 먹지 마라. 먹으면 정녕 죽는다.’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가 사람 죽은 것을 알아요 몰라요? 사람 죽는 것을 알아요 몰라요? 처음 만들었을 때? 모르지요. 언제 죽는 걸 봤나? 죽는 것도 모르고. 이게 지금 뭐와 같은가 하니 교훈적으로 가르침 적으로 ‘선악과 먹으면 네가 죽는다. 영적 상태 면에 죽는다.’ 아담과 하와는 이 선악과 따먹고 영은 죽었어. 근데 몰라. 보여야지. 근데 소원 목적은 땅으로 내려가 버렸어. 하나님은 떠났어.
하나님이 떠난 사람은 소원 목적은 땅으로 돼 있어. 세상으로 들어가 있어요. 못 속여. 세상으로 들어가 있으면 예수 믿으면서도 이건, 예수 믿으면 아까 아침에 말씀드렸지만 영은 중생은 됐는데 하나님의 자녀라고 이렇게 되는 건데 그런데 소원 목적은 여전히 땅이야. 이건 왜 이러냐? 자라는 면에서 생명과를 안 먹으면 그렇다. 쉽게 말하면 오늘날 목사님들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을 안 주니 이치는 안 열리고 소원 목적이 세상으로 딱 들어가 있다. 그러니 신앙 믿음이 자랄 수가 없다. 이치가 명확하게 깨달아질 수가 없다. 맞잖아요? 경험들 했잖아요? 못 깨달아요. 골 백 살을 먹어도 못 깨달아요. 그 면에 대한 가치력을 네가 아느냐? 영적 신앙성장 면에서 그 가치력을 네가 아느냐?
그 면을 깨닫게 해주고 자극이 되라고 어린아이가 자라면 음식 먹는데 따라서 그 아이의 피부와 골각이 이게 변해져요. 나는 워낙 못 먹어서 부자 밥 먹듯이 굶었기 때문에 내가 키가 작어요. 그나마도 비지밥이나 먹고 톳나물 밥이나 먹었으니까 이만큼 자란 거지. 나는 이 정도 키지만 그래도 우리 아들은 암만해도 비지밥 안 먹었어. 톳나물 밥 안 먹었어. 나보다 크잖아요. 내가 잘 먹었으면 엄청나게 클 텐데. 그럼 OO이는 더 크겠지. 전봇대 삼촌만 할 거에요.
예, 육신 먹는데 따라서 이건 상당한 격차가 생긴다. 그런 것처럼 예수 믿으면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의 이치를 못 먹는다면 너는 신앙 믿음의 성장은 없다. 불 보듯 빤한 거다. 백 프로 못 자란다. 절대로 못 자란다. 종교적 생활 종교적 세월 보낸 것 역사적 관점에서 말을 할는지 모르지만 영적 이치는 까맣다. 까맣다. 그렇게 들어가 있는 거요. 그런 원칙을 무시하지 말아라. 그런 속에서 그런 식으로 자녀들 자라면 이 애들이 어찌 되느냐? 어찌 될까요? 일반적으로 못 배우면 뭐라 그래요? 하루 세 끼는 먹고 살아요. 아무리 못 배워도. 무슨 짓을 하든.
‘먹으면 정녕 죽는다. 선악과 먹지 마라’ 이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마귀 말을 더 믿었어. 보암직 먹음직 탐스러운 눈으로 보고 전부 다 이 세상 것이 자극적으로 들어와 있거든. 기준으로 들어와 있다 그 말이요. 마귀 말을 더 믿고 먹고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빼앗기고 평생 고통으로 살다가 죽은 겁니다. 선악과 따먹은 후 얼마 안 가서 살인이 자기 집에서 일어났어.
세상의 모든 죄악성은, 교회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짓거리, 일반사회에서 일어나는 거 이 전부 다 원칙적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고 불순종한 데서 다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사회가 바로 되고 사회가 평안하고 행복해지려면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람이 만들어져야 돼. 그냥 끌어다놓고 이상한 짓거리 이건 못 써. 전부 귀신 들려가지고.
가만 생각해봐요. 예언 방언하고 상당히 자랑스럽게 하지요? 가만 보면 귀신이 들렸는데 이 말을 하면 되게 싫어할 거요. 귀신이 들렸는데. 그 증거가 뭐냐? 자기의 환경을 크고 작은 사건을 다스려 나가느냐? 절대로 못 다스려요. 왜 못 다스리나? 자기 마음부터 못 다스리고 있는데 어떻게 자기 주위 환경을 다스리겠어요? 맞잖아요? 성경을 하나님을 발견할수록 깨달을수록 자기 속에 하나님의 것이 들어가니 크고 작은 사건 환경 속에서 자기가 자기를 다스림이 나와. 말씀이 자기 속에서 다스려 나가. 그 다음에 외부적으로 다스림이 나간다. 그 이치들이 맞아요 틀려요? 그럼 들으시는 분들이 나보고 ‘그럼 너부터 그렇게 하냐?’ 그 말 하고 싶지 않아요? 그 말 하고 싶지 않아요?
오늘날도 마귀에게 속한 거짓된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저주받고 타락된 지식의 기준 세상눈으로 보는 기준으로 세워서 교회들을 먹이고 있더라. 세상을 가지고 교회를 먹이는구나. 참 종은 참 목자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성품의 온전을 향하여 성도를 진리이치로 먹이고 신적 도덕이치로 먹이고 생명이치로 먹이는 거요. 그 예수를 먹인다 그 말이요. 예수 안 먹으면 영생은 없지. 성격 성질적으로 또 영생화 되는 건 없어. 지식도 영생적인 지식을 가져야지. 거기에서 판단이 내려지는 것은 전부 영생의 세계에서 신령한 그 세계에서 자기 것으로 되어 있어야지.
생명과는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에게 인격화 영능의 실력적으로 영적 기능적 지능적으로 바로 사람에게 역사되어 들어가는 이것이 생명적인 역사요. 이 복음은 주님의 복음은 ‘하늘나라를 전하시더라. 천국복음을 전하시더라’ 이런 성격 성질들이 우리 속에 성령님으로 더불어서 진리와 함께 역사되고 자체화 되는 이것이 이게 복음이요. 이게 천국복음이요. 땅의 복음이랑 달라요. 천국복음일진대 듣고 깨달아야지 자기 마음에 안 맞는다고? 자기 마음에 안 맞는다고? 그럼 네가 기준이냐? 네가 기준 되는 것을 제시해라. 그러면. 그런 이치도 못 따지겠나? 왜 하나님 앞에 본인 자신들을 속일까?
4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사람이 떡만 먹고 살 수 있느냐? 맞아요? 떡만 먹고 살 수 있어요? 말꼬리 잡고 말하려면 이런 거 저런 거 다 먹어야지요. 사람이 떡만 먹고 어떻게 사느냐? 말하자면 먹는 것만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 좀 여행도 하고 놀기도 하고 좀 노래도 부르고 소풍도 가고 무엇을 만들기도 하고 타보기도 하고 이것도 저것도 입어보고 신어보기도 하고 사랑도 하고 아기도 낳고 교육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월급 타면 외식도 하고 비 오는 날 단 둘이서 우산 쓰고 라면도 끓여먹고 그래야지. 짐승의 세계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주둥이로 먹고 새끼 낳고 또 먹고 새끼 낳고. 사람은 그렇게는 못 살잖아요. 벙걸증이 나서 미쳐버린단 말이요.
그래, 우리교인들 생활면에서 ‘답답하고 심심하니까 잠이나 자야 되겠다’ 그렇게 하지 말고 친구들 또 이웃 또는 같은 교인 산길 한 번 돌면서 분위기를 바꿔보는 것도 참 좋습니다. 그 육땡이가 아닙니다. 알겠어요? 뭐가 육땡인지 알아요? 사는 소원 목적이 세상에 가서 있으면 이게 육땡이요. 그러나 우리의 소원 목적은 하나님의 온전으로 오각의 오감성 우리의 생활 모두는 당신의 온전으로 들어가는 것. 누가 그걸 죄라고 말하겠어요. 하나님이 정죄 안 하는데. 그거 알아야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 아무 것도 할 줄 모르고 무슨 맛이 있을까? 예수 믿는다는 건 뭔지 알아요? 다각적인 면에서 활동이 들었고 행동이 들었고 다른 사람과 관계성이 다 들어있어요. 예수 열심히 믿고 밥만 하고 집에 가만있다? 관계성이 있어요? 없어요. 더더군다나 아파트 같은데 들어가면 문 잠그고 이건 옆에서 죽는 건지 도둑이 들어온 건지 불이 났는지 몰라. 관계성이 다 끊어져 버렸어. 그게 육이요. 육땡이로 사는 거요. 그걸 알아야 돼.
우리 인간은 영육결합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영적 정신적 행복을 그리워하는 존재이고 가치판단 평가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행복이란 정신세계의 느낌에서 오는 거요. 이해갑니까? 어린아이가 엄마를 가까이 할수록 즐거워하고 기쁨을 느끼고 포근히 엄마가슴에서 잠이 들지요.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가까이 할수록 행복과 기쁨을 느끼도록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만물을 통치 지배하고 다스리도록 했고 하나님의 뜻대로 지상에서 살다가 세상 끝나는 날 신령천국에서 살도록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보좌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이 고통 많고 눈물 많은 타락된 세상에서 죽기 전에 물질가난에서 물질부자로 배채워주러 왔느냐? 그게 아니란 말이요. 목적이. 맞아요? 맞아요 틀려요? 들으실 때마다 판단을 해요. 판단을. 사십 일 금식하신 것은 위장을 튼튼히 만들어서 한꺼번에 사십 일치를 먹기 위한 자기 시험인가요? 예수님이? 애굽을 탈출시켜 이스라엘을 광야 사십 년간 시련 연단을 시키면서 시내산 말씀을 들려주시고 하늘의 만나를 먹이심은 사람은 떡으로만 산다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함을 계시를 하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의 이치를 들을 때에 성경구절에도 없는 하늘로부터 오는 자기 속에 생명의 말씀의 이치가 또 나와요. 하늘로부터 주는 거요. 듣지 못하면 안 나와. 듣는 사람은 광야생활을 하는 사상이야. 광야생활 사상이 아니면 못 들어. 못 먹어. 에덴동산에서도 사람을 만들어 생명과를 먹어라 먹어야 통치하고 지배하고 다스림이 나온다는 것이고 영능화 영원 궁극적 구원이 있다 하는 겁니다. 세상에서 부자, 축복받아 예수 잘 믿으라고 하는 이것은 지금 마귀의 수법을 쓰고 있는 겁니다. 그거 알아야 돼.
세상을 잡고 따라간 하나님의 아들들이 어떻게 되겠느냐? 아브라함이 부자 됐지요? 부자목적으로 물질부자 목적으로 믿은 겁니까?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본토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말씀 붙잡고 가다보니 부자가 됐습니까? 그 면에 이해가요? 근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잘 믿어서 부자가 됐다.’ 오늘날 교인들이 그 말 어디에서 속느냐? 잘 믿는다고 하는 것을 자꾸 행동 활동에다가 붙이는 거요. 그러니까 행동 활동적으로 잘 믿는다는 것은 여기 돈이 투자가 되고 자꾸 시간적 물질적 투자가 나와야 돼요. 이러면 하늘로부터 자꾸 복이 온다고 하는 거요. 목적이 그렇단 말이요. 목적이. 거짓 종들의 목적이 가르침이 그렇단 말이요.
그럼 아브라함이 물질부자입니다. 신앙 믿음에는 가난에 빠졌습니까? 신앙 믿음적으로는 가난에 빠졌어요? 아브라함에게 축복은 사람에게 들어가 있습니까? ‘너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다. 땅에 떨어진 별이 아니고 하늘의 별과 같다.’ 사람에게 들어있단 말이요. 사람에게. ‘바다의 모래와 같다.’ 바닷물이 육지로 침범할 수 없는 그 경계선. 사람에게 들어있는데. 사람에게. 물질에게 들어있는 게 아니라 사람에게 들어있단 말이요. 원칙은.
사람에게 들어있으면 쉽게 말하면 자식이 아버지 말 잘 들으면 아버지로부터 상당한 수입을 얻을 수 있습니까? 부가 있잖아요. 용돈도 있고 옷도 사고 신발도 사고. 자식이지만 부모의 말 안 들으면 ‘나가라’ 그럽니까? 나가면 잘 살 것 같아요? 학생들도 깨달아. 생각을 좀 해. 부모 집을 탈출해서 어디로 가. 어디로? 친구 집에 남의 집에 가면 날마다 자기를 먹이고 옷 입히고 용돈주고 학교 보내줄 것 같아? 돌아다니다가 깡패들에게 걸려 들리면 되게 죽도록 맞고 껌이나 팔고 남의 호주머니 뒤지는 그거 배우기나 하고. 사람 꼴이 되겠어? 경찰서에 죽을 때까지 살아야지.
사람 못 된 것은 옳은 말하면 참 듣기 싫어해요. 교인들도 마찬가지. 사람이 하나님께서 사람 잡고 말을 하니까 그게 듣기 싫은 거지. 사실 하나님이 구약시대처럼 직접 나타나가지고 말을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죽는다. 그 자리에서 너는 녹아버린다. 녹아버려. 하나님께서 사람 잡고 쓰는 것은 너를 살려주기 위해서 그렇다. 직접 나타나면 넌 녹아버려. 초물이 불에 녹듯이 그냥 녹아버려.
성경을 통해 신앙 믿음이 뭔지, 교회에서 뭐라 그러는지, 이 세상에서 잠깐 있다가 떠나갈 나그네 같은 자기에게 세상에 있는 동안에 뭘 하다가 가야 될는지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산다고요? 사람은 추석날 먹는 떡 뭐라고? 송편? 추석날 송편으로 산다? 어제인가? 어제 지났어요? 그 날 하루를 지키려고 재수 없는 사람은 차에 치여 죽고 떨어져 죽고 갈려 죽고. 하루야. 그 하루 그 맛을 못 봐서 그 야단들이요. 추석 설 해도 한 번 생각해봐요. 그렇게 허전합니까? 우리교회 교인들은 그런 신을 올리지 말아.
그래, 생각을 해봐요. 이게 마귀대목장 때 다른 교회서는 이런 말 못 들을 거야. 추석, 옛날 조상들의 고전적 이런 걸 붙여가면서. 그래, 예수 믿는 사람이 추석날 돈 얼마나 썼어요? 많이 쓰지요? 그래, 성경에 있는 성경에서 나타난 절기 있지요? 하나님 앞에 돈 얼마나 씁니까? 양심에 뭐가 안 비쳐져요? 내가 지금 우리교회 헌금 내라고 하는 소리요? 절기 잘 지키라고 하는 소리지. 그래요? 어찌 사람이 그럴까? 어째 사람이 세상바람으로 살까? 그러니 어떻게 사람을 믿겠냐? 세상바람에 불려 다니는 사람을 어떻게 믿겠냐? 하나님이 믿겠어요? 그런 처녀총각 청춘남녀들 절대로 사랑하지 말아. 알겠어요? 바람에 불려 다니는 사람을 어떻게 믿어.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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