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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8: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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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강승호 목사 |
참고 : |
제목: 누가 의인 인가?(눅18:9-14)
오늘은 종교개혁 기념주일입니다. 비텐베르크 성당의 사제이자 비텐베르크 신학대학교 교수였던 마틴 루터 박사는 1517년 10월31일 성당 출입구 위 벽에 95개 조항의 신학 명제가 적힌 대자보를 내다 걸었습니다. 훗날 교회사 학자들은 그 날을 종교개혁일로 정했고, 지금 모든 개신교회가 그 결정을 따르고 있습니다. 루터가 핵심적으로 전하려고 했던 주장 가운데 하나가 ‘솔라 피데’입니다. 솔라 피데는 ‘오직 믿음’이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는 길은 오직 믿음뿐이라는 주장입니다. 이게 너무 당연한 주장 같지만 당시 교회에서는 당연한 게 아니었습니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의를 얻는데 믿음과 더불어 행위가 필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면죄부 사건도 이런 행위에 포함됩니다. 루터는 이런 가톨릭교회의 주장을 거부했습니다. 의로움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밀고 나갔습니다.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굽히지 않다가 결국 교황에 의해서 파문당했습니다.(햇볕이야기 하나님 앞에서 옮음의 문제에서 발췌)
우리 인간의 행위로는 의로울 수가 없습니다. 사도바울도 고백하기를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
여기 바리새인은 자기의 행위에 옳음을 드러내면서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비유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9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여기 바리새인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바리새인은 세리와 같지 아니함을 감사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의에 자랑이 무엇입니까?
12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여기 바리새인은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는 일을 자랑하며 또한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는 일을 자랑하면서 즉 자기가 세리가 하지 못한 금식과 십일조를 드리므로 자신이 의롭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절대로 자기 행위로는 의로울 수가 없습니다.
금식하며 십일조를 드리는 일이 위선일까요? 그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 위선이 되어버립니다.
여기 바리새인은 금식하고 십일조하는 일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생각하지 않고 세리와의 생활을 비교하면서 의시대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 뿐 만 아니었습니다. 제사장이나 서기관들도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 뽑냈습니다.
왜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까? 자기들의 의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하면 남을 깔보고 의시대며 무시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지 못하고 자기들은 율법주의자로서 예수님이 율법을 어기고 병자들을 안식일에 고쳐 주며 귀신을 쫓아낸다고 티 집을 잡고 예수님을 고소하여 빌라도 심판에 넘겼습니다.
발람선지자가 교만해 지니까? 하나님의 사자를 보지 못하고 발락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러 가다가 당나귀의 거부를 받게 됩니다.
민22:27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노하여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는지라 28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31그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서 선 것을 그가 보고 머리를 숙이고 옆드리니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빠져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자 할 때 선악과를 따먹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창3: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바벨탑 사건도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사건입니다.
창11:4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결국 사람들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죄를 법하게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1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하시면서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바리새인은 주님을 보지 못하고 자기의 의만을 드러내고자 할 때 저 바리새인이 아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진다고 말씀합니다.
그럼 진정 어떤 자가 의인입니까?
14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주님은 진정 의로운 사람은 바로 세리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죄 많은 세리를 의롭게 인정을 하십니다.
13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세리는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습니다.
누가 하나님 앞에 의로울 자가 있습니까?
세상에 의로서도 의로울 자가 별로 없습니다.
돈에 의로울 자가 있습니까? 정치인들 보세요 돈에 의롭지 못합니다. 청문회에 다 드러나지 않습니까?
세상에서도 의롭지 못함이 다 드러나는 데 하물며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의로울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롬3:10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러기에 여기 세리는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함으로서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습니다.
베드로도 보세요
눅5:4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주님이 하나님이시며 주의 능력을 깨닫게 될 때 베드로가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구원받은 죄인임을 깨달아야 됩니다. 죄인임을 깨닫은 자가 주님께서 의인으로 칭하여 주십니다. 왜요? 하나님은 선하시며 위대하시기 때문에 누구든 주님 앞에서는 죄인일 수 밖에 없으므로 죄인임을 깨닫는 자를 의인으로 칭하여 주십니다.
집나간 탕자를 보시기 바랍니다
눅15: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지금부터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여기 둘째는 허랑 방탕하여 집에 돌아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그럴 때 아버지는 그를 위해 잔치를 베풀어 줍니다.
그렀습니다. 죄인임을 고백할 때 아버지께서 의인으로 맞이하여 줍니다.
바리새인은 자기의 의를 드러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의 의로움을 깨닫지 못하고 바라보지 못하고 자기의 의만 드러냈습니다. 아버지는 그러한 바리새인을 의롭다고 하지 않으시고 여기 세리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깨닫고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할 때
1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누가 의인입니까? 자기를 죄인으로 고백한 세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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