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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5:1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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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5장 17절-20절.
17절-19절: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 각 촌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 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내리니.
이 바리새인들과 교법사들이 앞에서 진을 치고 앉았어. 본문을 보니까. 자기들의 목숨이 도대체 몇 개라고 생각을 할까? 무슨 말이냐? 자기들을 인간으로 지으신 인간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을 알려고 해도 시간이 없을 텐데 이 참말로 할 짓도 없는 사람들이구나. 그들의 언행심사가 심판의 책에 기록이 되고 있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생명책에 기록이 돼 있고 심판의 책에 우리 언행심사 모든 마음 움직임 생각 다 기록이 돼 있어요.
그걸 모르겠거들랑 성경에 보면 본인은 몰라요. 성경에 기록된 이름이 있는 사람들 본인은 잘 몰라요. 그런데 기록이 돼 있거든. 그걸 알아야 돼요. 우리들의 이름도 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또는 심판의 책에 기록이 들어가고 있다. 이걸 느낄 줄 알아라. 그것도 모르거들랑 자식이 늘 말 안 듣고 있단 말이요. 그럼 부모의 마음속에 그게 차곡차곡 기록이 돼 있습니까? 어느 정도 차오르면 ‘이거 안 되겠다. 잡아야겠다.’ 해서 매를 들게 되지요.
하나님의 심판의 책에 기록이 돼 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보응이랄까? 좋은 보응이 있고 나쁜 보응이 있는데 이게 좋은 보응 쪽으로 들어가고 있는지? 예, 그거 자기 앞에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적으로 오는 것도 또 볼 줄 알아야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일괄적인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서 다만 깨닫는 자가 그걸 깨달아야지 남이 이렇고 저렇고 속단을 내릴 수가 없는 겁니다. 다만 교훈을 얻을 뿐이지요. 알고 보면 남 말하기 전에 자기를 잘 만들어가야 된다. 자기 잘 만들어지면 하나님께서 자꾸 드러낸다. 자꾸 드러낸다.
그래도 그들은 그것을 까맣게 모르는 거요. 예수 믿어도 모르는 사람이 있듯이 하나님의 심판의 책에 그들의 언행심사가 부피적으로 양적으로 이게 누적되고 있다는 이걸 모르고 있구나. 그들이 그런다고 해서 주님의 천국복음의 역사가 중단될 리가 없다. 중단이 안 된다. 세상 끝 날까지 사람에게 구원의 역사는 중단이 안 된다. 악한 자들이 아무리 날뛰어도 그 면에는 중단이 없다. 예, 그러니까 악한 자들의 행동에 동화돼가지고 어느 날은 완전히 중단 되는 그 운동을 하겠는지? 아니면 영원히 중단이 없는 주님의 천국복음의 그 일에 그 대열에서 내가 가는 건지? 그런 면에 생각을 해라. 예수 믿고 교회 간다고 해서 다 그런 거는 아니다. 중단될 수밖에 없는 교회가 있고, 영원히 이어져가는 교회가 있다. 그건 특히 목사님들의 교훈에서 비롯되는 거다.
그런데 그들이 진을 치고 앉았는데 때마침 어떤 인생의 병자가 나타났느냐? 어떤 인생병자요? 중풍병자. 예, 중풍병자는 머리 뇌에서 핏줄로 일어난 병입니다. 사람을 세워놓고 본다면 머리서부터 절반을 딱 나누어서 발끝까지 머리 정상에서 발끝까지 반신불수. 절반은 살아있고 활동을 하는데 절반은 전혀 못 해. 야, 참 짐승 그런 거 있습니까? 짐승 중풍병자 있어요? 없지요? 저도 못 봤어요. 조상대대로 소리라도 짐승은 중풍병 반신불수 있다는 거 난 못 들었어요. 사람에게만 있어요. 정말 희한하다. 뭘 의미하는 것일까?
근데 절반으로 이게 딱 마비요. 절반으로 마비성. 피는 다 통해요. 마비라고 하는 것은 움직이질 못해요. 그러니까 산 쪽으로 끌려가. 그러니까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 예,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물론 생체적으로 보면 다르다고 말이 되겠지만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절반이 못 움직인다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 요즘은 젊은 애들까지도 중풍이 있다고? 희한하다. 그거 중풍은 늙어야 주로 오거든.
중풍의 원인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서도 이게 우리 아버지가 옛날에 중풍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가만 보면 잘 살아도 있고 못 살아도 있고. 그럼 도대체 원인이 뭐냐? 우리 집은 워낙 못 살았으니까 첫째는 못 먹었고, 그 다음에 가만 보면 이제 우리 아버지가 술도 잘 드시고 담배도 잘 태우시고 그러니 이게 영양학적으로 어떻게 담배가 영양이 몇 프로요? 영양학적으로? 피 말리는 거라. 담배 피우면 피 말라. 잠 못 자면 피 말라. 그러니까 못 살지, ‘어떻게 먹고 마시고 살까’ 하니 잠은 안 오지, 잠은 안 오니까 담배만 자꾸 피우지. 연속으로 그냥 피가 마르는 거요. 피가 마르면 어떻게 되겠어요? 머리 아파. 한 번 생각을 해봐요. 이치적으로.
좌우지간 우리 몸에 병이 하나 진전이 되면 참 힘들다. 절대로 자기 속에 병이 진전되게 하면 안 된다. 첫째는 마음에서 온다. 성경 하나님의 말씀에 오죽 알아서 말씀하시겠냐? 마음에서 온다. 마음 잘 가져야지. 어떻게? 말씀에 피동 되는 수밖에 없다. 말씀 떠나면 마음은 제 멋대로. 반드시 그렇다. 그럼 이건 이미 하나님의 재앙은 둘러쓰고 있는 거다. 어쨌든 예수 믿은 후에도 이게 병이 하나 진전이 되면 정말 고치기 힘들다. 하루아침에 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사람이 사는 세계에서 남이 잘못해서 내가 병이 들었던 내가 잘못해서 병이 들었던 문제는 자기다. 문제는 자기다. 상대가 일부러 병이라고 하는 것을 내 입속에다 푹 집어넣지 않는 이상은 문제는 나다. 누구든지 다 나다. 자기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은 그건 제 3자가 말할 일이지 ‘너 때문에 내가 병들었다’ 이건 좀 그렇다. 근데 흔히들 그런 말을 다 잘 쓰거든. 남 때문에 자기 병든 사람 손 한 번 들어봐요. 너 때문에 내가 병들었다? 그렇다면 그 사람 떠나가면 병이 나아야지? 왜 안 나? 그러니까 그 사람이 아니라는 거지. 그럼 떠나간 사람은 ‘너 때문에 내가 죽었다’ 그러면 이건 또 뭐요? 전부 그게 선악과 따먹은 차원의 사고들이야. 그런 생각들이.
그런데 이게 중풍병 걸려놓으면 아무 것도 못해요. 아버지를 앉혀놓으면 앉혀놔도 한 쪽으로 넘어가. 누워있어도 못 일어나. 남이 일으켜줘야 돼. 어떻게 걸어가. 못 걸어가. 항상 한 사람이 붙어있어야 돼. 왜? 한 쪽이 날아갔으니까. 그러니까 손발을 못 움직이지. 뇌 반쪽 기능마비가 되면 모르지 뭐. 그러니까 손발을 못 움직이니까 손발 쪽에다가 침 같은 걸 잔뜩 꽂는 거야. 무슨 소용이 있어. 여기서 터져서 그렇게 된 건데.
내가 말씀 드렸지요? 젊은 사람들이 중풍병 들면 뇌를 쪼개서 수술을 하는데 오래 전에 신학 다닐 때에 의사목사님이 그러더라고. 50%라고. 뇌는 아주 이게 참 힘들거든요? 지금은 몇 프로인지 모르겠어. 근데 나이 든 사람이 하게 되면 이건 참 장담하기 어렵다. 근데 부자들은 또 살려고 그러지요? 그래서 제 생각이요. 요건 적지 말아요. 병원에서 사형선고 내렸으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살려주시면 살려주시는 거고. 그 뭐 집 있는 거 다 날려버리고 논밭 다 팔아먹고 이건 정말 못할 짓이다. 회개해라 그 말이지. ‘너 이제 내가 데려가겠다.’ 회개하라 그 말이지. ‘지금 안 데려갑니까?’ ‘더러워서 못 데려가겠다.’ 회개하라 그 말이지. 그런 의미가 들어있어요.
근데 이제 성경에 나타난 중풍병자는 도대체가 뭐냔 말이요. 계시라. 이제. 그렇다고 해서 중풍병자 교회 데리고 오면 이게 참 난감한 거요. 지금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교회 데리고 가야 됩니까, 예수님 앞으로 나가야 됩니까? 하나님이 하실 일이요. 하나님이 하실 일.
아무 것도 못하고 앉혀놓으면 그냥 넘어지고 그러니 어떻게 세울 수가 있겠느냐? 없어. 식사를 하게 하려니까 어떻게 앉혀놔도 그냥 넘어지니까 누워서 드실 수는 없는 거거든. 입도 막 돌아가 버리니까. 들어가도 제대로 뭐 하나, 그러니까 그냥 입가가 지저분해지지. 사람은 앉혀놓으려니까 이불로 술독 싸듯이 싸야 돼. 이불 힘에 이제 좀 앉아있는 거요. 날마다 드러누웠다가 또 앉혔다가, 대소변 받아내야지, 식사심부름 해야지. 이게 참말로 병든 자도 그렇지만 이게 산 사람도 자녀들 입장에서도 그런 큰 고통이 없다. 정말로 큰 고통이다.
근데 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메고 했으니까 아마 두 사람 이상인가 봐요. 예수님 앞으로 들어가고자 하는데 진을 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무리들이 쓸데없는 무리들 아니냐 그 말이요? 진을 치고 있는데 들어가지를 못 해. 예수님 앞으로. 사람을 살리고 일으키는 일에 요것들이 큰 방해물이구나. 이해갑니까? 지금? 그러니 이게 이방 불신자들은 아니에요. 성경가지고 믿는 자들이라. 그러니까 이게 예수님 앞으로 들어가는 일에 진을 치고 있으니 방해물이다. 그러니까 악하다. 선한 자들은 아니겠고 악하구나.
우리 인간이 그렇잖아요? 병자들이 들어오면 얼른 길을 터주고 길을 만들어주고 또 비켜주는 것이 이게 인간으로서 예의인데 이들은 그런 기본예의도 없다. 사람 살리는 길을 막고 있고 구원받게 하는 길을 막고 있고 그런데도 모르는구나. 참 악하다.
고속도로 가면서 사고 나면 병원차가 소리 어떻게 내요? 삐뽀삐뽀 그래요? 그래, 고속도로에서 사고 나면 그 뒤에 병원차가 좀 멀리서 소리를 내고 오면 얼른 옆으로 좀 천천히 가면서 빨리 빨리 비켜줘야 되거든. 안 비켜주면 내 속으로 그래요. ‘저것들, 자기 아내나 자식들이 사고나 봐라.’ 그럼 어떻게 하겠어요? 그러니 이게 몰상식하고 악한 자들이다. 정말 악한 자들이다. 정 급하면 비켜줬다가 병원차 뒤로 곧 따라가면 빨리 가요. 그건. 정 급하면 누가 보면 ‘아이고, 사고 난 사람의 식구들인가보다’ 그럴 거 아니요? 경찰차가 딱 잡으면 ‘우리 식구 중에’ 뭐 이러면 빨리 가라고 그러지 뭐. 걸리면 남 책임 안 져.
중풍병자를 메고 온 이들은 그들과 시비할 시간이 없구나. 앞에 진을 치고 앉아있는 그들과 시비할 시간이 없다. 왜 그러냐? 예수님이 언제 떠나실지 모른다. 그게 들어있어. 그 병자가 고칠 때를 알아야 되고, 우리가 이제 이룰구원에서 깨닫는 입장에서 반드시 알아야 된다.
그러니까 이제 비상수단을 쓰자. 살리는 길은 이 길밖에 없다. 어떤 길? 지붕으로. 메고 온 자들은 마음이 하나가 돼가지고. 이것도 마음이 하나가 안 되면 그게 안 되겠지요? 마음이 하나가 됐어. ‘살리자’ 하는 그 일에 하나가 됐어. 그래야지. ‘살리자’ 하는 일에는 하나가 돼야지. 그 서로가 이렇게 돼놓으면 그 참 그런 순간에 병자는 죽어간다. 예수는 떠날 수 있고.
지붕 위로 올라가서 기왓장을 뜯었어요. 그럼 그 집이 뭐가 될까? 기왓장 지붕이 뜯으면 뭐가 될까? 마치 사람 머리카락 잡아 뜯은 것처럼 이런 현상이 안 되겠냐? 대머리는 아닙니다. 기왓장 뜯어내면 사람 머리카락 잡아 뜯긴 것처럼 그런 느낌이 들어요. 우리가 차타고 가면 이게 나무 심은 것도 아니고 막 심은 것은 자잘하게 이렇게 나지요? 많이 있는 데는 또 보기 좋고. 많이 있으면서 드문 하게 푹 잡아 뜯긴 그런데도 있거든. 땅을 파서 뭘 한 건지 참 보기가 그렇다.
기왓장을 뜯어가지고 예수님 앞으로 달아 내렸지요? 그러니까 지붕수리는 나중 문제다. 사람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 지붕수리는 나중 문제다. 비가 오더라도 나중 문제다. 물질도 시간도 노력도 최대한. 예수님 앞에서 일으키고자 메고 온 사람들의 그 정신이나 열정이나 노력이나 정신력 그런 걸 한 번 봐 봐요. 그래, 이런 믿음이 정말 하나님 앞에서 시원시원하구나. 잘 한다. 잘 한다. 누가 옆에서 보더라도 잘 한다. 잘 한다. 참 잘한다. 그러니까 누가 보더라도 ‘고 신앙사상에는 주님의 역사가 일어날 기미가 있구나’ 요게 들어가는 거요. 이해갑니까? 주님의 역사가 일어날 기미가 들어가는구나.
시집에서 며느리보고 그냥 ‘교회가지 마라’ 하며 남편이 두들겨 패고 머리카락 잡아 뜯고 가위를 갖고 와서 다 잘라도 그래도 교회 간다고 가. ‘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기미가 보이는구나.’ 그렇게 해서 완전히 시집을 다 교인으로 만들어놓는 그런 며느리도 있습니까? 참 잘 한다. 정말 잘 한다. 손뼉을 치고 싶단 말이요. 정말 잘 한다. 그리고 그런 며느리가 집일을 팽개치고 뭐 날마다 예배당에서 살겠느냐? 그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신앙하는 면에 주님의 역사가 일어날 기미가 자기가 맛을 봐야 돼. 자기가 일으켜야 돼. 그것도 있어. 축 쳐져가지고 있으면 이건 하나님이 어쩔 도리가 없어. 그 학생들 앞에 뭐라고 써놔요? 노력에 이길 천재는 없다? 또 뭐가 있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여러 번 실패해보지. 또 뭐가 있어? 그런 것도 안 써놓고 해요? 예수 믿기 전에 난 초등학교 때 그 옛날 사과 짝, 나무 짝. 뭐요? 책상이 없기 때문에 사과 짝에다가 멸치포대 풀을 발라가지고. 그게 내 책상이야. 그래가지고 뭐요? 벽에다가 국기 내 손으로 딱 하나 그려놓고 공부 시작하기 전에 무릎 꿇고 맹세하고. 그 안 하는 것보다 좋잖아. 뭔가가 참.
그 이제 예수 믿는 사람들, ‘오늘도 무사히’ 하는 요런 거 갖다 붙여놓고 그것보고 기도해요? 그 어떤 표어가 있어요? 학생들 표어 공부할 때 벽에다가 잘 써놓잖아요? 뭐 있어? 얼른 얼른 생각 좀 해봐요. 써놓고도 몰라? ‘아는 것이 힘이다.’ 정말 아는 게 힘이요. 모르면 힘없어.
그리고 내가 또 표어를 하나 정해줄게. 학생들에게. ‘문제 하나 놓치지 말자.’ 문제 하나 놓치는 사상은 다 놓쳐버려. 알겠어요? 문제 하나 때문에. 예를 들자면 대학교에 합격하는데 문제 하나 때문에 떨어지는 게 있습니까? 없어요? 한 열 개나 틀려야 안 되는 거요? 그 하나 때문에 이런 차이가 있단 말이요. 이런 차이가. 선이 있잖아요? 딱. 그 문제 하나 때문에 떨어졌다고 옥상에 올라가서 이거 뭐 어떻게 할 거요? 문제 하나. 그러니까 그 정신으로 공부하라 그 말이지요. 그리고 ‘시간을 이용하자’ 뭐 이런 것도 있고. 생각하면 많이 있어요. ‘밥 한 술에 배부르랴.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있잖아요? 맞아요. 아주 진리요. 한 걸음 떼지도 않고 ‘저걸 언제 가냐?’ 그러면 뭐요? 만날 그 자리지.
예, 세상적으로 흐르는 악한 종들의 눈치나 슬슬 보고 언제 사람이 낫고 일어나겠느냐? 무슨 말인지 알아요? 비상수단을 쓴 그들의 행동은 잠깐이었지만 하지만 그 결과는 영원히 영원히 두고 두고 천국 가서도 잘한 일이구나. 선이든 악이든 잠깐이었는데 그 결과는 영원히 자기에게로 돌아오는구나. 중풍병자가 그들을 천국 가서 만난다면 못 본채 할까요? 얼마나 반갑겠냐? 세상적으로 말하자면 은인이란 말이요. 은인. 안 그렇겠느냐? 그런 면을 한 번 생각을 해봐라.
그러면 세상 살면서도 은혜입고 혜택입고 이런 면을 가만 생각하면 사람이 감사함으로써 마음이 풍부해져요. 그걸 알아라. 사람이 마음이 뜨거워지고 풍부해져. 그렇지 못하면 쪼그라져가지고 까슬까슬하면서 배은망덕한 사람들이 참 많다. 일반세계도 그렇고. 하나님이 어련히 아셔서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럽고 풍부하고. 하나님께서 은혜주실 수 있는 마음이란 말이요.
천국에 들어가서 말하자면 천국에 아침 조회시간이 있을까마는 아침 조회시간에 천국에서 성도들과 천군천사들이 구름같이 섰는데 ‘비상수단을 쓴 특공대 나와라’ 그러니까 이름을 불러서 앞으로 나가서 상을 받을 때에 우뢰 같은 박수소리가 나올 것이다. 만화 같은 얘기지요. 그런 느낌을 한 번 가져봐라. 왜? 예수님의 이력이 하신 일이 천국 가서도 요한계시록에 보니까 ‘당신의 피로 당신의 백성을 사시고’ 하면서 ‘세세토록 영광을 받을 지어다’ 그 찬송이 나오지 않던가? 그래서 우리에게 희로애락의 오각의 오감성을 주어서 그런 것도 한 번 느껴보라고 우리에게 주신 거라. 생각을 할 줄 알아라. 사람의 마음이 무디면 안 된다.
반면에 ‘이 중풍병자 일으키는 그 일에 막은 놈들 나와라’ 그러면 누가 나갈까요? 바리새교인들이 안 나갈까요? 율법 교사들이 안 나갈까요? 어느 안전이라고 안 나갈까요? 이름을 불러내서 옛날 왕이 말한 것처럼 ‘엎어놓고 매우 쳐라’ 그러면 그 때에 그들의 인권을 변호해줄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을 살리는 일에 가로막은 그 악한 자들의 인권을 변호해줄 변호사가 있을까요? 변호사가 있다면 그 놈도 같은 놈이다. 의로운 일에 억울한 일에 변호사가 필요한 거지 무슨 악한 자들에게 서가지고 변호? 이건 좀 우스꽝스럽네. 이거.
20절: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그래, 이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달아 내린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데려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제 중풍병자에게 ‘이 사람아, 네 죄 사람을 받았느니라.’ 아니 딴 사람 덕으로 그 사람이 낫는구나. 야, 그런 일도 있나? 그러니까 그 앞에 진을 친 사람들이 ‘어, 이 사람 보게? 예수가 하나님을 모독한다. 죄를 사해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신데 어떤 인간이 인간의 죄를 사하겠느냐?’
사실 진을 친 그들의 말은 틀린 말입니까, 맞는 말입니까? 맞는 말이지요. 말 자체는.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오신 출처를 모르는구나. 어디서 오셨는지? 따라서 가르치는 그 교훈의 목적을 전혀 모르고 있구나. 다만 요셉과 마리아의 사이에서 태어난 나사렛 예수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종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실 때는 ‘아,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구나. 하나님의 능력의 사람이구나’ 그렇게라도 생각이 안 날까 그 말이요. ‘죄를 사했다’고 선언을 하니, 중풍병자가 일어나는 것을 보니 예수님을 향해서 ‘아, 과연 하나님의 사람이구나. 혹시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가 바로 이 분이 아닐까? 모세가 오리라 한 분이 이 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왜 안 들었을까?
그리고 구약시대 엘리사 선지자가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쳤다면 하나의 인간의 힘으로 될 일이냐 그 말이요. 그게. 하나님이 신의 능력이라야 되는 것이지. 그리고 그 문둥병을 게하시에게 옮기게 했다면 과연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겠느냐? 모세의 능력도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모세가 신의 사람이 아니던가? 신의 사람이면 그 말씀에 의해 축복도 들어가고 저주도 그대로 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예수께서 그들 선자자들보다도 못한가 그 말이요.
그런데 성경박사들이 왜 그렇게 생각이 어두웠을까? 왜 그렇게 어두울까요? 성경박사들인데? 그 이유가 뭘까요? 성경박사들인데? 오늘날도 그런 사람 많아요. 왜 어두울까? 그 원인을 생각들을 하셔야지. 그래야 ‘오늘날 이 구원을 이뤄가는 자기의 눈은 왜 어두울까’ 하는 그런 면도 생각을 해야지. 이것이 다 자기의 실상인데 참 자기인데. 그게 남이 아니고 그게 참 자기라. 안 그러냐 그 말이요. 그 자기가 돼야지? 안타깝지 않는가? 오늘날 예수 믿어도 예수 따로 자기 따로, 자기 생각 따로 하나님 말씀 따로 그게 있을 수가 있겠느냐? 그러면 무슨 힘이 있겠냐? 사람이.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입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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