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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9:28-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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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2018.12.2 주일 설교 https://hopech.kr 희망의교회 |
메시아의 예루살렘 입성
눅19:28-40
인류 역사상 가장 놀랍고 신비로운 일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이었습니다. 이천여 년 전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던 한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신비로운 일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이 아기는 30세가 되자 세례를 받으시고 메시아로서의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는 장면을 간략하게 기록했습니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눅3:21-22)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는 장면은 너무나도 장엄하고 영광스러웠습니다. 이 장면은 메시아의 대관식으로 불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순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아이심을 온 천하에 공개적으로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내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숨기셨습니다.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 했을 때도 가만히 그곳을 피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메시아, 하나님 나라의 왕이심을 만천하에 드러내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던 때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왕으로써 공개적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환영하며 환호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잡히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죄인들의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곧 최후의 심판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시기 위해 재림하실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 가시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서의 사역을 마치시고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예루살렘 바로 앞에 당도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당도하셨다는 것은 이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바로 눈앞에 닥쳐왔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앞장서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28절)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 체포당하시고 빌라도에게 넘겨지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조금도 주저하거나 망설임 없이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어떤 도전과 시험이 닥쳐온다 해도 주저하지 말고 결연히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누가는 앞에서 말씀하신 므나 비유를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기사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 므나 비유에 나오는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온 귀인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인의 구원을 이루실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것이었습니다.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께서는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인데, 그 때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므나를 결산하시고 상을 주실 것입니다. 누가는 바로 그 왕이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나귀 새끼를 데려오게 하심
예수님께서는 이제 예루살렘에서 3km 떨어져 있는 감람산에 가까이 오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께서는 나귀 새끼를 데려오도록 제자 둘을 건너 편 마을로 보내셨습니다.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29-30절) 건너 편 마을은 아마도 벳바게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벳바게에 보내셔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타고 가실 나귀 새끼를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데려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타실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라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왕으로서 이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계획이셨습니다. 이것은 특별히 스가랴 9:9을 성취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 예언 중 가장 유명한 예언은 이 말씀과 미가 5:2 말씀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이며, 나귀 새끼를 타실 것이라고 예언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에 대한 이 두 예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을 본다면, 그분이 바로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메시아이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주께서 쓰시겠다
예수님께서는 나귀 새끼를 데려오라고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일어날 일과 대답할 말을 일일이 알려주셨습니다.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31-35절)
예수님께서는 제자 둘을 보내시면서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거든 풀어서 끌어오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주인이 보고 왜 남의 나귀를 풀어서 끌어가려 하느냐고 묻거든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갔더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일들이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자 나귀 주인은 두 말 없이 나귀를 내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미래의 모든 일을 완전히 다 알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미리 답사를 하시고, 나귀 주인에게 예약을 해놓으셨다고 설명합니다. 이런 해석은 예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만유의 주되심을 생각하지 못한 잘못된 해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다스리시며,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나귀 주인은 예수님의 명령에 기꺼이 순종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셔서 나귀를 끌어오게 하신 일은 예수님께서 전지하신 만왕의 왕이시며, 만유의 주가 되심을 분명히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귀 새끼가 거기 매여 있을 것을 아셨으며, 나귀 주인이 나귀를 푸는 제자들에게 왜 나귀를 푸느냐고 물을 것도 아셨고,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면 그냥 보내줄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소유를 언제든지 가져가셔도 되는 걸까요? 당연합니다. 예수님은 만유의 주인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소유와 우리의 건강과 우리의 생명까지 얼마든지, 언제든지 취하실 수 있으십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자신과 우리의 소유를 취하여 사용하신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무한한 영광과 축복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우리의 모든 것, 생명까지도 주님께 드릴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아프리카 짐바브웨 출신 Stephen Lungu라는 선교사가 있는데, “예수를 업고 가는 아프리카 당나귀”라는 책을 썼습니다. 부모에게 버림을 받고 비참한 어린 시절을 보낸 룽구는 갱단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갱단을 데리고 은행을 털러 가다가 전도 집회가 열리고 있는 천막을 발견했습니다. 룽구는 계획을 바꾸어 동료들과 함께 그 천막에 폭발물을 던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잠깐 천막 안을 살펴보러 들어갔다가 설교를 듣고 회심한 후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거리의 부랑자, 갱단으로 떠돌던 청년이 위대한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룽구는 자신을 ‘예수님을 업고 가는 아프리카 당나귀’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취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취하시자, 비참하고 악하고 소망 없던 그가 가장 귀하고 영광스러운 주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만유의 주이시며,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얼마든지 우리 자신과 우리의 모든 것을 취하실 수 있으십니다.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취하시자, 그 나귀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를 태우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영광스러운 나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귀하게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주인 되심을 온전히 고백하고, 자신과 모든 소유를 주님께 바치기를 사모하며 힘써야 합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과 영광은 없습니다. “주께서 쓰시겠다”하면 얼마든지 모든 것을 주님께 즐거이 드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왕을 환영하는 무리
제자들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위에 걸쳐 놓고 예수님을 태웠습니다. 그러자 온 무리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펴면서 예수님을 환영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이미 감람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35-37절)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자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길에 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이 펴놓은 옷 위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무리들이 겉옷을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길에 편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 왕으로 환영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처음 갈릴리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행렬은 여리고와 벳바게, 그리고 베다니를 지나오면서 엄청나게 불어났습니다. 이 큰 무리는 자기들이 보았던 예수님께서 행하신 능한 일들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찬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이적을 보았으며, 나병환자를 고쳐주시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며 귀신을 쫓아내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놀랍고 권세 있는 진리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 이 큰 무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메시아이심을 믿고 이렇게 찬송했습니다.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38절) 누가는 그의 복음서 서두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기록하면서 이와 비슷한 천사들의 찬송을 기록했습니다.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2:13-14) 천사들은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찬송했는데, 여기서 무리들은 ‘하늘에는 평화’라고 찬송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구속사역을 완수하시고 왕으로 높여지심으로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평화가 임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이 장면은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는 장면과 비슷합니다.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이 내려가서 솔로몬을 다윗 왕의 노새에 태우고 인도하여 기혼으로 가서 제사장 사독이 성막 가운데에서 기름 담은 뿔을 가져다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으니 이에 뿔 나팔을 불고 모든 백성이 솔로몬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니라 모든 백성이 그를 따라 올라와서 피리를 불며 크게 즐거워하므로 땅이 그들의 소리로 말미암아 갈라질 듯하니”(왕상1:38-40)
바리새인들의 불평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수많은 무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환영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메시아로 인정하고 맞이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무리의 환영과 찬송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와서 무리의 환호를 중지시키라고 요구했습니다.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39절)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무리들의 한호와 찬양을 매우 못마땅해 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백성들의 환호와 찬양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로마 당국이 이렇게 엄청난 무리가 예수님을 왕이라고 부르면서 땅이 갈라지도록 찬송하며 환호하는 것을 보면 반란이 일어난 것으로 생각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면 군대를 보내 이 무리를 진압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무리의 환호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예수님께 와서 제자들을 책망하며 이 소동을 중지시키라고 요구했습니다.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바리새인들의 요구에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대답하셨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40절)
예수님께서는 무리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환영하며 찬양하는 것이 정당한 일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공개적으로 나타내시며 주장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찬양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섭리와 계획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자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을 메시아로 보내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려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고 계셨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백성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환영하며 찬송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부인했습니다.
이런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가장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해왔습니다. 피조물 가운데 유독 인간만 그토록 완악하고 강퍅하게 하나님을 거역해왔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낮아지시고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이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완악하고 강퍅하게 하나님을 거역한대서야 말이 되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의 요구에 예수님께서는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모든 피조물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서 그것들에게 주신 본분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당신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낮고 천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셔서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제대로 깨닫고 있습니까?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마음을 다해 순종하며 힘을 다해 충성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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