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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5:3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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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5장 34절-39절.
34절: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뇨.
‘혼인집 손님들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뇨?’: 신랑하고 같이 있는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하고 같이 기쁘고 즐거워하는데 금식하라고 할 수 있느냐? 말이 안 되지요? 무슨 말이냐? 레위가 주님을 만난 것이 기쁘고 즐거운데 그래서 잔치를 벌였는데 기쁘고 즐거워서 잔치를 벌였는데 굶으려고 안 먹으려고 잔치하는 사람 있습니까? 사람이 죽어도 잔치란 말은 좀 그렇고 초상집에 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는데 음식을 장만하더라 그 말이요. 주님을 차지하고 있으면 기쁘고 즐거운데 금식이 되는 것이냐 그 말이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은 안 먹고 굶을 수 있느냐?
그리고 금식기도는 자랑하기 위해서 금식하느냐? ‘나는 며칠 했다. 며칠 했다.’ 예수님의 금식이나 선지사도들의 금식이나 모두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었더냐? 모두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의 목적이 들어있었습니다. 오늘날 금식기도는 무슨 목적이 들어있지요? 성경과 거리가 먼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과 거리가 멀어요.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멀어.
35절::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저희가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신랑을 빼앗긴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첫째로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에 십자가의 사건을 말함이고. 예를 들자면 신부가 신랑을 빼앗기게 되면 신부가 무슨 살맛이 나겠습니까? 신랑을 빼앗겼는데 ‘아이고, 기쁘다’ 그럽니까? 평생 슬픔과 고독 속에 지낼 수밖에 없지요. 그렇지요? 그 옛날에 열녀문 같은 거 있었습니까? 그거 참 뭐 ‘오늘 이 말씀에 좋은 예가 되겠다’ 그런 느낌이 들어요. 신랑을 빼앗겼는데 표면적인 건데.
사실 그거 참 젊은 과부를 그 시어머니가 시집에서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될 일이지요. 사실은? 보면 그래요. 스스로 그러면 또 몰라. 그 뭐 결혼해가지고 자식도 없이 그렇게 됐다면 그 참 인생을 사는데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룰구원 차원에서 그거 시집을 보내야지.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 다음에 계시적으로 성도의 일생의 기쁨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데, 이게 주님이지요? 이 기쁨의 원천을 빼앗기면 무슨 기쁨으로 살겠느냐? 사람이 기쁨을 빼앗기면 슬픔은 자동적으로 찾아옵니다. 그러니까 금식한다는 말은 ‘나는 슬프다’ 그 말이지요? ‘슬프다’ 하는 것은 다른 의미의 슬픔도 있지만은 여기서는 기쁨을 빼앗겼다는 말이 되는 거지요.
신랑이 있는 곳에는 늘 기쁘고 즐겁습니다. 맞습니까? 우리 교인들 가정에 자기 남편이나 신랑이 있으면 늘 기쁩니까? 안 기뻐요? ‘꼴도 보기 싫다. 저리 나가라’ 그렇습니까? 이거는 마귀가 이제 장난질하는 거다. 이거. 마귀가 장난질하도록 하면 안 되지요? 처음에 결혼하기 전에는 서로 좋아서 물고 빨았잖아요. 시집가놓고 얼마 안 돼서 이게 뭐가 틀렸는지 그냥 비뚤어졌는지 뭐가 마음에 안 맞는지 꼴도 보기 싫다고 그러고 도망가고 싸우고 안 들어오고. 이거 참 큰 문제다. 이거.
자, 말이 나왔으니 왜 싸워요? 남편이 목욕을 잘 안 하다거나 양말을 잘 안 벗는다거나 속옷을 잘 안 벗는다거나 그런 신랑 있어요? 아니면 신랑입장에서 여자가 머리를 통 안 감네. 어디 나가려면 그냥 머리가 떡이 되고 새집이 돼가지고. 목욕을 안 한다거나 뭐 툴툴거린다거나 늦게 일어난다거나 뭐 없어요? 있을 거라고. 그런 거는 죄는 아닌데 이룰구원 차원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사랑을 못 받아요. 그러면. 예, 그럼 그것이 늘 마음에 이게 들어 있어가지고 은혜도 못 받고 그래요. 그러니까 예수 믿기 전의 그런 성격 성질들은 빨리빨리 뽑아라. 빨리 교체를 시켜라. 예수 믿어서 그걸 교체를 시키고, 이렇게 예수님의 것으로 갖고 가야지 그걸 그대로 갖고 가가지고 껍데기만 보고 가서 실패했다고 그렇게 느끼는 신랑 신부 손 한 번 들어봐요. 허기야 손들겠나? 묻는 내가 참 바보지.
사람의 매력은 속에서 나온다. 속 매력을 알아라. 남이 볼 때는 뭐 밉살스럽게 생겼다손 치더라도 그러나 진정한 것은 속에 있다. 속이 참 그 인격 면에서 모든 면에서 잘 구비가 돼 있다면 정말 아름다운 거다. 아름다운 사람이다. 심모. 심모의 미모성, 영모의 미모성. 육모의 미모성 이것만 보고 가가지고 실패하는 사람들 많지요? 정신을 차려야 돼. 예수 믿어가면서 고쳐야 돼. 지금 뭐 돈 있고 건강하고 집 있고 그거 믿지 마라. 사건의 바람이 불면 어떻게 되겠냐? 이거. 자기가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사건의 바람이 불면? 잔잔하지 않다.
우리교회 교인들은 이 영모의 미모성, 심모의 미모성. 제일 첫째는 영모의 미모성. 영모의 미모성은 노력하지 않고는 안 된다. 일반적인 모든 언행심사 수준을 올려라. 그냥 교회만 왔다갔다 그게 아니다. 자기의 언행심사, 남보고 자기를 살피고 좋은 것을 본받고 자기가 자기를 쳐다보고 안 된 것은 남 좋은 것을 보고 고치도록 하고. 그 옳은 믿음이요. 육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인성장을 위해서 그렇다 그 말이요.
신랑이 있는 곳에는 늘 기뻐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을 붙잡고 사는 그 성도는 구원 이루는 말씀에 늘 잔치입니다. 이게 참 뜻이요. 이게. 왜? 기쁨의 구원의 원천인 신랑이 있기 때문이요. 슬프냐? 신랑으로 인해서 기쁨을 얻어야지, 약하냐? 신랑을 기대야지, 모르겠느냐? 신랑이 가르쳐 주어야지. 주님을 놓고 지금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신랑은 참 잘못된 데가 많지요. 많아요. 그런데 잘못된 것을 그대로 두지 말고 고쳐나가야지? 안 믿으면 모르고 못 깨달으면 몰라요. 그러면 평생 동안을 살면서 그렇게 산다. 이런 불행한 일이 어디 있느냐 그 말이요.
그래서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주님 신랑을 마음속에, 그 다음에 그 기쁨을 사람에게. 아닌 말로 자기 아내에게나 남편에게. 옳은 거요. 이OO목사님, 아내 잡고 어떻게 하루에 입맞춤 몇 번이나 해요? 해야지. 젊은 사람들만 사람인가? 젊은 사람들의 입맞춤하고요 나이 든 사람들의 입맞춤하고 이건 느낌이 달라요. 늙어서 해보라고. 입맞춤은 사랑이거든. 입맞춤은 사랑을 의미하고 있어. 사랑한다고 하는 그거. 그럼 말만 ‘사랑한다’ 하고 입을 맞추려고 그러면 ‘나 사랑하고 있어?’ 그렇게만 하지 마라. 몸을 준 것은 표현이 나가고 있는 거요. 옳은 거요. ‘늙어서 에이 주책이야.’ 무슨 소리.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사랑에는 모든 것을 이겨. 모든 고민이 해소되고. 그런데 입도 안 맞춰주고 손도 안 잡아주고, 그럼 무슨 맛으로 살아요? 그래? 밥하고 빨래하고 반찬하고 그 손 얼마나 좋아요. 그 손을 붙잡고 ‘참 나 때문에 당신이 수고가 많다.’ 오늘 안마해주고 좀 그렇게 하라고요. 아내를 남편이 사랑 안 하면 누가 사랑해요? 다리 밑에 가서 이상한 사람이랑 사랑할까? 묻지 마 관광은 왜 자꾸 가는 거요? 이유가 뭐요? 가정에서 제대로 안 됐다는 증거야. 그러니 그 다음에 볼 거 뭐 있어요. 그 다음에 얼마나 어지럽겠냐? 그런 가정이.
늘 말씀드렸지만 부부간에 부끄러울 게 뭐가 있느냔 말이요. 이 추운 겨울날도 안방에서 옷 벗듯이 벗고 다니는 세상인데 뭘. 맞지요? 우리교회서는 진리 안에서 주 안에서 이거는 아무런 허물이 없어요. 주 밖에서는 그 어떤 행복도 허물이 있어요. 근데 주 안에서는 허물이 없어요. 그럼 주 안이란 무슨 말이요? ‘주 안이다’ 하고 병풍을 치라 그 말이요? 자타의 이룰구원에 그 마음 정신 소원 목적 그런 뜨거움을 가지고 그 다음에 부부 간에 사랑이라든지 애정을 나누는 이런 건 하나도 허물이 안 돼요. 그게 없으면 나중에는 점점 사단 마귀가 숨어 들어와서 시험에 걸리게 하는 거다. 그 이유를 알아라.
그 좋은 동산에서 아담하고 하와하고 같이 있으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떨어져 있었구나’ 그런 느낌이 들어요. 부부는 한 몸이라면 붙어있어야지 그 왜 떨어져 있어. 주로부터 떨어져 있고 신랑신부가 떨어져 있고 하면 그건 당연한 거지. 그건 시험 타는 거지. 나쁘다가 아니고 시험이 들어가는 거요. 그건. 사랑하지 아니하면 모든 병이 찾아와요. 그걸 알아야 돼요.
이 구원이 아닌 금식은 외식입니다. 구원이 아닌 금식은 외식이다. 이종교인들은 금식하고 고행을 하는데서 더 깊은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은 은둔생활이고 무표정이고 항상 어두워요. 그걸 아셔야 돼요. 우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을 먹고 자타의 구원에서 항상 활동이 들어가고 들어가니 그 기쁜 거요. 혼자 사는 것보다 둘이 살면 더 기뻐요? 기쁘지. 아기가 하나 달려있으면 더 기쁘지. 자기 혼자 들판에서 살면 자유롭고 굉장히 기쁠까요? 외로워서 못 살지 어떻게 살아요.
사람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야 되는데 사람마다 어디 나 같은가? 다 선악과 따먹고. 그런데 사람 가운데서 사는 것은 생명과 먹고 살게 되면 여기는 정복이 들어간다. 그러니까 살맛이 나는 거요. 외식자들은 외부적 표면적으로 무슨 종교적 외식이든 활동이든 의식이든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여줌으로써 인정을 받으려고 합니다. 영적 이면적 정신 사상적 하나님의 성품을 인격적으로 속사람이 만들어지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신앙사상들이요. 그러니까 그것은 신앙사상이라 그러는 게 아니고 하나의 타락된 종교적 사상에 불과하다 그 말이요. 이해됐습니까?
궁금한 거 물으세요. 자, 어제 그랬나? 그 일반감화가 있고 성령의 감화가 있는데 예수님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그 길을 가는 그 사람에게는 성령님의 특수감화가 있고 일반감화가 있어요. 성령의 특수감화. 어떤 사건을 만났을 때에. 이를테면 순교를 한다든지 또 말씀을 전한다던지 하나님의 구원적인 거. 그 다음에 그런 성도가 일반감화, 그러니까 세상을 쳐다보거나 자연만물을 보았을 때에 그 어떤 것을 보았을 때도 일반적으로 눈으로 보이는 그것이 일반적으로 들어온 것 같으나 속에서 신앙으로 요리가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은 성령의 특수감화는 없고 악령의 특수감화가 있고 일반적인 그 성질로서 된 일반적인 감화가 있는 거요. 이해됐습니까?
그러니까 그들의 일반감화하고 우리들의 일반감화하고는 질이 다른 거요. 하늘로 올라가는 일반감화하고 땅으로 내려가는 일반감화하고 이건 질이 다르다 그 말이요. 방향도 다르고 목적도 다르고. 그래서 우리가 보고 좋다고 하는 것과 안 믿는 사람들이 보고 좋다고 하는 것과는 이건 질이 다르다. 똑같이 좋다고 그래도 속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쓰임이 어느 쪽으로 쓰이는 그게 다르다. 그래서 주 안에서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진리 따른다고 그러면서 고행으로 가기 쉬워요. 그건 안 된다. 고행으로 가게 되면 이건 이단자가 돼버린다. 그래서 목사님들 세계에서 자꾸 ‘거룩 거룩.’ 이게 내가 누구한테 그 소리 들었나? ‘이때까지 부부생활 그거 하나 못 끊느냐?’ 아이고, 깜짝 놀랬어. 무슨 소리. 이런 이단자가 어디 있느냐? 이단자요. 그 이단자요. 아무리 교파 어느 교단에 들어있어도 그건 이단자요. 그 사상은 이단자요. 그건. 아주 이게 이방종교적 사상을 가지고 예수 믿고 있다는 그게 나오는 거요. 아주 몹쓸 것들이에요. 그리고 부부가 잠만 잘 바에야 뭐하려고 장가를 가냐 그 말이요, 뭐하려고 시집을 가냔 말이요. 말하자면 누구를 고문을 해. 고문도 고문도 그런 고문이 어디 있어. 어디 쓰겠느냐 그 말이요. 그러니 어떻게 시험이 안 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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