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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의 메시아, 예수 탄생의 의미

누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59 추천 수 0 2020.01.22 23:3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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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46-55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8.12.19 성암감리교회 http://sungamch.net 

헨델의 메시아, 예수 탄생의 의미

눅1:46-55

 

[리터러시 literacy]란 용어가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읽고 쓰는 능력’혹은 ‘문자를 독해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청소년들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대신 손전화기를 사용하면서 은어나 축약된 문자나 기호로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에 정작 책을 읽거나 문서를 보고 뜻을 파악하는 능력이 뒤떨어진다는 겁니다. 기계에 사람이 밀려나는 이 시대에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이 능력, ‘리터러시-문자 독해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자의 독해능력’부족은 젊은이들만의 문제는 아닌 듯싶습니다. 신앙인들이 경전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도 요즘의 젊은이들과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신앙의 바탕이 되는 경전을 문자라는 기호로, 축약되고 고정된 기독교만의 언어로 해석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탄생을 오로지 ‘인간 개인의 구원’으로만 해석하려 드는 경우가 그것입니다. 사실 인간 개인의 구원은 그보다 크고 높은 이상이 구현되면서 생기는 부가적인 것인데도 말입니다.

 

눅1:46-55절은 예수의 탄생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단락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흔히 ‘마리아의 노래’ 또는 ‘마리아의 찬양’이라고 소개됩니다. 마리아의 이 노래 속에 예수 탄생의 의미가 시적인 형태로 압축되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는 비록 마리아 개인의 노래이지만 당시 모든 대중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51절을 보세요. 하나님은 자신의 팔에 힘을 모아서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다는 것입니다. 절정은 52절과 53절입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위에서 내리치셨고, 비천한 자는 반대로 높이셨다”는 것입니다. 52절은 정치적 질서의 역전이고, ‘권세 있는 자를 내리치셨다’할 때 그 ‘내리치다’는 ‘끌어내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권세 있는 자들을 끌어 내리는 한 편 비천한 자들을 끌어 올리신 겁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개인적인 적용에 해당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정치적인 질서의 역전을 시사 하면서 53절에서는 사회적 질서의 역전을 예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질서와 가치관을 바꾸는 일일이 [성탄]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질서의 역전을 예고해주는 것입니다. 누가가 본 예수는 그래서 화려한 궁정이 아니라 마굿간이고, 동방박사가 아니라 무명의 목자들입니다(2:8-20). 예수를 기다리는 이들은 시므온, 엘리사벳, 사가랴, 마리아등과 같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2:32절은 ‘이방인들을 비추는 빛’이라고 합니다. 선택받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버림받은 이방인들의 하나님으로 오셨다는 것이 누가가 보는 예수의 탄생의 의미였습니다. 누가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가 보내어진다는 것입니다.

 

마태나 마가는 예수의 탄생을 예수 자신의 입을 통해 전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20:20, 막10:45). 요한은 말하길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하고 보는 자들을 눈 멀게 하려고 왔다”(요9:39)고 했습니다. 누가는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다”(눅19:10)고 합니다.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은 그의 생애 가운데서 면밀히 드러납니다. 눅18:9-14에 나오는 바리세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를 보면,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바리세인의 기도는 거부합니다. 반면 세리의 기도는 흔쾌히 가납을 하십니다. 16:19-31의 부자와 가난한 나사로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부자는 거부되고 그걸 주워 먹는 나사로는 받아들이십니다. 누가가 2장에서 보여준 예수에 대한 시선이 그대로 예수의 삶에 투영되고 있습니다. 14:12-24을 보면, 만찬장에 먼저 온 고관들은 거부되고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이 잔치를 맛보고 있습니다.

 

적어도 누가에 의하면 예수는 당시 사회적으로 무심코 통용되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처럼 범주를 역전시키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셨습니다. 선한 사람은 갑자기 악한 사람이 되고, 악한 사람이라고 치부되던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 역전과 격상을 시키고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10:30-37)가 그것입니다. 물론 네 복음서가 강약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관점을 일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가 그의 생애에서 사셨던 건 그의 처세술이 아니라 고정관념의 파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누차 지적해 본 바지만, 마태복음에는 산상수훈이라는 게 있습니다. 산 위에서 멋지게 사람들을 아래로 모아놓고 하는 설교는 멋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이를 산상이 아니라 평지로 바꿔버렸습니다. 이른바 ‘평지수훈’입니다. 6:17을 보면 누가는 마태의 축복을 축복과 저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6:20-26). 지금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와 배부름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반면 지금 배부른 사람들은 굶주림과 애통이 있다고 역전시키고 있습니다(6:25).

 

누가가 본 예수의 탄생과 목적은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역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수의 탄생 소식은 이런 역전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기쁜 소식이지만,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운 소식이 됩니다. 이런 해석이 거북한 오늘날의 대중들은, 교회는 이를 모두 개인화 시켜놓고 있습니다. ‘개개인의 역전’이란 곧 ‘증대와 증진’의 의미밖에 도출될 게 없습니다. 보세요, 이런 역전을 선포한 예수님은 역전을 바라지 않는 기득권자들의 손에 살해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이러한 ‘역전’ 선포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가난한 자가 부자가 되고, 지배자가 피지배자가 되는 걸까요? 다시 말해 혁명과 폭동으로 뒤집어엎는 걸까요? 아닙니다. 예수가 강조하려는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평등입니다. 이것이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이점이 분명하게 인식되어야 하고, 이걸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탄생과 연결지어 믿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뒤집어엎어버려서 역전을 시키는 것이라면 그것은 다시 뒤집어야 하고 또 뒤집어야하는 혼란의 순환만을 거듭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가 마리아의 노래를 통하여 강조하려고 하는 것은 고정관념의 파괴입니다. 그것은 권세 있는 자들이 비천한 자들에게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입니다. 마리아의 노래가 권세 있는 자들을 끌어 내리고, 비천한 사람들을 끌어 올려서 평등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역전의 궁극적인 목표가 [인간평등]에 있다는 것은 구약의 이사야40:4절에서도 확인하고 있습니다. “높은 산들은 낮아지고, 낮은 골짜기들은 높아지리라.”인데, 이걸로 헨델은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작곡합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3번 테너 영창이 그것입니다.

 

며칠 전에 발전소에서 비정규직 젊은이가 석탄을 실어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에 휩쓸려 들어가 죽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런 사건들을 언론을 통해 들을 때에 남의 일로 듣지 않고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우리 사회에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무관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의 약자들이 겪는 삶과 생명의 불평등에 대해서 분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개선의 여지가 보이는 것이고, 불평등한 인간의 차별이 극복되어 [평등한] 세상이 구현되는 것입니다. 왜 이래야 하느냐? 우리가 믿는 예수, 우리가 그토록 오기를 바라는 예수가 바로 이 일을 위해 왔기 때문입니다.

 

오늘 누가복음의 마리아 노래와 같은 구약의 본문인 이사야 40:4절을 작곡한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3번, 테너영창을 들으면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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