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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6:1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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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6장 12절-13절.
12절-13절: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어느 분이 자기를 제자로 뽑았는지? 어느 분이 자기를 사도로 뽑았는지? 구원을 알게 하시고 구원으로 성장된 나를 뽑은 자가 누구냐? 진리이치의 종이더냐, 종교적인 사역자이더냐, 아니면 나는 구원의 사람으로 전혀 안 되어 있는데 하기 싫은 것을 나를 억지로 종을 시켰느냐? 그렇다면 이것이 또 누구의 종이냐? 주님의 종으로 또는 사도로 선택된 후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우리로 밝은 눈으로 보라는 뜻으로서 밝을 때에 사도들을 뽑았습니다. 선택된 사도 중에 누가 예수 팔고 진리 팔고 스승 팔고 사람을 돈하고 바꾸어 먹는지 밝은 눈으로 잘 보라는 겁니다. 밝을 때 사람을 뽑아야지 어두울 때 컴컴할 때 사람을 뽑으면 어떻게 돼요? 안 그래요? 이치가? 밝은 눈으로 보고 잘 뽑아야지.
그리고 앞 절에서 율법을 잘 안다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안식일에 예수님이 가셔서 가르치는 곳마다 나타나서 예수님의 이 천국본질의 진리이치를 돌려서 문자적인 개념으로 종교적인 개념으로 자꾸 뒤집고 예수님의 말씀을 성경구절 가지고 자꾸 뒤집고. 예수님의 말씀은 성경문자 속에 있는 뜻을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그들은 문자로 갖고 와서 자꾸.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그 말이요. 자꾸 뒤집고 혼합을 시키고 그러면 또 예수님은 분별을 시키니까 이제는 또 양심이 찔려서 예수님의 목숨까지 헤치려는 의도입니다. 이것을 모르시는 예수님이시냐? 아닙니다.
그런 율법주의 종교적 외식적 이방사상적 구복적 신비적 세상적인 사람들이 성경구절을 인용 응용하면서 기독교 신앙인 것처럼 들어와도 그것은 혼합적인 사상이니 받아들이지 말고 천국복음인 하나님의 진리본질로 이치를 깨달아 부지런히 양육하고 성장하여 제자에서 사도로 신앙의 질을 그렇게 올리고 그 다음에 파송을 해야 할 것이다 그 말이요. 제자에서 사도로서의 신앙의 질을 올린다 그 말이요. ‘안수 줘서 그냥 보낸다’ 이런 의미가 아니고.
말세에 거짓 영이 많이 활동하는 때에 영분별 교훈분별 사상분별 정신분별 활동분별, 심지어 우리 자신도 못 다스린다면 무엇을 할 수 있겠다고 보겠느냐 그 말이요. 이 마지막 시대에 거짓 영들이 얼마나 활동을 하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세계를 성령의 눈으로 보지 않고 무엇을 하겠다 그 말이냐? 어떻게 교회를 가르치겠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 말이요. 이건 엄밀히 따져서 하나님 앞에 이건 안 될 일이요.
혹 그 제자나 사도들이 아무렴 예수님만큼이나 되겠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스승으로서 키워주시려고 아직은 좀 미달이지만 스승 당신이 ‘이제 너 나가봐라. 해봐라’ 그랬을 때에 말하자면 이 제자 된 입장에서는 ‘아이고,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이렇게 들어가야 되겠는데 그건 아니고 ‘내가 나가서 한 번 영광을 돌려보겠습니다’ 하는 식으로 이게 마음이 그렇게 돼있다면 이게 바로 된 겁니까, 안 된 겁니까? 세상만사에는 이치가 들어있고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느 것이 나중인지? 칭찬을 해도 남이 자기를 칭찬하는 것은 좋지만 자기가 자기를 자화자찬 이렇게 들어가면 참 그게 문제요.
거짓 종이 무엇이냐? 개인적으로 자기를 가만 살펴보면 스승은 ‘알아서 한 번 해봐라’ 그랬는데 가령 이게 일의 이치가 그런 겁니다. 윗사람이 ‘한 번 해봐라’ 하는 거하고 윗사람은 아무렇지도 가만있는데 ‘내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하는 거 하고는 이건 앞뒤가 바뀐 거다. 거짓 종이 뭐냐? 앞뒤가 바뀐 거. 주님이 먼저 나가야 할 텐데 자기가 먼저 튀어나가. 그걸 알아야 돼.
13절: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말씀을 듣고 배우고 활동을 관찰하고, 그 제자들 중에서 사도 열둘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왜 꼭 열둘만 택한 것이냐 그 말이요. 더 있으면 더 택하시지 왜 꼭 열둘이냐?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열두 아들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 열두 지파 자손들이 온 세상에 흩어져 살게 된 겁니다. ‘그들에게 천국의 소식을 전하려면 열두 명의 사도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렇게도 생각이 됩니다.
사도들 중에는 형제가 사도된 자들도 있고, 그러니까 두 형제가 참 보기가 좋지요? 요것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경우 얘기지 이상한 데서 이상한 목사로 그냥 온 가족이 죄다 목사된 거 보기가 좋아요? 이건 뭔가 잘못돼 있다. 이거 지금.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그 종의 그 명예를 그렇게 함부로 쓸 수가 있을까? 그러니까 이거 몰라도 한참 모르는 거다. 제 멋대로 생겨먹은 거다. 이거. 어째 그럴 수가 있을까? 하나님이 무섭지도 않을까?
성경에서 베드로와 안드레가 형제입니까? 그 가정의 참 큰 복입니다. 주 안에서 진리로 된 참 형제, 주 안에서 진리로 된 참 형제, 진리실상화로 된 형제는 영원히 갑니다. 육신의 형제도 세상적인 의가 있으면 세상사는 동안에 서로 돕습니다. 돕더라. 그런데 육신의 형제도 원수가 되어 사는 자가 많습니다. 부모가 재산 조금 가지고 있다면 이걸 그냥 서로 뺏으려고 법정 앞에 서고. 이게 참 형제들일까? 전 우리 가정에 그런 형제들 있다면 이건 완전히 남남으로.
제가 좀 잘못됐는지 예수 안 믿는 형제 보다요 예수 믿는 형제가 훨씬 가까워요. 제 입장은 그래요. 예수 안 믿는 형제끼리 앉으면 ‘어떻게 사냐? 크게 해라. 여의도 조용기목사처럼 해라. 이왕 할 바에야.’ 뭐 그 소리 되게 듣기 싫거든요? 듣기 싫지만 진리를 모르니 그럴 수밖에 없구나. 예, 예수 모르는 사람은 목사 이걸 장사꾼으로 취급을 해요. 장사꾼으로. 수단을 부리고 장사꾼으로 그렇게 취급을 해요. 그 참 그 뭐 사람 몇 명 안 되는 거 일 년 만에 이 년 만에 팍팍 자라나는 게 보이면 그 소리 쏙 들어가겠는데 그 뭐 이상하게 좀 그래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우리교인들 욕하는 게 아니고 다른 데서 부자로 살다가 돈 펑펑 쓰다가 망해먹으면 왜 우리교회 오는지 모르겠어. 난 도저히 이해가 안 가. 난 참. 허허. 그러니까 진리 따르는 사람들 맨 못 살고 후줄그래하고 70년대 사람처럼 보이고. 예, 그 참 우리교회 장애자들 듣기에는 좀 그래요. 예, 이게 참 마음 아픈 저주받을 소리요. ‘꼭 병신들만 앉혀놓고.’ 이게 자기는 병신이 아니야. 자기도 다리병신이고 그래요. 남편은 손 병신이고. 누군지 알 거에요. 여기 안 나와요. 남편이 이 진리 좋아서 따르는데 그 아내는 자기 남편 빼앗아갔다고.
그러니까 이 진리 받으면 주일날 다소곳이 몸을 도사리고 성경도 읽고 하는 건데 그 아내가 다니는 교회는 주일날에도 홈플러스 가지 차타고 다 어디 돌아다니지 그러니까 재미가 없단 말이요. 그러니까 남편은 ‘이 진리가 좋사오니’ 하고 따르니까 그 짓을 못하거든. 그러니까 이상하게 나만 보면 마귀보다 더 싫다는 거요. 내가 마귀보다 더 밉게 생겼어요? 그 참 이상하다. 내가 심방을 갔었는데도 귤 몇 개 사탕 몇 개 사다놓고 슬며시 빠져나가는 걸 남편이 붙잡아가지고, 가만 보니까 설교 듣는 시간에 온 얼굴에 오만상이 다 들어있어. 그 참 그래도 그런 분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시니까 깨닫도록 하시겠죠?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어.
그런 소리 들을 때에 내 속에서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건 ‘그래, 맞다. 육신적으로는 불구자다. 그런데 불구자로 보이겠지만 영적 면에서는 큰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가지면서 우리 교회 좀 몸이 불편한 사람들 어찌든지 신앙 면에 강하고 남보다 전도 잘하고 아는 것도 많고 속사람이 바로 돼서 그런 자들을 넘겨버려라. 불구되어 사는 것도 원통한데 영적 면에서 할 수 있는데도 게으름을 피우고 영육 간에 불구자소리 들으면 그런 원통함이 어디 있느냐? 참 그 저주스러운 자기도 병신이면서 남보고 병신이라는 거 참말로 이거 큰일 났다. 몰라도 저렇게 모를까?
이 세상 형제도 의가 있으면 서로 도와요. 근데 원수 된 형제가 참 많아. 형제들이 또 예수님을 믿으면서 이게 또 비진리 길로 가게 되면 이게 만날 때마다 대립이 되는 거요.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하나님의 의사단일의 뜻에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세상소원 목적에 맞추어져 있으니 의사불통이 될 수밖에 없는 거다. 하늘의 뜻을 가진 말하고 땅의 소원 목적을 가진 말하고 이게 어떻게 맞아 들어가요. 안 맞아요. 맞을 수가 없어. 안 맞는 거야. 나가는 교회도 다르고 교훈도 다르고 신앙정신이 다를 수밖에 없다. 진정 하나님의 진리본질의 신앙을 가져야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될 수가 있습니다.
참 이거, 목사님들 세계서도 가만 보면 개척교회를 하면 온 식구가 다 달라붙어서 한 사상으로 한 몸이 되어서 전하고 가르치고 해도 이게 참 힘든 일인데 아내는 노래 잘 가르친다고 딴 교회 나가고, 아들은 옛날에 다녔던 그 청년들 많다고 그리로 가고, 아버지 혼자서 이게 한다고 주일날 설교하고 있으니 이거 한 번 생각해봐요. 이런 일이 있나? 기독교 복음이 주님의 복음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알고 보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그 모양들이요. 그거 아니면 못 먹고 살아요? 지혜를 못 쓸까? 모양새가 안 좋다. 누가 들어도 그거 안 좋다.
이제 우리가 가룟유다를 좀 생각해 봅시다.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알게 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교회를 가르치는 목사들은 더 잘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니 가룟유다를 모르면 자기가 가롯유다 일을 하고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팔 자러라.’ 그렇지요? 가룟유다를 왜 선택을 했을까? 모르시고 선택한 겁니까? 알고 선택한 거지요? 아시고 선택을 한 거요.
가롯유다를 택한 것은 우리가 생각을 많이 해야 된다. 무슨 말인가 하니 가롯유다 이름만 나오면 ‘가롯유다 너는 불택자이고 예수 팔고 지옥 갈 자다’ 라고 아예 그렇게 교인들에게는 고정이 돼버린 것을 볼 수가 있어요. 그렇지요? ‘가룟유다 아, 이건 처음부터 지옥 갈 자고 예수 팔아먹고 지옥 갈 자다.’ 마귀 한 놈이 그 안에 들어온 것처럼 ‘이건 어떻게 해도 지옥 갈 자다. 이건 지옥 갔다.’ 지금은 과거사니까 아예 고정이 돼버렸어. ‘가룟유다는 지옥에 갔다’ 라고 고정을 딱 시켜버렸어. 그래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생각을 좀 해야 된다 그 말이요. 그것도 성경을 근거해서 생각을 좀 해야 되겠다 그 말이요. 생각을 안 하면 안 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 아담을 만드실 때 당신의 모양과 형상대로 만들었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의 모양과 형상대로. 그런데 가룟유다 만큼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고 마귀의 형상이지요? 왜 그런가 하니 ‘처음부터 마귀니라’ 그랬으니까 하나님께서 가룟유다 만큼은 마귀 상으로 만들어놨지요? 맞지요? 그래서 만찬석에 열두 제자 그린 그림 있지요? 거기 혹시 누런 똥 색깔 옷 입은 이게 아마 가롯유다가 아닌가? 허허허. 아마 누런 옷 입은 제자가 있을 거요. 그림 그린 것도 자세히 보라고요. 그래, 우리 모두 그림을 그릴 때에 가롯유다 옷 색깔을 좋게 입히겠어요?
아니면 가롯유다는 마귀가 만들었거나 하나님이 가롯유다를 마귀의 형상으로 만들었다? 아니다. 예수님이 ‘처음부터 마귀니라’ 그랬으니까 가롯유다는 마귀가 만들었다? 어느 게 맞는 거요? 어느 게 맞아요? 둘 다 틀려요? 앞에 것이 맞아요, 뒤에 것이 맞아요? 둘 다 틀렸어요? 둘 다 틀렸다? 마귀가 좀 섭섭하겠는데.
예수님께서 유대종교인들을 향해서 ‘독사의 새끼들아’ 그랬단 말이요. 그렇게 하신 것은 유대종교인들 자기 아버지는 독사의 어미 아비들이지요? 마귀새끼들이고.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불택자들입니까? 맞아요, 틀려요? 유대종교인들이 불택자들이면서, 모세오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가 모세오경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건데 불택자들이 이 성경을 가지고 안식일 지키고 금식도 잘하고 성경도 잘 외우고 열심히 잘 믿었고. 그러니까 그들이 자기 스스로가 영원히 지옥 갈 자인 줄 모르고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 한 것인지? 만일 그걸 알았더라면 그렇게 안 믿을 텐데 지옥 갈 자들이라고 하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금식하고 성경 달달 외우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 것이냐? 몰라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 것이냐? 자기들이 불택자들이라고 알 것 같으면 안 믿을 텐데. 말이 이상합니까? 지금? 근데 말귀는 알아듣겠지요? 말을 듣는 귀도 있습니다.
그 다음에 가롯유다를 보고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는 말은 창조주 하나님의 큰 실수라는 말이다? ‘내가 어찌하다가 저 자식을 태어나게 했던고’ 하는 것처럼 ‘아차, 내가 이거 큰 실수를 했구나’ 그 말이다? 아니면 마귀가 만들기는 만들었는데 마귀가 잘못 만들었다는 말이다? ‘마귀는 만들려면 똑똑하게 만들지 어떻게 저렇게 만들었느냐?’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이게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 그 말이다? 맞아요, 틀려요? 틀려요?
그 다음에 가롯유다의 부모의 큰 실수로 된 것이라는 말이다? 가롯유다의 부모가 어디 가서 바람을 피워가지고 나았는데 이게 가롯유다라. 그러니까 예수님이 가만 보고 ‘차라리 너 안 태어났으면 좋을 뻔했다’ 그 말이다? 그 말 맞아요? 틀려요? 큰 실수를 해서 뭔가가 태어났다면 차라니 안 태어났으면 좋을 뻔한 거지요? 사실은. 맞지요? 그 말은? 맞아요, 틀려요? 앞의 말하고 뒤의 말하고 맞아요, 틀려요? 어지러워요?
그 다음,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 자기를 지은 인간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을 알지 못하고 영원한 구원의 존귀영광과 행복의 참 복을 알지 못하고 다 놓쳐버리고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다 놓쳐버리고 가는 가련하고 처절한 한 인생을 보고 하시는 말씀이다? 맞아요, 틀려요? 맞아요? 그런 사람이 돼서는 안 되겠지요? 자기가 그런 사람이 돼서는 안 되겠지?
예수님이 지금 자기를 보고 하늘에서 이렇게 내려다보시고 앉아서 설교를 듣기는 듣지만 마음을 굽어보시고 ‘차라리 너 안 태어났으면 좋을 뻔했다’ 그 소리 듣는다고 가령 상상을 한다면 가롯유다가 그 때 우리 식으로 안다면 그 가롯유다의 마음을 우리가 또 나라고 본다면 예수님을 팔아먹기 전에 목매달아 죽을까요? 그것도 어지러워요? 그만둡시다. 머리 좀 식혀가지고.
성경 말씀은 이리저리 가만히 이치를 따져서 오면 자기에게 딱 부딪혀요. 어느 성경구절 어느 사건 어느 사람을 들고 와도 마음 돌아가는 이치를 가만 살펴보면 결국은 나한테로 와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너보고 하는 말이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 누구보고? 어떤 나? 이룰구원을 잘 이루고 나가는 그 나? 아니면 듣기 싫어서 졸고 ‘이 설교 얼른 마쳤으면’ 하는 그 나? 어떤 나? 처음 나, 나중 나?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입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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