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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6:2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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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에배 |
6장 22절-23절.
22절-23절: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여기서 인자는 사람의 아들이지요? 예수님께서 당신이 당신을 향해서 ‘인자’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글자 그대로는 사람의 아들인데 무엇을 말하고 있느냐 하면 곧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당신을 말씀하심인데, 또 보면 사람으로서의 참 사람. 예, 길이요 진리요 하나님의 이 말씀 원료 뭉텅이 덩어리, 신성으로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 신성 혹은 성령으로 똘똘 뭉쳐진 원료 뭉텅이. 핵심. 참 사람이란 말이요. 그게.
‘왜 사람의 아들이라고 표현을 했을까’ 하는 것은 참 사람의 삶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참사람의 삶을 의미하고 있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다’ 하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그 말이요. 그런 의미에서 인자라. 사람의 아들이라. 그러니까 그냥 글자 그대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참 사람이라. 그럼 예수님과 반대되는 소원 목적이나 삶을 살고 있다면 이건 자동적으로 거짓된 사람이라 그렇게 들어가는 겁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틀린 답은 말 안 해도 옳은 답만 말하면 틀린 것은 자동적으로 체크돼나가 버리지요? 옳은 답을 말하기 위해서 거짓된 틀린 답을 계속 말하면 옳은 답이 드러납니까, 안 드러납니까? 옳은 것을 알기란 힘들다. 이치를 알아야 된다. 예수 믿는 것도 이치를 알아야 된다. 예수님께서 참 사람으로 어떻게 살았다 하는 것.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겠다’고 하는 이 말의 의미는 ‘예수님처럼 내가 살아야 되겠다. 하나님의 정신을 가지고 내가 이 땅에서 어떤 직을 갖고 살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되겠다.’ 그게 참 사람이란 말이요.
그런데 이게 가만 보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인격화 자기 성품화 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일을 어떻게 크게 많이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나’ 그러고 있단 말이요. 신령계와 물질계 온 세상 우주만물이 당신의 것인데 인간이 뭘 건설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느냐? 그건 안 돼요. 영광이라고 하는 말의 의미는 인격을 가진 인간과 인격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영광이라’ 그럴 때는 인격자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뭐가 영광이요? 최고의 인격, 최고의 성품, 최고의 능력, 최고의 지혜. 그 다음 것은 그 사람의 실력에 따라서 일은 말할 필요가 없다. 안 그래요? 이치가 맞아요, 틀려요?
예수님을 보면 ‘참 사람으로 어떻게 살았구나’ 이걸 우리가 알 수 있지요? 곧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목적적인 사람. 우리의 구원은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부터 하나님 당신의 의지세계 속에서부터 이게 나오는 거란 말이요. 세상 만들기 전에, 인간을 만들기 전에. 사람이 뭘 만들려고 그러면 벌써 마음속에서 정신에서 구상을 하지 않아요? 그걸 말한다 그 말이요. 저는. 성경은 우리가 예수 믿고 신령천국 올라가서 이 땅에서 만들어진 것만큼 영능의 실력대로 누린다. 신령천국 하늘나라에서 그 누림성의 그 행복과 그 영광과 기쁨은 이 땅을 거치면서 그게 나오는 거라. 이런 것이 영원 전서부터 들어있었다 그 말이요.
그리고 이제 그 구상을 놓고 이게 세상을 만드는 것은 훈련장소가 필요했다 그 말이요. 그래서 예수 믿으나 안 믿으나 인간이란다면, 자기가 인간이란다면 크고 작은 사건 환경을 만나고 이런 저런 일을 만나면서 훈련이 들어가고 있다. 맞지요? 그거 예수 안 믿어도 그거 부정할 사람 있나? 부정하려면 부정해 보지? 만들어지는 시간은 자기 일생의 끝.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은 자기가 죽기 전에 일생이 끝나기 전에 물질적 소유를 많이 자자손손에게 남기고자 하지요? 그렇지요? 그런 소원 목적을 가지고 사는 거지요.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보아도 불타지고 없어지고 도둑맞고 없어지고 그것 때문에 사랑 망조 들고 폐인 되고 그러더라. 돈이 너무 많으니까 어떻게 쓸 줄을 몰라. 그게 이제 타락된 인생이라.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건 인격 자체가 타락성으로 들어가 있다. 우리 생각에는 돈이 많으면 더 좋은 일을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구나. 돈이 없는 사람도 정신이 바른 사람은 사회나 국가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훌륭한 일을 해놓고 가는구나. 사람 가치가 있잖아요. 일반적으로.
돼지도 가치 있어요? 어느 돼지가 가치 있어요? 살찐 돼지가 가치가 있지. 그러니까 돼지 키우는 사람들 ‘어떻게 하면 삼겹살을 맛있게 하느냐? 인삼을 먹이느냐? 뭘 먹이느냐?’ 그 있는 거요. 예, 하물며 우리 인간이 돼지 값보다 못한 거요? 어떻게 보면 돼지보다 더 못한 사람으로 사는 사람도 있구나. 돼지는 삼겹살이라도 제공을 하지만 사회에 폐를 끼치고 가정에 폐를 끼치고 국가에 폐를 끼치고. 그 뭐요? 일이나 하나? 일도 안 하고 뭐요?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요. 맞잖아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사람을 놓고 볼 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을 기준해서 ‘왜 인간을 만드셨는가? 구원이라는 게 뭔가? 예수 믿는다는 게 뭔가?’ 죽어서 천국 간다? 이건 나중 얘기고, 우리는 어차피 지금 죽어도 천국은 들어가는 거요. 이건 아주 호적으로 그냥 들어가 있는 거요.
예수님의 삶을 보면 오셔서 말씀대로 다 준행하시고 당신의 백성들을, 당신의 백성이 누구냐? 일반적으로 기독교는 택자라고 그러지만 당신의 백성은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을 자는 다 구원시키고 올라가는구나. 데리고 가는구나. 그러니까 구원운동이라 그 말이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꾸는 운동이 구원운동이라 그 말이요. 예수만 믿게 하는 게 아니고 예수 믿는 자기 속에 인격과 성품적으로 하늘나라의 것으로 만드는구나. 이것이 구원운동이라 그 말이요. 그게 복음운동이라 그 말이요.
알기를 똑바로 알아야 돼요. 그냥 교회만 다니고 이 하나님의 말씀 깨달음 없이 인격과 상관없이 일에다가 사건에다가 종교적인 사업에다가 목적을 두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그건 방편이에요. 근데 그걸 목적을 하고 믿는 사람은 인격과 주님 닮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성경은 한 마디로 디모데후서 몇 장에 있어요? 딤후3:16-17에 뭐라고? 성령으로 기록된 것은 너희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려하여.
그러니까 성경 속에는 크고 작은 사건과 개인적인 것과 단체 국가적인 것과 온 세상만물이 동원되면서 너의 이룰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이게 뜻이 다 들어있다. 예, 틀림없는 말씀이다. 누가 뭐라 그래도 그게 복음이야. 예수님은 그 일을 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 일을 하도록 하셨다. 한 마디로 의례히 ‘예수 믿어 천국 간다’ 하는 그것도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요. 근데 더 깊은 뜻은 ‘너를 인간으로 만든 원인 동기 목적을 똑바로 알고 살아라. 그걸 아는 것이 구원이다.’ 기독교밖에 없고 성경밖에 없고, 하나님의 말씀은 너를 참 사람으로 주님 같은 참 사람으로 만들어져 오는 것을 원하고, 주님께서는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당신이 앞서서 행해가지고 ‘부활 승천으로 너도 이렇게 올 거다. 너를 이렇게 내가 데려갈 거다’ 그게 들어있다. 그런 것을 벗어나는 예수 믿는 목적은 이건 비진리요 사단 마귀의 짓이다.
예수님은 만능의 능력자요 인간으로 오시기전에 영원 전 선재적 그리스도로 계시면서 요한복음에서도 당신을 하나님이라 그랬고, 모든 만물을 지었다고 말씀을 하고 계셔요.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오셨다고 하는 것은 그 전부터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그 분이 말씀 한 마디로 우주 천지만물을 다 만드셨는데 예수님은 예배당 하나 짓고 갔습니까, 안 짓고 갔습니까? 예배당 짓고 갔어요? 예수님이 전도해서 병자 고치면서 헌금 뜯어가지고 예배당 번듯하게 짓고 갔어요? 예배당도 하나 못 지었으니 예수님은 엉터리목회 한 거지요? 예수님이 그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겁니까?
우리가 또 역사적으로 보면 예루살렘 성전을 당신이 ‘이렇게 짓는 거다’ 하고 가르쳐줬는데 그 안에 대제사장 유대 종교지도자들, 구약시대도 마찬가지지만 성경을 가르친다고 하는 이 종교지도자들이 외식운동을 하니까 있는 성전도 불태워 없애버렸어. 생각을 해봐요.
근데 오늘날 어떻지요? 왜 불에 태웠는지? 왜 또 건설하라고 하는 건지? 왜 또 불에 태울 것이라고 하는 건지? 성경을 통해서 왜 그 분의 의사성을 깨달으려고 하지도 않을까?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은 참 사람으로 산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셈이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나는 종교를 갖지 않겠다’고 하는 그 말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는 그 말은 ‘나는 참 사람으로 살지 않겠다’는 그 말이 되는 고로 사람으로서 참 사람 되는 것을 포기하고 사는 것이니 인간을 만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어떻게 처리를 해야 되겠느냐? 답은 나오는 겁니까?
이 땅에 있는 인간이 자기가 세상에 오고 싶어서 왔어요? 어디 저 세상에 있다가 오고 싶어서 왔어요, 아니면 공중에 빙빙 돌다가 어느 시집장가 간 그 가정에 쑥 들어와서 자기가 인간되어 온 겁니까? 인간 자기가 누구요? 누구냐고요? 자기가 자기에 대해서 질문을 해봤습니까? 안 그러면 돈독만 눈에 시퍼렇게 들었나? 자기가 누구요?
왜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느냐? 미움을 받는 것, 또 사랑을 받는 것. 그 유형들을 생각을 해봐요. 왜 미움 받습니까? 미움 받는 이유는 뭐요? 그냥 일반적으로 생각을 가지고 해봐요. 게으르면 미움을 받습니까, 사랑을 받습니까? 확실해요? 그 이유를 알아야 돼요. 교만하고 건방지면 미움 받고, 덕이 안 되는 짓을 하면 미움을 받고, 하지 말하는 짓을 자꾸 하면 미움 받고 얻어터지고, 사람이 눈치가 없으면 미움 받고 맞지요. 살아오면서 다 경험을 했잖아요.
우리 모두 다 자기라고 특별한 건가? 그리고 가만히 보면 다수의 세상이 그렇더라고 다수의 무리와 같지 아니하면 이게 또 외톨이가 돼가지고 미움을 받더라고요. 다수라고 하는 여기에 옳음의 옳은 다수. 그리고 자기는 하지 않고 말만 앞세우면 또 미움을 받고, 자기 분수도 모르고 위아래도 모르고 자기가 다 아는 것처럼 말하면 미움을 받고. 미움 받는 게 상당히 많지요? 그 이상하게 그런 사람도 있습니까? 주는 거 없이 미운 사람 있습니까? 그런 사람도 있어요? 자기하고 무슨 관계인데 이상하게 저 사람만 보면 미운 사람 있습니까? 참 이상하다.
신앙 면에서 볼 때에 하늘의 소원 목적과 땅의 소원 목적을 가진 사람의 판단이, 하늘의 소원 목적. 간단히 말씀드리는 거요. 하늘의 소원 목적을 가진 사람의 판단과 땅의 소원 목적을 가진 사람의 판단, 이때에 대립이 생기지요? 목적적으로 대립이 생기잖아요? 맞잖아요? 그럼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왔으니 땅의 소원 목적을 품고 온 겁니까, 하늘의 소원 목적을 품고 온 겁니까? 그렇지요. 하늘의 소원 목적을 품고 이 땅에 와서 사람에게 하늘의 것을 심어주고, 그 다음에 사람 속에서 하늘의 것이 자라나게 해서 천국으로 하늘나라 데리고 올라가는 것. 그렇지요?
그럼 오라고도 안 했는데 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숨어서 다니면서 예수님을 괴롭히고 헐뜯고 한 그런 유대종교인들도 있었습니까? 성경을 들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누가 오라 그랬나? 자기들 스스로. 그러니까 목적적으로 여기는 대립이 딱 들어가 있어요. 맞잖아요? 맞는 거지?
‘닭하고 오리하고 의좋게 살아라’ 그래놓으면 의가 좋습니까, 사사건건 대립입니까? 사사건건 대립이지? 오리는 뭘 먹으려고 그래요? 물속에 있는 거. 고기. 닭은 쌀 구더기 모이 지렁이. 그러니까 오리입장에서 닭 잘 먹는 거 먹으면 싱거워서 여기는 소금을 타야 돼. 허허허. 닭이 오리 먹는 것을 먹으면 짜서 여기는 물을 타고 먹어야 돼. 입맛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오리새끼 낳으면 어디로 갈까요? 바닷가 강 쪽 물 쪽. 낳자마자 그래요. 그러니까 씨는 못 속이는구나. 그거 있어요?
성경을 우리가 보면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사는 사람은, 세상 넓은 길 그건 사망길이라 그러고 있어.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살면 이건 넓은 길이요 사망길이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했단 말이요. 인간 자기를 인간 너를 만든 예수님이 그 말씀을 하고 계신다. 그런 말씀 안 믿을 바에야 뭐하려고 예수 믿고 다녀. 뭐하려고 예수 믿으려고 교회 다니고 그래요.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으로 깨우쳐서 가치판단을 주어서 영원한 유익을 취하도록 했는데 이 유대 율법종교인들은 예수님을 성경가지고 죽여 버렸어. 참 이거 희한하지요? 그들이 가진 것은 모세오경인데, 모세오경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백성들 가르치라고 준 거에요. 그러면 가만히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수님을 반갑게 맞을 수 있게끔 들어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도 반갑게 맞이할 줄을 몰랐으니 이게 같은 성경을 두고 어떻게 된 셈이냐? 성경은 특별계시라. 하나님의 말씀은 특별계시라. 글자 문자 속에 당신의 뜻이 들어있는데 그건 보지 못하고 문자로만 봤구나.
문자로만 보고 신앙생활하면 요건 세상이 돼버려. 세상을 향해 가게 돼버려. 근데 이 마지막 시대 오늘날은 문자 속의 깊은 뜻 이건 소용이 없어. 이건 제 멋대로 들어가 버렸어요. 그러니까 성경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경이 없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발견이 될 터인데, 하나님은 계시고 역사를 하시는 건데 하나님은 없어. 그래서 예수 믿고 교회 다녀도 하나님 없이 다니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과 같이 다니는 사람이 있구나.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심정, 쉽게 말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다니는 이런 예수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완전히 세상을 자기 속에 담고 예수 믿는 사람이 있구나. 그러니까 여기에는 예수를 같이 다 믿는데 대립이 되는 거요.
그러니까 예수 바로 믿는 사람은 어찌하든지 사람을 가까이 하여 깨우치고 주님의 사람으로 밀착을 시켜서 존귀 영광스런 사람으로 자꾸 만들어 주려고 하는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있는데 세상 식으로 예수 믿는 사람은 자꾸 그런 사람을, 바로 가르치는 사람을 자꾸 미워하고. 그래서 가만히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서 사는 사람은 좀 드물어요. 가만 보면. 그런데 예수 믿고 교회는 다니는데 세상 쪽으로 믿는 사람은 세상 안 믿는 사람들하고 합세가 빨리 돼요. 왜? 속의 질이 같으니까. 질이 같으면 합세가 빨리 되는 거요. 맞잖아요? 질과 질은 붙어요. 질이 같으니까 붙어요.
우리교회 교인들은 이치를 바로 알아야 돼. 예수 믿으면서 예언 방언 그런 게 문제가 아니고, 귀신들린 사람들 마귀 들린 사람들 얼마든지 그런 짓이 다 있어. 예, 여기에서 대립이 되니 안 믿는 세상사람들하고 합세가 돼버렸어. 예수님 죽일 때에 유대종교인들과 로마군인들이 합세가 됐잖아요? 언제든지 그거는 들어있어요. 그걸 알아요.
본문에서 가만 보면 ‘너희를 멀리하고 따돌리고 내어좇고 그리고 멀리한다.’ 어떤 경우 멀리가 되느냐? 그러니까 사람이 미움 받는 거하고 멀리한다는 거하고 이게 뭐요? 단어가 다르니만큼 그 단어사용에 있어서 용어사용에 있어서 느낌성이 차이가 조금씩 나요. 어떤 표현을 씀으로서 이게 진하게 느끼는 게 있고 또 어떤 표현 쓰는 면에 있어서 얕게 오는 게 있고. ‘너희를 멀리한다’ 여기서는 ‘주님과 당신의 제자들을 멀리한다’ 그렇게 돼 있지요?
그런데 쉽게 그냥 일반적으로 생각해봐요. 그런 거 저런 거 없이. 사람이 냄새가 나면 자꾸 멀리하게 됩니까? 그렇지요? 무엇을 발라서 그런지, 씻지를 않아서 그런지 냄새가 지독하게 나는 사람이 있습니까? 총각 때 처녀총각이 이제 시집장가를 가려고 결혼을 하려고 그러는데 총각 옆에 내가 가면 그런 게 있어요. 사람에게서 노린내가 나는 게 있데요. 좀 드물기는 해요. 다 나는 게 아니고. 사람에게 사람냄새가 나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 유달리 노린내가 나면 머리가 쪼개져요. 전 전철 타고 가면서도 그런 걸 더러 느껴요. 유달리 나가지고 머리가 아주 아프도록. 예, 굉장히 머리 아파요 무척 아파요. 못 살아요. 그건. 그런 경우 못 살아요. 근데 같이 사는 사람은 그 냄새가 안 맡아지는 모양이야. 참 희한하네. 그거. 사람의 코도 어떤 냄새를 못 맡는 코가 있습니까? 참 희한해요. 그게 이제 하나님께서 맡도록 돼 있구나.
다 보면 헤어지고 만날 그저 싫다고 그러는데 그래, 가만히 보니까 아는 사람이에요. 아는 사람인데 결혼을 했어. 냄새가 나니까 이거 뭐 패물 싹 다 갖고 여자가 그냥 도망을 가버렸어. 근데 또 장가를 갔는데 그 여자 코에는 그런 냄새가 안 났던 모양이요. 잘 살고 있어요. 가만 보니까. 지금은 몰라.
그런데 사람이 쓸데없는 말을 자꾸 하면 멀리하게 되지요. 쓸데없는 말, 덕이 안 되는 말. 사람에게 피해만 주면 내어 쫓고 멀리합니다, 남의 흉만 보고 싸우는 사람을 멀리합니다. 상스러운 욕을 잘하는 사람을 또 멀리하고, 너무 뜻이 안 맞으면 또 멀리하고.
그런데 본문에는 세상사람들과 종교적 세상은, 우리는 신앙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기독교 종교인이라’ 또 우리가 안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을 분리시켜서 말을 할 때 ‘종교인이라 이방종교인이라 기독교인이라’ 이렇게 얘기하지만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 앞에 예수님 앞에 예수 닮은 사람으로 신앙인으로서의 얘기지 ‘나는 기독교인입니다’ 그렇게 말할 필요가 없어. 말한다고 해서 예수님이 알아주느냐? 그게 아니고 ‘너 누구 닮았느냐’ 그 말이요. 네가 누구 닮았느냐? 사람이 참 사람으로 돼 나온다고 하는 것은 예수 닮은 사람이야. 예수 닮은 사람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거다. 왜 그러냐? 하나님 당신이 인간 자기를 당신의 모양과 형상대로 만들었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사람을 보면 ‘야, 저 사람 참’ 그런 거 있습니까? 너무 예쁘고 그러면 ‘저 사람 천사 같다.’ 지가 천사를 봤냐? ‘천사다’ 그런 표현을 쓰거든? 우리는 ‘천사 같다’가 아니고 ‘야, 저 사람 마음을 보니 하나님이 아마 저런 마음을 가졌지?’ 아, 이렇게 돼야 될 텐데 어떻게 사람을 보자마자 ‘독사같이 생겼다느니, 여우같이 생겼다느니, 저 놈은 사기꾼이라느니, 고양이라느니’ 그 소리가 왜 나올까? 모양새가 그래서 그런가? 속 중심사상이 그래서 그런가? 사람에게 얼마나 해를 입히기에 그런 소리가 나오느냐?
여기 오신 분들, 남보다도 자기 집 식구들이 자기를 향해서 뭐 같다고 그래요? 그런 소리 한 번도 못 들었어요? ‘당신만 보면 하나님 생각이 난다. 하나님이 당신처럼 생겼겠지?’ 마음이 그렇게 안 되고 ‘아이고, 이게 여우같다느니 미련 곰탱이 같다느니 돼지 같다느니.’ 자기가 어떤 소리도 안 듣고 잘 살아왔는지 그 한 번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가만히 심사를 해봐라.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 속을 진찰한다. 참 사람 되려고.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자기 몸 밖의 것에 욕심을 자꾸 내고 가지러 가려고 그런다. 온 세상을 다 가지지도 못하면서 그런다 그 말이요. 가만히 보면 다 부자로 살고 싶고 유명하게 살고 싶고 뜨고 싶고. 그렇지요? 가만 보면 이루지도 못하고 죽고 다 이뤘다 그래도 죽고. 뭐요? 도대체가 이게 뭐냐? 무슨 가치가 있나? 그거.
세상사람들은 물질에다가 물질 소유성에다가 사람의 가치를 두려고 그러니까 여기는 항상 고통이고 전쟁이고 항상 살인이고 도적질이고 그래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독교인이라는 그 종교 이전에 참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당신이 보여주고 가신 거 아니요? 어디를 가든지 기독교인이라 그러면서 예수냄새가 나야지. 성경에 보면 예수향기도 있습니까? 예수냄새가 나야지?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남의 흉도 잘 보고 욕심도 많고 살살거리고 어떻게 사기성이 많고 알랑거리고 정말 돼먹지를 못했어. 정말.
하나님이 매질을 한다면, 말하자면 심판을 한다면 안 믿는 사람부터 먼저 할까요, 당신의 집의 이 못된 놈들부터 먼저 매를 들고 칠까요? 역사를 보면 알 거 아니요? 이 세상사람들과 종교적 세상은 이건 세상적으로 합세가 되기 때문에, 진리의 성도들은 주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이 면에다가 전적으로. 그게 천국복음이요. 딴 거는 세상복음이요. 그러니까 옳은 성도들을 멀리하고 내어 쫓는구나.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리면’: 이름이 악한 사람이 있습니까? 사람은 좋은데 이름이 악한 사람이 있습니까? 이름을 악하게 지으려고 그래요, 선하게 지으려고 그래요? 부모님들이? 선하게 지으려고 그러지요? 유명한 어느 목사님이, 생각이 잘 안 나네. 생각나면 말씀 드릴게요. 악한 이름도 있기는 있어요. 부모들이 그 자식을 악하게 살라고 한 뜻은 아니야. 그런데 조상들의 이름을 따라서 무슨 돌림으로 짓는 그게 있는 모양이야.
그렇게 짓다보니 어떤 이름이 있는가 하니 ‘박치기.’ 그 다음에 ‘이주먹 이망치 장도리.’ 허허. 있어요? 얼마든지 있어. 제가 웃기는 이름들 한 번 말씀 드렸지요? 이십 원짜리 이름도 있어요. 그 다 미래에 어떤 재산이 불려지고 오래 살라는 그런 게 다 들어있지요? 하물며 신문에 보니까 어디 서울에 있는 도장 파는 사람도 그런 걸 갖다가 ‘꼬리가 어떻게 돌아가면 이 사람은 수명이 길고 어떻게 돌아가면 짧고.’
아따, 선한 이름도 있어요. 그러니까 성은 ‘나’가고 이름은 ‘선함.’ ‘나선함’이 있어요. 없는 거 아니요. 교만한 이름도 있어요. ‘나제일.’ 건방진 이름도 있어요. 바보 같은 이름도 있어요. ‘나방심.’ 사랑스런 이름도 있어요. ‘오사랑.’ 누구든지 그 목사 이름 부르면 바보가 부를 때 ‘오사랑.’ 할머니가 불러도 영감이 불러도 ‘오사랑.’ 어째 그러냐? 어째 그리 살살 거리냐?
이름이 좋다고 해서 그 사람 성품까지 좋다는 법은 없습니다. 어떻게 까마귀 배를 따면 속이 까매요? 그 갑오징어인가? 어쨌든 오징어 겉을 보면 하얀데 배를 가르면 까만 물이 나옵니까? 이름이 아무리 좋아도 악한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이름과 정신과 마음은 완전히 딴판일 수 있다. 맞잖아요?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너희를 버릴 때’: 우리 개개인의 개체 개별적 이름이라기보다 우리 예수 믿는 기독자들의 전체적 이름. 예, 그러니까 영적 이스라엘. 우린 영적 이스라엘이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은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들. 목사님들, 이 점에 아주 신경을 써야 돼요. 목사님들마다 설교 외치는 그 사상이 있는데 ‘야, 요건 무슨 노선이구나’ 그 알아야 돼요. ‘아, 이건 생명노선인데, 이건 세상노선인데.’ 설교 안의 정신을 다 볼 줄 알아야 돼요. 예배당 크고 작고 그게 문제가 아니고, 목사가 박사네 안 박사네 그게 문제가 아니고.
‘거룩한 성도들’ 얼마나 좋습니까? 전체적인 면에서 천국백성,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아들 등. 이런 이름들이 어찌해서 악합니까? 이방인들과 안 믿는 사람들과 세상속화 된 교인들, 그들은 세상과 세상의 것을 구하면서 세상을 따라갑니다. 예, 세상 것을 구하면서 따라가는 거요. 구하는 건 따라간다. 따라가면서 ‘좀 다오’ 자꾸 그러는 거지. 참 성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을 구하고, 세상속화 된 교인들은 예수 믿는 교인들은 세상을 따라가면서 세상 것을 구한다.
예수님이 말씀 했잖아요? ‘너희들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세상을 구하지마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맞잖아요? 근데 이게 오늘날 기독인들이 성경을 읽는 건지 안 읽는 건지 세상 것을 구하고 가르치고 있는데도 몰라요. 참 희한하다. 어떻게 된 거냐? 우상숭배 안 하고 조상에게 제사 안 하고 세상 이방명절 지키지 않고, 조금 있으면 세상 설이지요? 성경에서 나왔어요? 아니에요. 조상대대로 왔던 그건 이방민족의 풍속이에요. 잔치위주로 살지 않고 그들 틈에 끼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따라 살고 그들과 같이 하나님의 심판에 불타지는 그런 일에 같이 하지 않고. 기독교인들은 이걸 알아야 돼요.
이 세상을 봤을 때 하나님이 없으면 이건 심판이 가는 거요. 문제는 그것보다도 ‘그 말하는 내 속이 먼저 바로 됐나, 안 됐나’ 이것부터 먼저 진단을 해야 돼요. 그렇지 않고 아무리 네가 옳은 말을 했어도 네 속이 벌써 글러먹었으면 너부터 심판이 들어간다. 너부터 심판이 들어간다.
우리 입장에서 세상을 구하고 취하는 그건 자동적으로 따라오게 만들고 내버려두고, 쉬운 얘기로 말씀을 드리자면 ‘네가 참 사람부터.’ 말하자면 돈이 따라오도록 만들어야지 돈 따라가게 되면 이건 심각하다. 사람 버려버린다. 일반세상도 우리가 보면 알 수 있잖아요? 돈 따라다니면 여기보다 더 많다. 그러면 저 쪽에 갈 거라 말이요. 그럼 저 쪽에서 갔다가 딴 쪽이 더 많단 말이요. 그럼 그 사람이 나중에 발붙일 곳이 있을 줄 알아요? 발붙일 곳이 없다. 사람은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참 사람 바로 만들어지자. 기독교회라고 하는 것은, 교회는 무슨 일을 하는 거냐? 주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라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로 잘 주어서 깨닫게 해서 참 사람 되자. 요게 들어가 있어요. 참 사람 만들어지는 곳은 절간인줄 알아요? 도 닦는 곳인 줄 알아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깨달음에서 되어나가는 거요. 예수 믿으면서 부자 살게 해달라고 예수는 그렇게 믿는 게 아니라고 하니까 여기는 대립이 생겨.
예수님 당신 유대종교인들이 모세가 예언한 메시야가 온다고 그랬는데 그 예언을 믿는 사람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어요. 어떤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느냐? 모세가 애굽을 지팡이로 아주 그냥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게 치리했듯이 그와 같은 모세 같은 분이 와서 로마를 그렇게 없이 할 줄 알았거든? 근데 예수님은 그게 아니라. 메시아는 죄에서 해방이다.
왜 로마의 속국이 됐느냐? 하나님의 백성이 죄를 짓게 되면 속국은 자동적으로 되는 거다. 그러니까 죄에서 해방시키는 게 먼저다. 옳은 이치적로 이걸 가르쳐 주려고 그러니까 아니란 말이요. 그들은 성경구절 가지고 자꾸 갖다 붙이면서. 이게 달라요. 속을 말하는 것과 겉을 목적으로 말하는 것과 이게 대립이에요. 의사적 대립이에요. 여기는 안 맞아요.
오늘날도 그런 현상을 볼 수가 있다. 이 성경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즉, 예수님 참 사람의 중심사상으로 만들어지며 깨닫고 가는 이런 사람들과, 충성봉사 일 열심히 해서 영광을 돌리겠다는 사람들과 여기는 차이가 생기게 마련이요. 맞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일 크게 많이 하려면 부지런히 끌어 모아야 되고 부지런히 짜야 되고 부지런히 자기 피알을 해야 돼. 그렇게 들어가 있어. 그걸 알아야 돼.
오늘날 이 시대에 기독교로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추잡하고 더러운 일들이 너무 많아요. 아예 이게 참 우리 입장에서 말이 안 되는 것. 어린애도 아니고 이게 참 미쳤다고 난 보는 거요. 기도만 해주면 교인들의 이빨이 다 금이빨로 된데요. 이게. 내일 우리 목사님들에게 좀 자랑을 시켜야지. 수원에 아마 어느 목사님 집회가 있는데 가만 보니까 이게 엄청난 광고야.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이야. 말로 다 할 수가 없어. 말로.
유대 율법사들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죽였듯이 오늘날도 옳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보혜사 성령님의 역사로서 되어지는 참 사람 운동과 정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입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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