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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6:25-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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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에배 |
6장 25절-26절.
25절: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 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배부른 자에게 화가 있다. 무슨 화라고 그럽니까? 주리는 화. 배가 부르다는 것은 만족을 말하는 겁니다. 만족. 만족을 말하기 위해서 배가 부르다. 배가 부르면 또 어떻게 돼요? 기쁘지요? 춘곤증이 있는 사람은 잠이 오는 거고. 그거 참 하나님께서 일반 계시적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그렇게 맞도록 해놨는지? 배가 부르다는 것은 만족을 말하는 것.
모든 면에서 만족은 모든 면에서 어떻다는 거요? 금방 말했는데? 모든 면에서 만족은 모든 면에서 배가 부르다 그 말이요. 사업이 잘 되어서 만족, 건강에 만족, 자식들 돈 잘 벌어 만족, 재산 많아 만족,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뭐든지 할 수 있으니 만족이지요? 일반적으로 맞잖아요? 만족 안 해요? 일반차원에서. 일반차원에서도 돈 가지고 제 멋대로 다 사고 먹고 입고 갈 데 다 가는데 그럼 만족하지 않아요? 어떻게 할 거요? 그거 만족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거요? 세상사람은 그 만족으로 사는데 세상사람들은 그렇게 하고도 만족이 없다면 어떻게 할 거요? 어떻게 해야 돼요? 죽는 수밖에 없지. 맞잖아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지혜를 가지고 일반 이치적으로도 볼 줄 알고, 그 속을 파보면 영적 계시가 들어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 만족으로는 안 되는 거지요. 그 만족을 누리기 위해서 시간 가지요, 젊음 가지요, 세월 가지요. 그래놓은 다음에는 하나님이 가만 계시는가? 아니지요. 책임추궁이 들어오지요. 물질 시간 건강 책임 추궁이 다 들어오는 거지요. 그걸 알아야 된다.
세상적으로 보면 세상에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만족이라는 그 말이지요. 그만하면 성공한 삶이고 소원성취를 한 것이지요. 세상은 세상사람들은 그렇게 보는 거지요? 만족은 다 취했는데 한 가지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 만족으로 안 죽고 영원히 오래 오래 사는 것. 맞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살다가도 죽고, 그런 소원 목적을 품었다가도 죽고, 그것 때문에 죽고 불행해지고.
그런데 ‘이제는 주리리로다’ 그랬거든요? 우리가 세상사람들만 그렇게 보지 말고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그와 같은 소원 목적을 가지고 목회하는 목사들도 많고 교인들도 그런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주리리로다.’ 왜 주리느냐? 만족이었는데 배가 다 꺼져버렸어. 배가 고파. 다 빼앗겼다는 말이 되는 겁니다. 누가 다 빼앗아갔느냐?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준 것으로 착각을 하면서 다 빼앗아가는 것은 마귀가 빼앗아 갔느냐, 하나님이 빼앗아 갔느냐? 보통 보면 좋은 것 주시는 것은 하나님 주셨다고 그러고 나쁜 것은 마귀가 줬다고 그러니 그런 식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건 이방종교적인 사상이다. 미신적 사상이다.
예를 들어서 교회 오다가 차 사고가 났습니다. 미신적으로 생각하면 어떤 해석이 나올까요? ‘아, 하나님이 구태여 먼 교회 가지 말라고 하시는구나’ 그런 해석이 되는 거지요? 맞잖아요? 그런 해석으로 하는 목사들도 많아. 대전에서도 그랬어요. 공부하러 오는 목사님들 중에. 차들이 워낙 많으니까 자기 잘못이 아닌 남의 잘못으로 자기가 사고를 당했단 말이요. 그러니까 이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그렇게 되니까 ‘아, 하나님이 공부하러 가지 말라고 하나보다.’ 무슨 해석이 그런 해석이 있어? 그러면 어느 교인이 집 가까운 데로 나가다가 얼음판에 미끄러졌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어디로 가라는 거요? ‘가까운 데 가지 말고 멀리 가거라. 멀리.’ 참 그게 이방종교적 사상이란 말이요. 다른 말로 하면 미신이야. 미신 식으로 믿는다.
미신 식으로 믿는 거 없어요? 고쳐야 돼요. 근본적으로 고쳐야 돼요. 사고방식을 고쳐야 돼요. 그런 식이 돼버리면 성경해석이 예를 들자면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밤이 맞도록 기도했어요.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고 기도했는데 밤새도록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어. 해가 동쪽에서 쓱 솟아오르는 때까지 응답이 없어. 그러니까 ‘에라, 모르겠다.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죽이든지 살리든지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데 이제 미신 식으로 해석을 하면 예수님이 기도를 그렇게 했는데 땀이 핏방울 솟듯이 이렇게 했는데 응답이 없었어. 그러니까 십자가에 죽으라 그 말 아닙니까? 응답이 없었으니까? 맞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믿음이 있는 거요, 없는 거요? 돌아가기를 어떻게 돌아간 거요? 믿음이 있어요, 없어요? 믿음 없는 예수 왜 믿어요? 말도 되지 않는 소리지. 이게.
예수 덕으로 자기가 먹고 마시고 살면서 예수님께 기도해도 응답이 없었어. 왜 믿음 없는 예수 덕으로 먹고 살아. 이게 참말로 미쳤어. 미친 신앙 아니요? 그거? 이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그 분을 잘 알지도 못하고. 계시신앙사상 뜻 깊은 것을 모르면 사람이 이상한 말을 하는 거요. 이단자 거짓 종들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이치가 안 맞다 그 말이요. 전부 세상 쪽으로.
그리고 이방종교적 사상은 신이 많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둘이 되는, 신이 둘이 되는 셈이 돼버려. 하나는 선신 하나는 악신. 그러니까 하나님은 선신 마귀는 악신. 그러면 싸움이 붙으면 누가 이기겠어요? 선한 사람하고 악한 사람하고 싸움 붙으면 누가 이겨요? 선한 사람이 이깁니까, 악한 사람이 이깁니까? 악한 사람이 이기지. 악한 사람이 뭐 선한 것을 알 것 같으면 ‘아, 당신이 이겼습니다’ 그렇게 하지. 근데 악한 것은 그걸 몰라. 말이 이게 엄청나게 돌아가는 거요.
사실 교회에서 우리 목사님들 가르치는 입장에서 말 한 마디가 이게 이치적으로 따져서 뱅뱅 돌아가면 하나도 안 맞을 수가 있어요. 그런 신앙사상은 하나님의 창조자의 절대 주권적 역사를 잘 안 믿습니다. 그러니까 은근히 의심이 들어있다 그 말이요. 은근히 의심이 들어있어. 안 믿는 거.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안 믿는 거. 우리의 이룰구원을 위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게 안 믿어진다 그 말이요. 안 믿어진다.
모든 면에서 만족하고 배불렀는데 누가 다 빼앗아 갔느냐? 빼앗아 갈 때는 준 자가 빼앗아 가기가 쉽잖아요? 준 자가. 안 그래요? 안 주었으면 빼앗아 갈 권리가 없어요. 자기가 주지도 않았는데 빼앗아 갔다면 요건 무슨 놈이라? 도둑놈이지. 그건. 맞잖아요? 그래, 줘놓고 빼앗아갔다 그럴 때에 빼앗김을 받는 자가 하는 말이 ‘저 도둑놈 잡아라’ 그럽니까, ‘왜 줘놓고 빼앗아 가느냐’ 그럽니까? 그런데 주지도 않아놓고 빼앗아 가면 뭐라 그래요? 빼앗긴 자가 ‘저 도둑놈 잡아라’ 그렇게 말이 되는 거지.
자기가 빼앗긴 그것이 원래 누구의 것이었느냐? 자기가 뭐 어머니 태속에서 갖고 나온 거 있어요? 없어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기 몸까지 주님의 것.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지.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고 하는 것은 이룰구원으로 너 잘 만들어져라. 하나님의 온전의 사람으로 잘 만들어지는 이것이 주를 위해서 사는 거다. 그러니까 주를 위해서 살면 누구에게 유익이요? 자기에게 유익이지. 하늘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 근데 이게 믿어지느냐? 이게 안 믿어진다. 안 믿어져.
인간 자기가 창조한 것이 있느냐? 무에서 유로 창조한 것이 있느냐? 없어요.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것도 파괴를 하고 있어. 산에서 참 산바람 맞고 신선한 공기 마시고 공해 없는 이런 공기 마시고 한 아름다운 들꽃을 집에 갖다 심으면 어떻게 그만큼 아름답습니까? 내가 갖다 많이 심어봤는데 죽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심어놓은 그 자리가 얼마나 적절한 곳인지 집에 갖다 심으면 죽더라고요. 우리 집에는 죄인들만 있어가지고 꽃나무만 갖다 이렇게 놓으면 그 날로 죽어. 슬슬 죽어 들어가. 하나도 사는 게 없어. 근데 의인의 집에는 집에 꽃을 갖다놔도 잘 살아요. 허허.
모두는 창조주 하나님의 것. 주시면 우리가 받는 것이고 가져가면 가져가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에게 잠깐 맡겨졌을 때에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사용하다가 다 두고 가게 됩니다. 두고 갈 때는 더 나쁜 곳으로 갑니까, 더 좋은 곳으로 갑니까? ‘두고 오너라’ 하는 그런 의미는, ‘죽을 때 다 두고 오너라.’ 두고 가지 가져가는 거 봤어요? 나는 한 번도 못 봤어요.
생각이 나네. 그 옛날사람들은 죽으면 관속에 그것도 요즘 나오는 돈을 집어넣으면 얼마나 좋겠어. 근데 아주 옛날 돈, 쓰지도 못하는 옛날 돈을 그저 집어넣는다는 게 참 아주 약아빠졌어. 그거. 안 그래요? 근데 요즘은 미신이 슬슬 없어지니까 아주 시골은 또 모르겠어도, 시골도 다 약아빠졌어요. 그 명절 때 되면 허수아비 속에 돈 넣어가지고 빌고 하는 게 있었어요. 어릴 때 허수아비만 만나면 복장을 해부해요. 간혹 가다 돈이 나온다. 그걸 노리느라고. 아마 그 조상은 차비가 없어서 못 갔을 거야. 아직까지 헤매고 있을 거야.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주신 것은 사용해라 그 말이지요. 사용하다가 두고 가게 된다. 예, ‘두고 갈 때는 그거 놓고 오너라. 그건 더러워서 안 된다. 신령세계는 네 몸만 갖고 들어오라.’ 말하자면. 쉬운 말로 하면. 그런데 빼앗겼다 하게 되면 영원히 자신의 것으로 될 것처럼 생각을 한 게 아닌가? 또 자기 욕심만 차렸다는 의미가 아닌가? 몸 안과 밖으로 물질적인 요소는 영원히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맞아요? 자기 것 있어요? 하나님의 것으로 자기는 관리하는 것밖에 없어. 그 관리차원에서 잘해야지.
그런데 어디 그래요? 사람이? 안 믿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보편적으로 자기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자기 몸까지 하나님의 것입니다. 말은 그래도 쓰임 쓰임에 있어서 욕심 부리고 쌓아놓고 안 주려고 그러고 없다고 그러고 쓸 줄도 모르고. 그 인간이 고약해서 쓰겠어요? 그거? 물질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 자타의 구원성장을 위해서 부지런히 할용을 하는 것. 그러면 자기의 범위가 자꾸 넓어진다. 자기의 활동도 넓어지고. 이것을 우습게 여기고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성도들에게 환난 핍박을 주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결국은 다 빼앗기게 되는데 그래서 주리게 된다 그 말이요. 자기는 흉년이 든다 그 말이요.
‘웃는 자여 이제 애통하며 울 것이다’: 왜 웃다가 울지요? 재앙을 만났으니까 그렇다 그 말이요. 어제는 웃었는데 대 만족이었는데, 세상성적 요소로서 종교적인 소유적 대 만족 요소로서 웃었는데 오늘은 재앙을 만났어. 그러니까 운다 그 말이요. 이제. 재앙을 만났으면 울음이 나오고 통곡이 나오지 웃어질 리가 없지요. 맞잖아요?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사는 자를 ‘시대적인 정신에 뒤떨어졌다느니’ 하며 선지자를 비꼬고 환난 핍박을 주고 박해를 주면서 재미있다고 손뼉을 치고 웃는 것은 얼마 안 가서 눈물바다로 변하게 돼있다.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예루살렘이 불바다가 된 것과, 유대인들이 부모형제 다 흩어져서 독일군에 의해서 가스실에서 4백만 명 6백만 명이 죽을 때에 주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을까요? 그 말씀이 생각이 났을까요? 났는지 안 났는지 모르겠지. 아마 안 났을 것 같아요. 그런 것처럼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자기가 ‘이게 하나님의 재앙이로구나’ 하는 이것을 느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올라와 집니까? 생각을 하고 사느냐 그 말이요.
하만의 계략과 그의 잔치와 그의 동료들이 날이 새기도 전에 상황이 바꿔져 버렸습니다. 하만, 에스더서에 나오는 하만. 날이 새기 전에 상황이 180도로 바꿔졌어. 비진리 불의의 재물로 자기의 웃음과 부요로 삼는 자, 다른 복음, ‘세상 축복 축복’ 하는 복으로 부를 축척해서 누리는 자, 선지사도들과 진리 옳은 종들을 환난 핍박을 주고 무시하던 자, 비협조 자, 헐뜯던 자, 불탈 것으로 만족하여 그것이 참 행복인양 위로를 삼고 웃던 자들 등등 역사의 주권자가 상황을 바꿔놓으면 애통하고 통곡하며 울게 되는데 꼼짝없이 당하게 된다. 느낍니까? 아무렇지도 않지요?
자기 것인 줄 알았는데 다 빼앗겼으니 웃을 일은 없고, 회개의 기회를 다 놓쳤으니 웃을 일은 없고, 자기 인생을 되돌릴 수 없으니 웃을 일은 없고, 시간은 다 지나갔으니 웃을 일은 없고, 빼앗길 데로 다 빼앗겼으니 아무것도 없으니 웃을 일은 없습니다. 그 어떻게 웃음이 나오겠어요? 땅의 것을 방편 삼아 모두 하늘의 것으로 심고 가꾸고 연관 짓고 사는 것이 참 행복이고 미래적으로 영원히 웃을 일입니다.
하늘의 것, 참 사람은 자기에게 없어지지 아니할 것으로 자꾸 생기지만 세상 거짓된 사람은 생기는 것 같으나 사실은 자꾸 없어지는 겁니다. 마음도 살아나는 것이 없고 정신도 살아나는 것이 없고 전부는 하나님 앞에 죽고 사망적인 것밖에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거는 다 헛것이요 헛것이란 순간이라 그 말이요. 순간. 임시적이요. 눈에 보이는 것만 다인 줄 알고 산다는 것은 참 미련한 사람이다.
26절: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다’: 칭찬하는데 왜 화가 있어?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렇게 했다? 뭘 어떻게 했다는 거요? 거짓 선지자들에게 칭찬을? 모든 사람이 칭찬한다면 이치를 잘 생각을 해요. 모든 사람이 칭찬한다면 모든 사람의 비위에 맞추었다는 말이 되지요. 맞지요? 비위를 다 맞춰주니까 뭐 남녀노소 빈부귀천 안 믿는 사람까지 도둑놈까지 하여튼 다 아주 맞춰줬다. 굉장히 머리가 영리하고 똑똑하지요? 안 그래요? 다 칭찬을 하는데 무슨 원수가 어디 있겠으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마치 창녀가 돈 때문에 이 남자 저 남자 마음을 맞추어 주었듯이. 돈 때문에. 그래야 창녀는 돈을 벌지. 안 그래요? 안 그러면 창녀 짓을 말든지.
정신 바짝 차려. 이 안에는 또 뜻이 무한히 들어있으니까. 모든 사람이 안 믿는 이방우상종교까지 미신을 믿는 모든 사람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너희들을 칭찬한다면 이는 벌써 무슨 복음이 아닙니까? 천국복음입니까, 땅의 복음입니까? 이치 안 따질 거요? 이방 불신자들뿐만 아니고 이방종교인들까지 너희들을 칭찬한다면 이게 천국복음으로 살았다는 거요, 땅의 복음으로 살았다는 거요? 땅의 복음.
또 한 편 무엇이 없어졌습니까? 무엇이 없어졌는지 한참 생각해야 돼요? 구별이 없어졌다. 기준이 없어졌다 그 말이요. 기준이 없어져 버렸어. 다시 말씀드리면 성령의 역사는 떠났다 그 말이요. 그렇게 되면 하나님 말씀기준이 어디 있겠으며 사람이 하나님의 온전의 사람으로 깨달아지는 것은 어디 있겠느냐? 없다. 없다. 절대 정확한 하나님의 공의가 어디 있으며 참 사람이 되는 기준이 어디 있겠느냐? 그러니까 하나님의 형벌밖에 없다 그 말이요. 오늘날도 그러하다고 보여집니다.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그렇게 칭찬을 했다고 그랬지요? 그리고 멸망을 받았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거짓 선지자들 또는 조상들처럼 되라는 거요, 되지 말라는 거요? 자기 집이나 자기 부모형제나 거짓 것으로, 하나님 앞이지. 아무리 세상 앞에 바로 산다고 해도 선악과 따먹은 타락적 저주받은 그 지식으로 살면 이건 하나님 앞에 재앙입니다. 재앙의 심판의 사람으로 들어가 있는 거요. 그러니까 그렇게 살다가 조상들이 자기 집안형제들이 망한 것을 보았으면 너도 그렇게 따라가야 되겠냐 그 말이요. 안 된다. 또 망하려고?
그렇게 안 되려면 말로만 ‘잘 믿는다. 잘 믿어라. 기도 열심히 해라. 충성봉사 해라’ 하며 애만 쓴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진리,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이 하나님의 질적 본질적 존귀적 성품적 시간적 장소적 성격적 성질적 성분적으로 적중성을 가지고 살게 되면 참과 거짓은 자동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큰 것 찾고 덩어리 찾고 아름다운 거 찾고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으로 찾는다면 이는 벌써 거짓이라고 하는 것이 네 마음에 자리를 잡은 거다. 교회를 찾아갈 때도 네 눈에 보암직 먹음직 탐스럽게 보이는 것은 그건 네 기준이니까 너는 그 마음속에 거짓이라고 하는 것이 자리를 잡고 있다.
옳은 신앙이면 진리이치를 잘 따지지요? 자기 속에서 잘 따진단 말이요. 과거에 자기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어왔던 잘 믿는 사람은 좋게 보면 안에 구별력이 들어있어. 그런데 성경도 모르고 계시도 모르는 사람이 교회 안에서 시간적으로 활동적으로 계급을 쌓은 자들은 그게 그만 기준이 돼가지고 따지기 시작한단 말이요. 그러니까 참과 거짓은 이단과 거짓은 비진리는 말씀에서 이게 판가름 되는 건데 많은 사람들이 우리교회 와서 보고 ‘어, 예배순서가 없네. 예배 순서가 없어서 이상하다. 이거 이단이 아닌가? 끝마칠 때도 주기도문으로 안 하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가 있는데 왜 그 기도 안 외울까?’
예수님이 그 기도 외우라고 준 거요, 기도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라고 준 거요? 그 기도의 사람으로 질적으로 만들어졌으면 그 사람은 그 기도 안 외워도 돼. 만들어지라고 그 기도 가르쳐 줬거든요? 근데 외우기는 외우는데 그 안에 들어있는 뜻을 몰라. 사람이 안 돼. 예배시간 마칠 때만 외우지 딴 때는 안 외워. 그 뭐요? 어떤 사람이 된 거요? 우리교회는 예배식순이 없어요. 주보도 없지만. 뭐 사람은 다 예수는 아니지만 예수님이 우물가의 창녀하고 예배를 같이 봤단 말이요. 그럼 언제 여자가 성경책 들고 오고 장로기도 있었고 찬양대 있었나요? 물 길러 와서 대화 몇 분 한 것뿐이지. 예수님이 그랬지.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곧 이 때라.’ 이 때. 그 때 우물가에지요. 점심 때.
예, 진정한 예배가 뭐요? 주님을 만났단 말이요. ‘그냥 쳐다보고 만났다’ 그게 아니고 인격적으로 만난 바가 돼가지고 그 다음에 보면 동네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오는 겁니까? 여자가 가서 전도를 하는 거라. 시간적으로 짧지만 그 속에 합축 되어 있는 영양덩어리는 사람이 바꿔졌단 말이요. 주님께로 인도한 그 창녀가 또 창녀노릇을 했을까요?
그 때는 몸 창녀였지만 지금은 정신 사상적 창녀가 정신창녀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예수님을 내버리고 세상하고 짝짜꿍하고. 그 바람피운 거요. 눈도 끔쩍도 안 해요. 눈에 안 보여. 안 보이니 이게 실감이 안 나는 거요. 눈에 보이는 면에다가 냅다 내려치면 이제 뭐 꿈틀하지. 이제. 멸망당할 자는 꿈들도 안 해요 .예수 믿으면서도 회개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꾸 치거든. 그러니까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해 주십시오.’ 잘 알지도 못하고 ‘용서해 주십시오’ 그래도 자꾸 치거든. ‘뭘 잘못했기에 용서해달라고 그러냐?’ ‘모르겠습니다.’ 그 깨달으라고 자꾸 하는 건데 얻어맞다가 죽는 수밖에 없는 거요.
참 진짜는 진리는 영원히 죽음의 선 너머 신령천국에까지 들어가서 내가 가져가서 효력을 볼 수 있는 것. 이거 참 진짜요. 참은 참 사람은 불에 타지 않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불에 안 탔지요? 참 신앙 아니요? 그 순간을 보여주지요? 변동되지 않고 바람에 불려가지 않고 이런 저런 소문 또는 이런 저런 유행바람에 불려 타지 않고.
이 여자들, 특히 아가씨들 시대적 유행바람을 어떻게 잘 타는지? 아, 여름이라도 자기가 추우면 외투를 입어야지. 겨울이라도 더우면 외투 안 입으면 되지. 감기 들지 말고. 남이 짧은 치마 입으니까 자기도. 우리 애들한테 물으니까 여자들 옷이 전부 다 아가씨들 옷이 전부 그렇데요. 옷 집 앞에 보면 인형다리만 긴 거. 마네킹? 마네킹 그거 내가 딱 재도 한 뼘밖에 안 돼. 이게. 어떻게 여자들 히프는 남자들 히프보다 크지요? 근데 이게 남자가 입어도 다리 하나가 안 들어가는 그걸 어떻게 입고 다니느냔 말이요. 그러니까 이게 히프 쪽 앞 쪽, 더더군다나 청바지 같으면 어떻게 되겠어? 어떻게 그런 걸 입냐? 그러니까 저 번에도 말씀 드렸지만 살을 쑤셔 넣어야 돼요.
하나님께서, 이게 성경에 있습니까? 쟁쟁하는 소리. 긴 뾰족구두 신는 것. 쟁쟁하는 소리. 또 무슨 소리가 있어? 몰라요? 만날 ‘복 복’만 읽었나보다. 어떻게? 하나님이 가만 안 둔다고 그랬어요. 아가씨들도 좀 잘 읽어보라고요. 특히 말이 나왔으니 교회 올 때는 절대로 가슴 파인 옷 입지 말아요. 넓으면 이렇게 핀을 꽂아. 넥타이를 매든지. 남에게 왜 범죄요소를 제공해? 마귀가 활동하는 세상인데.
변색되지 않고 변질되지 않고 요동이나 진동되지 않고 신령천국에까지 영원히 가는 것. 하나님과 천국과 내가 성격적으로나 성질적으로나 성분적으로나 단일이 되는 것. 자기가 죄는 안 지었는데 어느 이게 모임이나 환경적 장소적으로 되면 자기가 옷 입고 간 것이 죄는 안 지었는데 입고 간 것이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까? 없어요? 있습니까? 사람이라는 게 참 복잡해요. 교회라고 하는 이 모임이 환경적 장소의 어떤 성격이다.
예. 안 믿는 사람들 세계는 한 번 봐 봐요. 그거? 사람의 마음에서 자동적으로 품위라든지 옷 입는 거하며 그런 것이 절대는 아니지만 이렇게 반영이 돼 나와요. 반영. 교회 올 때 슬리퍼 질질 끌고, 그 좋은 값비싼 신발을 왜 또 구겨 신고. 구겨 신은 사람 이따가 와요. 내가 슬리퍼처럼 이렇게 만들어줄게. 그 구겨진 거 펴서 걸으면 이게 발뒤꿈치가 이상해져 버리는 거요. 이게 못 쓰게 돼. 신발이.
하나님은 진리이시고 그 성품을 내가 가지면 진리의 사람이 되는 거고, 행동으로 나오면 진실이 되는 거고, 가르치면 천국복음이 되는 거고, 만들어지면 하나님의 온전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아들들이고 신령천국을 상속을 받는 것이다. 이걸 구원이라고 하는데 이 구원을 위해서 우리를 인간을 만들었다 그 말이요. 거짓은 이와 반대로 모두 땅에 속하는 것, 변질 변색 요동 진동 썩고 불에 타고 바람에 날려가는 것. 그 요소로 된 부귀 명예 존귀 영광 행복을 취하라고 거짓 종들은 가르치고 있다. 성경을 가지고 그 목적으로 가르친다고 하면 이것은 백 프로 거짓 종들의 가르침이다.
이런 거짓된 자들을 조상들이 좋아했고 그들의 세상 가르침을 따라갔단 말이요. 그러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요. 따라가다가 모두 멸망을 당했잖아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고. 지금도 이 마지막 때 거짓된 종들과 모든 교인들이 타락된 인간 그 기준에 맞추어져 있어. 세상 종교적 기준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교회들이 가만 보면. 이방 불신자들과 이방종교와 모든 이단과 거짓과 그 신앙의 질들이 분명한 구별이 없고 분별도 없고 모두 혼합이 돼 있다.
교회가 여러 가지 정신의 사상으로 혼합이 돼 있으면 이건 멸망을 받게 됩니다. 그걸 아셔야 된다. 자기 속에서 분명한 구별 분별이 안 되고 천국의 것 땅의 것 신령한 것 영원한 것 임시의 것 이런 등등 다 분별이 안 되면 자기 속에는 이게 신앙이라고 해도 잘 믿는다 해도 그 속에는 여기는 혼합이 돼 있다. 그렇게 믿으면 안 된다.
혼합되면 혼합이 돼 있으니까 어떻게 되겠어요? 사람분별이 되겠어요? 말에 행동에 분별이 돼 있겠어요? 뭐 하나 똑바로 돼 있겠어요? 영의 눈을 가지고 보면 사람이 온전치를 못해요. 자기 기분대로 놀려고 그럴 거고. 못 쓴다. 사람이 못 써져. 그러니까 예수 믿으려면 성경말씀을 잘 상고를 하고 바로 믿어야지.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입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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