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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6:34-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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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36절: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일반 자연은총도 베풀어 주셨고. 우로지택으로 곡식 나게 해서 먹게 하는 이런 거, 다 생활할 수 있는 것. 우리가 그 모든 은혜를 받고 있으면서도 악을 행하고 있는 때에도 여전히 일반 자연은총으로 은혜로 자비하셨고 인자했습니다. 도둑놈들도 밥 먹지요? 왜 먹냐? 우리 입장에서 보면 깨닫게 하기 위해서 먹이고 있다 그 말이요.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럼 그들 입장에서는 ‘아, 요거 먹고 더 도둑질하라고’ 이런 생각으로 들어가 있겠지.
예수님께서도 고난을 주고 환난과 핍박을 주는 그런 자들에게 인자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만능의 능력자로서 당신이 우리의 구원만 아니란다면 만능의 능력가지고 그거 뭐 홀랑 뒤집어놓을 수도 있지요. 당신이 십자가에 못박혀지는 게 아니라 만능의 능력을 가지고 망치를 들고 못박으려고 하는 로마군인들이 자기 손에다 자기가 못을 박을 수 있게 할 수도 있잖아요. 미치게 만들면 미쳐지는 거지 뭘.
미친 사람 많이 있지요? 워낙 답답하면 자기 가슴을 치는 사람 있고, 워낙 근지러우면 자기 몸에 피가 막 나는데도 긁는 사람 있지요? 자기 분을 자기가 못 이겨서 멀리서 뛰어가서 벽을 보고 자기 머리를 떠받아버리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까? 누구 머리만 아프지요? 그게 다 미친 거요. 그거 미친 거요. 그 순간은 미친 거요. 떠받다가 뇌에 무슨 핏줄이나 무슨 감각적인 어떤 그런 선이 하나 딱 끊어지면 그 길로 미쳐버리는 거요. 그런 사람들 잘 간수해 놨다가 경상도 청도 소싸움에 보내면 돼. 청도 알지요? 경상도 청도. 해마다 소싸움이 열려. 안 그러면 뭐요? 서양사람들 막 쥐어박고 쾅쾅하고 치는 거 뭐요? 레슬링? 레슬링으로 보내든지.
인자하시고 자비하시다 함은 악을 행하고 망할 짓을 해도 그냥 보고만 계시고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가만히 계시는 것이 인자하시고 자비하심인가? 뭐 내가 도둑질하고 못되게 굴어도 하나님은 가만있더라. 그래서 기도할 때마다 ‘참 좋으신 하나님’ 그러지요? 그게 참 좋으신 하나님인가요? 옆에서 들을 때에 이게 말을 둘러버리면 참 멍청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하나님이라는 그런 식으로 들어가 있는 거지. 악을 행하는 걸 가만히 보고 계시는 것 같아도 하나님 당신은 그 자에게 무슨 계획을 가지시고 영원 궁극적 구원을 위해서 영원히 존귀영광자로 만들어지기까지 바라고 기다리면서 역사를 하고 계시는 그것이 바로 인자하심이고 자비하심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요? 잘못한다고 그 날로 팍 눌러버리면 떡이 돼도 될 터인데 그걸 그냥 가만히 버려두는 게 아니고 여러 가지 차원을 사건 환경 차원을 사람을 통해서 일을 통해서 깨닫도록 자꾸 이렇게 돼지몰이 하는 것처럼 바른 길을 가도록 자꾸 이렇게 하는 그걸 좀 생각을 해야 된다. 근데 생각을 못하고 생각이 짧은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그저 그거.
그 우리 학생들 청년들, 노래를 들어도 요새 뭐요? 난 가만히 들어보니까 이게 아주 즉흥적이야. 즉흥적인 것은 생각을 할 수 없는 거요. 무슨 말이냐? 생각이 깊이 들어가는 게 아니요. 즉흥적은 그냥 그대로 아주 얕다 그 말이요. 사람이 생각을 해야지. 생각을 해야 깊이가 있고 그런 건데 그런데 제가 말씀을 드렸지만 이게 옛날노래라든지, 이러면 또 옛날노래 부르라는 소리처럼 들릴라? 가요 있지요? 보리밭이라든지 또 뭐요? 가곡 그 시거든. 가만 보면 상당히 깊이가 있어요. 시로써 이렇게 곡을 집어넣은 것도 상당히 깊이가 있어요. 일반이치도 들어있고 자연계시로도 그게 들어있어요. 그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노래하는 거지만 시로써 곡을 붙여서 노래하는 거지만 가만히 들으면 맞는 거예요. 일반이치로도 맞고 일반계시로도 맞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된다. 일반적으로도 깊이가 있어야지. 그 마음들이 약해가지고 뭐가 될 거냐? 이거.
그 성경에도 시가 있습니까? 시에 노래 많이 있잖아요? 얼마나 그 깊습니까? 근데 아무리 성경을 들여다봐도 오늘날 청년들이 노래를 귀에 꽂아듣는 것처럼 그런 얕은 것은 별로 없어. 별로 없는 게 아니라 없어. 그러니까 이건 발광이요. 미쳐서 발광하는 거. 자기 속마음을 채우지 못해가지고 발광하는 식이야. 발광. 그러니까 발광하는 그 노래에 무슨 영감성이 감화성이 이게 돌겠느냐 그 말이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히 존귀영광자로 만들어 주시려고 이 소원을 가지신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답게 주님처럼 그 마음을 가질 수는 없을까? 사람 되어 오셨다고 하는 것은 ‘너도 사람이니 나처럼 할 수 있다’고 하는 이것이 전제가 들어가 있어요. 그래야 예수님과 친해질 수가 있지.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인자하심과 자비를 충분히 나타내셨습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자비를 나타내려면 우리 속에 아버지의 자비로운 그 속성 그 성품이 들어있어야 아버지의 자비가 나타날 수가 있지 그 속성과 성품이 안 들어있으면 나타날 수가 없다. 그래서 아버지의 속성을 우리가 가져야 하는 겁니다. 예수 믿으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지. 안 그래요? 예배순서만 지키고 가는 거냐 그 말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는 충만한 가운데서 나오는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그 마음을 가지면 예, 마음이 넓고 따뜻하고 지혜롭고 분별력은 칼날 같고 일하는 데는 능력 있고 지혜롭고 멀리 보고 이런 게 다 들어 있잖아요. 아, 예수 믿으면서 그런 마음을 닮아야지 나이는 많은데 저게 몇 살짜리냐? 나이는 많이 먹었는데 지능이 몇 살짜리냐? 청년들도 나이 먹어가고 시집장가 가면 지능지수가 올라가고 인격과 그 성품이 넓어지고 깊어야 되겠는데 저게 몇 살짜리냐? 저거 서너 살짜리냐? 그거 어디 쓰겠어요? 그거?
엄마가 되어 가면 정신 사상 마음이 인격적으로 풍성해야 되겠는데 그냥 그거 뭐 아주 대쪽같이 바늘 끝처럼 콕콕 쑤시고, 그거 뭐 얼마 못가서 뒤집어졌다 엎어졌다 이러면 그 뱃속에서 애기가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 엄마 참 좋다’ 그러겠어요, ‘참말로 더럽다’ 그러겠어요? 애기가 뱃속에서 우는 소리 들어봤어요? 발만 차는 거만 봤나? 애기가 기분이 되게 나쁘면 뱃속에서 싹 오그라져버려요. 엄마들은 잘 알 거야. 맞지요? 멍청한 엄마들은 모를 거야. 아이고.
37절: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비판하면 정죄하게 되고 정죄하면 이미 용서가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또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못 받습니다. 용서받는 마음은 편안해요. 상대를 위한 기도가 나오고. 용서받지 못한 마음은 자기 속에서 달팽이처럼 자꾸 틀어져요. 그런 때 많이 있지요? 생각을 안 하려고 하면 또 속에서 그 생각이 자꾸 뺑뺑 돌고 안 하려면 또 돌고, 잠자려면 또 그게 자꾸 돌아서 머리로 올라오니까 자꾸 생각이 나니까 잠을 못 자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용서 못 받은 거요. 못 받은 증거라. 바꾸어 말하면 비판치 않으면 정죄가 안 될 것이고, 정죄치 않으면 용서가 될 것이고. 따라서 많은 은혜를 받을 것이다 그 말이요.
누구든지 남에게 비판받는다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맞지요? 그런데 왜 자기는 남을 그렇게 몰아세우고 비판을 하고 정죄를 잘 할까? 우리 모두 자기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고 그러면서 왜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그런 마음이 있을까? 깎아내리고 인신공격을 하고 정죄를 하고 이렇게 되면 고쳐지지 못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는 없습니다. 자기에게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는 없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좀 더 근본적으로 한 번 올라가 봅시다. ‘이 생각을 해야지’ 말만 그렇게 해놓으면 자칫 잘못하면 일반도덕성이 또 되고 말아. 첫째는 선악과 먹고 영은 죽었고 저주받고 타락된 그 지식의 기준으로 비판하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먹지 말라는 선악과 따먹고 하는 비판. 그러니까 자기 눈에 보암직 먹음직 탐스러운 것. 자기 눈에 보고 귀로 듣고 자기 기준으로 하는 비판이 있다 그 말이요. 쉽게 말하면. 안 믿는 사람 비판을 얼른 생각하면 돼요. 자기 비판은 나중 생각해야 되고.
그 다음에 이제 두 번째는 생명과 먹고 영생으로 영이 살아있는 영원 궁극적 구원을 염두에 두고 깨닫게 해주는 비판이 있다. 생명과 먹고 나온 비판과 선악과 먹고 나온 비판. 선악과 먹은 지식의 비판은, 비판도 뭐 지식이 있어야지 지식도 없으면 무턱대고 할 거냐 그 말이요. 그건 안 되지요. 선악과 먹은 지식의 비판은 보암직 먹음직 탐스럽게 보이는 인간 주관적에서 나오는 비판.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중심이고 저주받고 타락된 사망적인 비판입니다. 그러니까 이 지식의 비판은 사람이 온전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견적 현상적인 것에 대해서 즉 사업자랑 사건 존재 외모 모양 행동 생각 등등 시시비비하는 것이라서 사람이 바로 서지 못합니다.
타락된 이후부터 세상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하나님처럼 온전케 되는 지식은 없습니다. 타락 후 없어요. 타락된 세상은 또 그런 것을 몰라요. 사람 바로 서는 지식을 몰라요. 세상은. 그러니까 ‘공부 많이 해서 돈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살자’ 그것밖에 몰라요. 맞지요?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차원을 알아야 자기가 고통을 덜 받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 편안하게 살 수가 있어요.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 편하게 살 수가 있어요. 근데 사람을 모르면 가난하면 가난하다고 싸우고 고통이고, 부자가 돼서 또 이렇게 너무 잘 먹어서 병이 들면 병원 쫓아다니느라고 또 이게 고통이고.
그 다음에 타락된 세상의 지식과 도덕성과 오각과 오감성을 가지고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이러쿵저러쿵 비판할 수 없는 것이고, 또 성경 안의 누구의 말이든 절대로 비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예, 쉬운 예를 들어서 안 믿는 사람은 성경 속에 있는 그 어떤 행동 활동이든 사람이든 비판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 차원이 그래요. 질이 그렇고. 비판 판단할 수 있는 그런 자기의 지식이 아닌 거라고요. 하나님 앞에 타락되고 저주받은 사망적인 지식이기 때문에 아무리 판단 비판해도 이건 전부 다 죽은 거다. 죽은 거. 오히려 교회를 비판하고 참 진리의 종들과 성도들을 비판할 때에 하나님 앞에 그들은 치임을 당한다. 그걸 알아라. 치임을 당하게 돼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자기가 바로 서지 못한 상태에서 또 그 말만 듣고 ‘너 나 건들면 저주 받는다’ 그래놓으면 그 말이 우스꽝스럽지요? 하나님 앞에 밉보이고 있는 사람인데 안 믿는 사람이 핍박한다고 저주를 하면 그 저주가 임하겠냐?
그 다음에 세상 속화되고 거짓된 옛사람 부패성적인 하나의 종교적인 지식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본질적이며 영적 신령적인 진리생명의 말씀을 비판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 타락된 선악과 따먹고 나온 그 죽은 지식가지고 비판할 수 없고, 다른 사람도 맨 마찬가지요.
그 다음에 이 기독교 안에서 종교적인 지식은 예수 안 믿는 사람 기준하고 같아요. 그러니까 그런 지식가지고 비판 할 수가 없다. 저는 많이 들어요. 그런 교회 목사들이 우리교회를 비판을 혹 할 거예요. 특히 나. 나를. 아마 비판하는 그런 소리도 혹 들었을 거요. 스승목사님 따라다니던 그들의 세계도 그렇지만, 내가 볼 때도 참 나보다 먼저 따라다녔고 그랬으니까. 그 또 가만 보니까 스승목사님을 가까이 하니까, 그러니까 말하자면 수제자라고 보는 거지요. 얼마 안 가서 그냥 또 싸우고.
이제 참 그거 내 입장에서 볼 때는 교회의 원리로서 틀어진 자식들은 외국에다 갖다놓고 자기는 한국에 와서 선교를 한다고 하고. 한국사람인데 선교는 뭔 선교야. 외국에 가야 선교지. 그러니까 이민 가서 국적을 옮긴 거지요. 국적을 옮겨놓고 한국에 와서 선교한다고 하는 거요. 자기 본 고장인데 선교래. 사람이 우스꽝스럽잖아. 그럼 뭐요? 자녀를 어떻게 신앙적으로 키워요? 원리적으로 틀려요. 어떻게 생각하면 이거 장사꾼이로구나.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가 있겠어요?
그 뭐 딴 데 들어가서는 일은 못하고 노회나 총회나 들어가서 일은 못하고. 가만 보니 이제 혼자 덩그러니 떨어지니, 그것도 진리본질로 의사단일성으로 맞는 종들이 아니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종들을 끌어 모아가지고 하나의 단체를 또 만들었어. 이게 뭐요? 뭐하는 짓거리요? 이게? 그래, 들리는 소리가 포도원교회에서 우리가 모이지요. 계속 모이고 있는데 소식을 어떻게 듣고 와가지고 ‘이렇게 따로 따로 흩어져 있으면 안 된다.’
흩어진 것도 이거 잘 알아야 돼요. 주님으로부터 누가 이탈됐느냐? 이게 흩어진 겁니다. 알겠어요? 본질에서 흩어진 것이 흩어진 거요. 단체에서 이게 있으면 세상은 단체에서 나가면 흩어진 거지요. 맞잖아요? 근데 우리 신앙의 질은 주님으로부터 나간 자가 흩어진 거요, 진리본질에서 나간 자가 흩어진 거요. 그럼 아무리 큰 단체라도 진리본질에서 나가졌으면 그건 흩어진 거라. 그건. 주님으로부터 따로 떨어진 너희들 당이라. 그건. 그걸 알아야 돼요. 그걸. ‘왜 이렇게 흩어져서 이러냐? 이러면 힘을 못 쓴다’ 그 말이지요. 이단소리 듣고 힘을 못 쓴다 그 말이지.
그래, 이제 김OO목사님은 이 진리 첫날 듣자마자 그냥 노회에서 탈퇴해 버렸잖아요. 아주 그 정신 하나 대단해. 다른 목사님들은 끈적끈적해가지고. 이거 틀렸다. ‘이룰구원 차원에서도 상당히 고통이 따르겠구나’ 요게 있는 거요. 그 알아야 돼요. 그런데 이제 나한테 핑계를 대는 거지. 그 김목사님이 주로 강의를 하니까 김목사님에게 물어보겠다고. 그래, 나온다는 소리가, 그 분은 그 전부터 늘 풍성이요. 그러니까 아주 곧이곧대로 좁고 넓은 성이 없고, 뭐라 그래야 되나? 그런 사람? 저지식인지 고지식인지 난 몰라. 허허. 그 후로부터 안 왔어.
내가 볼 때도, 김OO목사님도 그 분들의 설교를 알지요. 다 잘 알아요. 안면 후면 다 있어요. 집회 때 딱 가보고 그 분도 대단한 분이요. 자기 마음에 ‘아이고, 내가 저 분을 따라서 배워야 되겠다’ 그러면 교회 하던 것도 버리고 딴 사람에게 줘버리고 따랐다단 말이요. 그 열심 하나는 참 대단하다. 그러나 헛것 잡으면 이건 안 되겠다.
오늘날까지 우리 모임에서 강의 듣고 하니까 비판 판단이 싹 나지요. 사람이라는 게 왜 생각이 안 나겠어요. 우리교인들 여기 계시는 분들도 판단을 해야 돼요. 멍청하게 그냥 듣고만 있는 거 아니에요. 판단을 해야지. 그리고 이치를 깨달아야 돼. 판단해서 ‘이거 아니다’ 싶으면 얼른 얼른 가야 돼요. 살 길로. 이해됐어요? 왜 멍청하게 대답을 안 해? 살 길 찾아야지. 허튼소리하고 이단소리하면 살 길 찾아야지. 그런데 있으면 안 되지요? 그래, 종교적인 지식이 이 본질의 하나님의 진리지식이 비판이 안 된다.
그 다음에 소원과 목적이 땅의 생각을 가진 자가 신령한 하늘의 뜻을 풀지 못하며, 그러니까 성경은 안 풀린다 그 말이요. 내 얘기는. 물질의 정신 사상이 신령하고 거룩한 것을 알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그걸 아셔야 된다. 그 우리 목사님들에게 내가 종종 얘기하는데 우리 입장에서 보면 안 믿는 사람이나 종교사업 주의로 돌아가는 이건 우리가 아예 보이는 거니까 안 받지. 그런데 막상 자기에게 예를 들어서, 예까지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처지는 돈도 없는데 앞으로 이제 앞으로 개발될 그 땅이 참 마침 싼 게 나왔다. 개발만 되면 이게 엄청나게 뛴다. 그러니까 싼 땅을 남의 빚을 내서라도 산단 말이요. 그러면 그것이 개발이 내일 모레 될 일도 아니고 이게 언제까지 걸릴는지 그건 모르는 거예요.
그럼 돈을 내서 빚을 내서 샀다. 그 다음에 그 이자는 어떻게 갚아요? 교인들 헌금 나오는 걸 가지고 갚는 수밖에 없지 않나? 교인들을 그나마도 하나님께서 하나 둘 이렇게 쏙쏙 빼나가면, 정신 차리게 하느라고 빼나가면 목사인 네가 돈을 벌어야 된다. 이제. 맞잖아요? 자기에게 없는 돈을 남의 빚을 내가지고 샀으니까 목사가 일해가지고 갚아야 될 거 아니요? 그런 목사들 많아요. 지금 정신 차리라고. 그 이자가 어디 한 푼 두 푼이요? 목사가 무슨 기술자요? 아르바이트 해가지고 끽 해봐야 돈 백만 원 이백만 원도 안 될 텐데 식구 있고 그러면 그 어떻게 갚아나가요? 1억이면 얼마요? 이자가? 은행 이자가? 70만원 되지요? 그래요. 그것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잖아.
어쨌든 생각을 해봐요. 그럼 그게 바로 그 말이요. 우리가 앞으로도 나오겠지만 온 천하를 주고도 네가 목숨을 바꾸겠느냐? 안 바꾼다. 아, 이거 갖고 와서 ‘목숨 내놔라’ 그러면 바꾸겠어요? 근데 지금 상황이 영적 이치로 이게 따지자면 바로 바꿔놨구나. 네가 바꿔놨구나. 바꾼 거다. 그거 바꾼 거다. 무엇일까요? 뭐하는데 유익해요? 그게? 하나님의 사건은 그런 것도 보고요, 그 다음에 하나님이 땅을 들고 와서 ‘아무개 목사야, 이 땅하고 네 목숨하고 바꾸자’ 그러면 바꾸겠어요? 바꾸겠느냐고요? 그러니까 여기 앉아계신 분들은 땅이 먼저요, 사람이 먼저요? 사람? 근데 바꿨어.
참 예, 개척교회 하는 것도요 이치를 잘 알아야 돼요. 몰라, 자기 본 재산이 있으면 다 활용하고 할 수 있겠지만 그 활용의 정도도 몸담고 있는 교회가 가령 예배처소가 없다 그럴 때에는 자기 집을 팔아서라도 이렇게 들어가야 돼요. 알겠어요? 쓰는 법을 알아야 돼요. 쓰는 법을.
그런데 이게 안 믿는 사람들은 먹을 만하고 돈이 남아돌아가면 그 다음에 누리자로 들어가지요? 뭐 장롱도 바꾸고 뭐 방도 이제 다 갈아치우는 걸 뭐라 그래? 리모델링인가? 요새는 그런 말이 나오는지 몰라. 이태리 대리석으로 뭐. 믿는 사람은 그렇게 할 필요가 없잖아요. 모았다가 할 수 있으면 은행에 집어넣었다가 급한 일에 쓸 수도 있고, 그 다음에 주님의 일에 복음의 일에 쓸 수도 있는 거지. 아름다운 일이지. 그게. 우리교회 교인들은 그런 마음을 가져라.
돈 된다고 해서 아이고, 아들 장가보내려고 저축해놓고 딸 시집보내려고 저축해놓고. 몇 천 만원 가져야지. 참말로 더러운 신랑 만나봐. 하루 저녁에 몇 천 만원 다 갖고 나를 수 있지. 사람이 먼저다. 왜 돈 갖고 시집장가 가려고 그러느냐? 사람이 먼저다. 사람을 잘 만들어야 돼. 사람 뒤에 돈이 따라가야지 사람이 못 돼봐. 그 많은 재산 다 까먹고 날리고 마작에 날리고 뭐 주식에 날리고 병에 날리고 병들어서 날리고. 사람이 괴로워서 살겠어요? 그거?
그 다음에 세상 속화되고 거짓된 교회의 인도자들은 선악과 따먹은 소원 목적을 가지고 보암직 먹음직 탐스럽게 보이는 썩고 세상 불타질 것으로 또 가르친다. 세상을 가르친다. 불에 타질 것을 많이 가지라고 가르치고 있구나. 이것은 성경을 오식하고 잘못 알고 곡해하고 있는 것이니 결과적으로 영을 위해서 주신 말씀을 육신의 소원 목적으로 비판한 꼴이 된 셈이다. 영 잘되라고 줬는데 육 잘 되라고 했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둘러엎어서 비판한 꼴이 돼버렸구나. 결과가 그렇다 그 말이요.
그 다음에 이제 영적 비판은 즉, 하나님의 비판은 진리로서 모든 면에 구별성을 주십니다. 참된 것과 거짓된 것, 거룩한 것과 추한 것, 영원한 것과 임시의 것, 빛 된 것과 어두운 것, 생명적인 것과 사망적인 것 등등을 구별을 시켜서 영원히 사람을 살리는 비판을 해야 된다. 이것을 모르고 비판하게 되면 세상이나 또는 세상종교적인 기준을 가진 것이니 그는 또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하는 비판을 받게 된다. 이해됐습니까? 이해할만해요? 어려워요? 이해됐으면 밥이나 먹고 합시다.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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