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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6:37-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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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6장 37절-38절.
37절: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비판을 하지 말라. 그리하면 비판을 안 받는 것이고,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정죄를 안 받는 것이고, 그리하면 용서를 받는다. 여기서 용서는 적극적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비판하면 비판을 받게 되고 정죄하면 정죄를 받게 되고 용서를 안 하면 용서를 못 받는다 그 말이지요? 그럼 누구에게 용서를 못 받는다는 말이냐?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역사적 사건적으로 비판을 받고 역사적 사건적으로 정죄를 받고 역사적 사건적으로 용서를 못 받는다는 말입니다. 자기에게 역사적 사건적으로 다가온다 그 말이요. 하나님의 용서와 용서가 아닌 것은 이게 사람을 통한 역사적 사건으로 들어가 있다 그 말이요. 그냥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너 용서했다’ 그러면 들린다는 그런 게 아니고 사건적으로 다가온다. 환경적으로 자기에게 다가온다.
그러니까 사건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도 알아들을 줄 알아야 되고 용서도 알아들을 줄 알아야 되고 용서하지 않는 것도 알아들을 줄 알아야 된다. 하나님께서는 사건을 붙잡고 역사를 하시기 때문이지요. 너는 역사로 사건이 와서 사건의 비판을 받고 사건에서 정죄를 받고 용서를 받지 못하고 즉, 회개를 못하고 죽는다 그 말이요. 하나님의 용서가 없다 그 말은 사건이 와서 나를 때릴 때에 내가 회개를 못하고 죽는다 그 말이요. 이해 돼요? 그냥 말로만 생각지 말고 사건적으로 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된다.
‘용서를 하라’ 또는 ‘용서를 못 받는다’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간끼리의 용서는 서로의 한 맺힌 오해를 풀어버리는 것이지요. 적대의 마음을 갖지 않는 것. 이것도 용서지요? 그리고 나아가서는 서로 사랑하는 것. 이것도 용서가 된 거지요? 여기서는 그러니까 한 맺힌 오해를 풀든지 세상에서 적대의 마음을 갖지 않는다든지 더 적극적으로 사랑이라든지. 세상은 그런 인간끼리의 용서 속에는 그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과의 화해는 없다 그 말이요. 하나님과의 화해는 없는 거다. 왜 그러냐? 모르니까.
영적 신앙적인 면에서는 우리가 생각을 일반적인 용서는 그건 말을 하나마나 다 전제를 하고, 더 나아가서 나와 원수 되었던 저 사람을 이끌어 하나님과의 원수 된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도록 깨달음을 주어 회개케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도록 하는 것이 용서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건 용서다. 인간끼리 만이 아니고 내 원수를 하나님과의 이게 뭐요? 밀착이 되도록 하면 그건 원수사랑. 용서가 되는 거다. 그러니까 적극적이라야 되는 거다.
그걸 모르면 주님을 생각을 해 보세요.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였습니다. 근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도록 했단 말이요. 원수사랑이 풀어져버려. 하나님과 나와 원수된 것, 나와 주님과 원수된 것 이게 다 풀려버렸어. 그 삼각관계가 바로 됐단 말이요. 이게 딱 바로 됐어. 근데 세상은 인인관계적으로만 원수를 풀어버려. 근데 이게 세상에서 하는 말이지 우리 기독교인들은 영적 면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나와의 친한 이것만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과 친하도록 해야 된다.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내가 하나님과 친하듯이 그 사람도 하나님과 친하면 그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과 친한 것처럼 나도 하나님과 친한 것처럼 같이 올라간다. 질이 같다 그 말이요. 진정한 의미에서 그게 원수사랑이라 그 말이요. ‘네가 하나님 앞에 이런 이런 것이 막혀있다’고 하는 것을 알게 하여 스스로 막혔던 담을 헐어버리고 하나님과 통하도록 하는 이게 용서이다. 그러니까 용서가 되면 화목이 되고 사랑이 되는 겁니다. 그건 하나가 풀리면 저절로 다 풀리는 거요.
이제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았는데 예수님께서 가룟유다를 하늘나라에 올라가서도 이때까지 가룟유다를 원수 삼고 있을까요? 그걸 생각하면 얼른 생각이 되지요. 주님이 당신의 감정으로 원수가 있을까요? 없어요. 가령 원수가 있다면 대등이라. 대등한 상태에서 그게 말이 나오는 거라. 근데 차원이 높은 사람은 원수가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하느냐? 깨닫게 해서 이게 교훈으로 들어가 있어. 교훈으로. ‘아, 저거 저러면 안 되겠는데. 이렇게 이렇게 마음을 돌리게 해서 이거 풀도록 해야 되겠구나’ 그게 있고요, ‘저 사람이 나를 원수로 삼는구나’ 그걸 알면 똑같이 서로 원수시하면 이게 질이 저질이 돼버리잖아요. 기다리고 있다든지 ‘사건이 와서 깨닫게 하겠지’ 하는 넓은 아량으로 깨달아지도록 해주는 것. 인도자 지도자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 돼요. 훤하게 보이는 거니까. 그런데 이제 이 비진리를 갖고 와서 퍼뜨리는 그건 용납이 안 돼요. 원수라기보다 용납이 안 되는 거요. 그건 질적으로 마귀 짓이니까.
마귀하고 우리하고 대등한 입장에서 원수입니까? 원수라 그러면 대등한 입장에서 얘기가 되는 거요. 그럼 밤에 ‘야 마귀야, 나와 한 판 뜨자’ 그럴 거요? 마귀가 악하지만 마귀의 수법을 알면 인간 자기가 하나님 의사단일로 올라가면 그건 이긴단 말이요.
예수님께서는 가룟유다를 원수 삼지 않았습니다. 맞습니까? 십자가에 달리면서도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했지요. 그러니까 원수 삼지 않았다 그 말이요. 대제사장의 죄도, 서기관 율법사들의 죄도, 바리새인과 백성들의 죄도 다 용서가 될 때 가룟유다의 죄도 용서에 포함됐다 그 말이요. 그리고 평소에 예수님께서 가룟유다를 볼 때마다 가룟유다가 하나님보다 돈이 더 좋아서 사는 것을 보고 그것이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보고 그것을 깨닫게 해서 하나님과 화목 되게 용서함을 받게 해주려고 교훈으로 얼마나 애를 쓰셨던가? 그 보이잖아요?
대제사장들과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예수 죽이는 것을 마땅한 것처럼 당당하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가룟유다는 양심이 찔려서 목매달아 떨어져 배가 터져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양심에 찔려서 목매달았단 말이요. 대제사장은 양심에 찔려서 목매달았어요? 그건 아니잖아요. 성경을 안다는 서기관 율법사 바리새인들 대제사장은 예수님을 정죄해놓고 양심이 찔려서 목매단 것은 없잖아요. 그런데 가룟유다는 양심에 찔려서 목매달았거든? 일반적인 반성이나 했지. 대제사장은 일반적인 반성이나 했어요? 그러니까 누구보다 누가 더 미워요? 그래도 대제사장이나 서기관 율법사 이런 사람들이 미운 것은 생각이 안 들고 가룟유다만 냅다 족칠 거요? 한 번 생각해봐요. 양심 있거들랑. 안 그래요?
오늘날 기독자들은 보수나 거짓이나 이단이나 구복주의나 사회주의나 신비주의나 모두 가룟유다는 지옥 갔다고 저주스럽게 미워서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용서해 줬어요. 그럼 예수님 앞에서 가룟유다보고 자꾸 ‘예수를 팔아먹은 놈’ 그러면 예수님은 옆에서 듣고 있다가 뭐라 그러겠어요? 그 사람보고? ‘가룟유다 죽일 놈 살릴 놈 지옥 갈 놈’ 자꾸 그 말을 하니까 예수님은 가만 듣고 있다가 뭐라 그러겠어요? 그게 신앙이요? 뭐라 그러겠어요? ‘가만둬라. 가룟유다는 내가 용서해줬다. 너는 왜 가룟유다를 용서해주지 못하냐?’ 그럼 예수님이 누구를 미워하겠어요? 아, 이치를 생각해 봐야지.
오늘날 교회교인들이 거의가 가룟유다가 지옥 갔다고 미워서 아주 그걸 입에 거품을 물고 아주 그냥. 그러나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으니까 그 가룟유다까지 포함된 거요. 그거. 예수님은 용서해 주었는데 그런데 가룟유다를 정죄하는 그들은 돈 욕심내고 돈 때문에 물질적 조건 때문에 어느 지엽적인 면에서 예수님보다 다른 그 무엇의 세상의 조건을 따라가지 아니하였던가?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예수이름으로 목회한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이건 가룟유다하고 다를 바가 뭐가 있어요? 누가 볼 때는 충성된 종처럼 보여지고 예수이름 이용하여 호화롭게 살면서 그것이 가룟유다 마음과 어떻게 다릅니까, 똑같습니까? 똑같은 거요. 예수 한 번 팔아 자기 잘못이 양심에 찔려 목매달아 죽은 가룟유다와 예수이름 팔아 축복받는다고 하며 헌금 강조하는 자와 누가 더 깨끗해 보입니까? 누가 더 깨끗해 보여요? 그런 거나 따지고 지금 예수 믿어요?
가룟유다가 볼 때 오늘날 예수이름 팔아 세상축복주의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종들을 본다면 가룟유다가 뭐라고 말할까? 뭐라고 말할까요? 가룟유다가 그런 목사들을 생각하면서 ‘천국 가겠구나’ 할까요, 아니면 ‘지옥 가겠구나’ 생각을 할까요? ‘예수 판 것을 나 혼자 죽었지만 저 거짓 종들은 다른 사람들까지 저주를 받게 만드는구나.’ 가룟유다가 생각할 때 그 말이요. ‘나보다 더 나쁜 놈들이다’ 하지 않겠는가? 가룟유다가?
뭐 그런 비슷한 이치를 집어넣으려면 많지요? 남의 호주머니에서 면도칼 가지고 돈을 훔친 쓰리꾼이 발각이 돼가지고 법정에서 심판을 받고 감옥 속에 들어갔다. 그걸 판단한 사람이 자기는 펜대를 가지고 슬슬. 주머니 돈보다 펜으로 하면 그냥 입금이 다 되는 거지요? 그럼 그 도둑은 어떻게? 쓰리꾼에게 비판 받을 도둑입니까? 맞지요? 맞잖아요?
세상 속화된 교회가 가룟유다를 정죄할 정죄권을 누구한테서 부여받은 겁니까? 가룟유다를 정죄하는 그 정죄권을 예수님은 용서해 줬다고 하는데 누구한테서 받아가지고 가룟유다를 정죄하고 있는 거요? 이 기가 막힐 노릇 아니요?
예수님께서 헌금 궤를 맡긴 것도 제자를 불러가지고 맡긴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하세요. 생각하라고 하는 겁니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가지고 가룟유다 속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헌금 궤를 맡긴 겁니까? 제자들을 둘씩 둘씩 전도를 내보낼 때 처음부터 가룟유다는 마귀인데 처음부터 지옥 갈 놈인데, 하나님께서도 만들지도 않은 이 가룟유다라는 인간인데, 처음부터 불택자인데도 전도 보낼 때 능력을 주어서 권능을 주어서 이적도 행하게 한 겁니까? 지금 생각을 합니까? ‘너희들 중에 나를 팔 자가 있다’고 하신 것은 마귀라서 여러 번 말씀하신 겁니까? 마귀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기 때문에 여러 번 말씀을 하신 겁니까? 마귀이기 때문에 여러 번 말씀한 거요? 인간이기 때문에. 그 말씀하신 그 분의 의중을 오늘날 자기가 느껴보란 말이요. 남 비판하고 정죄하기 전에 우리가 이 성경을 한 번 놓고 판단을 해보자 그 말이요.
하나님의 제사장들은 마귀와 친구였습니까? 가룟유다만 친구였습니까? 마귀하고? 서기관 율법사 대제사장은 지옥 안 갑니까? 말하자면 ‘가룟유다 지옥 갔다네’ 그런다면 그 말이요. 오늘날 기독자들이 자기 신앙의 질이 본질인지 이질인지를 따지지를 못하고 이치를 따지지를 못하고 다른 사람을 정죄를 잘 하는구나. 다른 사람을 정죄를 잘 하는구나.
용서하라 그리하면 떡 줄 것이요? 뭐라 그랬어요? 용서를 받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용서를 받는 데요. 용서 받고 싶지요? 그럼 용서를 해야지. 걸린 사람들 있어요? 용서 안 한 사람들 있어요? 용서고 뭐고 안 해주고 말고가 뭐가 있어요. 원수로 왜 삼아. 피곤하게스리. 우리 인간은 불완전하여 잘못 투성이 입니다. 몰라서 죄짓고 알면서 죄짓고 약해서 죄짓고 강압에 의해서 죄짓고 일부러 계획적으로 죄짓고 우리가 자타에게 죄를 많이 짓습니다.
우리가 용서를 받으려면 용서를 해야지요. 용서를 하는 데는 불쌍하게 여기고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하는 주님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 같은 형제의식, 다 같은 하나님의 식구의식, 다 같은 동역자의식.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을 자라고 하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지요.
우리 모두는 나도 그도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을 자입니까? 그렇습니다. 자기 마음속에 원수는 절대로 삼지 말아요. 그건 자기 병이 돼버려. 오래 생각하고 있으면 그 다음에 어느 시간이나 어느 환경이 주어지면 그 다음에 시험적 활동 행동이 나타나게 돼. 하나님의 허락 하에 마귀만 들어갔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참 이거,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이 말씀은 제자들보고 하시는 말씀이지요? 제자들에게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하시느냐? 예, 제자들은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런데 뭘 주라고 하는 것이냐? 뭘 주라고? 하늘의 것이냐, 땅의 것이냐? 제자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렇다면 아무 것도 없는데 뭘 주라고 하는 거냐 그 말이요. 신령한 이치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밖에 더 있겠느냐?
그리하면 또 주시는데 어떻게 주시느냐?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주겠다. 한 되 두 되 한 말 두 말 세어서 ‘딱 이것만 가져가라’ 그런 게 아니고 최고의 큰 됫박에다가 최고로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 담아서. 옛날에는 됫박이 있었지요? 됫박 이거 뭐요? 깎는 거. 나무 동그란 거 있었지요? ‘고붕으로 넘치도록 하여 가슴에 한 아름 안겨주겠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이것은 주어도 주어도 아깝지 않고 주고도 주고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표현하는 거지요. 이렇게 주니 또 그렇게 받으니 대 만족이지요. 대 만족.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도로 헤아림을 받을 것이다.’ 헤아림이 뭐요? 짐작도 하고 가늠하여 따지기도 하고 살피기도 하고 그럴 것이다. 넘겨 집기도 하고 자기 생각으로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막 하는 거지요? 선악과 먹은 육신의 생각으로 짐작하는 그 생각과 생명과 먹은 영의 생각으로 짐작하는 그 생각은 다릅니다. 질이 달라요. 그 다음에 종교사업적으로 짐작하고 따지는 것, 그리고 또 자타의 이룰구원으로 짐작하고 따지는 거. 질이 완전히 달라요.
신앙을 종교사업 목적으로 헤아려졌다면 그 그릇은 지극히 작은 그릇이면서 깨어질 그릇이니 하늘의 신령한 것으로 안겨 받을 것은 없다. 신앙을 영원 궁극적 자타의 이룰구원으로 헤아려졌다면 지극히 큰 그릇이니 흔들어서 꼭꼭 눌러서 차고 넘치도록 받게 된다. 예, 이게 참 하나님께서 복 받을 사람으로 누누이 가르쳐놨어요. 문제는 못 알아듣는다는 게 이게 참 불행한 거요. 그러니까 이게 일반적인 헤아림, 일반사람들이 다 헤아리는 것. 사람을 두고. 그런데 우리가 성경 하나님의 말씀대로 구원을 이루는 쪽으로 헤아리는 것. 이렇게 저렇게 잣대로 재보고 어느 그릇이 크냐 그 말이요. 어느 그릇이 크냐?
세상그릇은 아무리 커도 깨지는 거요. 크면 클수록 세상그릇은 깨지는 거요. 그걸 알아야 돼. 예,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진 주님의 마음을 가진 그 그릇은 엄청나게 그건 뭐 하늘의 보화를 다 받을 수 있는 그릇이지요. 그런 정신 사상을 가져야지 ‘예수 믿어 복 받고 부자 살고’ 그 깨질 그릇이야. 깨질 그릇. 예수를 왜 그렇게 믿어? 왜? 이제 우리가 어느 헤아림을 가지고 주어야 할 것이며 또 말씀을 받는 자들에게도 어느 입장에서 헤아려지도록 해주어야 서로가 주는 자나 받는 자나 차고 넘치도록 받을 수 있겠느냐?
주는 지식도 생명지식 부활 승천된 살아서 역사하는 보혜사 지식이 있고, 죽은 지식 즉 거짓과 이단자 곧 악령을 받은 자들이 땅의 것에 바람을 넣는 선악과 먹는 지식, 이 사망적 지식. 예, 기독교 안에 얼마든지 많이 있단 말이요. 예수 믿는 자들, 가르치는 자들.
그러니까 오늘날 자기가 어느 헤아림으로 살고 있는가? 어느 헤아림으로 살고 있는가? 생명과 먹은 지식으로 자타의 구원을 가지고 헤아리고 있으면 이건 차고 넘치도록 준다. 자꾸 은혜다. 그런데 일반적인 사고방식 이 선악과 따먹은 사망적 지식으로 이게 헤아려봐야 그건 깨지는 거고 못 받는 거다. 구원이 안 되는 거다 그 말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헤아리는 지식도 생명적 지식이라야지 어찌 사망적 지식을 가지고 헤아릴 거냐 그 말이요. 말이 안 되잖아요.
예수 믿는 사람이라도 항상 말씀드렸지만 세상에서 선악과 먹은 저주받고 타락된 지식으로 예수 믿고 사는 자들이 있고, 그 다음에 주님의 말씀 생명적 지식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있다. 그 두 지식을 분명히 알아야 되겠다. 그래서 오늘날 자기가 어느 헤아림을 갖고 사는 건지를 판단하고 사는 건지? 은혜 받고 못 받고가 들어가 있단 말이요.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 라고 생각만 말고 현 세상에서 자기가 은혜를 받을 줄 알아야지, 은혜 받는 지식을 가져야지 왜 망할 지식을 가져. 그래서야 쓰겠냐 그 말이요.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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