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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보기)물고기 153마리.

요한복음 궁극이............... 조회 수 157 추천 수 0 2022.05.04 10: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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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21:1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 요:에 보면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물고기를 잡으러 가서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으나 한 마리도 못 잡고 날이 새어갈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했다. 이 예수님이 이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해서 이 말씀에 순종해서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배에 가득하게 잡혔는데, 그 숫자가 153마리였다.

 

주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니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는데, 여기에서 제자들에게 가득 채워주시려는 주님의 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면 가득 채워주신 게 중요하냐, 말씀에 순종한 게 중요하냐?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이적을 보면서 그 분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고 ‘배가 더 컸으면 153마리 이상을 담을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큰 예배당을 지어놓으면 하나님께서 이 예배당 안을 가득 채워주실 것이고, 더 크게 지어놓으면 더 가득 채워주실 것이고, 작은 예배당이면 작은 대로 여기에도 가득 채워주실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가득 채워주시려는 것보다 ‘어떤 사람에게 채워줄까?’ 하는 게 앞선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채워주고 싶으실까, 불순종하는 자에게 채워주고 싶으실까? 순종자다. 불순종자에게는 큰 배를 가졌던 작은 배를 가졌던 상관이 없이 안 채워주신다. 그럼에도 불순종자에게 채워주신다면 채워주시는 주님의 마음이 기뻐서 채워주시는 거냐, 미운데도 그것을 통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배우라고 채워주시는 거냐? 후자다.

 

자기가 세상살이에서 주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유가 있다. 일반세상도 게으르고 팽팽 놀기만 하면 누가 이 사람에게 채워주느냐? 열심히 일을 하고 부지런히 일을 하는 사람에게 뭔가를 주고 싶어 한다. 이 이치를 가지고 신앙 면으로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으려고 말씀에 부지런히 순종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영원히 가는 것으로 채워주고 싶어 하신다. 그런데 말뜻을 못 알아듣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니 배에 고기를 가득 채워준 이것을 돈이나 재산이나 재물의 부자로 만들어 준다는 것으로 안다. 이건 육의 마음이다.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자기의 믿음이 올라가고, 못 올라가고 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하나님처럼 올려주시려는 거다. 말씀을 받는 우리는 말씀의 교훈을 받을 때 차원 높은 교훈을 받아야 하고 이치가 명확한 교훈을 받아야 한다. 안 믿는 사람들은 땅의 생각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공부를 하는데 이런 세상지식은 아무리 올라가도 시간 속에 속한 거고, 땅에 속한 거고, 불에 타지는 거고, 썩은 거다. 그러나 주님은 하늘로부터 오셨으니 우리들에게 하늘의 것을 줘서 영원히 안 죽게 하고, 안 썩게 하고, 하늘나라를 송두리째 주고 싶어 하신다. 교회에 다니는 것은 이게 들어 있다.

 

자기의 육신이 살기 어려울 때나 몸이 아플 때 이건 가견적이고, 눈에 보이는 거고, 육신으로 느낄 수 있는 건데 여기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마음을 찾아서 들어가라. 사람은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아픈 게 더 심각하다. 정신력이 강하면 몸이 아픈 것을 정신력으로 이길 수도 있고,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게도 된다. 우리는 믿음으로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야 하는데, 믿음으로 이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심을 가지고 ‘이 일이 나에게 왜 일어났을까?’ 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들어가서 영적인 면의 원인을 찾는 것을 말한다.

 

자기가 당하는 고통 가운데서 그 원인을 알면 앞으로의 결과를 미리 알아서 대처를 하게 되지만 원인을 모르면 결과에 가서 ‘아차, 아차’ 하게 된다. 그러니 얼마나 큰 손해냐? 그러느라고 자기의 일생이 다 날아간다. 숨 쉬고, 먹고, 마시고, 투자하고, 나이 들고 하는 게 사망계로 다 흘러간다. 우리는 사는 게 생명계로 흘러가게 살아야 한다. 이게 영생이고 이룰구원 면에서의 신앙의 능력이다.

 

주님께서 물고기가 많이 잡히게 한 것은 많이 잡힌 고기를 보고 ‘축복이니 믿음의 대가니’ 라고 생각하라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해 주신 주님을 보라는 거다. 그래서 제자들이 주님의 뜻을 알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사도가 되어서 죽기까지 주를 위해 복음을 전한 거다. 그런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쪽으로 생각이 가고 마음이 가기 때문에 ‘그러면 그 배와 고기는 누가 다 가져갔을까?’ 라고 한다. 그 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를 삼으려고 부르실 때 아버지와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은 사람도 있는데, 이걸 보고도 ‘그렇게 예수님을 따르면 집에 계신 부모는 누가 모시느냐?’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한다.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에 순종을 하니 물고기를 채워주시는 것은 우리의 이룰구원에 관한 교훈을 주시는 거다. 우리의 이룰구원의 정신은 물질이 아무리 많아도 그 중심사상은 예수님을 좇는 거다. 구원을 좇는 거다. 말씀의 이치를 좇는 거다. 그래서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해 주신 것을 물질적 축복을 주는 쪽으로 생각할 게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영적인 면의 복을 주신다는 것으로 알아야 한다.

 

153마리의 물고기를 누가 만든 거냐? 하나님이다. 왜 만들어 놓았느냐? 순종자에게 잡히게 하려고 만들어 놨다. 이 안에는 예수 믿는 이치가 들어 있다. 영적인 면에서 이런 일이 믿는 우리의 현실에 날마다 있는 거다. 그런데 이 이치를 모른 채 물질욕심으로 믿다보니 거짓 종들에게 자기의 물질을 빼앗기기도 하고, 스스로 갖다 주기도 한다.

 

예수 믿는 것을 영 주격이 아닌 육 주격으로 이방정신으로 믿으면 잘 살 것 같고 잘 될 것 같으냐? 이런 정신으로 살면 네 일생도, 네 노력도, 네 식구도, 네 가정도, 손으로 하는 것마다, 걷는 것마다 전부는 사망계로 흘러간다. 예수 믿는 것에는 건설이 들어 있고 생산이 들어 있는 건데 예수 믿으면서 흐르는 세월 속에서 뭘 건졌느냐?

 

이방인들이 가지는 정신은 고작 해봐야 물질세계 안의 것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물질세계의 것은 전부가 불에 타지고 썩고 없어진다. 우리는 실상적인 거, 사람들이 못 보는 영원한 생명, 생명적인 것을 욕심내는 거다. 예수 믿는 속에는 이런 걸 받을 수 있는 게 들어 있다. 이게 우리의 실상이다. 교회에서 교훈을 할 때는 이게 들어 있는 교훈을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내 살을 먹어라. 내 피를 피를 마셔라’ 라고 하니까 제자들 중에 많은 사람이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하면서 가버렸다. 이에 예수님께서 남은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가려느냐?’ 라고 하니까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라고 했다. 다른 데 보면 베드로가 이렇게 한 것은 하나님이 알게 한 거라고 했는데, 이 말의 의미는 ‘네가 옳은 말은 했지만 하나님께서 알게 해서 안 거다’ 라는 뜻이다.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라고 한 것은 ‘영원히 사는 거, 안 죽는 게 주님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믿었다’ 라는 말로 지금의 우리들도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하겠는데, 예수님께서 ‘내가 하는 말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라고 하시니까 많은 제자들이 물러간 것처럼 지금도 신앙은 육이 아닌 영적인 면을 추구하는 거라고 하면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 중에 많은 사람이 물러간다. 물러가는 것은 주님의 말씀이 자기의 생각에 안 맞는다는 거다.

 

영생이 누구에게 있는 거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에게 있는 건데, 주님께서 ‘내가 하는 말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라고 하니까 많은 제자들이 이걸 몰라서 주님을 떠나가 버렸는데, 지금 많은 무리들이 영생의 말씀을 떠나가더라도, 온 세상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예수님을 비난하고 예수님을 떠나가더라도 자기가 절대 정확한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내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라고 하면서 자기 혼자서라도 주님께 붙어 있게 된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교회가 분쟁이 생겨서 갈라진다면 뭘 찾아야 하느냐? 물주나 유명한 사람 쪽을 따라가지 말고 진리가 어느 쪽에 있는지를 봐라. 누가 진리를 가졌는지를 봐라. 그래야 네가 산다. 모든 생활 면에서도 항상 진리가 어디 있는지를 보고 그 쪽으로 살아라.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내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라고 하는 것은 우리는 일상의 사건이나 상황에서도 항상 절대 정확한 옳음을 찾아야 함을 말해주기도 한다. 절대 정확한 것을 찾지 않으면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소문대로 쏠리게 된다. 이러면 자기를 인간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서 벗어나게 되니 성경은 이런 사람을 멸망당할 짐승과 같다고 한다. 즉 짐승취급이 된다.

 

우리는 사람 중의 사람이요, 교회 중의 교회요, 교인 중에 성도라야 한다.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은 주님이 책임을 지셨으니 염려할 게 없고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 창조의 목적대로 살다가 갈 것인지를 신경 써야 한다.

 

사람이 자기 코앞만 보지 않고 선행을 뿌려놓으면 현재로는 잘 모르지만 얼마 안 가면 어떤 모양으로 건 자기가 뿌린 선행의 결과가 자기에게 돌아온다. 이걸 잘 모르겠으면 농부들이 농사 짓는 걸 봐라. 좋은 밭에 좋은 씨를 심어놓으면 수입이 많지만 돌짝 밭에 씨를 뿌려놓으면 수입이 없다. 말씀을 깨닫고 싶으면 진리의 종으로부터 말씀을 배우면 되고, 또한 농사를 짓는 것과, 어린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면 신앙의 이치를 많이 깨달을 수 있다.

 

예수를 믿는다면 말씀이 자기 인격화 사상화가 되어야 하는데 자기 속에 소금에 절여진 생선처럼 세상이 잔뜩 찌들어 있어서 도무지 빠지지 않으면 이러는 사이에 자기의 생이 다 간다. 예수를 믿는다면 신앙의 차원이 점점 올라가야 하는데 이게 없다면 믿는 효력이 없는 거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아래를 보면 아래에 있는 사람이 개미처럼 작게 보인다. 왜 개미처럼 보이는 거냐? 자기의 위치가 어떻게 되니 이렇게 보이는 거냐? 눈이 잘못된 거냐, 자기의 위치에 따라 이렇게 보이는 거냐? 후자다. 아래의 사람을 무시하라는 게 아니라 자기의 생각에 따라 자기가 되어진다는 것을 말하는 거다.

 

물고기 153마리를 잡은 것을 숫자만 생각하면 의미가 없다. 물고기 153마리가 중요하냐, 말씀에 순종된 사람이 중요하냐? 사람이 중요하다. 그래서 교회적으로 볼 때도 첫째는 교회 인도자가 매우 중요하고, 그 다음에 교인들은 진리말씀에 순종을 하는 게 중요하다. 목사의 입장에서 ‘왜 교인을 안 보내주십니까?’ 라고 하는 건 소용이 없다. 이런 욕심의 기도, 불평불만의 기도는 응답이 없으니 이런 기도를 하지 말고 주님의 의사성을 찾고 이 의사성에 자기의 전폭을 맞춰라.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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