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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한복음 궁극이............... 조회 수 158 추천 수 0 2022.06.06 09:5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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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13-14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13-14: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자들은 구약시대의 사람이나 신약시대의 사람이나 양의 피로, 즉 예수 그리스도로 구속함을 받은 자들인데, 이들 중에는 이룰구원 면에서 주님을 받아들이는 자가 있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가 있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구원의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다. 주님처럼 만들어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지는 이룰구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다. 진리말씀을 알면서도 이 말씀을 자기 실상화 시키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예수 믿는 것은, 그리고 이룰구원을 이뤄가는 것은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게 아닌데, 특히 교회 인도자의 입장에서 혈통위주로 치우치거나 세습적인 의미로 자기 아들을 자기 교회의 후임으로 세운다면 이건 아니다. 교회의 후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을 잡고 사는 자를 세우는 게 하나님의 뜻이다.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늘날 내가 목사를 하겠습니다라고 해서 목사가 된 사람이 많다. 이건 인간으로부터 난 거다. 우리 입장에서는 내가 목사가 되겠습니다라고 하기 전에 말씀으로 자라는 게 먼저다. 말씀으로 곱게 곱게 능력적 실력적으로 자라면 하나님께서 부르신다. 이건 성령님의 역사다. 이런 사람은 평소에 살아가면서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구나. 그래서 나를 시련과 연단을 주면서 성장을 시키는구나라고 하면서 감사히 받다가 주님께서 너는 목사가 되거라라고 하면 하고 받게 된다.

 

하나님의 부름에 못하겠습니다라고 하면 안 된다. 못한다고 하면 너를 인간으로 만들어서 예수 믿게 하고, 사건과 환경을 통해 신앙을 성장시키신 주님의 뜻에서 이탈된 교만이다. 성경에 주님의 부르심을 사양하는 것도 나오기는 하는데, 이것은 내가 감히 어떻게라는 의미이지 나는 못하겠습니다라는 뜻이 아니다.

 

오늘날 사람의 뜻으로 목사가 되겠다고 하는 자가 많다. 이건 아니다. 자기의 뜻, 사람의 뜻은 말씀 앞에서 완전히 낮아져야 한다. 낮아져서 한 이치 두 이치 깨달으면서 속에서 진리로 일어나야 옳은 거다. 사람에게로서 났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나려면 사람의 뜻을 완전히 벗고 하나님의 것으로 올라와야 하니 참으로 어렵다.

 

사람은 사람 사이에 살면서 자기에 대해 자기가 말을 할 게 있고, 다른 사람이 자기에 대해 말을 해야 옳은 게 있다. 다른 사람이 말을 해야 할 것을 자기가 자기를 향해 말을 한다면 교만이 된다. ‘나는 참 똑똑하다라는 말을 자기가 하면 안 맞는다. 순전히 진리로 난 사람은 이룰구원 면으로 거듭나고, 이치가 밝아지고, 영능의 실력이 성장하고, 하나님의 일을 염려 걱정하게 된다. 인간의 생각이나 사고방식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 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진리이치는 이렇다라고 하시는데 인간 자기의 생각을 가미해서 그게 아니라 이렇다라고 하면 안 된다.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도성인신을 말한다. 예수님의 모든 언행심사나 생활은 다 말씀이다. 살아 있는 말씀이요 죽지 않는 말씀이다.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그 분의 모든 언행심사나 교훈이 우리 가운데 계신다. 즉 당신의 모든 움직임은 우리에게 하는 말씀인데 많은 기독자들이 예수님께서 직접 입으로 하신 말씀만 말씀으로 알지 예수님의 언행심사 전부가 말씀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그 단적인 예가 어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은 빨간색 글씨로 써놓고 다른 것들은 검은 글씨로 써 놓았는데, 그 이유가 뭐냐? 같은 성경이라도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은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냐? 이런 발상에서 성경의 내용 중에는 큰 진리, 작은 진리가 있다고 말을 하는 거다. 당신의 움직임 모두가 도행이다. 즉 하나님의 지공법의 삶이다.

 

주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 함은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뜻인데, 보혜사 성령님은 세상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알게 해 주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자기 속에서 이 면을 깨닫는다면 이 사람은 보혜사 성령님께서 각성적 영감과 조명적 영감으로 역사를 하신 거다. 이런 성도 속에는 주님이 거하신다. 교회적으로 보면 인본주의 주장을 하고 세상적으로 나가는 교회에는 주님이 거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 함은 성육신으로 오신 주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오셨다고 해서 날아다니고 먹지도 않고 그런 게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고 사람 가운데 거하시며 물질을 쓰며 생활을 하신다는 거다. 그래서 이 주님께서 일반사람들 틈에 들어 있으면 다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만 이 분이 입을 열어 말씀을 하실 때는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니 하늘의 말씀이 나온다.

 

우리 주님은 하늘로부터 오셔서 땅에 거하며 하늘의 일을 하다가 돌아가시는 곳도 당신의 출처가 하늘이니 하늘로 가신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은 땅에서 태어나서 땅의 것을 소원 목적하며 땅의 것을 취하다가 땅으로 내려간다. 이게 무슨 뜻이냐?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를 예수님과, 그리고 세상사람들과 비교를 해 보라는 거다. 예수를 믿기는 믿는데 땅의 소원 목적으로 산다면 이 사람은 기본구원은 입었다고 해도 신앙 성장적인 면에서는 하늘로 들림 받을 실력은 없는 거다.

 

인간은 영과 육으로 결합이 된 존재로서 육은 육이요 영은 영이다. 그래서 믿는 우리는 육신은 물질을 먹고, 영은 영원히 안 죽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먹는다. 안 믿는 사람들은 영이 죽어 있기 때문에 영의 일은 전혀 못하고 세상을 소원 목적하며 산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인성장을 위해 먹고 마시고, 세상 것을 이용 활용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성령님께서 자기 몸을 전으로 삼고 내주하신다. 그래서 자기 몸을 죄로 더럽히거나 혹사시키거나 우상화 시키면 안 된다. 아무리 좋은 기계라도 계속 돌리면 망가진다. 사람의 몸도 너무 무리하게 쓰면 망가진다. 인간의 몸을 포함해서 모든 물질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니 영인성장을 위해 적절하게 쓸 줄 알아야 한다. 자기 몸을 해가 될 정도로 심하게 써도 안 되고, 반대로 아끼기만 할 줄 알지 너무 안 써도 문제가 된다.

 

세상사람들은 물질 아래서 물질소원 목적으로 살지만 성육신 예수님은 일반사람들처럼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우리처럼 생활을 하시지만 사람을 하나님처럼 온전하게 만들어지는 것에 목적을 두고 사셨다. 그래서 믿는 우리로 속성적 성품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목적을 두고 매질을 하기도 하고, 칭찬을 하기도 하고, 사건을 주기도 하신다. 죄 많은 나를 죽이지 않고 하루하루 살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입게 하려는 거다.

 

타락된 인간은 물질여부로 성공과 실패를 따지지만 주님은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입는 면으로 그 사람의 성공과 실패를 따진다. 예수님도 세상사람들처럼 빈부를 가지고 성공과 실패를 따진다면 불공평이 된다. 목사가 교인들에게 세상정신을 넣어주는데도 그 교회에 교인들이 많고 예배당을 크게 지으면 목회성공이냐? 세상사람들은 이렇게 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네가 망해도 망해도 그렇게 망했구나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두고 이렇게 보신다.

 

예수를 믿는 것은 저만큼 있는 하나의 존재를 믿는 것으로 알지 말아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의 정신과 사상으로 자체화 되는 게 예수 믿는 거다. 이게 구원으로 커지는 거다. 이게 그 분과 인격적 애정적 수수관계적 결합이다. 이게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의 상태다. 이 사람은 주님과 함께 움직인다. 이런 신앙이 되어야 하는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과 동행 동거 결합이 별로 없다.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으신 것은 당신은 물질 위에 사신다는 걸 말해주는 거다. 예수님의 살으심의 정신과 사상은 물질 아래서 물질의 지배를 받는 게 아니라 물질 위에서 물질을 사용하심이다. 이건 세상을 밟는 삶이다. 소원 목적적으로 물질을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고 살면 이 사람은 물질의 지배 아래 사는 거다.

 

장사꾼이 파는 족족 은행에 전부 맡기면 팔 물건을 뭘로 사느냐? 장사를 잘 하는 사람은 돈을 자꾸 돌린다. 그러면 가게가 커진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 돈에 욕심을 내서 가게를 너무 크게 키우면 주일도 못 지킨다. 지혜를 써야 한다. 주일에는 장사가 더 잘 되기 때문에 예배에 빠지고 장사를 하다가 하나님께서 이자까지 거둬 가시면 어떻게 할 거냐?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을 할 때 안식일에는 만나를 거두지 말라고 했는데도 거두러 가니 만나가 없었다. 이게 뭘 말해주는 거냐?

 

주일에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번 것은 많이 번 게 아니다. 모든 물질은 하나님 거다. 그런데 극단적으로 말을 하면 주일에 계속 장사를 해도 장사가 계속 잘 된다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가보다라고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게 자기에게 이롭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는 것은 모든 물질은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친구, 즉 주님을 사귀라는 거다. 물질은 주님의 거지 인간 네 게 아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건 안 믿는 사람이건 다 하나님의 것을 쓰는 거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물질을 주님처럼 천국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데 쓰게 하려고 만든 거다.

 

예수님께서 풍랑을 잔잔케 하신 것을 보고 주님의 만능의 능력으로 자기에게 닥치는 사건과 환경을 잔잔케 해 달라고 하는 것은 주님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심은 성도의 구원도리를 깨닫게 해 주기 위한 계시가 담긴 것인데 이것은 모른 채 주님의 만능의 능력을 인간 자기의 육이 좋도록 하는 것에 써먹으라고 하는 거다. 이런 사고방식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 정신과 사상이 물질이라고 하는 물에 빠진 거다.

 

정신과 사상이 물질 위로 올라와 있는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지는 물질을 자타의 구원에 이용 사용 활용을 한다. 자기가 이 면이 부족함을 느낀다면 주님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런데 자기의 신앙수준이 물에 빠져 있고 땅에 엎드러져 있는 상태인데도 여기에서 일어날 줄은 모른 채 자꾸 세상 것을 더 달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양과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어 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역사를 하시는데 믿는 사람이 이 목적으로 살지 않고 자꾸 물질에 목적을 두고 살면 어떻게 되겠느냐?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변질이 된다. 따라서 물질적인 소원 목적을 가진 사람도 환경에 따라 그 소원 목적이 자꾸 변질 변색이 된다. 그래서 물질을 따라 사는 사람을 믿으면 안 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다. 돈을 따라 사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불행을 겪게 된다. ‘돈 돈하면서 한꺼번에 왕창 벌려고 하다가는 쇠고랑을 차게 된다.

 

세상사람들은 가난하던 부자이던 모두는 사람을 이용해서라도 물질을 가지려고 한다. 물질 때문에 결혼을 하고, 물질 때문에 지저분하게 산다. 예수를 믿는 사람도 물질에 집착을 하면서 물질을 따라 이리 저리 움직이고, 예수님께 물질을 많이 달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결혼을 할 때 신랑감의 재산이 늙어 죽을 때까지 실컷 써도 남는 사람이 있고, 부자는 아니지만 예수를 바로 믿는 신랑감이 있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느냐?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삼위삼체가 아닌 예수님의 마음, 성령님의 마음, 하나님 마음은 권리 동등이요, 위치 동등이요, 소원 목적이 동등이신 삼위일체의 분으로서 사람을 감화 감동 교육하는 면에서 각 위의 역할이 다르다. 이 삼위의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성품으로, 존귀 영광자로 만들려는 소원 목적을 가지고 인간 나에게 붙어서 나를 만들어 나가신다. 참 복음이라면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 이건 참 복음이구나하고 알 수 있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둘이 아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영광이다. 하나밖에 없는 이것을 누가 가졌느냐? 하나님의 독생자다. 독생자의 영광은 하나밖에 없다는 거다. 이 영광에는 권세가 들어 있고 능력이 들어 있다. 그래서 영광이신 이 주님은 이치가 분명하고, 길고 짧은 것, 밝고 어두운 것을 다 구별 분별해 낸다. 이런 가르침이라면 능력이 있고 권세가 있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이런 교훈은 말씀대로 이적과 기사와 표적이 일어나니 하나님의 영광이요, 말씀에 의해 이런 이적과 기사와 표적이 일어나니 사람이 하나님 앞에 정확하게 되어 나온다. 그래서 믿는 자기가 말씀의 이치로 바로 서면 아무렴 자기의 인격은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높아진다.

 

불신세상을 보면 존귀와 명예 영광이 올라간 지도자급들은 대부분 많이 배운 사람이다. 그런데 많이 배운 재판관이 자기가 배운 것을 가지고 악한 자를 풀어준다거나 옹호를 한다면 이건 아무리 불신세상이라고 해도 심판감이다. 전쟁과 재판은 하나님께 속했다고 했다. 재판을 잘못하면 죽는다. 이런 게 다 비유다. 비유는 기준이 아니라 그런 걸 보고 예수님을 더 잘 믿게 하려는 하나님의 역사다.

 

사도들이 나가서 전도를 하니 그 말씀이 능력과 권세가 있다. 이게 하나님의 영광이요, 이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입은 거다. 그러니 얼마나 멋있느냐? 이게 주님이 알아주는 참 사람의 가치다. 그러니 어디에서 일을 하건 주님이 허락해준 장소이니 믿는 마음을 가지고 바로 살아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속사람이 이뤄지는 것을 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사람이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인데, 이 예수님의 영광이 어떤 거냐? 예수님의 얼굴에 후광이 비취는 거냐? 사람을 영원히 살리는 영광이요, 고치는 영광이요, 사는 영광이다.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의 이 영광을 보는 사람은 눈이 밝은 사람이다. 소경이 아니다. 주님의 속성과 성품을 입으면 입은 것만큼 이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된다.

 

주님께서 세상에 계시면서 말씀하신 것을 인간이 대화하는 식으로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인간의 말소리는 입에서 나오면 금방 사라지지만 주님의 입에서 말씀이 나왔다 하면 내가 그 말씀을 듣던 안 듣던 지구 한 바퀴를 돌아서 자기에게 돌아올 때는 엄청난 사건으로 다가온다. 즉 당신의 말씀은 한 마디라도 땅에 떨어져서 헛되게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 말씀대로의 역사가 되어진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이 분은 말만이 아니라 언행심사 모든 것이 우리를 살리는 역사요, 고치는 역사요, 죽은 걸 살리고, 죽어가는 것을 죽지 않게 하는 역사를 한다. 그리고 이 분으로부터 살리는 역사를 맛 본 사람은 ,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구나하고 알게 된다. 주님의 영광은 자기가 주님의 역사를 보고 느끼고 깨달았을 때 보여지는 거다. 주님의 영광을 보지 못한 바리새교인들은 주님을 몰라보고 죽였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주님의 역사를 보고 주님의 영광을 본 사람은 마음의 창고에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이다. 우리 성도들이 이래야 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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