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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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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이 말씀은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의중에서 나왔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하는데, 안다는 게 세상사람들의 사회 윤리적인 개념으로 아는 건지, 아니면 이방 종교적인 개념으로 아는 건지, 아니면 진리본질의 개념으로 아는 건지? 일반 사회 윤리 도덕성에서 나온 지식이나 이방종교에서 나온 지식으로 성경을 풀거나 예수를 믿는다면 이것은 질적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옳게 믿는 게 아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니 ‘예수=구원’이다. 그래서 우리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을 받으면, 그 이치와 도리를 알면 자기 속의 세상적인 이해타산과 소원 목적적인 사고방식이 빠져나가고 하나님의 지식으로 채워진다. 예수 믿는 사람은 진리본질의 교훈을 받고 모든 이해타산과 가치판단과 평가와 사고방식이 신령세계인 천국에 내려져야 한다. 예수 덕으로 세상에서 이 열매를 따 먹으라고 하는 것은 세상의 가르침이요 거짓 종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반 도덕성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령천국에서 오셔서 일반 도덕성을 가르친 게 아니라 하늘나라를 말씀하셨다. 교회 인도자가 세상을 가르치고 자랑한다면 이는 마귀의 꾐을 받은 거짓 종이다.
기독교가 뭐냐? 왜 성경을 보는 거냐? 왜 하나님을 믿는 거냐? 누가 자기를 만들었느냐? 하나님께서 부정모혈을 통해 인간을 만드셨다. 인간은 영을 만들 수 없다. 부모가 영을 만들어서 자식에게 넣어주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1차적으로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영육 결합체로 만드셨다. 2차적으로는 당신의 백성을 예수 그리스도로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화 되게 하신다. 즉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의 영을 주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성령으로 살리신 게 2차 창조다. 1차와 2차의 창조는 하나님의 독권적 주권적 역사다.
인간은 영과 육으로 결합 된 존재다. 아무리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더라도 영과 육으로 결합 된 존재가 아니면 짐승이다. 원숭이가 영이 있느냐? 없다. 그래서 원숭이가 아무리 사람과 비슷하다고 해도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거다. 진화론은 마귀의 꾐에 빠진 자들이 기독교인들로 성경을 깨닫지 못하게 하려고, 머리를 어지럽게 하려고, 근본을 깨닫지 못하게 하려고, 안간창조의 원인과 동기를 깨닫지 못하게 하려고 만들어낸 주장이다.
진화론자들의 말대로 뭐가 뭐로 변하고 변한다면 제일 꼭대기로 올라가면 이건 어디서 나온 거냐? 저절로 생긴 거냐? 저절로 생겼다면 이게 바로 하나님이요 영원적인 존재가 된다. 그런데 변했다는 자체가 영원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 되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말이 안 된다.
성경을 떠난 모든 말과 주장은 그 근원과 생각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하늘에 박고 나온 거냐, 즉 진리이치에 박고 나온 거냐, 아니면 땅에 뿌리를 박고 자기의 경험이나 생각에서 나온 거냐? 성경은 인간의 용어를 빌려서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말씀 안에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영원히 가는 하나님의 의사가 들어있으니 이 말씀을 주신 근본적인 목적은 교회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려 함이다. 이게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목적이다.
이방종교 중에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목적에 들어간 종교가 있느냐? 그 교주가 부활했느냐? 하늘나라를 증거했느냐?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진리지식을 가르쳤느냐? 이 모든 것을 갖춘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는데 왜 기독교인들이 거짓에 끌려가느냐? 이건 그 사람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가 문제이거나 끌려가는 사람의 기존적인 지식이 안 바뀌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말미암았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게 근원이요 원인이요 기초요 터다. 눈에 보이는 것은 가견적이요 현상적이요 시간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다 없어지고 불에 타고 죽는다. 마귀의 교훈은 거짓 종들을 통해 불에 타고 없어지고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라고 한다. 이런 것을 기준 삼는 지식이 선악과다.
이방 종교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 하는데, 귀신은 사람의 정신과 관계가 있다. 그래서 ‘귀신’이라는 용어는 사람이 없으면 쓰이지를 않는다. 사람은 죽으면 귀신과 관계가 없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자기가 영이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영을 만드셨고 자기의 죽은 영을 살려서 예수 믿게 했기 때문에 영 주격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생명과를 먹고 지키고 다스리고 통치하고 땅에 편만하라고 했다. 이건 축복이다. 눈에 안 보이는 축복은 생명과를 먹는 데서 나오는 거다. 그런데 이방 종교인이나 무당이나 점쟁이는 눈에 보이는 것에 욕심을 낸다.
모든 병은 마음에서 난다고 했는데, 이 마음이 어디에 붙어있느냐? 자기의 소원 목적이 어디에 붙었느냐? 영의 눈으로 보면 모든 사람은 마음에 병이 있다. 사람들이 신앙정신 면에서 하나님이 아닌 시간 속에 들어있는 것을 하나님처럼 여기고 좇아가니 이게 병이고 귀신이 들린 거다. 선악과를 따먹은 데서 이런 게 나온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해서 마음이 미쳐버린 거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었을 때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까 물과 피가 나왔다. 이것은 비유인데, 예수님께서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과 생명이 나온다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누가 자기 옆구리를 찌르면 살인성이 나온다. 이것은 정신이 미친 데서 나오는 거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들고 난 후에 천국을 만들었느냐, 아니면 천국이 있은 후에 세상을 만들었느냐?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을 만들었느냐, 하나님이 물질계와 신령계와 인간을 만들었느냐? 어느 게 먼저냐? 먼저 된 것은 임시성이냐, 영원히 가는 거냐? 왜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거냐? 왜 신령계와 물질계를 만들어 놓은 거냐? 왜 우리로 예수를 믿게 한 거냐?
성도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훈련 연단 성장시키는 이유가 뭐냐?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가려고 훈련과 연단과 훈련을 시키는 거냐? 구약에 이스라엘이 애굽을 출발해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것은 우리가 이 땅을 거쳐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는 비유다. 그런데 모세는 가나안에 못 들어가고 가나안 맞은편 느보산에서 죽었으니까 지옥에 간 거냐?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칠 때 혈기로 쳤기 때문에 이 성질은 천국과는 이질성이라서 이런 이질성은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다. 하나님의 본질로 되지 못한 것은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거지 모세라는 존재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성경은 누구에게 준 거냐? 남에게 손가락질하라고 준 게 아니라 나에게 준 거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인간을 만드셨고, 말씀대로 살라고 인간들에게 말씀을 주셨으니 믿는 우리는 존재와 사건과 환경이 교체되는 이 세상에 살면서 사람이나 사건이나 물질을 만날 때마다, 부요가 오던 가난이 오던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 구약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가 칠 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에 들어갔을 때 믿음이 흔들렸느냐? 이 일 이전에 왕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느냐?
지구상의 모든 일은 나의 구원을 위해 있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어갈수록 이해타산 가치판단 평가성이, 오각의 오감성이 천국성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게 예수를 닮는 거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사람 되어 오신 거고, 인간의 기준으로 사신 거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그러니 기준인 인간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이 옳게 사는 모본을 보이신 거다.
거짓 종은 불에 탈 것을 이루라고 하고, 종교적인 일에 열심을 부리라고 하고, 이런 사람을 기준으로 세워서 이 사람을 따라 배우라고 한다. 그러나 주님의 성품을 닮지 못한 것은 부활 때 다 빠져버리고 주님을 닮은 것만 천국에 들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일반 도덕성을 기준으로 신앙을 하면 안 된다. 일반 도덕성적인 개념으로 말을 하면 주님도 걸릴 게 많다. 주님께서 ‘부모 형제보다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일반적인 도덕성으로 이 말씀이 해석이 되겠느냐?
한 가정에 예수 믿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이 가정은 살 수 있다. 구약 때 라합 때문에 온 가정이 구원을 얻었다. 한 가정에 진리의 불이 하나라도 켜지면 이 역사가 일어난다. 한 가정에 믿는 사람이 있다면, 진리본질이 있다면 이 가정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교회도, 단체도, 나라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원래 하나다. 주님도 하나다. 하나님도 하나다. 말씀도 하나다. 그런데 한 교회에서 교인들끼리 하나가 되지 못하면 각 교회끼리 하나가 되겠느냐? 오늘날 교회가 각자마다 주장이 달라서 간판도 각각 달라진 거다. 각자마다 자기주장과 주관으로 나가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임에도 교인들이 ‘모든 권세는 위로부터 온다’는 말은 잘한다.
예수님 당시에 로마는 강대국이요, 유대는 로마의 속국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드리는 모든 헌금이 로마를, 즉 세상을 건설하는 데로 들어갔다. 이것은 믿는 사람이 세상의 노예로 살면 모든 노력과 수고를 세상에 허비하고 빼앗긴다는 것을 말해준다. 흐르는 요단강물도 막는 게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역사다. 모든 사망적인 것을 막는 게 성경이다. 사망적인 생각, 옛사람의 생각을 막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보면서 새사람으로 성장되어 나가게 하는 게 성경이고 믿음이다.
예수 믿으면서 왜 사망 길, 세상 길, 넓은 길, 심판의 길로 가느냐? 왜 안 믿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길로 가느냐? 예수님께서 ‘이방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 고을로도 가지도 말고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의사단일의 본질로 가지 못하는 양들을 찾아가라는 거다.
지금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안일주의에 빠져있다. 이단교회가 참 교회를 죽이려고 ‘저 교회는 이상하다’ 라고 하는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적중성으로 예수를 믿어야 한다. 우리가 적중성의 신앙 길로 가려면 칼날 위로 걸어가는 것과 같은 정신을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 예배의 태도가 옳아야 한다. 가인처럼 예배를 드리다가는 예배를 드리고도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게 된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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