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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3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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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장 31절-34절: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31절: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교회에서 세례를 주는 것은 ‘지금까지 세상을 향해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라는 뜻으로 의식세례를 하는 거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고,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시라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대중 앞에서 물세례를 준다.
그러면 물세례를 받기만 하면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 오시는 거냐, 물세례와는 관계가 없이 바른 회개가 된 사람에게 오시는 거냐? 회개가 뭐냐? 세상 소원 목적으로 살던 마음이 천국 소원 목적으로 사는 게 회개다. 이 정신이 깊이 박히면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 점점 가까이 오신다. 다른 말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는 게 주님이 자기에게 오시는 거다. 이건 성령님의 역사다. 이러면서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이 자기에게 진하게 들어오게 된다. 세례요한의 활동을 통해 우리에게 이런 신앙사상을 가지라는 거다.
믿는 우리는 죽음 이편에 있을 때 회개의 세례가 되어져야 하고, 주님을 만나야 하고, 하나님의 온전의 성품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렇게 되면 주님이 자기에게 찾아오신 거다. 주님이 자기에게 찾아오시는 것을 이렇게 알지 않는다면 지금은 예수님께서 성육신으로 오시는 게 아니라 성령님으로 역사를 하시는데 어떻게 주님이 자기에게 찾아오신 것을 알겠느냐? 이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바른 회개를 가르치는 교회와는 상관이 없는 아무 교회나 나가서 귀신 짓을 하게 된다.
다 같이 예수를 믿어도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교회와, 세상을 가르치는 교회는 질적 교훈적으로 하늘과 땅 차이다. 하나는 주님의 일이고, 하나는 마귀 짓이다. 이제 이것을 알았다면 다시는 헛되게 믿으면 안 된다. 헛되게 살면 안 된다. 몰랐을 때로 족한 거지 이제는 더 이상 거짓적으로 산 자기의 신앙을 용납하면 안 된다. 예수를 믿는다면 자기가 죽기 전에 어떤 모양으로건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는 것을 느끼고 보고 가야 한다.
32절: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왔다고 하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의 말이다. 성령이 비둘기의 형상으로 나타났다고 하는데, 성령이 말로만 하면 안 되고 꼭 비둘기의 형상으로 나타나야만 하는 거냐?
‘비둘기’라고 하면 일반세상도 좋은 뜻으로 생각을 한다. 평화나 화평의 상징이다. 성령이 하늘로서 비둘기처럼 내려온 것을 영적 느낌적으로 보면 최고의 신령한 사상과 정신과 소원 목적을 의미한다. 즉 신령적인 하나님의 세계를 생각하게 한다.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성경에 보면 비둘기는 순결을 의미하고 온유나 아름다움 등을 상징한다. 가난한 사람이 하나님께 제사드림에 쓰였고, 노아홍수 때에 비둘기가 기쁜 소식을 알려주었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고 하는 것은 그 분이 하실 역사를 말함이고, 또 이 역사를 받는 자 역시 성품이 그렇게 된다는 거다. 즉 신령한 성정의 사람으로 만들어져서 성령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이 되는 거다.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되는 거다.
누가 예수를 믿는 자기를 볼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도록 살아야지 ‘저 사람은 예수를 믿어도 참으로 독하고 나쁜 사람이다’ 라고 하면 되겠느냐? 성도라면 성령님께서 인정해 주실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성도들끼리는 영적으로 서로 통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데 소원 목적적으로 세상을 구한다면 성령님께서 같이 하시겠느냐? 교회에 다닐 것 같으면, 예수를 믿을 것 같으면 세상사람들은 받지 못하는 신령한 은혜를 받고 살면 얼마나 좋은가?
33절-34절: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이라고 하는 것은, 첫째는 주님 위에 성령이 임할 것을 말하는 거고,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격, 즉 그 분의 실상을 자세히 눈여겨보라는 게 들어 있고, 두 번째는 믿는 사람 누구든지 주님의 일을 하는 자에게, 그 정신과 그 신앙심을 가진 자에게 성령님이 임한다는 거다.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나님의 성품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어지는 게 성령의 세례다. 세례요한의 운동은 사람의 마음을 예수님께로 향하게 하는 일이다. 사람이 세상정신을 버리고 천국정신이 되면 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대립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즉 예수님이 이 사람에게 들어오신다. 이게 세례요한의 운동인데, 자기 마음 속의 말씀에서 빗나가고 거치고 어긋난 성질과 성분을 걷어내고 말씀을 따라 살면 하나님의 성품의 온전한 사람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지면 곧 하나님의 아들이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거고, 그 나라를 상속받게 된다.
주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당신의 것을 주고자 하신다. 주님의 오심은 우리로 당신처럼 만들어 주시려는 거다. 성경은 다 믿는 나에게 하는 말씀이니 말씀을 들을 적마다 자기를 살피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모두 받고 가야지 일반사람처럼 살다 가면 안 된다. 내가 받을 것을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받는다면 원통한 일이다. 주는 것도 못 받고 빼앗기면 안 된다. 살아생전에 이룰구원 면에 약속된 은혜를 다 받고 가자.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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