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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6: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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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 예수를 믿으나 안 믿으나 일상생활을 하면서 주의할 점이 많다. 사람이 생각도 안 하고, 연구도 안 하고, 일반적인 상식도 모르면 이로 인해 병을 얻을 수도 있고, 고통을 당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살려면 일반적인 지식을 다각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배운 사람이나 안 배운 사람이나 나이만 많이 먹었지 어린아이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 이유는 한 마디로 사람을 못 배워서 그런 거다. 하나님에 대해 모른 채 학교에서 세상의 일반적인 지식과 상식만 배웠기 때문이다.
이방 불신세상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세상에 있는 동안에 잘 먹고 잘사는 공부뿐이지 사람 자체를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구원목적대로 살리는 지식이 없고 전부는 죽이는 운동뿐이다. 세상에는 인간의 내적인 인격 면을 가르쳐 주는 곳이 없기 때문에 세상의 공부로는 인간 자신을 못 깨닫는다. 성경이 아니면, 특히 이룰구원의 깨달음이 아니면 이것을 알 길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릴 때부터 성경을 가르치라고 한 거다. 사람이 하나님의 법칙과 도리와 이치를 깨달아 나가면 사람을 살리는 운동을 하게 된다.
세상에서 보면 자기가 노력을 해서 실력껏 존귀 영광의 자리로 올라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남의 머리를 딛고 올라서려고 한다. 그러니 전부는 죽이는 운동뿐이다. 예수 믿는 기독교는 말씀을 바로 알아듣고, 바로 믿고, 바로 만들어지면서 살리는 운동이다. 주님이 이렇게 사셨다. 주님은 모든 언행심사가 영 운동, 영원히 살리는 운동, 하나님을 닮게 하는 운동을 하셨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주님이 하신 이 운동을 하는 것인데, 예수 믿으면서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이 일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러니 맨 종교생활이요 종교운동에 머물게 된다. 신앙운동이 아닌 기독교 종교운동은 질적 본질로 보면 세상 일반적인 운동에 속한다. 이 일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변화되는 게 없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 때 당신의 모양과 형상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은 짐승처럼 살다가 죽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차원으로, 예수님 차원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게 참사람이요, 성령의 사람이요, 신의 사람이요, 그래야 신령천국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불사신의 존재다. 이를 위해 사람에게 부활 승천이 있는 거다. 그런데 이방세상은 인간의 이런 존재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서로 싸우고 서로 죽이는 거다. 예수 믿으면서 참사람이 되는 것을 모른다면, 예수님의 속성, 하나님의 속성을 모른다면 헛믿는 거다. 우리는 이렇게 믿으면 안 된다.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에 보이는 것은 영이 아닌 육에 속한 거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자연물을 보고 ‘참 아름답다. 크다. 좋다. 나쁘게 생겼다. 예쁘게 생겼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육에 속한 거냐, 영에 속한 거냐? 육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이런 것을 오각의 오감성으로 느끼게 했는데, 안 믿는 사람들이 오각의 오감성을 가지고 사물을 보는 것은 육이고, 믿는 사람이 오각의 오감성을 가지고 사물을 보는 것은 영이냐? 둘 다 육이다.
안 믿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 세상의 것을 보고 만지면서 오각의 오감성으로 ‘크다. 좋다. 파랗다. 노랗다’ 한다거나 음식을 먹고 ‘맛있다. 짜다. 쓰다’ 하는 작용은 육성이다. 이방종교는 이걸 끊으려고 하고, 안 보려고 하지만 예수 믿는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오각의 오감성으로 느끼면서 자타의 구원을 깨닫고 이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 믿는 사람이 자기에게 주신 오각의 오감성을 자타의 구원에 사용하지 않고 안 믿는 사람들처럼 물질에 푹 빠지면 이것은 육의 성질이요 죄가 된다. 또한 믿는 우리에게는 영적으로 느끼는 영감성도 있으니 이 영감성으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을 보고 자타의 구원을 깨닫고 이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세상 것을 보고 듣고 만지면서 오각의 오감성으로 희로애락을 느끼게 하신 것은 이것을 통해 구원도리를 깨달으라는 거다. 세상의 것을 자타의 구원에 쓸 줄 모르면 그만큼 둔하거나 미련하거나 고장이 난 거다. 그리고 인간에게 시고 달고 짜고 고소하고 싱겁고 맵고 한 것을 알 수 있는 감각성도 주셨는데, 인간에게 이런 게 없다면 싱싱한 음식이나, 상한 음식이나, 썩은 음식 등을 구별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피해를 입거나 죽게 된다.
일반적으로 선악과를 먹은 사람들은 이성적 육 기준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영 기준으로 살아야 한다. 영 기준으로 말씀의 이치와 도리를 놓고 육신의 것을 봐야 한다. 안 믿는 사람은 세상이 목적이기 때문에 자기의 정신이 세상에 빠지지만 우리는 이런 것을 자타의 구원에 이용 사용 활용해야 한다. 이것은 육 기준으로 사는 게 아니라 영 기준으로 사는 거다. 우리가 매사를 영 주격으로 생각하면 그 생각이 이치적으로 깊어지고 세상에 빠지지 않는다. 세상을 잘라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세상을 자기의 영능의 실력을 높이는 것에 쓰라는 거다. 그래야 세상에 안 빠진다.
그러면 예수 믿는 부부가 잠자리를 해서 자식을 낳고 기르고 먹이고 입히는 것은 영에 속한 거냐, 육에 속한 거냐? 안 믿는 사람은 세상에 목적을 놓고 살기 때문에 육에 속한 거지만 믿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을 영 주격으로 한다면 이는 영에 속한 거다. ‘이런 것은 육이다’ 하고 끊어버리면 오각의 오감성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죄를 짓게 한 셈이 된다. 하나님은 삶의 목적관이 달라졌을 때 ‘육이다. 범죄다’라고 하신다.
안 믿는 사람은 세상을 사는 게 모든 게 육 목적이고 육에 관한 이해타산이지만 믿는 사람은 자타의 구원에 놓고 살아야 한다. 주 안에서 한다는 것은 영 주격으로 한다는 뜻이다. 에녹이 자녀를 낳았어도 주님과 동거 동행했다. 이것이 주 안이다. 그런데 영의 눈으로 보면 오늘날 주 밖, 성 밖, 구원 밖의 교회가 많다.
우리는 세상 것을 자타의 구원에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 것에 집착하면 육성이 되어서 안 믿는 사람처럼 된다. 이런 상태가 되면 예수 믿는 게 힘이 든다. 세상에 눌리고, 세상에 지배를 받고, 세상에 매여 살게 된다. 믿는 사람은 죄에서 풀려서 자유자로 사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세상을 끊으려고 하면 안 된다. 세상의 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아무리 나쁜 것이라도 자타의 구원에 이용 사용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게 지혜로운 거고, 자유자다. 예수 믿으면서 자유롭게 살아야지 세상에 집착이 되면 세상에 매이게 된다.
진리생명의 이치로 사는 사람은 ‘이렇게 되면 범죄가 되겠구나. 그러니 차선책으로 이렇게 해야지’ 하는 게 나온다. 이건 옳은 거다. 예수 믿으면서도 진리이치로 생명이치로 하나님의 속성으로 실상화 되지 못하면 이런 게 안 나온다. 이런 사람은 그 수준이 이성적 차원이라서 일반상식도 결여되어 있다. 자기의 신분과 위치에 따라, 또는 상대의 신분이나 위치에 따라 말을 어떻게 하고 품행을 어떻게 하는 게 있는 것인데 진리이치를 바로 배우면 이게 바르게 나온다.
하나님에게 어떤 문제를 하나 제시하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처럼 한참 생각도 해 보고 연구도 해 봐야 아시느냐, 그냥 ‘척’ 하고 답이 나오는 거냐? 후자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닮아야 하고, 닮을 수 있다. 이게 예수 믿는 우리 신앙의 세계다. 신의 세계다. 우리는 신의 아들들이다.
뱀독이나 개구리 독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이 독을 사람을 살리는 데 이용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인간의 이룰구원에 쓸모 있게 만들어 놨다. 그래서 우리는 해와 달과 별을 다 자타의 구원에 깨닫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자타의 구원에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을 초절이나 극기로 나가는 것은 이방 종교인이나 이단자들이 하는 짓이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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