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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4:36-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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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4장 36절-38절: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36절: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무엇을 두고 함께 즐거워하느냐? 밭을 보고? 알곡이 된 것을 보고 함께 즐거워하는 거다. 빈껍데기를 두고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즐거워할 수는 없다. 결실이 안 됐다면 틀림없이 ‘너 무슨 씨를 뿌렸느냐?’ 라고 하며 서로가 책임추궁을 할 거다. 하물며 신앙적으로 보면 씨를 뿌리는 일은, 그리고 열매를 거두는 일은 인간창조의 궁극적 목적을 위한 일인데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이 일에 대한 책임추궁이 없이 그냥 지나가시겠느냐?
설교는 씨를 뿌리는 거다. 설교를 받는 입장에서 설교를 듣고 깨달아서 좋은 밭이 되면 엄청난 열매의 수입을 본다. 깨달음의 수입이 있게 되면 자기의 생활 전반이 그 정신, 그 사상, 그 호흡으로 되어진다. 또한 바로만 들어가고 바로만 연결이 되면 연관적으로 또 수입이 난다.
곰팡이는 햇빛이 없는 데서 잘 피어난다. 이런 이치로 자기의 몸도 관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들으니까 물질에서는 비타민 D를 취할 수 없고 햇볕에서 취한다고 하는데, 이런 것에 우리의 구원을 위한 깨달음이 들어 있다. 그리고 성경을 가지고 세상의 정치나 안 믿는 사람들의 소원 목적을 보면서 신앙의 이치를 깨달을 수도 있다.
세상사람들은 출생을 해서 죽음의 선을 넘기까지 물질의 열매를 많이 얻으려고 노력을 하지만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열매를 위해 힘을 쓴다. 본문이 이걸 말하는 거다. 우리가 과거에는 몰랐기 때문에 아무 교회나 가서 ‘주여’ 하면서 손을 흔들고 했는데, 이런 건 예수 믿는 게 아니다. 교회에서 철야기도나 송구영신 예배 등을 하는 것은 이방사상의 뿌리에서 나온 여러 가지 액세서리들이다. 믿는 사람은 주님으로 인격화 되는 일만 해야 하는데, 이 일에 액세서리를 걸치지 말아라. 심는 자나, 뿌리는 자나, 받는 자나 인간창조의 궁극적 목적이 있는 건데 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어찌 책임추궁이 없겠느냐? 책임추궁이란 중대성을 말한다.
여기서 ‘뿌리는 자’란 본문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매가 안 되고 결실이 안 될 것을 뿌리시겠느냐?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뿌리는 일을 하도록 사명을 받은 사람이 바로만 뿌리면 받은 사람은 천국의 성질의 열매가 맺어진다. 뿌리는 자가 열매가 안 될 것, 심판이 될 것을 뿌리면 절대로 안 된다. 왜냐? 결실이 안 되는 것을 뿌리게 되면 심판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으로부터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을, 결실이 되는 것을 받았고, 그리고 그 결실이 나왔다.
35절에서 주님께서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라고 하셨는데, 자연법칙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구원도리를 깨달아야 한다. 땅 위의 곡식은 천체에서 되어지는 기후변화에 따라 소출이 달라진다. 또한 하나님의 역사에 따라 인간세상이 그대로 되어진다.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이 주권을 인정하느냐? 세상사람들은 이걸 인정을 못 한다. 이들은 인정할 수 있는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능력도 없다.
자연법칙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구원도리가 있듯이 우리 믿음의 세계에도 ‘하늘에서 어떻게 하면 땅에서 어떻게 되고’ 이게 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과 직통이 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통해 기도가 올라간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직통으로 올라가는 거다.
사마리아 여자가 결실이 되고 열매가 맺는 신앙을 가지고 마을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를 하니까 동네사람들이 곧바로 주님께 나왔는데, 이 안에 든 계시사상을 보면 이 일이 잠깐 동안에 되어졌지만 이것은 한 사람이 주님을 전하고, 가르치고, 설파하고, 소개하고, 자랑을 하는 일생을 말해주는 거다. 그러면 이 여자가 이렇게 한 그 냄새, 그 향기, 그 영양이 누구로부터 온 거냐? 주님으로부터다. 듣는 사람은 그 마음이 예수께로 찾아나가야 한다.
교회의 설교는 만담이나 하고, 웃기고 울리는 소리나 하는 게 아니라 진리이치를 바로 깨닫게 해서 예수님께로 밀착이 되게 하는 거다. 세례요한이 이 역할을 했다. 세례요한은 요단강가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고 약대털옷을 입었다. 그러니 인간적으로 보면 사는 게 얼마나 고생스러웠겠느냐? 그러나 주님을 소개하는 역할을 자는 자로서는 아주 적절한 거다.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뿌리는 자가 뿌린 천국복음의 진리의 씨앗이 받는 사람의 마음밭에 떨어져서 진리와 성령님의 감화로 하나님의 온전으로 잘 결실이 되면 뿌린 자도 기쁘고, 주님도 기쁘고, 받는 자도 기쁘다. 이게 하나님께 영광이다. 예배당을 지어놓고 ‘영광 받으시옵소서’ 이런 게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지는 게 하나님께 영광이다.
예수 믿는 부모형제들이,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이 뭘 보고 기뻐하느냐? 세상의 요소로 된 것에서 기쁨을 찾느냐? 세상은 월급이 올라가면 기뻐하고, 사업이 잘 되면 기뻐하는데, 문제는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이 어떤 사람으로 되는 것을 기뻐하시느냐?’ 이게 가장 중요한 거다. 이것을 중심으로 놓고 그 다음에 사업이나 월급 등은 생활의 목적이 아닌 예수님을 잘 믿어나가는 수단들이다.
예수 믿는 사람의 양심은 하나님 앞에서 보는 거다. 그럼에도 믿는 사람이 일반양심마저 속이고 돌아간다면 이 사람은 신앙양심이고 뭐고 없는 거다. 모든 사물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법칙대로 되어지는 건데, 문제는 사람의 마음이 굽어지고 꺾어지고 비뚤어지니 서로 부딪혀서 마찰이 되고 싸우게 되니 사는 게 힘이 드는 거다. 문제는 항상 사람이다.
37절: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이건 성령님의 감화로 된 거다. 심는 자는 항상 그 주격이 주님 쪽으로 되어 있다. 심어지는 씨앗은 구원이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마음 속에서 살아서 역사가 된다. 산 말씀은 그렇다. 구원의 씨앗에는 인간 자기를 만드신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이 들어 있다. 그리고 거두는 자들은 제자들이다. 우리 전부는 주님의 제자들이니 열매가 잘 여물 수 있도록 풀도 매어주고, 거름도 주고, 물도 주면서 잘 돌봐야 한다.
그리고 주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붙잡고 천국복음을 심으시다가 마지막에는 최후적으로 천사들로 추수케 하신다. 이것은 우주적인 추수다. 그러면 왜 천사들로 추수를 하게 하시느냐? 우리 속에 여물어진 것이 천국적이요 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네 가지 밭의 비유가 있는데, 실지로 세상에는 네 가지 밭이 있다. 그런데 좋은 밭치고 사람의 손길이 안 닿은 밭이 없다. 그만큼 좋은 밭은 그만큼 사람의 손이 많이 간 거다. 이 네 가지 밭의 비유를 말씀하는 것은 우리로 이 비유를 듣고 딱딱하지 않고 흙이 좋은 밭 쪽으로 마음을 가지라고 비교급으로 네 가지 밭을 말씀하는 거다.
우리가 영의 눈을 가지고 보면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이 교회에 나와서 앉아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좋은 밭이 되는 게 아니다. 모든 사람은 좋은 밭이 하나도 없다. 세상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아무리 마음이 좋아도 세상성 물질성으로 들어가 있는 밭이기 때문에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면 마음이 좋은 사람은 예수를 잘 믿느냐? 그렇지도 않다. 안 믿는 사람들은 마음이 세 가지 밭 중에 하나 이상의 밭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이 손을 봐야 좋은 밭이 된다.
예수를 믿으면 좋은 씨가 심겨질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건데, 이 밭에 좋은 씨가 떨어져서 이 씨가 햇빛을 받고, 비를 맞고, 눈과 바람을 맞으며 시련과 연단을 견뎌내면서 뿌리가 깊이 내리면 강하고 알찬 열매를 맺게 되는데, 주의 종들이 이 일에 수종을 들다가 마지막 날이 되면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동원해서 추수를 하게 된다. 세상 마지막 때는 전체적인 추수로서 천사가 하고, 현재 지엽적인 추수는 믿는 이들이, 즉 주님의 종들이 한다.
보리씨는 가을에 심는데, 겨울에 차디 찬 땅에서 눈과 비를 맞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땅 속에 서릿발이 서기 때문에 보리의 뿌리가 흙에서 뜬다. 봄이 되어서 따뜻해지면 서릿발이 녹으면서 공간이 생기기 때문에 이걸 그대로 두면 뿌리가 물을 빨아들이지 못해서 말라 죽는다. 그래서 봄이 되면 보리밭을 발로 밟아줘야 보리의 뿌리가 땅에 박혀서 줄기가 올라온다. 꽃나무나 식물은 온실에서 자란 것보다 밖에서 눈비를 맞고 자란 게 싱싱하고 향기가 좋다. 이런 게 다 우리의 신앙성장의 원리를 말해주는 거다.
38절: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누군가가 앞서서 뿌리고 심었다는 말이 된다. 종 스스로 심은 게 아니라 주님께서 신실한 종을 붙잡고 천국복음을 심으셨구나.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이 이방나라와 싸울 때 하나님께서 미리 가서 선수를 쳐 놓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만 하면 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을 가지고 순종하는 이스라엘을 위해 적들의 마음밭에 미리 역사를 해 놓으면 이스라엘은 순종만 하면 싸움에서 이기게 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미리 선수를 쳐 놓는 일이 좋은 것이면 좋겠는데, 야곱의 경우에는 외삼촌 집에서 거부가 되어 돌아올 때 형이 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온다는 소리가 들렸다. 군대를 이끌고 나오는 것은 야곱을 죽이려는 거다. 그런데 형의 군대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20년간 시람 키우기, 짐승 키우기를 하고 있을 때 형은 반대편에서 군대를 키우고 있었던 거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가견적인 역사 속에서 나를 위해 좋은 것을 기르고 있는 건지, 나쁜 것을 기르고 있는 건지를 봐라. 세상에는 어디에 들어가려면 시험이 있는데, 이것을 통과하려면 실력을 닦아야 한다. 이런 건 없이 자기에게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거다. 우리가 이치를 어기고 기분대로 살면 안 된다. 모든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이 들어 있는 건데 아무렇게나 살면 말을 안 듣는 자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어디서 어떻게 바람주머니가 튀어나올 런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라고 하는 것은 ‘열매를 맺는 일에 이룰구원으로 노력하였고’ 이 말이다. 씨를 심는 사람도 노력을 해야 하고, 씨를 받은 사람도 열매를 맺으려고 이룰구원으로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제자들은 노력을 해서 열매를 맺는 일에 참여하는 거다. 수종을 드는 거다 심부름을 하는 거다. 씨는 하나님의 것인데 심어진 이것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풀을 매고 거두는 게 하나님의 일에 수종 드는 거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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