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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5: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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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5장 5절-9절: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5절: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38병자는 한 평생을 누워서 살았다. 사람이 육신의 병자가 아니라도 어릴 때의 생각을 그대로 가진 채 평생 동안 사는 사람도 있다. 예수 믿으면서도 세상의 소원 목적을 가지고 평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 이건 다 38병자다. 38병자는 그 생각을 품은 지가 38년, 그 환경에 잡힌 지가 38년이다. 38년 동안을 스스로 그렇게 굳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으로 볼 때 사람은 지키고 다스리고 통치하며 살 수 있는 자유와 능력이 있는 존재인데 이렇게 살지 못하고 만물로부터 지배를 받으면서 자유가 없는 사는 사람이 많다. 자기의 생각이 세상의 그 무엇에 매여서 자유함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가 세상의 그 어떤 생각에 매여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면에 손해를 보는 게 있다. 정신세계에서 이런 마음의 움직임이 있는 건데 예수 믿으면서도 이걸 생각을 못하는 사람이 많다.
늘 침상에 누워 있는 38병자는 물이 동할 때 남보다 먼저 물에 들어가려고 아무리 용을 써도 다른 사람보다 늦는다. 그래서 물이 동하기 전에 미리 물에 들어가 있으면 안 될까? 그러면 다른 사람도 미리 내려가 있을 거다. ‘남보다 먼저’ 라고 하는 것은 선착순이라는 말이다. ‘선착순’ 하는 말에 속지 말아라. ‘공짜다’ 하는 말에 속으면 안 된다. ‘선착순이다. 공짜다. 싸다’ 하는 말에 마음이 동하면 언젠가는 속는다. ‘물이 동할 때 남보다 먼저 물에 들어가야지’ 하는 마음을 가진 지가 38년이다.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다 자기가 먼저 물에 들어가서 병이 나으려고 하지 다른 병자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하겠느냐? 그리고 먼저 들어간 사람이 나음을 받으면 자기 살 길을 찾아가지 누가 38병자를 돌보려고 하겠느냐? 그러니 38병자는 다른 사람을 얼마나 원망을 했겠느냐? 남을 원망한지 38년이 지났다. 죽을 때까지 남을 원망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하나님의 재앙이다.
육신적으로는 38병자가 아닌데 정신이 환경에 붙들린 지가 38년 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먹고 마시며 드러누워 있는 지가 38년이다. 손도 발도 꼼짝도 하기 싫은 지가 38년이다. 이 정신이 38년이다. 모든 사고의 발상이 그대로 굳어진 지가 38년이다. 그러니 이제는 스스로 일어날 의욕도 기운도 없다. 정신이 이런 지경이 된 사람이 많다.
정신 빼이고 혼 빼놓는 집회에 참석해서 병이 나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곳에 가서 아무리 육신의 병이 나았더라도 예수로 구원이 되는, 예수님의 성품으로 닮아지는, 하나님의 온전으로 만들어지는 특수은총은 없다. 팔팔 뛰는 집회는 사람이 깨달아서 마음과 정신이 거듭나는, 새사람이 되는 게 없다.
천사가 내려와서 사람을 고친다고 해도 그런 말은 듣지 말아라. 천사가 내려와서 사람의 영을 고친다면 성경을 왜 주셨겠느냐? 물론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서 사람의 병을 고칠 수도 있는 거지만 이미 말씀도 주셨고, 이미 예수님이 오셨고, 성령님을 통해 말씀으로 온전케 하는 일을 하고 계신다.
어떤 사람이 ‘로또복권에 당첨이 되어서 세계여행을 다녔으면 좋겠다’ 라고 한다면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 이 말을 듣고 그 사람의 마음이 병이 들었다고 생각을 하느냐? 목사가 ‘복권을 타서 예배당을 짓겠다’ 라고 한다면 믿는 사람이 그 생각이 병이라고 하느냐?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님 덕으로 세상에서 부자가 되어야지’ 라고 한다면 믿는 사람이 이 말을 듣고 이 사람의 생각이 병적이라고 하느냐? 오히려 믿음이 좋다고 할 거다.
일반적인 생각을 가지고 예수 믿으면서 자기의 세상적인 욕심을 이뤄달라고 매일 기도하는 사람과, 그런 기도는 안 해도 늘 말씀을 깨닫고 인격과 성품이 자라는 사람 중에 어느 사람이 사는 게 편하고 기쁘고 행복하겠느냐? 자기는 드러누워 있고 누군가 옆에서 자기의 손발이 되어주는 것과, 자기가 나가서 자기가 할 일을 하는 것 중에 어느 쪽이 편하고 기쁘겠느냐? 자기가 할 일을 다른 사람이 다 해 주게 되면 자기의 실력은 없다.
6절-7절: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님께서 38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고 물으면 ‘예, 낫고자 합니다’ 라고 하면 될 것을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라고 하며 남 탓과 변명을 한다. 이 변명을 하며 살아온 지가 38년이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는 38병자는 어떤 요행으로 고쳐질 병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고쳐주시려고 38병자를 찾아오신 거다. 다른 병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지 못했는데 이들이 요행으로 병을 고치고 집으로 갔을까? 모든 사람은 다 영육 간에 병자다. 예수 믿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활동이나 하고 자기의 세상적인 소원을 구하는 게 아니라 온전으로 들어가는 거다. 문제는 사람이다. 38병자와 같은 환경에 잡혀 있는 자를 탈출시키고 하나님의 온전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구원의 말씀뿐이다.
8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이 말씀을 가만히 새겨서 들으면 ‘왜 자꾸 침대 위에 드러눕느냐?’ 라는 거다. ‘너의 그런 생각에서 제발 일어나라’ 이런 말씀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에 잡혀 있지 말고 일어나라’ 이 말씀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편히 살고 싶다’ 하는 건 주님의 성품을 닮는 쪽으로 생각을 하는 거냐, 모든 게 풍족해서 늘 뒹굴고 놀러 다니고 하는 쪽으로 생각을 하는 거냐? 후자다. 이건 병이다. 이방인들은 이런 생각을 병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인간 너를 만든 창조의 목적관에서 보면 병이다. 이 병은 일반인들은 못 본다.
예수님께서 38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라고 말씀을 하시니 벌떡 일어났다. 그러면 38병자가 안 일어나려고 하는데 저절로 벌떡 일어나진 거냐, 자기 속에 어떤 힘이 가해지면서 벌떡 일어나진 거냐? 예수님의 일어나라고 하는 말씀인즉 ‘일어나려고 하면 이렇게 쉽게 일어나지는 건데 왜 그렇게 붙잡혀 있었느냐?’ 라고 하는 거다. 말씀에 순종하면 그 순종성이 일어나지는 거다. 예수님의 ‘일어나라’는 한 마디 속에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영양가가 들어 있는 거냐, 일어날 수 있게 되는 어떤 능력이 들어 있는 거냐?
주님께서 일어나라고 하는데 ‘싫어요’ 하면 못 일어나는 거다. 말하자면 38년 동안 그 어떤 병적인 환경에 붙들려서 굳어져 있는데 주님의 말씀을 듣는 순종, 인격화 되는 순종이 되면 일어나게 되는 거다. 일어나라고 하는 주님의 말씀을 교육적인 면으로 보면 사람을 일어나게 해서 자유롭게 만드는 말씀을 들으면 사람이 일어나지는구나.
사람이 요행을 바라면 못 쓴다. 그러면 결국은 못 움직이게 된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면 일어날 수 있는 구원의 힘이 들어간다. 주님의 구원의 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이것을 받아가지면 일어설 수 있는 지혜성 도덕성 능력성의 사람이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렇게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기 마음이 세상성인데도 주님께서 일어나라고 말씀을 하시면 주님의 만능의 능력이 와서 자기를 벌떡 일으키는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이건 요행을 바라는 신앙이다.
예수님께서 38병자에게 일어나라고 하니까 바로 일어났는데, 이 38병자에게 부모가 일어나라고 안 했겠느냐? 형제들이 일어나라고 안 했겠느냐? 일가친척 이웃이 일어나라고 안 했겠느냐? 여러 사람이 수도 없이 일어나라고 했을 텐데 왜 못 일어났느냐? 다른 사람이 일어나라는 말과, 예수님께서 일어나라는 말은 용어와 글자는 똑같지만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사람을 일으키는 약이 들어 있다. 예수님의 말씀은 구원의 말씀이고, 다른 사람의 말은 구원의 말이 아니다. 구원의 말씀이라야 사람이 일어날 수 있고, 38병에서 탈출할 수 있는 거다.
예수님께서 38병자에게 일어나라고 했을 때 38병자가 ‘내가 일어날 줄 몰라서 드러누워 있는 줄 아십니까?’ 라고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러면 일어났겠느냐? 그리고 연못가에서 요행만 기다리고 있었다면 일어났겠느냐? 예수님의 말씀은 창조요, 건설이요, 살리는 능력이요, 참 말씀이니 이 말씀에 순종을 하면 하나님의 성품으로 온전케 된다. 고쳐진다 그 말이다.
9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확실히 침대 위에 잡혀 있는 것보다 일어나서 걸어가는 게 보기가 좋다. 사람이 일어날 줄 알아야 자유로워지고 활동을 할 수 있는 거지 일어날 줄 모르면 환경에 붙잡혀서 자유가 없이 살게 된다. 환경에 고통을 받게 된다. 환경을 다스린다면 이 사람은 일어난 사람이다.
오늘날 예수 믿는 나는 수 년, 아니면 수십 년 동안 어디에 잡혀서 고통을 받고 있느냐? 아무 데도 안 붙잡혔느냐? 옛사람에 붙잡혀서 다른 사람을 원망하며 살지는 않느냐? 환경의 소산으로 살고 있지는 않느냐? 환경이 울라고 하면 울고, 웃으라고 하면 웃으면서 환경의 소산으로 살고 있다면 이건 병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의 죄를 사해주셨고, 중풍병자를 고쳐주셨고, 가버나움에서도 중풍병자를 고쳐주셨고, 18년 동안 귀신들려서 꼬부라진 여자를 고치셨고, 진흙을 이겨서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 씻으라고 할 때 순종을 하니 보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 잘못된 지식, 잘못된 사고, 잘못된 이해타산, 잘못된 소원 목적, 창조의 목적에서 빗나간 모든 정신 사상을 고쳐주시려시는 거다. 이제 예수를 믿는 것의 내용을 알겠느냐? 이걸 알아야 믿는 맛이 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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