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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5:28-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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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5장 28절-32절: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28절-29절: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물건이 무거운지 가벼운지 알려면 저울에 달아봐야 한다. 생명의 부활인지, 심판 받을 부활인지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의 부활을 가지고 와서 대보면 알게 된다.
예수님은 살아계실 때 흠과 티가 없이 사셨다. 허점이 전혀 없다. 죄에 넘어가지 않았고, 죄를 짓지 않았고, 유혹과 미혹을 받지 않았고, 세상을 다 이기셨고, 사망과 죽음을 다 이기셨다. 믿는 우리가 생명과를 먹고 산다면 주님처럼 죄와 세상과 죽음을 이길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려면 주님의 삶을 기준으로 놓고 자신을 이 분으로 자체화 시키면 된다.
예수를 믿지만 산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고, 죽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다. 영의 눈으로 보는 정신 사상에서 이게 나온다. 세상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주님을 기준으로 살면서 주님으로 자체화가 되면 이 사람은 가치판단 평가를 내리는 게 모든 면에서 정확하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무슨 일이 닥치면 ‘기도해 보고’ 하게 된다. 이러면 기도하는 사이에 그 사건은 이미 지나가고, 그 사건을 통해 주님으로 자체화 될 기회는 날아가 버린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신앙을 하게 되면 시험에 들기 알맞다.
현재 자기의 신앙이 장차 생명의 부활로 나올 런지, 사망의 부활로 나올 런지? 생명의 부활로 나올 수 있는 신앙이 산 신앙이다. 이룰구원의 신앙이다. 이 신앙을 가지면 다른 사람은 그 고난에서 넘어지지만 자기는 그 고난을 딛고 이기고 나온다. 이런 사람은 자기에게 부요가 와도 이 부요에 빠지지 않고 이 부요를 이기고 나온다. 그 어떤 사건 환경 가운데서도 사고방식이나 지혜나 지식이 세상으로 들어가지 않고 구원을 이뤄가는 부활성의 신앙을 가지게 되면 이 사람은 산 예수를 믿는 거고, 자기의 삶의 이해타산이 세상으로 들어가 있으면 죽은 신앙이요 죽은 예수를 믿는 거다.
선한 일과 악한 일의 기준은 주님이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선이시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우리가 하나님의 선을 가지면 이 사람에게서 자동적으로 선한 일이 나오고 생명의 일을 하게 된다. ‘하나님은 선이시다’ 라고 하는 것은 이 말을 듣는 우리들에게 ‘너도 나처럼 선의 사람이 되어라’ 이 말이다. 안 믿는 사람들은 어떤 행동이나 활동을 보고 선이라고 한다. 성경은 사람이 질적 성분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입는 것을 선이라고 하고, 이 선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면 만들어진 것만큼 선행이 나오게 된다.
세상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민주주의 식으로 하면 선이라고 하지만 이런 것은 하나님의 선이 아닌 것도 있다. 그래서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선이 아닌 것, 즉 눈에 보이는 가견적인 것을 하나님의 자리에 앉혀놓으면 안 된다. 특별히 교회에서 이런 일을 많이 할 수 있는데 그걸 따라가면 안 된다.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웁시다’ 할 때 믿는 우리는 목적이 일반사람들과 같지는 않지만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신앙 이전에 사람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이니 참여할 수 있다. 그런 일을 해서 상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인간의 도리로서 할 수 있는 거다.
하나님 앞에 악한 일이 무엇이냐? 무엇을 하고 살았던 하나님의 선의 목적으로 살지 않는 것은 다 악하다. 일반적으로 남에게 악한 짓을 안 하고 살았더라도 인간창조의 목적인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입지 않으면 악하다. 비록 부자로 살지 못하더라도, 남에게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하더라도 인간 자기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라고 만들어 놨으니 이런 사람으로 되지 않으면 악한 거다.
세상사람들은 행동적으로 나쁜 일을 하면 악하다고 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품을 입지 않으면 악하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가지고 불타고, 썩고, 없어지고, 날아갈 것을 목적으로 산다면 악하다. 예수를 믿더라도 세상 종교적, 육적, 옛사람 부패성적, 마귀적으로 산다면 악하다. 이렇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목적으로 볼 때 가치 없이 사는 거라서 가치성적 면에서 너는 악하다. 그러니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자기의 마음과 정신을 질적으로 잘 살펴봐라. 안 살피는 건 악하다.
30절-32절: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아들은 보냄을 받은 자로서 아버지의 말씀만 한다는 거다. ‘나도 할 말이 있지만 아버지의 말만 한다’ 이런 의미가 아니라 ‘나는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로서 아버지의 말만 하러 왔다’ 이 말이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구약의 선지자 중에 자기 입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이니라’ 하고서 뒤에 가서는 ‘내 말이다’ 라고 하기도 하고, ‘내 말이다’ 하고서 뒤에 가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이니라’ 라고 하기도 했는데, 이 말의 의미가 뭐냐? 예를 들면 누가 대표로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고 기도를 하면 이 기도를 듣는 사람들이 ‘아멘’을 하는 것은 자기도 그 기도에 동감 동참한다는 뜻이다. 이 때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아멘’을 하고서 ‘그 기도는 내 말이다’ 라고 해도 자기도 기도하는 사람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겠다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기 때문에 맞는 거다.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천국복음을 전하는 자는 자기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상기시킴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는 오직 하나님의 신의 감화 감동으로 전할 수 있는 거지 인간 스스로는 전할 수 없다. 또한 진리이치, 생명이치, 신적 도덕이치를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인간세상에서도 자기가 사랑을 못 받으면 사랑을 못 준다. 믿는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자기가 이 사랑에 감동이 되어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거지 위로부터 받지 못하면 인간 자기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기 때문에 사랑을 나눠줄 수가 없다. 이건 절대다.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듣는 것이 잘못되면 그 심판도 잘못된다. 그래서 설교가 아주 중요한 거다. 설교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설교자의 정신적인 자세도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성도들도 말씀을 받는 정신적 자세가 중요하다. 그리고 듣는 대로 심판을 한다는 것은 듣는 그대로 심판을 하지 가감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말씀을 전할 때나, 말씀을 들을 때나, 세상을 살아갈 때 구별력, 분별력, 심판력, 하나님의 절대적인 공의성에 사심이 붙으면 안 된다. 인간의 요소적인 기준이 붙으면 하나님 앞에 사심이다. 인간의 사심은 하나님의 심판의 공의성 앞에서 다 날아가는 질이니 하나님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질적 본질적으로 절대 정확한 것을 가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과거적으로 현재적으로 미래적으로 가감이 없고, 변질 변색이 없고, 영원히 절대적인 공의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세상을 만들기 전에 품었던 모든 의중과, 세상을 만든 후에 인간을 만들어 놓고 역사의 진행 속에서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판단하시는 의중이 똑같다. 영원불변이다. 따라서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가 진리이치를 바로 가졌다면 이것은 영원 전 하나님의 의중에 든 거고, 자기의 현재의 신앙의 판단이 미래적으로도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과 질적으로 같은 거다.
믿는 사람이 길이요 진리요 구원의 이치대로 하나님의 온전의 사람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모든 판단과 사고방식이 세상적이요 변질성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감이 없고, 변질 변색이 없고, 영원하고 절대적인 공의이니 하나님께서 보고 듣고 느끼는 당신의 기준을 우리에게도 주어서 당신처럼 살게 하신다. 이게 큰 은혜다.
누군가가 자기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상황이나 시대에 따라 변질이 없는 하나님의 기준을 말해줘야 한다. ‘인간창조의 목적이 이렇고, 세상 모든 사건 환경이 오는 목적이 이렇고’ 정확하게 말을 해 주어야 한다. 이게 공의고 복음이다. 복음은 영원 궁극적인 세계에서까지 사람을 복되게 만든다.
복음은 하나님의 척도요 하나님의 기준이지 인간들의 기준과 척도가 아니다. 인간들의 기준, 세상 소유적인 것을 전하는 것은 비복음이다. 비복음은 마귀가 세상을 잡고 예수님을 시험했던 것과 같은 정신이다. 모든 거짓과 이단자들은 사단 마귀의 꾀임을 받아서 불타고 썩고 변질될 것을 자랑하고, 이루라고 하고, 응답을 받으라고 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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