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요6:29-31 |
---|---|
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6장 29절-31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29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누가 이 말씀을 했느냐? 예수님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이란, 첫째는 예수님을 믿는 거, 그 다음에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거라는 거다. 그러면 구약의 선지자들을 누가 보냈느냐? 하나님이다. 보내실 때 선지자의 입에 순전히 당신의 말씀을 넣어서 보내신다. 그리고 선지자들은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만 전해야 한다. 이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요 종이다.
이 정신을 지금으로 가지고 와서 보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신실한 종들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진리말씀만을 전한다. 그러나 일반세상은 자기가 들은 말을 거짓 없이 똑바로 전하기만 해도 좋겠는데 자기의 유익을 위해 거짓을 말하거나 뒤집어서 말을 하기도 한다. 세상사람들 앞에서는 속일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속일 수가 없다.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라도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못 속인다. 그래서 백보좌 심판이 있는 거다. 이 심판대 앞에 서면 다 드러난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게 하나님의 일이니라’ 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멍청이를 보내놓고 이 사람을 믿으라고 하시겠느냐? 예수님은 고차원적인 신의 성품자요, 만능의 능력자다. 그리고 인간으로 오시기 전, 영원 전에 선재적 그리스도로 하늘에 계셨다. 이 분이 과학적 물질이치를 넣어서 산천초목과 우주만물을 창조했다. 그리고 사람을 인격을 가진 영적인 존재요 도덕성자로 만들어서 이 땅에 살게 하셨다. 이걸 더 크게 보면 인간은 세상과 인간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해 계획하신 궁극적 구원의 섭리 안에서 태어났고 살아가는 거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걸 모른다. 우리는 이걸 알아야 한다.
영원 전서부터 인간의 구원을 계획하신 전능하신 예수님이께서 때로는 죽지 않으려고 도망을 가신 일도 있고, 사람들에게 붙잡혔을 때는 순순히 십자가를 짊어지기도 하셨는데, 예수님 당시에 유대율법의 교권과 로마의 세권이 합세를 해서 예수님을 핍박을 하고 죽이기까지 했는데, 어느 때고 교권과 세권이 합세가 되면 굉장히 강한 세력이 된다. 그러나 영의 눈으로 보면 이건 혼합이다. 혼합 속에는 사단 마귀가 주도적으로 역사를 한다.
당시에 교권과 세권이 합세가 된 자들이 주도권을 잡고 세상을 좌우하는 것 같으나 만능의 능력자 주님은 이 방편을 통해 인간의 구원을 이뤄나가셨다. 이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당신의 목숨이 십자가에서 죽으면서도 인간의 구원을 이뤄놓고 죽으신 거다. 그러면 예수님의 그 죽음이 정말로 죽은 거냐? 주님께서는 죽는 게 이기는 거고, 죽는 게 영원히 사는 거다. 부활 승천으로 이걸 확증하셨다. 그래서 알고 보면 당신이 주도권을 잡고 세상을 돌리시는 건데 이걸 알겠느냐?
예수님께서 도를 전하실 때는 하나님의 능력이 이긴 거고, 예수님께서 잡혀서 죽을 때는 마귀가 이긴 거냐? 또는 창세 때는 예수님께서 능력을 강하게 행사했기 때문에 창조를 할 수 있었던 거고,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는 능력이 약해져서 그렇게 된 거냐? 인간이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지만 그렇게 해야만 했던 이유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다.
예수님의 나심부터 30세까지는 별로 한 일이 없으니까 사생애라고 하고, 3년 동안은 전도를 했으니까 공생이라고 말을 하는데, 우리는 이렇게만 보면 안 된다. 예수님의 30년간의 삶은 3년간 인간의 구원을 위한 삶을 위한 준비기간이다. 그러니 30년 동안의 삶도 3년간의 삶과 마찬가지로 티끌만한 죄라도 짓게 되면 우리의 구원은 불가능이다. 30년간의 거룩한 삶이 있었기 때문에 3년간의 전도의 삶을 통해 우리를 신령천국에 영생으로 생명으로 올려놓을 수 있었던 거다.
이런 주님이시기에 당신의 손길이 가면 병든 자나, 귀신 들린 자나, 죽은 자가 온전케 되는 거다. 이걸 교훈적으로 보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이 사람에게 들어가면 그 사람은 죽었던 것이 살아나고, 살아난 것은 안 죽는다. 그리고 살아난 사람이 자기의 몸을 의의 병기로 사용하게 되면 연관적으로 생명적 역사가 일어난다. 이게 기독교고 예수 믿는 거다. 자기 믿음이 이래야 한다.
‘예수 믿어 병 낫고, 부자 되고, 만사형통 하고’ 하는 위주로 믿는 것은 육과 물질에 속한 거고, 시간 안에 드는 거라서 이건 믿음이 아니다. 이방종교는 다 물질적 개념으로 믿는 거지만 예수를 믿는 것은 사람 하나하나를 하나님의 속성으로 만드는 거다. 이게 구원이고 신앙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간판부터 웃음거리로 만들어 놓고 있으니 이런 교회의 교훈은 빤한 거다.
하나님께서 어디에 속한 능력자, 존귀 영광자를 우리에게 보내셨느냐? 천국이다.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의 대사를 세울 때도 세계정세도 잘 알고, 그 나라의 언어나 풍습도 잘 알고, 신분이 높고, 인격이 고상한 사람을 보낸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라고 이 땅에 보내실 때는 아무나 보내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라야 할 수 있는 거다. 사도들에게 당신의 일을 하게 할 때도 성령을 입혀서 보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라고 보내실 때 세상사람 중에 추려서 보냈느냐, 천군천사 중에 택해서 보냈느냐? 신령천국에서 최고로 높고, 귀하고, 만능의 능력자요, 모든 존재를 섭리할 자, 존귀 영광자를 보내셨다. 이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자기의 신앙심으로 자기 마음에 맞는 하나님을 만들고 있다. 자기 기도에 맞춰서 역사해 달라는 게 바로 이거다. 그러니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지식과, 도덕성이 얼마나 모순투성이냐? 기독교는 이런 게 아니라 이미 실상적인 존재로 계시는 하나님에게 자기를 맞추는 거다.
하나님은 죄와 사망 아래 있는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이 주님은 우리를 영원히 산 자로, 능력자로, 영광자로, 존귀 영광자로, 살리는 자로, 고치는 자로 만들어 주길 원하신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 위로 걸어가셨는데, 이것은 당신만 물 위로 걸어가고 우리는 푹 빠지게 하려는 게 아니라 ‘너희들도 나처럼 되게 해 준다’는 거다. 즉 ‘예수 믿는 너희들아, 세상이라고 하는 물에 푹 빠져서 물 아래로 걷지 말고 너희들의 정신이 물 위로, 세상 위로, 물질 위로 걸어라’ 이걸 말해주는 거다. 이것은 하늘의 정신이요, 하늘의 소원 목적이요, 하늘의 도덕성이다. 신적인 거다. 엄청난 거다.
예수 믿으면서 고차원적이고 신적인 하나님의 정신과 소원 목적과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면 이 사람은 세상에 안 빠진다. 세상의 유혹과 미혹에 안 빠지고, 부요에 안 빠지고, 가난에 안 빠진다. 이런 사람이 강한 거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거의가 가난에 빠지고 부요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느라고 자기 하나 똑바로 못 만들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게 돈이 없고 가난해서가 아니다. 가난해도 사람을 안 죽이는 사람도 있고, 부자라도 사람을 죽이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사람이다. 자기의 몸 밖에 있는 것은 자기의 정신이 잘 다스려야 한다. 다스리라고 준 거지 그것에 푹 빠지라고 준 게 아니다. 안 빠지려면 모든 면에서 실력자가 되어야 한다. 신적 지혜지식성자, 도덕성자 능력성자가 되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안 보이는 게 더 무서운 건데 세상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실상적인 면을 모른다. 우리는 눈에 안 보이는 영적인 면을 잘 알아야 한다. 신앙은 눈에 안 보인다. 자기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으로 되는 것은 눈에 안 보인다. 그러나 생활로 보이게 나타난다. 인인관계 물질관계에서 눈에 보이게 나타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과, 이 땅에 계시면서 하시는 일, 고난 받고, 죽고, 부활로 살아나심을 보면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분이로구나’ 하고 주님을 알아본 자들이 얼마나 될까? 주님이 우리의 구원을 놓고 지옥 같은 과정을 통과하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보내신 종이로구나’ 하고 안 자가 얼마나 될까?
30절-31절: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무리가 예수님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라고 물으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라고 하셨다. 이에 대해 다시 무리들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 전에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서 맛을 보게 했는데 이 때 그 자리에 지금 예수님께 묻는 자들이 없었느냐? 이 이적으로 당신은 사람을 새롭게 하는 일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셨고, 오병이어의 이적으로 생명의 떡을 주시는 분임을 알려주셨다. 그런데도 이 무리들은 먹고 사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구약에서 자기 조상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만나를 먹이셨는데 예수님은 자신들에게 무엇으로 배부르게 해 주실 거냐고 묻고 있다.
예수님께서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것은 무슨 뜻이며, 38 병자를 고치신 것은 무슨 뜻이며, 오천 명을 먹이심은 무슨 뜻인가? 이런 것을 영적으로 보면 자기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지만 단순히 사람들의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으로 알게 되면 자기와는 관계없이 그냥 ‘예수님이 그런 일을 하셨구나’ 라고 생각을 하고 말던가 자기의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게 된다. 예수님을 단순히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분으로 아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거다.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님은 교훈으로, 행동 활동으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보여주셨으니 이 분이 하신 말씀이나 활동에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하늘의 뜻이 담겨 있다. 이 세상에 왜 오셨는지, 뭘 주고 싶으신 건지? 우리를 어떻게 살게 해 주고 싶으신 건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어서 살게 하시는 게 다 당신의 교훈이고 안수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건 못 보고 병자를 고쳐주고 배고픈 사람을 먹인 것 등의 눈으로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을 주님의 일로 알고서 자기에게도 그 능력을 달라고 하는 자가 많다.
사람은 육신의 병보다 정신의 병이 더 심각한 거고, 정신의 병보다 더 심각한 것은 영적인 병이다. 사람들은 몸에 눈에 보이는 병이 없더라도 거의가 눈에 안 보이는 병에 걸려 있다. 예수를 믿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거짓 종에게 속고, 집도,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빼앗기는 거다. 이런 교인이 한두 명이냐?
교회에 다녀도 자식을 알아볼 줄도 모르고, 형제들을 알아볼 줄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왜 이런 거냐? 사람이 주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지 않아서다. 사람이 주님의 성품을 입으면 시원시원하고, 판단이 바르고, 규모가 서고, 도덕성이 높다. 안 그러면 물질에 매여서 사람을 물질을 위한 이용물로 여기고, 더럽고, 조잔하고, 비굴해진다.
세상에 완전자, 만능의 능력자는 없다. 만능의 능력자는 주님밖에 없다. 우리는 다 미달이고, 꼬부라지고, 꺾어지고 한 상태이니 가르치는 자부터 하나님 앞에서 창조의 목적대로 자기 눈의 들보부터 빼고 깨닫고 고쳐가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방 종교적 미신적 사상으로 믿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마지막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하신 것은 교회에 안 다닌다는 게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적중된 믿음이 없다는 거다.
세상만물을 하나님 보시기에 좋도록 만드셨다는 것은 세상만물을 인간들이 주님을 닮아가는 일에 부족함이 없도록 만드셨다는 뜻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만물을 자타가 하나님의 성품을 입어가는 일에 사용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과 기사와 표적 속에는 우리 자신들에게 직접 해당이 되는 영적인 깊은 뜻이 들어 있는 건데 무리들은 이걸 못 보고 예수님을 인간 자기의 어려운 세상살이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분으로 알고 있었다. 오늘날 교회에도 이런 사고방식으로 예수를 믿고, 열심히 충성봉사를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건 신앙이 아니다. 우리는 자기의 신앙의 질을 알아야 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