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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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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울며 누구를 찾느냐
2006-04-16
I. 본문 배경
본문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지 삼일 만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분의 시신이 없어진 무덤 앞에서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의 행동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커다란 신앙적 교훈을 제공해 준다.
II. 빈 무덤을 보고 떠난 제자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그분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의 현장에서도 그분과 함께 했던 자였고, 비록 부활의 모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분의 시신에 향품을 넣고자 새벽 미명에 무덤을 찾아간 최초의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인봉까지 한 무덤 문이 활짝 열려진 것을 보고는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게 된 것이다. 달음질 하여 달려온 제자들은 열려 있는 무덤과 그분의 세마포 옷과 개켜 있는 수건을 보게 됨으로써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이 말씀은 제자들이 그분의 부활을 믿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누이셨던 예수의 시신이 사라졌음을 확인한 후 그 사실을 믿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의 시신이 거기에 없음을 확인하고 그냥 돌아 가버린 제자들의 모습에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 목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자들, 교회를 통해 무슨 유익을 얻을까 바라는 마음으로 나오는 자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아무런 기대도 없이 습관적으로 성전의 마당만을 밟고 가는 자들이 우리 가운데는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나오면 하나님을 깊이 만나든지, 그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왜 자신을 만나주시지 않는지 깊이 고민하며 회개하든지 해야 하는데, 그러한 진지한 갈망과 간절한 목마름도 없이 그냥 돌아가 버리는 지체들이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많이 있는가?
시편 전체는 절절한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나아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고백이 담겨져 있다. 이들은 각각 다른 시대, 다른 위치, 다른 일에 종사하였던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갈망함이 저들 가운데 있었다는 것은 동일하였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라는 고백과도 같이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피어린 갈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더 많은 주의 은혜를 갈망하도록 만들어 준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의롭게 산 사람들에게만 그분의 얼굴을 보여주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목마름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적 의를 능가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반듯하게 그분을 섬긴다 하더라도 그 사람 속에 주님을 향한 목마름이 없다고 한다면 그 섬김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했을 지라도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은 필연적으로 사랑을 동반하며, 그 사랑은 하나님이 자신을 찾아주실 것이라는 소망 속에서 살게 한다. 그러나 제자들은 어떠했는가? 저들이 비록 그분의 제자들이긴 했으나 저들에게는 이러한 갈망함이 없었으며, 그런 제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돌아가는 것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를 뜨지 못하고 소리 내어 울고 있었던 오직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막달라 마리아였다. 두려움과 죽음을 불사하고 그녀로 하여금 이러한 행동을 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제자들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그 마음은 무엇이었나?
III. 무덤 밖에서 울고 있는 여인
이미 돌아가 버린 제자들과는 달리 이 여인의 마음속에는 저들과 다른 뭔가가 있었다. 그것은 생전에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 여전히 그 여인의 마음속에 살아 있었던 것이다. 부활의 신앙까지는 아니지만 그분의 시신을 닦아 드리며, 향품을 넣고자 하는 그 사랑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부활하신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제일 먼저 보여주셨다. 함께 동고동락 했던 제자들이 아닌 비천한 한 여인에게 말이다. 주님을 만나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아무리 범죄 하였다 할지라도 주님을 향한 간절한 목마름 있는 자, 이 곤고함은 주님 외에는 그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으며, 채워줄 수 없음을 고백하는 자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경건한 수도사였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금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랴?’ ‘주님, 저는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해주시려거든 당신 자신을 제게 주십시오. 주님은 제 것이고,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 개인과 공동체를 향해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모여 예배드리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향한 뜨거운 사랑에 있다. 자신을 향해 목말라 하는 자들을 그분은 가장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IV. 결론과 적용
부활 주일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 모진 고난과 치욕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으며, 차가운 무덤에 홀로 누우셨습니다. 큰 돌이 인봉되어 막혀 있었으며, 이틀이나 지난 날, 어느 누가 그분이 다시 사실 것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시체와 같이 누운 것과 같고, 살아 날 소망이 없어 보일지라도 그분을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은 그분의 고난을 생각하고 따르는 자들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러한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 입니다. 이천 년 전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그 신앙만이 아니라, 미구에 우리를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것과 오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남을 믿는 그 신앙 말입니다. 주님을 얼굴을 구하며 울부짖었던 마리아와 같이 그분을 깊이 사랑하는 자들을 부활의 주님은 만나주실 것입니다.
나눔 1. 지난 주 말씀(함께 드리는 기도)을 듣고 실천했던 삶을 나누어 봅시다.
나눔 2. 요 20:1-15 설교 말씀의 전체적인 내용을 나누어 보고 깊이 다가왔던 부분을 서로 말해 봅시다.
나눔 3. 빈 무덤을 보고 떠난 제자들의 초라한 모습 속에서 우리가 갖게 되는 신앙적 교훈은 무엇입니까?
나눔 4. 무덤 밖에서 홀로 통곡하며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예수께서 우리 자신과 공동체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눔 5. 최근에 각자의 기도 생활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느꼈던 경험들을 나누어 봅시다.
200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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