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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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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2.9.5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요한복음 21장(8) 영안이 열린 삶 (요한복음 21장 7절)
성경 열왕기하 6장에는 이스라엘과 아람의 전쟁이 나온다. 그때 아람 왕이 밀실에서 작전을 짜도 엘리사가 그 소리를 듣고 미리 대처하니까 아람이 이길 수 없었다. 아람 왕은 “우리 중에 스파이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때 한 신하가 말했다. “스파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엘리사란 선지자가 왕이 침실에서 한 말씀도 다 듣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듣고 아람 왕은 엘리사를 잡으러 도단성으로 갔다. 아침에 엘리사의 사환이 보니 도단성을 아람군대가 둘러싸고 있었다. 사환이 공포에 질려 있자 엘리사가 말했다. “걱정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다.” 그리고 엘리사가 기도하자 사환의 눈이 열려 불 말과 불 병거가 보였고, 반대로 아람 군사들의 눈은 닫혔다. 결국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대승을 거두었다.
영적 전쟁에서 제일 중요한 승리 요건은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이다.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어야 한다. 문제만 보지 말고 문제 뒤에 있는 하나님의 손길과 돕는 천사들을 보고, 주님의 함께 하심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영안이 열렸다는 것은 신기한 것을 본다는 것만이 아니다. 모든 것을 다 봐야 믿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신비로 감춰진 부분도 있어야 진짜 사랑이 생긴다. 사랑 자체가 신비이다. 다 벗겨버려 신비가 사라진 사랑은 환멸이 될 수 있기에 하나님은 다 보여주지 않는다. 결국 ‘영안이 열린 것’의 더 중요한 의미는 ‘보지 못해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대로 사는 것’이다.
동경 올림픽 때, 일본 하네다 공항 옆에 한 시골 교회가 있었다. 그때 올림픽으로 도로를 신설하면서 그 교회 자리가 도로로 편성되어 많은 보상금이 나왔다.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사용하느냐에 대한 제직회가 열렸다. 대부분 이번 기회에 교회를 크고 아름답게 짓자고 했다.
그 때 한 집사가 말했다. “교회가 헐렸으니 교회를 새로 짓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돈은 하나님이 거저 주신 것이니 선교와 구제에 쓰고, 이곳은 시골이니 교회는 우리 실정에 맞게 우리가 직접 헌금해 아담하게 지읍시다.” 그 말을 듣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인 것 같아 보상받은 돈은 다 선교단체에 기부하고, 교회는 교인들이 하나가 되어 아담하게 지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그것이 바로 영안이 열린 삶의 모습이다. 우리는 내 곁에 계신 주님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나를 향한 주님의 뜻과 내 가정과 교회를 향한 주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 사랑하면 영안이 열린다 >
본문에는 기적을 체험한 후 제자들의 눈이 열려 주님을 알아보는 장면이 나온다. 주님을 알아보고 제자들 중에 베드로가 주님께 가까이 가려고 물로 뛰어든다.
본문 7절 말씀을 보면 제자 중 제일 먼저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은 ‘예수님이 사랑하셨던 제자 요한’이었다. 요한이 주님을 알아보고 베드로에게 흥분된 소리로 “주시다!”라고 소리쳤다. 왜 7명의 제자 중 요한이 제일 먼저 주를 알아보았는가? 시력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 영안이 열리는가? 주님을 사랑할 때 열린다. 사랑하면 얼굴이 빛나게 되고, 언어도 따뜻해지고, 표정이 밝아지지만, 무엇보다 영적인 시력이 좋아진다. 교회를 사랑하면 교회에 떨어진 휴지가 잘 보이고, 꺼진 전등이 보이고, 후미진 곳의 거미줄이 잘 보인다. 그리고 조용히 교회를 위해 봉사한다. 배우자를 사랑하면 배우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음성이 잘 들리고, 평범한 곳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이 보인다. 썬다 싱은 꽃을 보다 하나님을 만났다. 영안이 열리면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된다. 가시덤불에서도 하나님의 솜씨를 느끼고,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느낀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사랑도 없이 “무엇을 본다!”고 하면 무서운 사람이 된다. 고린도전서 13장 2절에는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아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는 말씀이 있다. 대단한 성경 지식과 영력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없다.
왜 교단이 무수히 생겨나는가? 교회 분열의 역사를 추적해 보면 대개 ‘사랑이 없는 지식’이 문제였다. 흔히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하지만 사랑 없이 아는 것은 병이다. 사랑이 없으면 모르는 것이고 영안이 닫힌 것이다. 사랑이 있어야 영안이 열리고 비로소 내 곁에 계신 주님을 볼 수 있다.
< 좋은 꿈은 이루어진다 >
요한이 주님을 발견하고 “주시다!”라고 외쳤을 때 얼마나 흥분이 되었겠는가? 그 한 마디에 주님을 향한 그리움과 사모함이 다 들어 있다. 드디어 제자들은 그토록 사모하고 사모하던 주님을 만났다.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뵙고 싶다는 꿈을 품고 예루살렘에서 갈릴리까지 왔는데, 결국 그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견우와 직녀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베를 짜던 천상황제의 딸 직녀가 목동 견우를 사랑했다. 결국 둘은 결혼에 성공했지만 문제가 생겼다. 사랑에 빠진 직녀가 옷감을 짜지 않자 하늘나라에 옷감이 부족해졌고, 견우가 소와 양을 돌보지 않자 짐승들이 말라갔다.
화가 난 천상황제는 그들을 갈라놓고 일년에 한번, 칠월 칠석에만 만나게 했다. 마침내 그날이 왔지만 은하수 때문에 만날 수 없었다. 그 사정을 딱하게 여긴 까마귀와 까치들이 몸을 이어 오작교(烏鵲橋)를 만들어주었고, 오작교에서 만난 두 부부가 흘린 감격의 눈물이 바로 칠월 칠석에 내리는 비라고 한다.
죄 많은 우리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 만남을 위해 예수님은 오작교가 되어주셨다. 그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주님이 원하는 삶을 살고 항상 주님 안에서 좋은 꿈을 품으라. 좋은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삶이 힘들면 더욱 꿈을 붙들라. 어려워도 꿈을 붙들고 사명의 자리를 지키면 꿈이 이루어지는 환상적인 때는 반드시 온다.
사람은 자기의 꿈 이상 크지 않는다. 꿈이 없는 인생은 망할 인생이다. 꿈이 없으면 동행자도 얻기 어렵다. 꿈이 없으면 고통이 커 보인다. 반면에 꿈이 있으면 고난이 작게 보이고, 충분히 견딜 만하게 된다.
남을 탓할 시간이 없다. 환경에 연연할 필요도 없다. 사람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일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불평하지 말라. 불평하는 마음이 생기면 “꿈이 희미해졌구나!”하고 각성하고 다시 꿈을 새롭게 하라. 꿈이 있어야 살맛도 있다. 꿈이 크면 지칠 것 같지만 사실상 인생을 지치게 하는 것은 꿈이 없어 새로운 자극을 못 받는 것이다.
운전할 때 계속 1단 기어로만 가면 답답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2단, 3단, 4단으로 점점 올려야 답답하지 않다. 왜 권태가 생기는가? 꿈을 품고 도전하지 않아 잠재력이 그냥 사장되기 때문이다. 잠자는 잠재력을 깨우라. 도전하고 성취할 때 만족이 있다. 권태에 빠지는 것은 도전도 없고, 성취도 없기 때문이다.
항상 꿈을 새롭게 하라. 아름답고 찬란한 꿈을 꾸라.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의 비전에 동역하고, 주님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이루는 일에 동참하는 꿈을 꾸라. 어떤 경우에도 꿈을 포기하지 말라.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은 어려워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가면 때가 되어 반드시 꿈은 이루어진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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