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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로부터 탈출

요한복음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918 추천 수 0 2012.11.17 13: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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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4:46-54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2012.9.29 열린교회(용인) http://www.yeolin.or.kr 
탈출(11) 한계로부터
요한복음4:46-54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나이를 물었답니다. 다 큰 아이가 아버지의 나이도 모르는데 기가 막혀 아버지가 소리쳤답니다. "아니 너는 벌써 10살이나 된 놈이 아빠 나이도 몰라?" 그러자 아들이 이야기했답니다. "아빠, 저 11살이에요." 그러자 아빠가 더 큰 소리로 말했답니다. "11살이나 된 놈이 아빠 나이 모르는 건 더 나빠." 우리 아버지 성도님들 아들 나이 알고 있습니까? 부모님 나이 알고 있습니까? 저는 잘 모릅니다. 장모님, 장인, 어머니, 아내, 아이들, 어느 때는 제 나이도 잘 모릅니다. 계산해 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전화번호는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저는 외우고 있는 것이 저희 집과 교회, 제 번호밖에 모릅니다. 사람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알고 있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모르는 것은 모릅니다. 인간은 아는 것이나, 경험하는 것이나, 능력이나, 보는 것이나 다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의 한계 중에 대표적인 한계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봅니다. 첫째, 수명의 한계, 둘째, 인식의 한계, 셋째, 능력의 한계입니다. 이 세 가지 한계 때문에 인생은 불행해 하고, 괴로워하고, 기쁘게 살지 못하고, 때로는 절망하며, 근심과 걱정, 염려로 살아갑니다. 이런 한계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이런 한계를 탈출할 수 있을까를 말씀을 통하여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누구나 다 병들고 죽습니다. 이 생명의 한계, 수명의 한계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요?
1. 우리는 믿음으로 생명의 한계를 탈출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46절에 왕의 신하가 나옵니다. 여기서 “신하”라는 말은 왕자나, 왕의 경호를 맡아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이든지, 왕을 돌보는 사람을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당시 왕은 헤롯이기 때문에 막강한 권력을 가진 헤롯의 신하라면 남부럽지 않는 권력과 부를 누리고 살았을 것입니다. 부족함 없이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사며 살았을 것입니다. 막강한 권력과 부를 통하여 웬만한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 일을 척척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권력자의 측근으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는 동해안 절경에 별장을 만들고, 전화 한 통화로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척척 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막강한 권력도, 그 많은 부도, 그 많은 지식도 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한계, 수명의 한계가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온 것입니다. 고치지 못하는 질병, 죽음의 한계 앞에서는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와야 인간이 변합니다. 자신을 진지하게 직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 이 수명의 한계를 탈출하기 위해 어떻게 합니까? 아마 의사를 찾아다니면 수많은 돈을 들여가며 백방으로 고쳐 보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허사였습니다. 자기가 못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고치지 못하는 것 의사에게 도움을 받으면 질병을 고치고 죽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산수 문제 모르면 잘 아는 선생님께 물어보면 금방 답이 나옵니다. 10시간 혼자 고민해도 풀리지 않을 것 1분이면 해결됩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것 붙들고 아무리 고민하고 씨름을 해도 할 수 없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아무리 전문가일지라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죽음의 문제입니다. 죽음의 문제 아무리 산 속에 들어가 100년을 씨름해도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신하는 어떻게 합니까? 그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내 죽음의 문제 내가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죽음의 한계를 탈출하는 믿음의 시발점입니다. 어떻게 이런 믿음이 생겼는지 과정을 보십시오. 46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갈릴리 가나에서 결혼 잔치 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져 예수님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을 것이고 그 소문을 이 사람도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가면 자신의 아들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가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먼 거리입니다. 자신이 사는 곳에서 34KM나 됩니다. 당시 상황으로는 아마 7시간을 갔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보다 훨씬 부자이고, 훨씬 권력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학식도 있었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당시 예수님과 비교하면 자신이 훨씬 신분이 높은 사람입니다. 자신이 훨씬 부자입니다. 자신이 훨씬 왕을 움직여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모든 자존심 내려놓습니다. 아들의 죽음 앞에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은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도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보이고 싶지 않은 곳 드러내야만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합니까? 정중하고 겸손하고 간절하게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항복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49절을 보십시오. “주여”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십니다. 이것은 대단한 고백입니다. 왕만이 자신의 주인이고 왕에게만 주라고 고백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자신 인생의 주인이라고 고백합니다. 주라는 말은 주인이고 구세주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는 것은 예수님이 구세주이고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통하여 자신의 아들을 살렸습니다. 이 사건을 오늘날 우리 시대에 적용해 보면 예수님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가게 만들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구세주이시고 우리 인생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우리의 생명이 이 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으로 이어져 수명의 한계를 탈출하게 됩니다. 오늘날도 수명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은 이 길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받아들이면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 3:36)”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40)”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요 6:47)”
생명의 한계를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 밖에 없습니다. 이 시간 예배드리시는 우리 성도님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영생함을 모두 다 받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아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아이큐가 좋고 많이 배워도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아는 것의 한계, 인식의 한계를 탈출할 수 있겠습니까?
2. 우리는 말씀으로 인식의 한계를 탈출할 수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왕의 신하를 보십시오. 예수님께 나와서 주라고 고백하며 예수님이 자신의 아들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시 줄 믿고 요청합니다. 생명의 한계를 탈출하게 해 주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4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표적을 보아야 하고 기적을 보아야만 믿는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것만 알고 그것만 믿으려고 합니다. 내가 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불을 내려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지금 벼락을 쳐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전산과를 우수하게 나온 어느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권사님 아들과 결혼하여 교회에 다니게 되었는데 도무지 말씀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모세가 홍해를 건넜다는 것이 만화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한나도 아이를 낳지 못했지만 기도하고 낳았다고 가르치면서 교회에 가서 기도하자고 했답니다. 그러자 며느리가 “어떻게 기도하면 아이를 낳아요”라고 말했답니다. 시어머니가 당부하기를 "아가야~ 목사님이 기도하실 대 무조건 '아멘' '아멘' 해야 된다. 그러면 원하는 아기를 가질 수 있단다."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며느리를 데리고 가서 기도를 받는데 며느리는 한 번도 "아멘"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답니다. 다급해진 시어머니가 며느리 대신 연신 "아멘!, 아멘!" 을 외쳤답니다. 결국 기도 응답되었는데 몇 개월 후 시어머니가 임신을 해버렸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경험하고 체험한 것 아는 것만 믿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의도를 잘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께 요구합니다. 그가 요구한 것은 무엇입니까? 49절을 보십시오.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 오소서”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자기 아들에게 와서 무엇인가 해 주어야 나을 줄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사람의 인식의 한계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한 것처럼 표적과 기사를 보아야만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아들에게 가야만 치료될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인식의 한계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50절 크게 같이 읽겠습니다. 이 말씀이 저와 우리 성도님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시길 바랍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지금 염려와 걱정, 근심에 사로 잡혀 있는데 “가라 네 사업이 살아있다. 가라 너 망하지 않는다. 가라 너 일어날 것이다. 가라 네 가정 회복될 것이다. 가라. 네 아들 대학에 떨어질까 염려하는데 합격한다. 네 인생 불행해질까봐 염려하는데 아니다 행복해질 것이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예수님께서 한계 앞에 불안해하는 우리에게 이런 선포를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아니 황당합니다. 지금 자금 때문에 회사 문을 닫아야 하고, 지금 이 병원 저 병원 다 찾아 다녔는데도 나을 수 없다고 하고, 지금 내 아들 실력을 볼 때 대학도 갈 수 없고 취업도 할 수 없는데 무슨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십니까?”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녀를 위해 10년 동안 기다렸는데 지금 희망이 없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내 경험, 내 형편,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황당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식의 한계를 넓혀야 합니다. 생각의 한계를 넓혀야 합니다. 인식의 한계, 생각의 한계를 넓히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것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생각을 내 마음에 채우면 됩니다. 말씀으로 거듭나면 영안이 열리는 것입니다. 육안으로만 보던 것이 영안이 열려 더 심오하게 보게 됩니다. 심안으로 보던 한계를 뛰어 넘는 것입니다. 런던대학의 우주 물리학자인 보이드 박사는 전자 망원경으로 보면 은하계에서 약 2000억 개의 별을 볼 수 있지만 육안으로 약 10만개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눈이 좋아도 너무 미세한 것도 너무 큰 것도 볼 수 없습니다. 귀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큰 소리도 너무 작은 소리도 듣지 못합니다. 보청기를 끼면 들리지 않던 소리도 들리는 것입니다. 현미경으로 보면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보면 인식의 한계가 넓어집니다.
하나님의 생각으로 세상을 보면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것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천지 만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으로 세상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는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죽은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으로 죽은 후를 바라보면 죽은 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인식의 한계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사실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병든 자도 고쳐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모른다고 존재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전문가에 가 물어 보십시오. 얼마나 내가 모르는 세계가 많이 있습니까? 오늘 성경에 나오는 이 신하를 보십시오. 어떻게 인식의 한계를 탈출합니까? 50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말씀을 믿음으로 인식의 한계를 탈출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한 것을 아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가니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51절을 보십시오. 내려가는 길에 종들을 만났습니다. 종들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아이가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하도 신비하여 아이가 낫기 시작한 때가 언제냐고 물어 봅니다. 어제 7시에 열기가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시간으로는 오후 한 시입니다.
그 때가 어느 때입니까? 5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라는 말씀을 하실 그 때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나가다 보니까 시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고 했는데 말씀 믿고 나아가 보니까 실제가 나타난 것입니다. 서울역 가는 지도만 보고 갔는데 정말로 서울역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자기와 온 가족이 다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하면서도 너무 자기 경험 중심, 자기 인식 중심, 내가 복음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경험한 것, 알고 있는 것만 믿으려고 하기 때문에 자신의 인식의 한계를 뛰어 넘지를 못합니다. 말씀으로 마음의 한계를 넓혀야 합니다. 우리의 아는 세계는 한계가 있습니다. 앎이란 것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것만 전부인 것으로 알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편견이 생기고 선입견이 생기고 아집과 고집이 생깁니다. 이 한계를 뛰어 넘으려면 말씀을 전적으로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으면 아이가 고침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52절을 보십시오. 말씀을 믿는 믿음이 그대로 실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53절을 믿음의 조그마한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온 가족이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활활 타는 불꽃은 그 불꽃으로만 끝나지 않고 이웃 장작까지 불을 붙여 줍니다. 처음 믿음은 불신과 섞인 믿음이었습니다. 표적과 기사를 보는 것을 믿음으로 착각하는 그 믿음과 혼재된 연약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믿고 나아갈 때 예수님 앞에서 치료받고 온 가족에게 믿음을 불을 붙이는 능력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밤새워 고기를 잡았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어부입니다. 갈릴리 호수에 대하여는 전문가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라고 말씀합니다. 그 말씀 믿고 그물을 던지자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잡았습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한계를 지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한계를 확장해야 합니다.
과학자들이 인간의 심폐기능을 정밀 분석하여, 42.195 km를 2시간 10분 이내로는 뛰면 자동차 엔진이 터지듯 심장도 파열되어 사망에 이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러한 분석을 믿었다면 마라톤의 신기록 갱신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2시간 10분 언저리에서 가장 오랫동안 신기록이 나오지 않다가 호주의 데릭 클레이튼이 최초로 2시간10분대 벽을 허문 이후에 2011년 현재 마라톤 세계 신기록은 2시간 3분대이고 10분 이내에 들어온 선수들이 300명도 넘는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근육기능을 정밀 분석하여 사람이 가장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높이는 1미터 98센티미터가 한계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높이뛰기의 기록은 2미터를 넘지 못했으며 높이뛰기에 필요한 운동기구들도 다 2미터 이하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포즈메리라는 사람이 "왜 2미터를 못 넘느냐? 굳이 앞으로만 뛰어넘을 이유가 무엇이야? 뒤로 넘는 것을 한번 해보자" 해서 뒤로 넘었더니 2미터를 훌쩍 넘기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도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5:8)” 말씀 믿고 일어날 때 한계를 뛰어 넘었습니다. 유라굴라 광풍 만난 죽음의 위기에 처한 바울을 보십시오. 죄수의 몸이지만 선장과 자기를 호송하는 백부장과 거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큰 소리로 말합니다. "주께서 지난 밤 나와 함께 하셨다. 바울아, 네가 두려워 말라. 너는 반드시 로마에 가서 가이사 황제 앞에 서야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사도행전 27장 25절을 통해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말씀에 의거하여 보지 않고 믿고 나아가면 인식의 한계를 뛰어 넘습니다. 아브라함은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였지만 약속을 믿고 갑니다. 아들을 바칩니다. 그 때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체험을 합니다. 여호와 이레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증거로 주신 그 약속만 붙잡고 달려갔지, 그 약속의 성취를 그들의 생애에는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더 복되도다."
말씀으로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전문가의 말이라면 잘 믿지 않습니까? 그런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왜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현상에서 자신의 인식의 한계를 뛰어 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능력의 한계를 어떻게 탈출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공부를 잘하고 싶습니다. 잘 살고 싶습니다. 행복해 지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을 구제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좋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좋은 부모, 훌륭한 자식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능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3. 우리는 기도로 능력의 한계를 탈출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나오는 왕의 신하도 돈도 있고 권력도 있었지만 자식을 고치는 능력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능력의 한계 앞에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능력의 한계를 탈출하기 위해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아마 오늘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별별 수단을 다해 아이를 고치기 위해 힘을 다했을 것입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초월하려면 열심히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이 1등 기업을 만들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우연히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태생적으로 행복한 가정을 만들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뼈를 깍는 노력을 해야 능력의 한계를 뛰어 넘어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가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건망증이 심한 목사님과 전도사님이 같은 교회에서 사역을 하였답니다. 전도사님이 너무나 잘 잃어 버려 어느 때는 교회 전화번호도 잃어 버렸답니다. 목사님 급하게 심방을 갈 일이 있어 전도사님을 호출하여 교회 차에 몸을 실었답니다. 목사님이 차를 차고 눈 끔벅대며 고민하는 것입니다. 혼잣말로 “가만 있어봐! 지금 내가 어딜 가려고 이 차를 탔지?”그리고 전도사님이게 “전도사님, 제가 어디 간다고 목적지를 얘기 안했나요?”전도사님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으악! 목사님! 언제부터 타고 계셨어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전도사님이 캐비닛을 열다가 갑자기 번호가 생각나지 않았답니다. "목사님! 캐비닛 다이얼 번호가 몇 번인지 아세요?" 그러자 목사님은 한동안 위를 쳐다보며 뭔가 중얼거리다 캐비닛을 열어 주더라는 것입니다. 건망증이 심한 목사님이 캐비닛 비밀번호를 알아 열어 주는 것을 보고 너무 신비해서 "목사님, 하나님께서 캐비닛번호도 가르쳐 주시던가요?"라고 했답니다. 목사님이 "저기 천정에 번호가 적혀 있잖아요!" 하도 건망증이 심하자 캐비닛을 살 때 미리 천정에 비밀 번호를 적어 놓은 것입니다.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려면 천정에라도 적어 놓아야 합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능력의 한계를 조금은 탈출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야에서 일정수준을 뛰어넘는 방법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천재는 99%노력과 1%재능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해도 해도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신하가 해도 해도 안 되니까 어떻게 합니까? 자신의 능력의 한계 앞에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능력의 한계를 탈출하기 위해 무엇을 합니까?
4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갈릴리로 오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가서 무엇을 합니까? 예수님께 청하는 것입니다. “내려오셔서 내 아들을 고쳐 주소서” 오늘날 말하면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능력이 없습니다. 그 능력의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한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요구를 들어 주시기 않습니다. 대단한 권력자가 왔는데도 살갑게 대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 내가 가서 고쳐 줄께”라고 응답해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무시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지체하는 것입니다.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 권력과 돈을 가지고 교회에 왔는데 교인들이 본체만체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 때 신하가 그만 두고 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에게 한센씨 병을 고치기 위해 갔습니다. 그런데 나와 보지도 않는 것입니다.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시당하는 것 참지 못하지 않아요. 그 때 그냥 갔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 신하를 보십시오.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시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49절을 보십시오.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 오소서” 오늘날로 말하며 이루어질 때까지 응답받을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능력의 한계를 뛰어 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능력의 한계를 탈출하게 하는 것입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붙어가는 놈 있다”는 우스운 말이 있지 않습니까? 기도도 적당히 하지 말고 능력의 한계를 뛰어 넘는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고 말씀합니다. 엔드루 머레이는 중보의 기도는 인간의 무능과 하나님의 전능을 연결하는 고리라고 말했습니다. 조지 뮬러는 '기도는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는 최고의 방편'이라고 말했습니다. 뮬러는 기도를 통하여 불가능한 경험의 세계를 가능한 세계로 바꾸어낸 사람입니다. 히스기야왕도 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매여 달려 기도하므로 15년간 생명을 연장받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엘리야는 하늘에서 내리는 불을 체험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 7:7-8)"
자신의 한계를 느낄 때는 기도로 능력의 한계를 탈출해야 합니다. 귀신들린 간질병 환자를 고치지 못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자신의 한계는 예수님의 초청장입니다. 예수님이 만나자고 보내는 초청장입니다. 오히려 삶의 평탄함은 우리를 도태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환란의 또 다른 하나님의 축복의 얼굴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브닌나가 있었기 때문에 한나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가 있었기 때문에 모세가 위대해 지는 것이고 골리앗이 있었기 때문에 다윗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 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면 그 때 예수님께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사지마비의 중상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재활의학 의사로 거듭난 이승복 박사가 있습니다. 현재 존스홉킨스 의과대학병원 재활의학과 전문의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약사였는데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에 가서 아버지는 병원 청소부를 하고 어머니는 봉제공장에서 일하며 참으로 힘든 생활을 하였답니다. 여덟 살 나이로 이민을 가 영어를 못하니까 미국 아이들에게 무시를 당했답니다. 미국 아이들에게 천천히 큰 소리로 말하면 알아들을 줄 알고 말했는데 미국 아이들은 비웃고 상대해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모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체조 선수가 되어 금메달을 따 어렵게 사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싶었지만 연습 도중 거꾸로 처박혀 사지마비의 중상을 입었답니다. 고통과 분노, 두려움, 혼란, 죄의식으로 나날을 보내었지만 그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만났답니다. 한동안 절망감과 패배감에 젖어 있었지만 그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 후 그에게는 대단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련의 일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걸 확신했다고 합니다. 초자연적인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등을 짓누르고 있던 산더미 같은 벽돌이 한순간 사라졌답니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답니다. 하늘에선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렸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신을 발견했답니다. 그는 꿈을 가지고 도전하였답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뉴욕대를 거쳐 컬럼비아대학에서 공중 보건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다트머스대에서 본격적으로 의학공부를 시작, 수석졸업한 뒤 하버드대 인턴과정도 수석으로 마쳤다고 합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내 인생의 여정에는 고통과 불확실함, 두려움, 혼란, 죄의식, 분노 등이 늘 동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향한 지극한 사랑으로 이 모든 것을 소진시켜 결국 자신의 품으로 이끌었습니다. 나를 향한 치밀한 하나님의 계획을 확인합니다." "제게는 금메달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 오랜 갈망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 안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기도에 응답해주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삶의 현장에서 갖가지 한계에 부딪칠 때가 있습니다. 사업문제로, 인간 관계문제로, 자식문제로, 경제 문제로 질병문제로 나의 힘으로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장벽에 부딪칠 때가 있습니다. 이 한계는 우리의 보약이 될 수 있습니다. 깊은 계속이 있는 높은 봉우리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자신의 유리벽을 뛰어 넘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여 능력 있는 신앙인으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생명의 한계를 탈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인식의 한계를 탈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로 능력의 한계를 탈출할 수 있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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