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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의 ‘삐딱이들’ 2 -싸륵스

요한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769 추천 수 0 2013.03.09 23: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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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1-18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2.6.21 주일설교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초기 기독교의 ‘삐딱이들’ 2
요1:1-18

설교의 출발점은 여기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편안한 마음으로 신약성서를 읽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어느 날 마음에 작정을 하고 책상에 앉아서 마태복음부터 성경책의 순서대로 복음서를 줄줄 써 내려 간 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요한복음은 이 책이 나온 초기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읽혀진 게 아니라 그 반대였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이 아주 중요한 책인데도 불구하고(오늘에 와서) 당시대의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요한복음을 불온시 했습니다. 요한복음의 가치와 당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방향성이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편안하게 요한복음을 읽었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설교나 듣기가 낯설 게 느껴질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는 지금 요한복음을 낯설게 읽고 듣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할 때라야만 요한복음이 지니고 있는 중요한 의미를 찾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여러분은 요한 복음서를 펼쳐서 읽기 전에, 과거에 이 책이 낯선 신앙의 견인차 노릇을 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도 그 낯선 자취를 한 번 따라가 보아야겠다고 마음먹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좀 더 명확하게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이 시대 속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고, 어떤 교회 공동체를 세워 가야하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요한복음 1:1-18은 낯선 요한복음을 시작하는 실마리와도 같습니다. 우선 여러분이 보기에도 이 문장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복음서에 등장한 문장과도 다릅니다. 이 문장 속에는 아주 많은 비밀스런 의미와 상징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을 로고스라고 한다든지, 그 예수님이 본시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말은 그다지 특별한 표현은 아닙니다.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당시의 유대교나 로마 주류의 철학이나 영지주의 사상에서 그리 낯선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들도 ‘절대 진리’로서의 예수사상을 전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약간 다른 게 있다면, ‘빛과 어둠’으로 양분된 세계 인식의 표현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 ‘빛과 어둠’이라는 이 표현은 둘 중의 하나, 이것 아니면 저거라는 양극단의 설정입니다. 이것은 당시 그리스도교 내부의 급진파와 온건파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헌데, 우리에게 가장 의미심장한 표현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14절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되어 우리 가운데 살고 있다는 대목입니다. 로고스는 절대 진리, 하나님과 함께 있던 신이었습니다. 그런 로고스가 ‘육신’이 되어 우리 속으로 들어왔다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육신은’ 히브리어로 ‘싸륵스’라고 합니다. 몸이 아니라 ‘살덩이’, ‘고기 덩어리’, ‘정육’을 의미합니다.

어느 복음서에서도 이렇게 예수를 말한 적은 없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아주 천박하기 그지없는, 불경스럽게 느껴질 만큼 섬 뜻한 표현이 아닙니까? 예수를 표현하는 방법으론 지금도 혁명적이라고 느낄 만큼 과격합니다. 싸륵스는 거룩한 존재가 아니라 철저히 세속화된 몸입니다. 이 몸은 그럴싸한 말로 꾸미기가 곤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쓰는 ‘그리스도가 낮고 천한 우리의 몸(소마)’을 입고 오셨다‘고 할 때, 그 ‘소마=육신’은 영웅의 몸이라든지, 예언자의 몸이라든지, 몸은 몸이지만 나의 살덩이와는 다른 몸 같은 표현으로 대체가 가능합니다. 그러난 요한복음의 이 ‘몸=싸륵스=살덩이=정육’은 그저 몸일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살덩이’라는 표현은 현실에 대한 냉정한(그 어떤 교리나 교화가 작용하지 않은)평가입니다. 당시에 이해되었던 ‘예수’라든지, ‘그리스도’, 또는 ‘로고스’가 알 듯도 하도 모를 듯도 한 ‘이상적’인 것이었다면 ‘싸륵스’는 알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존재 상태를 말하는 것이 됩니다. 신비스러움을 걷어내고 인간 삶의 현장에 곧바로 예수를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모두들 그리스도교에서 예수를 하나님처럼 신성화 하려고 하고 있는데, 그 분이 그런 분이 아니라 신은 신이었지만 살덩이가 되어 이 땅에 우리 속으로 들어오셨다고 한다면, 모두들 기겁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 ‘그 로고스가 싸륵스가 되었다’는 말은 엄청나고도 어처구니없는 사상인 것입니다. 그걸 요한복음 공동체가 믿고 있었고, 그렇게 쓰고 있었으니 그걸 누가 좋아라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삐딱이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교회는 로고스가 육화가 되어 소마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몸이 되신 것이지, 살덩이가 된 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장로와 교사와 예언자와 지도자들은 ‘승화된 육체’였습니다. 몸은 몸이지만 세상의 사람들이 지닌 그 몸과는 다른,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한 그런 교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들 믿었습니다. 승화된 육체란, 하나님 그 자신은 아니지만 그 하나님으로부터 파생된 그런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여간,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그런 존재가 예수님이며, 지도자들이기 때문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들에게 물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소마’의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건 무엇을 위해 필요했을까요? 그렇습니다. 교회가 제도화 되려면, 뭔가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모두 평등한 가치를 가진 존재여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당시의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지도자는 모든 갈등의 해결사였습니다. 재판관이었습니다. 옳고 그름을 판결 할 수 있는 예비적인 거룩한 몸을 가진 존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진짜 그렇습니까? 감독이나, 목사나, 기도를 많이 해서 신령해진 어떤 사람의 몸은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과 구별이 있는 몸입니까? 그들의 정육(살덩이)은 그렇지 않은 이들의 살덩이와 다릅니까? 그들이 아무리 그렇다고 우겨도 그들 또한 추잡한 욕구를 떨칠 수 없는 약한 육체가 아닙니까? 어떤 육체가 싸륵스 이면, 그 누구도 그 싸륵스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른 육체, 승화된 소마를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요한 공동체가 ‘예수의 몸이 싸륵스가 되었다’고 선언했다면, 그들 또한 예수를 교리화 하려고 그랬던 것일까요? 로고스를 소마화 하는 것에 대하여 싸륵스로 교리화 하려는 거 말입니다. 아니면, 예수가 이 땅에 오시긴 했어도, 몸을 입고 오시긴 했어도 우리의 몸과는 다른 존재라고 교리화 해 두고, 그걸 통하여 누군가가 그 중간 존재로 머물러 진리를 훼손하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겨서 그랬던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로고스가 싸륵스가 되었다”는 말은 그런 교리적인 주장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주장의 효력을 절멸 시키는 것입니다. 기존의 철학적 사유를 빌려서 상투적인 교리나 나열하는 것으로만 보이는 요한복음의 처음 문장은 이 대목에서 통념을 전복시킵니다. 기존의 교회가 전파하던 가치들이 이 대목에서 교란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이 성전 기물을 두드려 부수며 ‘이 강도의 소굴을 허물어 버리고 삼일 만에 내 집을 짓겠다’고 하셨던 것 같은 일이었습니다. 당시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종교양식과 가르침과 방향성을 허물어 버리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교의 해체를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담고 있는 배경입니다.

자, ‘이 모든 일을 증언하고 또 사실을 기록한 사람이 바로 이 제자이다’라고 요21:24이 말합니다. ‘이 제자’는 지난 주 말씀드린 그 ‘주님이 사랑하던 제자’를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 제자가 과연 폴리갑이 말하는 대로 예수님의 남자 제자였던 요한일까, 아니면 몬타누스 그룹이 말하는 막달라 마리아, 댄 브라운이 말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증언했다는 그 여자일까요? 과연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이라면, 무슨 억하심정으로 다른 제자들이 꾸려가고 있는 다른 신앙 공동체에 찬 물을 끼얹듯 이런 글을 쓴 걸까요?

그런데 맨 마지막 장면인 20:30-31을 보세요. 거기 내용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말하고 있는데, 예수를 똑바로 믿게 하려고 기록한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하간, 주님이 사랑한 제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요한공동체는 초기에는 회당 내에서 활동하던 예수 추종자들이었을 게 분명합니다. 그러다가 주후 80년 어간 이후, 그러니까 유대전쟁(66-72/로마로 부터의 독립전쟁/110만 명이 사망/6.25 전쟁 사망자는 150만 명)으로 유대교가 괴멸됩니다. 그러자 유대교 체제를 빠른 시일에 복원 하려고 했을 때, 회당 안에 있던 예수교 추종자들이 추방이 됩니다. 회당에서 축출된 이들은 다양한 폭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그들의 기본 성격을 구성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것은 자유 없는 진리, 권력의 근거가 된 거룩한 영, 위계적인 배타적인 질서, 그러한 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제의 등에 거부감을 갖게 됩니다. 그들은 회당에서 추방을 당하면서 그때까지 멸시 당했던 사마리아 인들의 처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알아채는 거죠. 그들이 그렇게 주장했던 인간 배척사상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를 말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그들이 회당에서 추방을 당할 때, 세례 요한 그룹도 같이 추방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이들과는 또 다른 이해를 가진 그리스도교 집단이었습니다. 그들과도 관계정리를 하자면 그들만의 신학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회당에서 그리스도교 추종자들이 추방을 당할 때, 요한공동체 같은 경우엔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려 좌파적인 공동체로 움직여 갔지만, 주류계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회당의 방식을 모방하면서 회당과 경쟁하게 됩니다. 그게 그리스도교의 유대교화입니다. 이걸 요한공동체가 봅니다. 그들의 시선에서 주류계의 변화는 교회의 ‘유대교화’입니다. 그것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변절이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요한계 공동체는 유대교 회당을 모방하면서 자립을 꾀하던 그들을, 제도화의 길로 가는 그들을 극렬하게 비판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탄생된 게 요한복음입니다.

요한계 공동체(요한복음서에서)는 ‘영’을 자유로운 힘이라고 묘사합니다. 이것은 바울의 신학을 교회화하면서 주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교회를 ‘예수의 몸’이라고 주장하고, 교회의 직분을 체계화하려고 하는 운동에 대해서, 거부하는 뜻으로 ‘영’은 그렇게 갇히고 조정되는 게 아니라 ‘자유의 존재’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주류계 신학, 교회와 교권 중심의 성령 이해에 대한 저항입니다.  

그런데 이런 저항과 해체를 위한 신학을 갖다 보면 그들 자신의 공동체를 유지가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해체가 전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표현되는 게 [보혜사 성령]론입니다. 각 사람에게 내리는 주의 영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교처럼 변해가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부정하고, 대신 개인적으로 임재하는 보혜사 성령에 의해 믿는 사람 개개인은 성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 요지인데, 차츰 말씀드리게 됩니다.

이런 엄청난 상황과 사건 속에서 기록된 요한복음을 통해 우리는 어떤 신앙적인 성찰을 얻게 될까요? 다음 시간을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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