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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그리스도교의 ‘삐딱이들’5 -보혜사

요한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459 추천 수 0 2013.03.09 23: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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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4:16-17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2.7.22 주일설교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초기 그리스도교의 ‘삐딱이들’5
요14:16-17

우리는 지금 요한복음이 말하는 예수의 정신을 되읽어내고 있는 중입니다. 그동안 ‘메시아’에 대한 이해, ‘성령’에 대한 이해가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와는 달랐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난 시간에, 요한복음이 이해하는 성령은 바람 같은 존재로서, 어떤 제도에도 규격화 될 수 없는, 권력도, 부귀도, 그 어떤 성공의 가치에도 연연하지 않고 자유로이 떠돌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요한복음이 이해하는 성령을 우리는 ‘쿨한 영’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쿨’한 영은 ‘가장 유대스러운’존재인 니고데모를, 아니 유대교적 신앙을 비웃는 데는 더 없이 적격이었습니다. 유대사회란, 니고데모란, 규격화된 사회의 제도적인 신앙의 틀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해야 하는 초기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이런 성령의 이해는 공동체에 유익하기 보다는 공동체성을 역화 시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렇게 각자 자기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사건을 체험하게 되면 구태여 ‘교회’와 같은 공동체를 구성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유대교 회당에서 축출되어서 뿔뿔이 흩어져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어떻게든 한데 뭉쳐서 상처를 보듬고, 위로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마냥 ‘쿨’한 자유자로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제도적인 안전감으로서의 ‘교회’가 필요했습니다. 그렇다면 단지 ‘쿨’한 성령이어서는 안 됩니다. 뭔가 그 이상의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17장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에 하셨던 고별설교입니다. 거기에 보면 바로 ‘쿨’한 성령을 넘어서는 어떤 영적 요구가 듬뿍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고별 설교의 대목에 등장하는 것이 ‘보혜사 성령/파라클레토스’입니다. 보혜사 성령 들어 보셨죠? 우리는 그저 여타 복음서에 나오는 ‘성령’과 요한복음에 등장하는‘보혜사 성령’이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보혜사’란 말 뜻 그대로 ‘협조자’입니다. 이 성령은 그야말로 ‘협조자 성령’인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쿨’한 성령이 해결 할 수 없는 영역(제도, 규격, 형식의 해체를 아우를)을 전환시키는 성령인 것입니다.

16-17을 한 번 다시 찬찬히 보시기 바랍니다. 보혜사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대목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그분’은 다른 파라클레토스입니다. 그것은 예수 자신입니다. 그리고 그가 떠난 뒤에는 다른 파라클레토스가 온다는 뜻입니다. 달리 말하면, 이미 예수가 세상을 떠난 이후, 새롭게 시작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다른 파라클레토스가 그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니, 다른 파라클레토스가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형성하도록 돕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그 공동체 안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안에 머물다’는 말은 바람 같은 이가 공동체 구성원 각자의 존재 내부에 스며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25-26을 보세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내부에서 ‘그는’공동체 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직접 개인교수하고 있습니다. 개인지도 말입니다. 뭘 가르쳐 주느냐? 예수가 했던 말, 예수의 정신을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어서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는 없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도 예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를 믿고 따라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로 ‘보혜사 성령’이 눈앞에 없는 예수의 말과 정신을 다시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개인지도를 하는 보혜사 성령으로 인하여, 유대교 회당에서 쫓겨나는 위협과, 로마의 이스라엘 정복에서 겪었던 폭력적인 아픔들을 싸매주는 공동체적인 치유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게 27절에 나오는 ‘평화’입니다. 이 또한 자유로운 성령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개인지도를 하는 파라클레토스로 말미암는 은총인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처음 시간에 ‘제도적 안전감’과 존재적 안전감‘이야기를 드렸어요. 초기 기독교 당시의 교회공동체는 제도적인 안전감을 주기 위해 직제화 제도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요한공동체는 직제와 제도를 해체하고 대신 ’파라클레토스‘가 각자의 내면에서 그 제도적 안전감을 대체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요한 공동체는 제도화된 성령을 해체한 뒤 발생하는 취약한 공동체성을 ‘보혜사 성령’으로 보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공동체 상황에서 보혜사가 하는 일이 바로 에이레네 즉 ‘평화’인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의 평안이기도 하며 동시에 공동체의 안위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앞서 요한공동체가 지적하는 유대교를 닮은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주고자 하는 평화와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 겁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도화되고 규격화된 성령을 해체하는 것에 겁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14:30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얼마 후에는 말을 주고받지 못하게 되고, 곧 뒤이어 임금 즉, 두목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건 굉장히 의미심장한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곧 세상의 종말이 와야 하는데, 예수님이 돌아가신 즉시 곧 그래야 하는데, 종말은 오지 않고 악한 세력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니 더욱 강한, 더욱 견고한 세상의 세력이 이스라엘,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종말에 비추어 볼 때 굉장히 절망할 수밖에 없는 사태였던 것입니다. 너무 악의 세력이 강해서 암울한 상황이 쉽사리 극복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이럴 때 사람들이 평화를 누리려면 악의 세력이 완전히 제거되어야 평화가 되는 건지, 아니면 그런 외부적인 상황 속에서 그 악을 견뎌내는 내적인 평화가 있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뒤이어 나오는 33절의 말씀입니다.

이 대목에서 ‘내가 세상을 이겼으니 너희도 세상을 이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이기라는 것이죠? 세속적인 성공에 만취하라는 말인가요? 이 말씀의 뜻을 알려면 말씀의 배후를 알아야 합니다. 그저 세속적으로 위안이나 받으라는,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을 때 위로나 하려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배후로서 우리는 사도, 감독, 장로, 집사, 교사, 예언자들, 지도자라는 역할 분화를 넘어서 ‘직제화’되는 교회의 제도화를 떠올려야 합니다. 앞에서도 누누이 말씀 드리는 것처럼, 당시 교회의 제도화는 유대교의 제도화에 대한 경쟁적인 모방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교회의 직제, 쉽게 말해 계급화가 과연 세속사회의 권위와 무관할까요? 지금 우리의 교회들이 지니고 있는 제도로서의 직제, 목사, 장로, 권사...이런 직제가 세속의 권위화 과정과 아무 상관이 없느냐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죠? 알게 모르게, 또는 노골적으로  이런 직제 안에 위계에 대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겁니다. 바로 이런 직제의 세속적 욕망성에 대해서, 그 제도화의 성공주의적 욕망의 틀에 대해 요한계 공동체는 파라클레토스, 직제나 권위로 교회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개별적으로 예수의 말씀과 예수의 정신을 기억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외부 여건과 상관없이 누리는 평화의 비결이라는 것이죠. 악한 세상에서 평화는 어떤 영적 권위의 사람이나, 제도나, 직제가 주는 게 아니라 ‘파라클레토스’가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제도를 만들고 권위적인 직제를 만드는 것은 예수를 대체하는, 예수가 돌아가신 다음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의 실제를 어디서 찾을까 할 때 교회를 만들고, 거기에 직제와 제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때 교회는 하나의 제도이고, 그 공동체에서 예수를 대행하는 존재들이 필요한데 그게 직제입니다. 일종의 예수를 대체하는 외적인 틀이죠. 제도와 직제가 말입니다. 그러나 파라클레토스, 보혜사 성령은 그런 외적인 틀이 아닙니다. 파라클레토스 인간 내면에서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도록, 또한 겁먹지 않도록(14:27)’하는 힘입니다. 유형의 실체가 아니라 무형의 실존입니다. 즉 각 사람의 내면에서 예수를 대체하는 것입니다. 각각의 사람들 속에서 그이의 가르침과 정신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지, 사도나 예언자 같은 소위 ‘거룩한 직위’의 사람들이 행하는 설교나 예언을 통해 그 가르침을 상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재자 없이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의 내부에서 떠올리게 하는 이가 보혜사성령인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직제화 된 유대교와 그것을 따라가는 주류 그리스도교 초기 공동체에 대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15:26-27을 보세요.
보혜사 성령은 뭘 하는 분이냐?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선물을 주는 이가 아니라 증언하는 존재입니다. 요한공동체의 과제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어떻느니 하는 그런 게 아니라 오로지 지금은 계시지 않는 예수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증언이란, 예수가 극복하고자 했던 세상의 악, 그 숨겨진 악을 드러내는 것이며, 예수가 보듬고자 했던 고통, 그 감춰진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증언’입니다. 곧 ‘증언’은 ‘예수가 우리를 위해 죽었다더라’그런 게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는 악한 두목(임금)과 그의 논리에 저항하는 예수의 실천 그 자체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교 회당 체제나 초기 주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직제화에 목말라 했다면, 요한공동체는 예수가 목말라 했던(내가 목마르다한 그 목마름)증언, 바로 그것을 목말라 한 것입니다.

그래서 16:8이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보혜사가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의 잘못을 가르치실 것이다.”

정리하자면, 요한복음 내에서 영을 묘사하는 언어는 두 개입니다. 하나는 ‘바람 같은 이’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지금 우리가 알게 된 ‘보혜사’입니다. 앞의 바람 같은 ‘성령’은 제도나 직제를 해체하는 영이고, 뒤의 ‘보혜사’성령은 해체된 체로 내버려 두면 안 되니까(공동체가), 그 외형적인 제도화 대신에 각각의 존재를 규율하는 ‘내면의 제도화’를 추구합니다. 그래서 두 가지 이해의 성령은 하나로 합류될 수 있는 겁니다.

요한은 공동체는, 교회는 모름지기 이렇게 외형적인 신앙은 해체되고(그것은 세상의 권위와 욕망을 따라 가는 것이니까), 각각의 믿는 사람들의 내면이 알차게 예수로 가득 채워지는, ‘내면의 제도화’가 바람직하다고 본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과 거기에 속한 사람들을 보고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습니다. 외형적인 제도화의 껍데기를 말씀하신 것이죠. 그러면, 오늘날 이 시대의 교회와 믿는 사람들을 보고 ‘회칠한 무덤’같다고 할 때, 거기에 반론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되겠어요? 그만큼 외식적이고, 외형적이고, 제도적이고, 세속적인 권위와 욕망의 탈을 교회와 사제가, 성도들이 가면처럼 쓰고 산다는 것이죠. 바로 이런 때, 우리가 권위주의, 교회의 직제가 갖는 계급적 이해의 폐단, 이런 것들을 해체하고, 각각 그 내면에서 가르치는 성령, 보혜사의 증언을 따라 예수를, 예수의 삶과 정신을 똑바로 받아들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성령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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