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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의 ‘삐딱이들’8 -해방의 복음

요한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555 추천 수 0 2013.03.09 23: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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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6:22-27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2.8.23 주일설교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초기 기독교의 ‘삐딱이들’8
요6:22-27

지난 시간에 우리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이야기가 다른 복음서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한복음에만 유월절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했다는 것
*요한복음에는 저녁이라든지, 배가 고픈 상황 설명이 없다는
*군중들에게 빵을 먹이자고 예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는 것
*다른 복음서에서는 제자들이 빵을 내놨는데 요한복음에는 어린아이고, 그리고 그 소년은 노예와 같은 비천한 아이라는 것
*그 빵은 성만찬에 쓰는 고급 빵이 아니라 예전에는 쓸 수 없는 그런 떡덩이라는 것
*요한복음은 그저 감사기도를 드린 반면에 다른 복음서는 축도를 했다는 것
*다른 복음서에서는 ‘하늘을 우러러’ ‘떡을 떼며’하는 수사가 있는데 요한복음에는 없다는 것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빵을 직접 나눠주는 반면 다른 복음서에서는 제자들이 나눠준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이제 이런 차이들을 22-27과 연관시켜 다시 보려고 합니다. 신약의 4복음서 중에서 6:22-27은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앞의 기적이야기에서의 대화자는 주로 예수님과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22-27의 대화에는 예수님과 군중들입니다. 군중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다음에 거지반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해서 그들은 예수를 왕으로 추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는 슬그머니 산으로 사라집니다.

군중들은 눈에 불을 켜고 예수를 찾았겠죠. 그러다가 건너편에 있는 예수를 찾아냅니다. 그리고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26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 중에 ‘빵을 먹고 배불렀다’입니다. 지금 군중들은 초기 그리스도교가 만들어가는 예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자들은 이 사건을 성만찬과 연결 지으려고 하는 반면에, 군중들은 다른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기적 사건을 보면서 그를 유대인의 왕으로 옹립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군중들은 당시의 제도화되어가는 종교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정치적인 희망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 이양반이면 얼마든지 로마를 갈아엎고 새 나라를 세울 수 있겠구나’하는 그런 희망 말입니다. ‘빵을 먹고 배불렀다’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그런 의미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빵을 먹고 배불렀다’는 말씀은 그와 같은 군중들의 속셈에 동의를 하신 게 아닙니다.  

요한계 공동체는 제도화되고 예전화 되어가는 유대교체제나 그것을 모방하려는 초기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제도와 예전을 만드는 이유는 어떤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물어 봅시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그냥 모두들 삶을 통해 예수 믿는 삶을 살면 되는데 뭔가 제도와 예식을 만든다면 그것은 왜일까요? 뭔가 그 속에 욕구가 있어서 그것을 충족 하려고 껍데기를 씌운다는 것입니다. 유대교가 제도화 되고, 기독교가 그것을 모방하여 제도도 만들고 예전도 만드는 것은 군중들의 배고픔을 덜어보려는 게 아닙니다. 빵을 나누는데 무슨 예전이 필요합니까? 그건 그냥 나누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배가 불렀다’는 말씀과 ‘썩을 양식’이라는 표현은, 그들이 뭔가 승리와 성공에 대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보고 있으신 겁니다.

이것이 요한공동체가 다른 공동체와 다른 것입니다. 요한 공동체는 권력을 증오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위장하고 은폐되어 있는 욕구를 꿰뚫어 보는 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단지 요한공동체가 당시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삐딱한’것만이 아니라, 그들은 사건과 사물을 직관하여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굉장히 심오한 공동체였다는 뜻입니다. 저는 우리 공동체가 이 시대 가운데서 그런 심오한 눈을 가진, 삶으로 예수를 고백하고 증언하고, 거짓과 허위를 꿰뚫어 볼 뿐만 아니라, 숨겨진 욕망을 경계하고 살아가는 이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요한 공동체는 신앙의 지적 수준만이 높은 게 아니라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여력도 만만치 않는 인물들입니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누군지 봅시다.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 나사로, 마리아, 마르다, 가야바의 장인인 익명의 제자(18:15), 가버나움 왕가의 익명의 관리(4:36)등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지식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상류층의 사람들입니다. 품격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은, 그들의 신앙의 깊이가 대중적이지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런 품격 높은 사람들은 주로 예수와 격조 있는 대화를 이끌어 갑니다. 반면, 하류 계층의 사람들은 요한복음의 주된 행위자가 아니라 대체로 수혜의 대상으로 등장합니다. 요한복음이 가진 자유의 힘은 이들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여하튼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그들 속에 숨어있는 일반적인 욕망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좀 더 요한공동체의 신앙 가치와 정신을 살펴보려면 28-40절을 이어서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핵심어는 ‘일하다’입니다. 이 표현에서 군중들과 예수님의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예수님은 앞에서 군중들이 사고하는 정치적인 메시아 주의, 요즘으로 치면 안철수 원장에게 거는 기대 같은 걸 ‘썩을 양식’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군중들은 다시 2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우리가 도대체 뭘 해야 하느냐?” 즉,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예전화된 신앙의 허위를 문제시하자 군중들은 그것을 정치적인 맥락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를테면, 제가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비판을 하면 누군가 저를 ‘야당’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야당에서는 저를 자신들의 동지라고 생각하겠죠. 그럴 때 나는 다시 그 야당조차도 비판을 하므로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군중들이 위와 같이,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도대체 뭘 해야 하느냐?”하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즉각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다”합니다. 그러자 다시 군중들이 묻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당신이 한 일이 우리에게 떡을 먹인 일 아닙니까? 그것은 모세처럼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가신다는 뜻이 아닙니까?” 바로 그일, 떡을 먹인 그 일이 정치적인 변혁의 시발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게 30-31절의 말씀이죠.

예수님의 대답이 뭘까요? 33-35절을 보세요. 모세와 같은 정치적인 변혁을 이루는 것도 아니고, 유대 종교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 세상을 어찌해 보겠다는 혁명가의 빵은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을 군중들에게 주는 게 아니라 대중의 생명의 권한을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안철수가 국민들에게 생명을 주는 걸까요? 아니면 국민들의 생명을 장악하려는 걸까요? 그게 속셈이지 다른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은 다른 속셈이 깔리지 않고 오로지 “국민에게, 군중에게 생명을 되돌려 주는 일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게 오병이어 이야기의 본질인 것이기도 하고요.

41-59절은 이런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 항의자가 군중들이 아니라 유대인들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한 말에 화가 난 것입니다. 제자들 중 일부는 무리를 떠나기도 한 것으로 60-71절 사이에 기록됩니다. 성만찬 이야기는 막14:22-25, 마26:26-29, 눅22:15-20, 고전 11:23-25에 나오는데, 모두 예수의 마지막 만찬에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만찬이 성만찬의 기원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들 복음서는 성만찬이 유월절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성만찬을 예수님의 죽음과 연결된 식사 의식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이들 복음서의 성만찬 이야기가 조금씩 다릅니다. 가장 오래된 텍스트인 고전11장에 따르면 빵을 나눔-식사-잔을 나눔의 순서로 예식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바울이 이런 관행을 바꿉니다. 11:34에, 식사가 문제가 되자 그걸 뺍니다. 그리고 뒤이어 2세기 초에는 말씀 예배와 만찬 예배로 나뉘어집니다. 이렇게 신앙은 그 언어에서(예전을 만들게 되면 그 언어부터 달라진다), 복장에서 구별이 생깁니다. 그러면서 점점 종교가 삶과 유리되기 시작한 겁니다. 성만찬의 4 본문 가운데서 누가복음은 바울과 마가복음에 의지합니다. 마태복음의 마가복음에만 의지합니다. 이런 정황들로 볼 때 누가나 마태, 마가는 서로를 의지해서 성만찬 예전을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바울에게선 성만찬이 유월절 식사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을 유월절 식사와 연결 지은 것은 서기 70년 이후 예수를 마가복음에서 시작하여 주류기독교가 ‘예수전’을 쓰면서 시작된 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과 누가는 ‘몸’과 ‘피’앞에 ‘여러분을 위하여’라는 한정사를 붙입니다. 성만찬을 희생적인 예수의 죽음과 연관지우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에는 ‘여러분을 위하여’가 없는 대신에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로 보건데 아주 일찍부터 예수의 죽음과 성만찬은 뗄 수 없이 연결 지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여하튼, 마태, 마가, 누가, 바울의 공동체는 서로 연관이 되면서도 조금씩 다른 성만찬 전례를 통해 예수 운동의 예배 관행을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예전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전화가 되는 과정에서 유대교 전통이 그대로 흡수 해석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점을 요한공동체는 간과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고 구분 짓는 유대의 율법으로부터 해방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를 믿고 따르는 공동체가 세월이 흐르자 다시 유대교 같은 제도, 예식, 계급을 만들어가고 있었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다시 종교 제도의 울타리 안으로 가두게 되었습니다. 그 일례가 ‘성만찬 예전’이었고, 그 예전의 본문 사건으로 쓰는 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요한 공동체는 말하는 겁니다. 예수를 진정으로 믿고 기리는 일이란, ‘성만찬 예식을 잘 지키는 종교 행위’가 아니라 일상에서 누군가를 위해 자기 몫의 식량을 나눠주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게 오늘날 우리의 기독교 신앙이어야지, 성만찬 예식이 기독교신앙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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