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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

요한복음 이익환 목사............... 조회 수 2361 추천 수 0 2013.03.15 21: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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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6:22-35 
설교자 : 류공석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하나님의 일
요한복음 6:22-35
2007. 7. 14.(토) 텔아비브 욥바 교회

 

한자를 보면 참 재미있는 글자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식구’라는 글자입니다. 한자로 ‘식구’가 어떻게 생겼습니까? 먹을 食, 입 口입니다. 식구가 뭐냐, 밥을 먹어야 되는 입이 몇 개냐 그런 뜻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자녀 셋이면, 밥먹는 입이 몇 개? 다섯 개입니다. 그 다섯 개의 입을 먹여야 합니다. 그것이 식구입니다. 그만큼 이 먹는 것이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왕도 백성들을 배부르고 등 따시게 해야 성군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렇게 독재를 하고 자유와 인권을 억압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대로 배고팠던 이 나라 백성들에게 일년 내내 쌀밥을 먹을 수 있도록 단기간에 경제 부흥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먹고사는 것이 괜찮지만, 과거에는 먹는 문제가 그리 쉬웠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과 3-40년 전에는 보릿고개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저 어릴 때만 해도 봉지쌀을 사먹었습니다. 쌀가마니나 20kg짜리 쌀부대는 잘 사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지 그 때는 거의 봉지쌀이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 도시락은 7:3이었습니다. 뭔지 아시죠? 쌀 70%, 보리쌀 30%. 이것은 권장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이 점심시간 때마다 꼭 검사했습니다. 손에 회초리들고. 그 때는 7:3 안 지키면 맞았어요. 어떤 경우에는 도시락을 압수 당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생들은 잔꾀를 써서 도시락 위에만 7:3의 혼식으로 얇게 까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도 어떤 선생님들은 기가 막히게 잡아내요. “자 이제 도시락을 뒤집는다. 실시!” 그러던 때가 있었어요.

  참으로 예전에는 먹을 것이 넉넉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시는 더 했을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일부 권력층이나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하루 하루 입에 풀칠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장정만 오천명을 먹이신 놀라운 기적을 예수님을 통해 보았습니다. 아마 그들에게는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 분만 따라다니면 이제 먹을 것 걱정할 것 없다. 아니 아예 이 분을 왕으로 삼아서 우리나라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자’ 생각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오병이어의 이적 후에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헤매다 그 다음날 가버나움에 들어가 예수님을 만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 여기저기 다니다가 드디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습니까?”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반가워하는 무리들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으며 그들이 소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꿰뚫어 보셨습니다. 즉, 이들이 예수님을 그토록 찾은 이유는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베푸셨던 그것, 빵에 있었음을 아셨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었던 그들은 오늘도 무언가 먹을 것을 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서 예수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었고 오직 먹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반기는 무리들을 보시고 냉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썩을 영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27절)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라’는 말씀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빵 조각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다니지 말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으라는 뜻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물질적인 것들을 얻기 위해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축복 자체가 목적이 되고, 병고침을 받는 것이 목적이 되고, 무언가를 얻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도사 시절에 섬기던 교회에서 교회 앞에서 조그만 가게를 하던 남자가 있었습니다. 전도대로 활동하던 어느 권사님의 전도로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한 2달인가 나오더니 교회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알아봤더니, ‘교회 다녀도 별로 잘 되는 것 없어서’ 안나온다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면 복도 받고, 장사도 잘 되고, 집나간 부인도 돌아오고, 일도 잘 풀릴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서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사람은 교회를 다녔지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다닌 목적이 현세적인 복이었습니다. 나중에 집나간 부인이 돌아왔는데도 교회는 다시 안나오더라구요. 그런데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잘 되고 싶어서, 혹은 마음에 평안을 얻기 위해서, 물질적인 복 받기 위해서, 병고침을 위해서, 혹은 다른 목적으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삶 가운데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예수님을 찾아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죄사함 받고 구원받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예수님을 통해 죄사함받고 구원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복 많이 받는 것도 좋고, 잘 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예수 믿는 목적은 구원받아 영생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는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28절)
  이 질문은 중요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밑바닥에는 본성적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해야만 하나님이 인정하실 것이다”라는 의식이 있습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영생을 받으려면 내가 무언가 선한 일을 하던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생각을 우리는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인간의 ‘공로 의식’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행위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생각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어떤 젊은 관원이 예수님께 찾아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선한 선생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빌립보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무엇이라 합니까?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둘 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어떤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한 말입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종교와 사상은 모두 행위를 통한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행위를 말합니다. 선한 삶, 도덕적인 삶, 욕심없는 삶을 살면 되고 종교적인 수행이나 참선으로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입니다. 인간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선하게 살 수 있습니까? 죄짓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 7:18-19)
  우리 인간 심성에는 하나님을 만족시킬 만한 선이 없습니다. 뿌리깊은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선행으로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행위 자체로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간혹 교인들을 보면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주일성수하고, 십일조 잘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고, 술 담배도 안하고, 성경 공부도 잘 하니까 나는 이 정도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것이야. 나는 훌륭한 신앙인이야’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 행위들은 귀한 것이고 마땅히 따라야 할 행위이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어버려서, 자기 의가 되고 자랑이 되어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깔보고 믿음 없는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행위 자체로는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29절)
  이 구절은 이렇게 풀어서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너희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할 일은 없다. 그저 하나님께서 보내신 나를 믿기만 하면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이다.” 즉,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일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구원받는 데는 공로나 선한 행위가 전혀 필요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하나만으로 충분하고, 그 믿음이 하나님에게는 선한 일로 인정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또 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할 일을 예수님께서 이미 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할 수 있는 모든 선한 행위를 예수님께서 이미 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죄의 대가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 대신 다 지불하셨습니다. 내가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무엇이 있었다면 그것을 이미 예수님이 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예수님만 잘 믿으면 됩니다. 예수님만 잘 믿고, 예수님만 잘 붙들면 다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습니까? 그럼 예수 잘 믿으세요. 제대로 믿으세요. 예수님 꽉 붙드세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예수 잘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의미는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는 믿음이라는 선행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믿으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으면 주의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고, 믿으면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습니다. 흔히들 말합니다. “그 사람은 믿기는 하는데, 행동하지 않는다” 이것은 틀린 말입니다. 믿으면 행하게 됩니다. 야보고서에 기록된 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믿는데 행함이 없다면 그것은 믿음을 가장한 불순종입니다. 믿으면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안믿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이지 진짜로 믿으면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노아를 보십시오. 비도 오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조롱을 받아가며 수십년 동안을 방주를 만든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합니까? 그것은 오직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사람들 보기에는 아닐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믿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행동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백부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이 자기 집으로 오시기를 청하지 않고 그저 말씀만 하여 낫게 해달라고 한 것은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행동입니다. 믿는데 행함이 없다, 그것은 거짓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믿음을 통해 일하십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하나님이 사용하신 사람들에 대해 나옵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라합 등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께 쓰임받아 하나님의 뜻을 이룬 사람들인데, 그 공통점은 이들 모두가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각 사람을 소개할 때마다 앞에서 동일하게 ‘믿음으로’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보지 못하는 일을 보았고’, ‘믿음으로 부르심을 받았고’, ‘믿음으로, 믿음으로’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그들 자체가 위대하고 뛰어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것이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통해 일하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99년도에 교회 청년들을 데리고 일본 단기선교를 갔었습니다. 일본단기선교를 준비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교인들의 부정적인 반응들이었습니다. 일본 선교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교회는 특별히 자칭 일본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일본에 다녀온 사람들이나 일본에 대해 좀 아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일본 선교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전도 안된다. 공원이나 거리에서 전도 안된다. 일본 사람들은 남에게 폐끼치는 것을 싫어한다. 그냥 교회 방문하면서 조용히 여행이나 다녀와라.’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선교를 준비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은 일본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 가지고 준비하면서 발전기를 빌렸습니다. 공원이나 거리에서 찬양하면서 전도할 때 쓰려고 발전기 두 대를 빌렸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청년부 부장집사와 보이지 않는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분 역시 일본에서는 전도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거든요. 전도가 안되는데 무슨 발전기를 두 대나 빌려서 돈 낭비하고 힘만 들게 하냐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와 청년들에게는 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가는데 일본이라고 안될 이유가 무엇이냐. 믿음갖고 하면 된다. 설사 전도가 안되더라도 물러설 수 없다. 우리는 놀러가는 것이 아니다’ 이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준비기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이었습니다. 결국 일본에서 믿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안된다고 하던 노방전도가 이루어졌고, 길거리에서, 공원에서 찬양하고 워십댄스를 하며 전도할 때 그렇게 냉냉하고 무관심한 일본 사람들이 점차 관심을 보이고 전도지를 받아들며 진지한 표정으로 읽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적으로 문란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던 일본의 청년들이 우리들의 찬양과 워십, 그리고 메시지를 통해 충격을 받고 무엇이 진리이고 바른 삶인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통해 영적으로 무기력하고 전도에 무관심하던 일본 교인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청년부 부장집사님이 변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집사님이 일본 단기선교를 통해 가장 은혜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선교후에 교회에서 보고를 할 때 울면서 보고를 했어요. 이 모두가 믿음을 통해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2001년에는 몽골에 갔었습니다. 도착하던 날부터 날마다 노방전도를 나가고 참 열심히 전도했는데, 찬양집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타르에서 제일 크다고 하는 극장에서 찬양집회를 했는데, 천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센터로 잡고 활동했던 교회의 스텝인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여러번 비슷한 집회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이 극장이 다 채워진 적은 없었다. 아마도 많이 채워져도 반이나 채워질까... 대략 2-3백명 정도 올거라고 생각하세요." 집회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나름대로 격려한 것이예요. 미리 말해서 행여라도 실망하지 말라고... 그런 부정적인 말이 있었지만 우리가 찬양집회를 준비했던 것은 극장을 채우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몽골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3백명이 와도 감사하고 단 한명이 와도 우리는 실망하지 않고 기쁨으로 찬양할 수 있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때 몽골이 이상기후여서 8월임에도 비가 많이 와서 추웠습니다. 그러니 예상하기를 더 사람들이 적을 것이라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우리는 정말 열심히 기도하고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몇명이나 왔을까요? 시작할 때 이미 절반이 채워졌어요. 그리고 집회 시작한지 30분만에 천명 좌석이 거의 다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 예정이었던 집회가 거의 네시간 동안 이루어졌습니다. 얼마나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몽골의 성도들이 눈물로 몽골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했고, 그날 결신한 사람들이 이백여명이었습니다.
  사람의 경험과 판단은 아닐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오기 일년전인 2003년도에는 청년들을 데리고 알바니아로 선교를 갔었습니다. 비행기만 7번 타는 일정이었는데, 일어날 수 있었던 모든 일들이 다 일어났던 선교였습니다. 여권 잃어버리고, 2명이 항공기 좌석이 없어 그 다음날 따로 날아와 합류하고, 전도집회하다 탈진해서 쓰러지고...
  알바니아 여름은 무척 덥습니다. 오후 시간에는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을 정도로 덥습니다. 그런 더위에 청년들이 하루도 쉬지 않고 전도를 했습니다. 오전과 오후 늦게는 노방전도를 하고, 더운 낮에는 전도 준비를 했습니다. 팀별로 준비하고 전도 용품들도 준비하고 알바니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여름성경학교도 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가량 하다가 시청 앞에서 전도집회를 했습니다. 태권도 시범도 하고, 드라마도 하고, 찬양집회도 했습니다. 세시간 가량을 집회 했는데, 집회를 하면서 세 명이 탈진해서 쓰러졌고, 그 중 한 형제는 혼수상태까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가 혼수상태에서 말을 하는데 예수님을 저주하는 말을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 목소리가 그 형제의 목소리가 아니라 다른 소리예요. 그리고 간간히 "저리가!"하면서 소리를 치면서 몸을 뒤트는데 그 뒤트는 것을 저지하는데 형제 6명이 달려들어 간신히 저지할 정도였습니다. 뭐예요? 사탄이 그 형제에게 들어간 것이예요. 그래서 우리는 이것은 병원에 데려갈 문제가 아니라 기도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모든 청년들이 그 형제를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예수! 예수 이름으로!" 이 말을 계속 외치면서 마귀를 쫒아내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기를 30분, 그 형제의 뒤틀어진 몸이 부드럽게 되더니 잠이 들어버렸어요. 회복된 다음에 그 형제가 하는 말이 "무언가 시커먼 것이 내 몸을 눌렀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사탄의 방해가 많았던 곳이었는데, 우리는 그에 굴하지 않고 믿음의 기도를 드리면서 전도했습니다. 탈진해서 쓰러진 청년들도 그 다음날 다시 거리에 나가 전도를 했어요. 그 결과 우리는 알바니아를 떠났지만 선교사님의 교회는 많은 알바니아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청년들이 그 힘든 선교 일정을 통해 믿음의 힘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한층 믿음이 성장해서 돌아왔습니다.

지난 주부터 내일까지 갈릴리 티베리아에서 한의사 20여명이 의료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이틀간 가서 봉사를 하고 왔는데, 이분들을 보면서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의사들이 매년 한달씩 휴가를 내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의료선교를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예요. 그 한달 수입이 얼만데... 그걸 포기하면서 의료선교를 한다는 것이지요. 그것도 기쁨으로. 하루에 4시간 자고 날마다 사역을 합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대상으로 의료선교를 했는데, 놀라운 치료와 결신이 나타났다는 겁니다. 눈 먼 사람이 치료로 보고, 귀가 들리지 않던 사람들이 듣게 되는 일들이 수없이 나타났다는데, 이번에도 소리를 못듣던 자들이 치료후 듣게 되었는데 열명 이상 되었습니다. 제가 봉사하던 중에는 훨체어를 타고 진료실로 들어온 여자분이었는데, 치료후에 걷게 되었어요. 작년에 캄보디아 선교 때는 위협도 있었지만 치료받은 사람들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많은 결신자들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많은 제약이 있지 않습니까? 이 분들이 단순히 치료만 하러 이 일을 하시는 분들이 아니예요. 치료는 수단이고 전도가 목적이예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전도는 할 수 있는데, 전도한 순간 그 다음날에는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전도하러 온 사람들이란 소문이 나면 오지 않아요. 그럼 종교적으로 무관심한 사람들이나 아랍 크리스찬 정도만 오는 거예요. 무척 답답해 하시더라고요. 저는 이분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요. 그런데 한 사람을 기도해주면서 치료를 해주었는데, 다음날 가족들이 찾아왔답니다. "도대체 무슨 치료냐? 무슨 치료길래 나았냐?"는 것이었습니다. 이십여년동안 갖은 치료를 다 받아보았지만 낫지 않았는데, 당신들이 치료하고 기도해주니까 나았다는 것이예요. 도대체 어떤 치료방법이길래 나을 수 있었냐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분들이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주신 것이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그렇다면 나도 그 예수를 믿고 싶다고 하면서 기도를 해달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따로 방에 들어가 이 사람을 위해 기도해주었고 결신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런 일이었는지요.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기도회를 하고, 치료전 뜨거운 찬양과 기도가 있고, 침을 놓을 때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고, 중간 중간에 기도하고, 저녁에는 강의와 기도회가 있어요. 그렇게 기도하는 이들이기에, 또한 그들의 기도는 믿음의 기도이기에 그러한 놀라운 치료와 결신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었다면 이러한 의료선교 자체가 없었을 것이예요. 모든 것이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요점은 이것입니다. 믿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길 원합니까? 믿으세요. 그것이 비결입니다. 믿으면 됩니다. 내 능력 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내게는 그런 능력 없어요. 다만 우리에게 꿈과 비전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 하나님을 믿어보자는 것입니다. 그 믿음 가지고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불신앙과 부정적인 생각들이 있는데, 이것을 떨쳐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순전한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제자훈련을 할 때 한 형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믿음의 은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믿으려고 애써서 믿는 것이 아니라 그냥 믿어집니다. 별 의심없이 믿어집니다.”
  여러분, 믿음이 은사라는 것을 아십니까? 믿음은 은사입니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은사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의 은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원죄가 있어서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의심하려는 마음이 있는데 그와 같은 마음과 본능을 넘어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면 정말 그것은 은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선물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많고 다양합니다. 그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 중에 가장 귀한 은혜와 축복이 있다면 그것은 믿음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는 시편 119편 5절의 말씀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 역시 믿음이 부족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다 믿어졌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져서 그 말씀대로 따라 살아보면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은 내 삶의 발에 등불이 되어 주셨고 내 삶의 길에 빛이 되어 주셨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등을 삼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빛을 삼아 그 말씀을 좇아 살 수만 있다면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어렵다고 하여도, 그리고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강하다고 하여도 능히 그것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러한 능력있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믿음의 은사를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믿음은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불순종과 불신앙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은 사모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의 은사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믿음의 은사를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은사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삶의 등과 빛을 삼아 그 말씀이 인도 하시는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35절 말씀처럼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고, 그분의 말씀을 먹으십시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고는 우리의 믿음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먹으십시오. 믿음은 말씀이 내 안에 녹아질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순종의 훈련을 하십시오. 사람에게는 습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약속 시간에 늦는 사람은 항상 늦고, 영적인 싸움에서도 지는 사람은 계속 지고, 이기는 사람은 계속 이깁니다. 순종하는 사람은 계속 순종하고 불순종하는 사람은 계속 불순종합니다. 영적인 면에서도 습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순종은 우리의 본성이 아닙니다. 따라서 배워야 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작은 것부터 순종하는 훈련을 통해 우리는 순종의 습관을 몸에 배게 만들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으로 보면 ‘듣는 것’과 ‘순종하는 것’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즉,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 순종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먹고, 그 말씀을 온전히 믿고 순종으로 행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능히 세상을 이길 수 있고,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믿음의 사람으로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위인들의 뒤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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