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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2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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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3.7.30 ⓒhttp://www.john316.or.kr |
요한복음 21장(20) 사랑 없는 사명은 야욕 (요한복음 21장 15절)
사람에게 비전이 중요하다. 비전이 있어야 발전도 있다. 그러나 비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랑이다. ‘주님을 위한 비전’보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더 중요하다. 마르다는 주님을 위해 일했고, 마리아는 주님께 마음을 드렸다. 마르다도 소중하지만 주님은 마리아가 더 좋은 편을 택했다고 했다(눅 10:42).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보면, 주인공 테비에(Tevye)가 아내에게 묻는다. “Do you love me?(당신은 나를 사랑하오?)” 그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아내는 계속 25년 동안 자기가 힘겹게 산 얘기를 했다. 그때 테비에가 또 묻는다. “I know that. But do you love me?(그것은 알고 있소. 그러나 나를 사랑하오?)”
‘힘든 삶’보다 ‘사랑이 식은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사랑이 있다면 수고도 기쁨이 되고, 고통도 즐거움이 된다. 사랑 하나만 있으면 불행을 얼마든지 행복으로 소화해낸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랑이 식어진 것이고, 가장 큰 과제는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다. ‘주님을 위한 일’도 소중하지만 ‘주님을 위한 사랑’이 더 소중하다.
사랑이 없는 사명은 야욕이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의 사명을 회복시키기 전에 먼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질문하셨다. 그 질문은 결국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자기가 사랑도 하지 않으면서 “너 나를 사랑해?”라고 묻지 않는다. 가끔 자녀들에게 “얘들아! 엄마 아빠 사랑해?”라고 묻는 것은 “내가 너희들을 정말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처럼 사랑을 나누는 삶은 큰 힘과 용기와 희망을 준다.
사랑은 기적의 출발점이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주님이 백성들을 사랑했기에 일어났다. 사랑 받는다는 생각 하나로 병을 극복한 사람도 많다. 사랑 받는다는 말 한 마디로 시련을 극복하고, 웃음을 되찾는 경우도 많다. 사랑을 주고받는 삶은 엄청난 일들을 만든다.
기도할 때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 저도 사랑해요!”라는 이 한 마디만 해도 온 몸에 생명력으로 가득하고 모든 문제가 다 사라지는 것 같다. 그 생명력이 나를 변화시키고 환경을 이기는 힘의 원천이다.
< 과감히 사랑을 고백하라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베드로는 조용히 대답했다. 15절 말씀을 보라.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 대답을 보면 평소 베드로의 모습과는 달리 진지하고 침착하다. 옛날 같았으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을 것이다. “주님! 섭섭합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시는 것을 정말 모르십니까?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다른 사람은 다 떠나도 저는 떠나지 않습니다. 저는 주님 앞에 뼈를 묻겠습니다.”
옛날에는 그렇게 대답했겠지만 얼마 전에 그렇게 말하고 배신했기에 그는 신중해지고 겸손해졌다. 그래서 사랑을 고백하는 대답 자체도 주님의 판단하심에 전적으로 위임했다. “주여!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
지금 베드로처럼 대답할 사람이 많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지만 그 마음과는 달리 주님의 뜻을 외면하는 때가 많다. 분명히 주님을 사랑하지만 마음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고, 형식과 위선도 있고, 가끔 거짓말도 하고, 자기 일을 더 우선시한다. 그것도 큰 의미로 보면 주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마음속에 성령님의 음성이 들린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때에 과감히 고백하라. “주님! 제가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시지요?” 그 고백에는 “용서해주세요. 저의 연약함 때문에 또 주님을 실망시켰지만 제 마음만은 정말 주님을 사랑합니다.”하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 고백이 있을 때 죄책감을 이기고 또 그런 대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 아시지요? 제가 사랑하는 줄 아시지요?”라는 고백은 최고의 능력 있는 기도 중의 하나이다.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부를 때 가끔 가사를 이렇게 바꿔 부를 때가 있다. “아시지요? 아시지요? 아시지요? 주님!” 그 고백을 하면 가슴의 맺힌 것이 뻥 뚫리는 것 같고, 죄책감의 사슬이 풀리는 것 같고, 무거운 짐으로 눌린 어깨가 펴지는 것 같다.
지금도 주님은 너무 자주 실패하는 내게 묻는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때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시지요? 제가 어떤 비참한 모습을 보여도 저는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하면 급속히 상처가 치유되고, 마음이 꽂힌 사단의 화살이 뽑히게 될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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