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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2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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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3.8.9 ⓒhttp://www.john316.or.kr |
요한복음 21장(21) 양은 주님의 양이다
(요한복음 21장 15절)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을 때 베드로는 “주님이 아시지요?”하고 대답의 주도권까지 주님께 넘겼다. 그처럼 철저히 주도권을 주님께 넘겨드리라. 기적은 ‘요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항상 하나님의 뜻을 내 뜻보다 앞세워 사는 자’에게 주어진다. 결국 베드로의 겸손한 사랑의 고백을 받고 주님은 바로 말씀하셨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이 주님 말씀에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이 있다.
1. 양은 주님의 양이다
주님은 ‘내 어린 양’이라고 하셨다. 목회자에게 양은 자기 양이 아니라 주님의 양이다. 심지어 자기가 낳은 자녀도 자기 자녀가 아니라 주님의 자녀이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맘대로 때리면 안 된다. 야단치거나 매를 들 때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존중하며 야단치고 매를 들어야 한다. 자녀뿐만 아니라 배우자도 내 배우자가 아니라 다 주님의 신부이다. 그러므로 배우자를 주님의 신부처럼 여기고 사랑하고 존경하고 잘 돌봐야 한다.
일전에 TV에서 96세 할아버지와 92세 할머니의 결혼 70주년 인터뷰가 있었다. 아나운서가 물었다. “할아버지! 다시 태어나도 할머니하고 결혼하겠습니까?”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생각해봐야겠는데...” 거꾸로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다시 태어나도 할아버지와 결혼하시겠습니까?” 할머니가 대답했다. “내가 돌봐주어야죠.” 그 돌봐준다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감동을 준다.
배우자를 주님의 신부로 생각하고 힘써 돌봐주는 것이 사랑이다. 자녀와 배우자뿐만 아니라 모든 소유도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 주님의 소유이다. 내 것은 하나도 없다. 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이다. 내 몸도 내 것이 아니고 주님 것으로 잘 돌봐야 한다. 자기 몸 관리도 못하는 사람에게 큰일을 맡길 수 없다. 내 사업도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업으로 최선을 다해 경영해야 한다.
내 것은 없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의 미래에는 저주와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반대로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아 잠시 맡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놀라운 평안과 신비한 축복이 찾아온다.
2. 사랑의 폭을 넓히라
주님이 “내 양을 먹이라!”고 표현을 한 것은 구체적인 필요를 채우는 행동도 포함한다. 양떼를 사랑한다면서 마음만 사랑하고, 구체적인 필요를 채우지 못하는 것은 감상이다. 사랑은 감상이 아니라 실천이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사랑은 있다. 누구나 자기 자녀는 사랑한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랑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가끔 “내 양을 먹이라!”는 말을 오해해서 내 가족만 생각하고, 내 교회만 생각하고, 내 주변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무한책임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 손길이 확대되어야 한다. 그 손길이 확대될수록 축복도 확대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꾸 사랑의 폭을 좁히려고 한다. 그래서 파당이 생긴다. 결국 그 파당이 하나님 나라에 가장 큰 해를 끼친다.
누군가 십계명에 한 계명을 추가해 11계명을 만들었다. 그 열한 번째 계명은 이렇다. “교회에서 계모임을 갖지 말라!” 교회에서 권사 2명, 집사 8명, 평신도 2명, 그렇게 해서 1년 한 바퀴 돌고, 다음 해에는 누구 끼워주고, 안 끼워주고 해서 3년쯤 돌면 그 모임에는 아무도 끼지 못한다. 그러다 계판이 깨지면 개판이 되고 교회에 큰 해가 된다.
하나님은 파당을 제일 싫어하신다. 지나친 개 교회주의와 지나치게 교단을 따지는 태도는 전체 교회를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파당을 짓는 모습이다. 고린도교회에 있었던 아볼로파, 바울파, 베드로파, 그리스도파의 모습이 오늘날 교단 간에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모든 교회와 성도는 선교 마인드를 가지고 사랑의 폭을 힘써 넓혀야 한다.
3. 양을 잘 양육하라
가끔 보면 양을 잡아먹거나 양털을 깎아 팔아서 돈을 벌려고 양을 먹이는 분도 있다. 동물 양은 그렇게 해도 좋지만 사람 양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주님은 “내 양을 키워 잡아먹으라!”고 하지 않고 “내 양을 먹이라!”고 했다. 양을 잘 먹이려면 무엇보다 자기가 먹이가 되어주어야 한다. 내가 먹이가 되고 남을 배부르게 하는 삶이 바로 십자가의 삶이다.
가끔 보면 나를 잡아먹겠다고 달려드는 사람이 있다. 인터넷을 보면 익명을 이용해 가끔 잡아먹겠다고 노골적으로 달려든다. 그들과 같이 싸울 필요가 없다. 먹이가 되어주겠다는 심정으로 서면 마음에 평안도 오고, 하나님께서 큰 축복으로 갚아주신다.
결국 “내 양을 먹이라!”는 말은 “십자가를 지라!”는 말이다.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진짜 사는 길이다. 신기한 일은 십자가에서 죽음을 선언할 때 내 상처와 아픔도 치유되고, 내 분노도 사라진다. 죽어야 치료가 된다.
어떤 분이 수술을 위해 마취를 받는데 마취 후에 누가 바늘로 마취 부위를 찌르자 그분이 “아야!”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이 “어! 아직 안 죽었네!”하고 수술을 늦췄다. 죽지 않으면 수술도 못하고 치료도 못한다. 죽어야 수술도 하고 치료도 받는다. 그처럼 주님의 십자가를 맞이해 아프다고 소리 지르면 힘들다고 소리 지르면 치유는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에 죽은 줄 알고 가만히 있으면 그때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
내가 살아있으면 병도 살아있지만 내가 완전히 죽으면 육신적인 병균과 영적인 병균도 다 죽는다. 내 속의 육신적인 병과 영적인 병을 치료하려면 무엇보다 “십자가 안에서 죽었다! 십자가를 지고 죽겠다!”는 마음이 필요하다. 바로 그때 모든 상처와 불행, 모든 저주와 아픔이 다 사라지고 육신의 병도 치유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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