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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21: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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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 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425) |
요한복음 21장(28) 자기답게 살라
(요 21장 20-22절)
< 자신의 가능성을 인정하라 >
살다 보면 나보다 못한 것 같은 사람이 성공하는 경우를 본다. 그것 때문에 불행을 느낄 필요는 없다. 남의 성공은 나의 성공을 위한 자극제로만 활용하라. 세상 사람들의 성공 때문에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하는 삶’의 가치를 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세상적인 성공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성공했느냐 하는 것이다. 진짜 성공은 누가 더 하나님의 사명을 잘 이행했고, 누가 더 예수님을 닮았는가 하는 것에 달려있다. 돈과 권력과 실력은 없어도 신앙과 인격과 주님의 성품과 사명을 향한 열정이 있으면 그는 최고로 성공한 사람이다.
남이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하고, 남이 누리는 것을 누리지 못하면 속상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속상한 일은 내 존재의 목적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내 존재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교회사랑, 그리고 영혼구원과 같은 것들이다. 그런 존재의 목적에서 이탈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쓰임 받는다.
존재의 목적에서 이탈하면 영혼은 돛대와 삿대가 없는 배처럼 된다. 그러면 환경의 물결 따라 감정도 요동치면서 자만과 자학 사이를 오가면서 일이 잘 되면 금방 자만하고, 일이 안 되면 금방 자학한다. 자만도 병이지만 자학도 병이다. 자기를 대단하게 보는 것도 잘못이지만 자기를 지나치게 비하하고 근심과 두려움에 빠져 사는 것도 잘못이다.
남에 대해서는 잠깐 실망할 수 있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한 순간도 실망하지 말라. 자포자기는 스스로에게 가하는 폭력이다. 왜 사람들이 자포자기하는가? 남의 떡을 크게 보며 자신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을 부러워하면서 자기의 가능성을 보고 땀을 흘리는 일에 소홀하면 불행하게 될 수밖에 없다.
잠언 21장 25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나니 이는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 게으른 사람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정욕과 포부만 키우다 그 정욕 때문에 죽는다. 그처럼 남을 부러워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면 영혼도 죽고, 행복도 죽는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 누구나 자기만의 아름다움과 가능성이 있다. 꽃밭에는 소박한 민들레도 있고, 아름다운 장미도 있다.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아마 장미가 민들레의 생명력을 더 부러워할지 모른다. 세상 사람들의 성공을 부러워하지 말라. 겉으로는 몰라도 속으로는 그들이 예배와 기도가 있는 사람을 더 부러워할지 모른다. 세상의 위대한 성공보다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한 신앙이 더 소중하다.
< 사명을 따라 자기답게 살라 >
왜 삶에 권태와 공허가 생기는가? 사명은 생각하지 않고 성공만 하려고 하면 쉽게 지치고 실망한다. 사명도 없이 성공해 보겠다고 쉴 새 없이 달리다 실패하면 실패 때문에 울고, 성공하면 공허 때문에 운다. 사람이 말씀과 기도를 외면하고 선교와 구제의 사명을 외면하면 점점 공허하고 불행하게 된다. 잘 산다는 것은 남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생각하며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사명을 따라 살면 대개 배고프다. 사방에서 시련의 비바람이 몰아치고,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사명을 따라 살 때 하나님은 그 삶을 책임지시고 보람도 넘치게 하신다. 가끔 어려운 동료를 만나면 그가 좌절하지 않도록 사명을 상기시키고 위로하려고 애쓴다. 그렇게 위로하다 보면 위로 받는 사람도 위로 받고, 위로하는 사람도 위로 받는다. 사명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보람을 주는 제일 원천이다.
복사판으로 살지 말고 원판으로 살라. ‘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이다.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 부자만 부자가 아니라 나도 부자이다. 내 자산도 많다. 심지어는 과거의 불행과 수치도 자산이고, 현재의 고난도 자산이다. 그 자산을 잘 활용하고 승화하면 누구나 세상에 축복을 전하는 멋진 축복의 통로들이 될 수 있다.
지금 모습이 하나님이 주신 밑천을 다 까먹고 껍데기만 남은 모습이라도 다시 사명을 가지고 일어서라. 마음만 준비되면 하나님은 새로운 밑천을 주신다. 때로 고난을 당하고, 때로 하나님의 질책을 받아도 하나님은 나의 가능성을 결코 빼앗아가지 않는다.
본문에서 주님이 베드로에게 심한 질책을 하셨지만 베드로는 그 일로 주님께 섭섭해 하지 않았다. 그는 제자들 중에 제일 연장자였고, 심지어는 주님보다도 나이가 많았지만 언제든지 대표적으로 욕을 먹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 넉넉한 마음으로 주님을 끝까지 붙잡았을 때 주님은 그를 역사상 가장 복된 존재로 만드셨다. 주님을 끝까지 붙드는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끝까지 붙드는 가장 복된 자세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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