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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다시 좀 태어나시오, 성령으로!

요한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483 추천 수 0 2015.02.14 23:4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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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3:8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4.10.28 주일예배 http://sungamch.net 춘천성암교회 

제발 다시 좀 태어나시오, 성령으로!
요3:8

‘미로’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출입구로 들어가긴 가지만 거기가 거기 같고 거기가 거기 같아서  출입구를 찾지 못하는 길을 ‘미로’라고 합니다. 이런 미로에 빠지면 애만 쓰다가 기진맥진하여 죽게 됩니다. 그러나 ‘미로’는 본시 ‘미궁’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리스 로마신화의 미노스 왕 이야기에 나옵니다. 자, 화면을 보시면 저런 게 바로 ‘미궁’입니다.

그리스에서 가장 발달된 문명은 크레타라는 섬에서 시작이 됩니다. 바로 그 섬의 통치자가 미노스왕입니다. 미노스 왕이 당시에 가장 손재주가 뛰어난 다에달로스 라는 장인에게 명령하여 미궁을 짓게 했습니다. 누구라도 한 번 들어가면 결코 빠져 나올 수 없게 말입니다. 이 미궁은 어느 길로 들어서도 모두 똑같습니다. 끝도 없이 반복만 일어나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미궁을 헤매다가 마침내 죽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 미궁은 미노스가 괴물을 가두어 두려고 만든 겁니다. 미노스의 왕비가 포세이돈이 보낸 황소와 정을 나눠서 자식을 낳습니다. 그 이름이 미노타우로스인데, 이 미노타우로스는 몸은 인간인데 머리가 황소입니다. 이 괴물은 인간을 잡아먹고 삽니다. 미노스는 바로 이 괴물 아들을 가두려고 이 궁을 짓게 한 겁니다. 그러면 미노스는 왜 이 괴물을 죽이지 않고 가뒀을까요? 바로 자기 자신을 대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도 ‘미노스의 황소’였던 겁니다.

여하튼 미궁에 갇힌 ‘미노스의 황소’는 사람을 식량으로 하고 살아갑니다. 미노스는 당시 그들의 예속국이던 아테네에서 선남선녀 7명씩을 9년 마다 조공으로 받아서는 미노타우로스의 밥이 되게 했습니다. 정리하자면 ‘미노스의 미궁’은 약자를 끝없이 희생시켜야만 유지되는 강자의 체계입니다.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고 강자는 자신보다 약한 대상을 향해 생명의 희생을 강요하는 그런 체계인 것입니다.

바로 이 미궁에 착안해서 근대 서양의 수많은 사상가, 문학가는 미궁에서 인류 문명사와 인간이해를 시도합니다. 이 미궁이야기가 겉으로 드러나는 자신의 얼굴 이면의 야수성을 은폐하는 심리적인 장치라는 거죠. 인간은 미노타우로스처럼 ‘반인반수’즉, 반은 사람이고 반은 짐승의 면면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미노타우로스는 곧 미노왕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인간의 이성은 그런 광기를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데 그걸 감추어 두는 게 미궁이라는 겁니다. 왜 우리가 말할 때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자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을 쓰잖아요? 그가 겉으로는 천사처럼 보여도 속에는 마귀와 같은 광기를 숨기고 있는지 모를 일이라는 겁니다. 한마디로 인간은 이성 안에 뭘 감추고 있는지 미궁이라는 거죠. 인간 개개인만 그런 게 아닙니다. 국가도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안다면 미궁 속에 은폐된 단체에 해당하는 거죠. 결국 미궁이야기는 오늘날 인류 문명사에서 인간과 그 집단의 정신 분열적인 속성에 관한 이야기로 읽혀지는 것입니다.

이성의 얼굴 저 뒤편에 숨어 있는 야수성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말입니다. 이걸 기독교에 적용하면 ‘하나님의 은혜’거나 ‘성령의 인도하심’과 같은 종교적인 구호 또는 목사나 장로나 권사나, 부흥사나, 신령한 목사 같은 이름 뒤에 엄청난 야수, 악마, 마귀 같은 얼굴과 해태를 일삼는 위인들이 있다는 겁니다. 이런 종교인들은 마치 미노타우로스처럼, 미로 속에 갇혀서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인육을 먹고 살고 있다고 보아집니다. 닥치는 대로 먹는 거죠. 교회에서는 은혜라는 걸 마구 먹고는 교회 밖으로 나가면 또 세상이 좋다는 건 가리지 않고 먹어 치우는 거죠. 이게 반인반수, 반은 짐승이고 반은 사람인 이중 적 존재들이예요.  

미궁은 길 같으나 길이 아닌, 옳은 것 같으나 틀린, 생명의 출구 같으나 결국은 사망의 골목길입니다. 이 미궁에 특별한 게 하나 있는데 그건 ‘비슷하다’는 겁니다. 확연하게 틀린 게 아니라 ‘거의 같아’보이고 ‘거의 틀림이 없이’ 느껴진다는 겁니다. 거의 비슷하니까 자기가 옳은지 그른지 모릅니다. 미궁은 똑같은 길의 연속입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이 미궁에 빠지게 되는가요? 푸코라는 이의 표현을 빌리면 ‘완벽한 유사성’, ‘동일한 것’에 대한 욕망이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좀 어렵지요? 쉽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세상을 살아 갈 때나 신앙을 할 때 미궁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되는데 사람들은 그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미궁’이란 ‘거의 유사한’ 혹은 ‘동일한’길인데, 그건 사람이 평상시에도 유사한 것에 대한 욕망이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면, 결혼을 할 때 상대방을 정하는 기준도 무의식에서나 의식적으로 ‘엄마와 같은 사람’혹은 ‘아빠를 닮은 사람’을 찾듯이, 자식을 낳으면 그게 자신의 분신(동일자)이라고 믿고 그에게 내가 보존된다는 믿음이 그런 겁니다. 유사성, 닮음을 우리는 굉장히 흠모하고 신뢰합니다. 옛날에는 자기네 목사가 서울의 유명한 목사 아무개를 닮아도 부흥이 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런 욕망이 있기 때문에 미궁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겁니다.

혈통, 고향, 출신 학교, 거주지, 거주하는 아파트, 출신 부대, 태어난 산부인과 이런 걸로 우리는 닮은꼴 찾기에 몰두합니다. 그리고 닮은꼴을 더 많이 확보하는 게 사는데 유리하다고 확신합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가지 않으면 ‘사회생활과 대인관계가 어렵겠다’는 말도 결국  닮은꼴에 대한 신뢰 때문에 생기는 말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예요. 비슷비슷한 사람들 끼리 모입니다. 그리고는 자기들의 생각과 행동을 정당화 합니다. 이렇게 되면 사회는 획일화 되고 신앙은 가자당착에 빠집니다.  그리고는 이질적인 것, 타 학교 출신, 타 지방 출신,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 배타적이고 적대적 감정과 행위를 보이게 되는 거죠. 그리고는 판단합니다. 믿음이 없다, 성령도 없다, 하나님을 모른다고 거만을 떱니다. 참 가관이 되는 거죠. 이게 바로 미노타우로스입니다. 얼굴과 몸뚱이 다른 존재가 되는 거예요. 반은 사람이고 반은 짐승이 되는 괴물이 되는 거예요. 이런 괴물 인간, 괴물 종교인들은 ‘닮은 꼴’의 욕망을 통해 미궁에서 살면서 약자들을 잡아먹을 궁리만 하는 거예요. 그래야 자기가 사니까요.

신앙도 닮은 꼴 욕망을 갖고 있으면 누군가를 잡아 치워야 자기가 삽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늘 올가미를 씌울 준비를 하고 사는 거죠. 겉으로는 헤헤 웃으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야수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같이 이 시대의 문명, 인류, 종교가 미궁에 빠졌다는 거고 ‘미노타우로스’라는 겁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성령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유대의 율법학자들에게 심판을 받아 십자가에 달려 죽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니, 예수를 죽이고자 했던 이들은 뭣 땜에 예수를 죽이려고 했던 거예요? 거창하게 말하지 말고요. 간단합니다. 예수가 그들하고 ‘닮은 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이 그들의 가르침이나 교리와 ‘유사하지’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모두 ‘닮은 꼴’의 미궁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들이 길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길은 미궁이어서 출구를 찾지 못하는 길이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약자들을 잡아먹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다른 예수가 나타난 거예요. 그래서 야수성이 등장한 거예요. 매달아 죽어야 한다고 소리치기 시작한 거예요. 그들은 반인반수 즛, 미노타우르스와 같은 종교인들이었어요.

이런 종교적인 문제가 팽만했을 때 예수가 등장하신 거고, 이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게 오늘 우리가 읽은 요3:8의 예수 말씀입니다. 그게 ‘성령’이예요. 이제 이 성령을 알아야 예수의 성령을 똑바로 아는 거예요. 성령이란 뭘까요? 그걸 요한복음이 말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과 대화를 하고 있죠. 3:1에 보면 그는 유대사회의 지도자입니다. 유대사회의 지도자란 말은 우대사회의 사회적인 질서가 뭔지 잘 안다는 뜻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에게 말을 건넵니다. 말했듯이 예수는 유대사회의 질서와는 다른 생각과 믿음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사회의 모든 걸 아는 사람이었지만 예수의 이 말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닮은 꼴’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엉뚱하게 ‘엄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와야 되느냐?’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8절처럼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람이 부는 소리만으로 풍향을 알 수 없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도 그렇다.’ 여기서 ‘소리’는 ‘말’을 상징합니다. 그것은 곧 ‘인습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세상의 이런저런 말로 바람이 부는 곳을 알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세상의 사고의 틀로는 바람이 어디서 부는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어떻게 바람이 부는 방향을 압니까? 그렇죠. 이성이나 생각이나 교리나 어떤 사회적인 틀이나 규범은 내 던지고 그냥 소처럼, 개처럼 가만히 서서 느끼면 되는 겁니다. 바람이 부는 방향을 아는데 대학을 나와야 되는 게 아니듯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이나, 규범이나, 교리나 그런 건 단지 그 느낌을 표현하는 하나의 그릇일 뿐입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을 다 담아 낼 수는 없습니다. 성령은 바로 이런 바람과 같은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크고 깉다는 겁니다.

성령은 인간의 습관에 얽매이지 않고, 누구의 말에 틀 지워지지 않고, 닮은 것과 닮지 않은 것을 가려내는 사고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로움, 그것이 바로 성령의 본성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요한복음이 말하는 성령은 [자유로움]입니다. 규격화 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형상화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이’라는 표현은 이렇다 저렇다는 일체의 인습적 규범화에 대한 해체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런 게 좋은 신앙이다’, ‘이게 성령이다’, ‘이게 좋은 믿음이다’같은 종교적이고 인습적인 틀을 해체한 존재로 서라는 겁니다.

그게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입니다. 니고데모에게 그걸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 그는 유대사회의 인습과 틀에 매달려 있지 않습니까? 그가 다시 태어나는 길은 뭡니까? 그를 둘러싼 온갖 사회규범과 종교적인 틀을 해체하고 자유로워지는 겁니다. 그게 다시 태어나는 것이고, 성령으로 태어나는 겁니다.  

규격화된 인습에 따라 모범형을 추구하고 그것을 향한 복제 욕망에 몰두하고 있는 문화, 사회 가치, 종교적 교리에 대한 도전이며 도발이고 저항이 바로 오늘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이긴 하지만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본문에 의지해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제발 성령으로 다시 좀 태어나십시오. 미노타우로스처럼 괴물로 살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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