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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20:1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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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요20:11-18
1945년 4월 8일주일 아침에 본회퍼 목사가 감옥에서 아침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때 험악하게 생긴 두 사나이가 감방을 향하여 소리쳤다. “죄수 본회퍼, 우리를 따라와!” 이제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순간이 된 것이다. 이 때 같은 감옥에 있던 한 영국장교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본회퍼 목사님을 향해 말했다. “목사님, 마지막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인사했다. 이 말에 본회퍼 목사님은 미소를 머금고 평화스러운 낯으로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이 아닙니다. 지금이 시작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죽음이 끝이 아니다. 죽음은 전혀 새로운, 그러면서도 놀랍고 영광스러운 새 삶의 시작일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부활을 믿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이 땅에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실 때 제자들은 겁에 질려 뿔뿔히 흩어졌다.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부인했고, 다른 두 제자는 엠마오로 도피했으며, 또 다른 이들은 다시 갈릴리 바다로 나가 어부의 길에 들어섰다. 더러는 마가의 다락방에 숨기도 하였다. 이러한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으로 다시 모여들었고, 실제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다음, 부활의 산증인이 되면서부터 선교가 시작되었고 교회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초기 사도들의 설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었고 스스로를 가리켜 부활의 증인이라고 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미 부활하신 주님의 시신이 무덤에 없었음을 보여준다.(11-12)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를 보려고 갔는데 예수님의 시체는 보이지 않고 천사만 보였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무덤 안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의 시신은 어디론가 없어져 버렸고 시신을 싸고 있었던 세마포와 수건만 옆에 놓여져 있었다.(요 20:6-7) 진실로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다시 살아나신 주님은 죽은 사람들이 있어야 할 무덤에 더 이상 머무르실 필요가 없으셨던 것이다.(마28:6) 그래서 거기에 계시지 않았다.
오늘 말씀에 보면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다고 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보았을 때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동산지기인 줄 알고 그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찾아 달라고 호소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을 건네셨는데도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분명 예수님께서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라는 말씀까지 하셨는데도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만을 생각하고 깊은 슬픔에 젖어 있어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살아나신 예수님이 앞에 서 계시면서 말씀까지 하시는데도 전혀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마리아는 그저 두려움과 걱정과 불안으로 무덤에 다가섰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상도 못했다.
마리아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제자들도 다 마찬가지였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베드로를 비롯해서 도마, 나다나엘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들을 비롯하여 여러 제자들이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다. 이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보고 실망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원래부터 자기들이 했던 고기 잡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서서 제자들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음을 말씀하셨다.(요 21:4)
왜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동안을 늘 같이 지냈는데 왜 알아보지 못하였을까? 그들은 예수님이 물 위로 걸으시는 것을 보았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일 때는 떡을 날랐고 생선을 나누어주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릴 때에도 거기에 있었던 제자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로 그들 옆에 와 계시는데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그들의 영적인 눈이 가리워졌음을 말씀했다. 두려움과 믿지 못하는 불신의 마음 때문에 눈이 가리워졌다.(눅 24:16)
오늘날에도 믿음의 눈이 없는 사람들은 영적인 눈이 가리워져서 부활의 주님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을 부인하고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영안이 열리고 믿음이 생기면 부활이야말로 무엇보다 믿어야 할 중요한 진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영적인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며 부활을 믿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눅 24:31)
인도의 전 수상이었던 네루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수 천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도의 종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땅을 개간하고 집을 짓고 늪지를 메우고 댐을 건설하도록 자극하지 못했다. 그러나 교회가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칭송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교회는 세계 도처에서 인간의 짐을 덜어주려고 노력해 왔다. 교회가 인간을 자극하고 이끌었던 힘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라고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지금도 도처에서 역사를 이루고 있음을 인정하였다.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그 분이 살아서 역사하심을 증거하고 있다.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부활의 신앙으로 고난의 세상을 승리하는 귀한 믿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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