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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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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http://blog.naver.com/malsoom/104823260 |
2010년 5월 2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요한복음 1장 6절~13절
설교제목 : “사람을 피하라”
<책 이야기>
최근 읽고 있는 책 중에『사막교부들의 금언집』(분도출판사)이 있습니다. ‘사막교부’라 함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이후, 즉 주후 2~5세기 경에 “사막에서 일생을 건 수덕생활(修德生活)로 하느님의 길을 걸어간 수도자들”을 일괄적으로 지칭하는 명칭입니다. 그런데 그 책에서 사막의 수도자들이 공통적으로, 또 자주, 그리고 강조해서 권면한 영성생활의 메시지는 “사람을 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페르메의 테오도로 교부가 세 가지 원칙을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저 잘 지켰다고 전해진 바, 그것은 바로 가난, 고행, 사람을 피함이다.”
“아르센 교부가 아직 관저에 있었을 때, 그는 주님께 이런 말로 기도했다. <주여, 저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소서> 문득 한 목소리가 일러 가로되 <아르센아, 사람들을 피해라. 그러면 너는 구원을 받을 게다> 하였다. 일단 수도원에 돌아온 후에도 그는 같은 말로 기도하였고, 또 그 목소리를 들었다. <아르센아, 사람을 피하고 침묵하며 내적 고요를 실천하여라. 그것이 완덕에 이르는 근본이니라>.”
“한 수사가 스케테에 있는 모세 교부에게 찾아와 교훈을 청했다. 교부는 대답했다. <그대의 독방에 앉아 있게. 그러면 그 방이 자네에게 모든 걸 가르쳐 줄테니까>.”
그러나 저에게 있어서 “사람을 피하라”는 권면은 시원하게 소화되지 않는 권면이기도 했습니다. 어찌됐건 간에 사람들과 더불어서 지지고 볶는 삶은 불가피한 것이고, 그런 어울림의 삶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을 완성해 가는 또 다른 맥락의 수덕생활도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읽고 있는 또 한 권의 책인 『급진적 자유주의자들』(김진호 지음)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사람을 피하라”는 권면에 담긴 깊은 메시지를 의미 있게 잘 새겨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두 권의 책들을 통해서 얻은 영감(靈感)과 배움의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성경 이야기>
이제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다. 그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 사람은 빛을 증언하러 왔다. 그 증언으로 모든 사람을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사람 자신은 빛이 아니었다. 그는 그 빛을 증언하러 온 것뿐이다. 그 빛이 세상에 오셨으니,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시다. 그는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그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났다.(요한 1:6~13)】
이 성경구절은 예수의 동반자였던 세례요한과, 그 요한을 따르던 ‘요한 공동체’ 사람들에 대한 증언입니다. 요한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에 대한 자기들 스스로의 평가의 기록인 것입니다. 요한과 그와 함께한 공동체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그에 대한 답변은 이것입니다. “그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났다.”(요한 1:13).
요한의 사람들은 ‘혈통’으로 모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혈육(血肉), 즉 피붙이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유대 민족주의자들의 그룹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유대인 중에서 메시아가 난다는 생각들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고, 유대민족 제일주의가 팽배했지만, 요한 공동체는 그것과는 무관했습니다. 오히려 요한공동체는 민족적 메시아 사상과는 정 반대의 위치에 서 있었습니다.
또 요한의 사람들은 ‘육정’으로 모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즉 육체적 욕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여기서 육체적 욕망이라 함은, 인간이 신나는 마음을 느끼는 차원, 그러니까 ‘돈과 명예, 권력’에 관한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한의 사람들은 ‘돈과 명예, 권력’과는 무관하게 모인 사람들입니다. 요한 공동체에 참여한다고 해서,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고, 명예를 얻는 것도 아니었고, 권력을 갖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돈과 명예, 권력을 다 잃어버리게 되는 공동체, 그것이 요한 공동체였습니다.
요한 공동체의 사람들은 다만 ‘하느님’을 향한 열정과 진리를 향한 구도심(求道心)으로 모인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의 현실적용>
그러나 현실에서 인류의 삶은 요한 공동체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현대인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그에 대한 답변은 이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혈통’과 ‘육정’으로 살고 있습니다.”
저자 김진호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혈통이 어떻고, 고향이 어떻고, 출신학교가 어떻고, 현 거주지가 어떻고, 심지어는 출신부대가 어떻고, 태어난 산부인과가 어떻고 …… 등등 무수한 닮은꼴 찾기에 몰두하는 사회, 그것은 닮은꼴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확보하고 있는 게 사는 데 유리하다는 확신의 소산일 것이다.” 김진호 목사님은 판단하기를, “현대 인류가 저마다 최대한의 탄탄한 블록들을 결성해가면서 ‘강자’가 되어가고, 그 강자 블록들이 약자블록들을 끊임없이 잡아먹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저 역시 그 판단에 동의합니다. 우리 시대의 인류는 저마다 가능한 최대한의 혈통들을 연결해서 최대한의 강력한 지원군을 확보해 나가고 있고, 그렇게 해서 약자들을 잡아먹음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육정을 누리려고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현재 우리들 자신의 일그러진 자아상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사람을 피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사람들을 끌어 모아서 내 편으로 만들려 하고 있고, 또 그렇게 해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육정을 즐기면서 살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이야기>
수도교회를 처음 시작했을 무렵, 저는 소위 ‘기독교 영성 네트워크’를 꿈꾸곤 했습니다. 기독교 영성의 세계를 추구하는 아름다운 인격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그 가난한 힘들을 함께 모아가면, 혼탁해지는 이 세상을 맑게 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런 순수한 구상의 한 바탕에 이미 커다란 허점이 놓여져 있었다는 발견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모임에는 어쩔 수 없이 ‘혈통과 육정’이 작용을 하게 된다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제 아무리 고매한 인격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사람들의 모임에는 ‘불순한 그 무엇’이 작용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 사람들 각자가 뭔가를 크게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모임이 원래 그런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그 어떤 기운,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 지는 에너지가 있는데, 그 ‘사이 에너지’가 인간을 불행에 빠트리는 것입니다.
신학교 다닐 때, 목회를 가르치던 교수님의 아주 불쾌한 가르침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목회를 앞둔 젊은 신학생들에게 교수님은 말했습니다. “서너 명이라도 정기적으로 모이면, 반드시 어떤 에너지가 생겨요. 그 사이 에너지를 잘 활용하면 반드시 목회에 성공할 수 있어요.” 그 교수님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정말 잘못된 가르침이었습니다. 아주 못된 말이었습니다. 잘못 가르친 것입니다. 거꾸로 가르치셔야 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형성되는 어떤 에너지를 조심해라. 그 ‘사이 에너지’가 인간을 불행과 타락으로 빠트릴 수 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사람을 피하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 “사람을 피하라”는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이제는 진리의 길을 직접 보여주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우리의 생명과 영혼을 언제나 치유해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아름다운 동행이 사랑하는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언제나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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