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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찾습니다

요한복음 김영봉 목사............... 조회 수 520 추천 수 0 2015.08.12 23:58:15
.........
성경본문 : 요10:11-15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14년 5월 11일 주일 설교
와싱톤한인교회 김영봉 목사
"어머니를 찾습니다"
(Mothers In Danger of Extintion)
요한복음(John) 10:11-15


1.
Happy Mother's Day!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그리고 어머니를 그리는 모든 이들에게 하늘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어머니.' 이 말처럼 감미롭고 아름답고 푸근한 단어가 또 있을까요? '엄마' 혹은 '어머니'라는 말은 인간이 태어나서 입을 열어 내뱉는 첫 단어이고, 또한 인간으로 태어나 누군가를 부르기 위해 내뱉는 첫 부름입니다. 처음 입을 열어서 누군가와 소통을 시작하는 것은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과 같은 일입니다.


세상이 처음 열릴 때, 우리 앞에 계셨던 분이 바로 어머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라는 이름 그리고 어머니라는 존재는 누구에게나 고향의 언덕과 같고 한 겨울의 아랫목 같습니다. 이미 작고하신 시인 조병화 선생은 어머니를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어머님은 속삭이는 조국
속삭이는 고향
속삭이는 안방
가득히 이끌어 주시는
속삭이는 종교
험난한 바람에도
눈보라에도
천둥 번개 치는
천지 개벽에도
어머님은 속삭이는 우주
속삭이는 사랑
속삭이는 말씀
속삭이는 생
아득히, 가득히
속삭이는 눈물
속삭이는 기쁨


2


정말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이의 영원한 고향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인생 여정에서 지치고 힘들 때면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품을 생각합니다. 어릴 때 어머니 품에서 맡았던 냄새를 생각합니다. 눈을 감고 잠시 시간 여행을 떠나 어머니 품에 안겨 있다 보면, 어느 새 마음에 위로와 안식이 깃듭니다. 그래서 어머님은 속삭이는 조국이요, 속삭이는 고향이며, 속삭이는 안방이고, 속삭이는 이불입니다.


이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안 계셔도, 저처럼 쉽게 가 볼 수 없는 거리에 어머니가 계셔도, 혹은 몸의 껍데기만 남고 속은 텅 비어 있어도, 상상 속에서 어머니의 품을 그릴 수 있다면 그리고 그 품이 위로와 안식과 힘의 보금자리가 되어 준다면, 그 사람은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나 보장해 주신 축복입니다. 누구나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당연한 축복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자란 분들도 계십니다. 어머님은 조국이 아니라 이방 땅이었고, 고향이 아니라 객지였으며, 따뜻한 아랫목이 아니라 차디찬 냉골과 같았던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어머니 주일이 아픔만을 더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부디, 그런 상황에서 자란 분들에게 주님의 특별한 은총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그 사랑을 하나님의 따뜻한 품에서 발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어머니에 대해 부정적인 경험을 하고 자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 어머니들은 배운 것 없고 능력도 부족했지만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자식들에게 아낌없이 퍼주셨고 한 없이 참으셨고 조건없이 품으셨습니다. 시인 김초혜씨가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이라고 했는데, 우리의 어머니들은 늘 쓴 것만 드셨기에 쓴 줄 모르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그 품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나고 위로를 받고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들이 서서히 증발해 왔습니다. 사랑은 더 이상 어머니들의 미덕으로 취급받지 못합니다. 어머니들이 인내의 미덕을 버린 지도 오래입니다. 과거 어머니들의 소망은 자식이 그릇된 길로 가지 않고 양심껏 착하게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속임을 당하더라도 속이지 않고, 맞더라도 때리지 않고, 가난하더라도 마음 편히 살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을 품기만 했습니다. 제 기억에 한 번도 어머니에게서 "공부해라"라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방학이 되어 집에 가 있으면, 어머니는 늘 "그만 쉬어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성공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몸 건강하고, 하나님 잘 믿고, 하루 세끼 먹고 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런 어머니들이 이제는 희귀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멸종 위기에 있습니다. 어머니들이 극성스러워졌고 사나워졌습니다. 요즈음 어머니들에게 붙이는 별명을 보면 얼마나 어머니 상이 달라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타이거 맘'이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호랑이와 함께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머니들의 목표가 자녀들의 성공에 붙들려 있고, 그 성공을 이루게 하기 위해 사정없이 볶아 대는 것입니다.


어머니들이 모두 호랑이가 된다면, 그 아래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모두 호랑이 새끼처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사람 사는 세상'이 호랑이 소굴이 되어 버리는 것 아닐까요? 저의 상상력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제대로 읽고 있다면 그렇게 말씀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더 비정하고 잔인한 정글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문제의 책임을 어머니들에게 돌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사나와지는 아내 옆에서 점점 무력해지는 아버지들에게도 문제가 많습니다. 가정의 모든 문제를 아내에게 맡기고 직장 일에만 전념하게 만드는 사회의


3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아내와 남편이 모두 직장에서 일을 해야만 하도록 몰아 세우는 사회 분위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모니터에 얼굴을 박고 살게 만든 현대 문명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속삭이는 우주' 즉 어머니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큰 아쉬움이요 또한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주일에 저는 세상을 향해 속삭입니다. "어머니를 찾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어머니를 찾자는 말은 사랑을 회복하자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의 뿌리는 진정한 사랑이 고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현상이 가정과 어머니들의 변화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가 알던 어머니 모습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진정한 사랑이 증발하고 있는 현실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3.
교회력에 따른 성서 일과는 오늘 '선한 목자'에 대해 묵상하도록 정해 놓았습니다. 시편의 본문으로는 만인의 애송시편 23편을 정해 놓았고, 복음서 본문으로는 요한복음 10장을 정해 놓았습니다.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목자'에 비유합니다. 유목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시편을 통해 다윗이 전달하려 했던 의미를 금세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저같이 농촌에서 자란 사람으로서는 그 의미를 제대로 알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다윗이 저처럼 농촌에서 자랐다면 시편 23편은 이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농부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나를 기름진 땅에 심으시며
마르지 않는 물길을 대어 주신다.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돌보아 주신다.
내가 비록
가뭄과 병충해로 고생할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삽과 호미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선한 농부는 말 없는 농작물을 마치 자식처럼 애지중지 아낍니다. 논에 벼를 심어 놓고 잘 자라게 하기 위해 세심하게 살핍니다. 가뭄이 들면 한 포기라도 살려내기 위해서 밤을 새웁니다. 벼가 익을 때 즈음이면 꼭 한 번은 태풍이 지나가는데, 농부는 몸을 사리지 않고 벼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리켜 '농심'(農心)이라고 합니다. 목자가 양을 대하는 마음이나 농부가 농작물을 대하는 마음이 같을 것입니다.
시편 23편의 마지막 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6절)


4
"진실로"(surely)라는 단어를 통해 다윗은 지금 말하려는 내용에 대한 자신의 확신을 드러냅니다. "인자하심"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헤세드'인데, 이것은 헬라어의 '아가페'와 같은 뜻입니다. 변함 없는 사랑, 조건 없는 사랑, 영원한 사랑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따르다"라는 단어는 사냥꾼이 표적을 추적하는 행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윗은 이 세 단어를 결합시켜서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목자'라고 하지 않고 굳이

'선한 목자'라고 형용사를 붙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목자라고 다 같은 목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자 중에는 악한 목자도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예언자 에스겔의 예언을 생각하고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해 당시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잘못을 책망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여라. 너는 그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자기 자신만을 돌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목자들이란 양 떼를 먹이는 사람들이 아니냐? 그런데 너희는 살진 양을 잡아 기름진 것을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기는 하면서도, 양 떼를 먹이지는 않았다. 너희는 약한 양들을 튼튼하게 키워 주지 않았으며, 병든 것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것을 싸매어 주지 않았으며, 흩어진 것을 모으지 않았으며, 잃어버린 것을 찾지 않았다. 오히려 너희는 양 떼를 강압과 폭력으로 다스렸다.'" (겔 34:1-4)


예수께서 당신을 '선한 목자'라고 부른 것을 생각하면, 에스겔을 통해 책망 받고 있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악한 목자'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양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양들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에 있을 뿐입니다. 양들이 다치거나 병들어도 무심하게 대합니다. 오히려 강압과 폭력으로 양들을 다스립니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양은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의미하고, 목자는 사람들을 돌보는 책임이 맡겨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랑으로 돌보라고 맡겨진 사람들을 자신의 욕심을 위해 이용하고 착취하고 억누른다면 그 사람은 '악한 목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 만행을 지켜만 보고 있지 않겠다고 경고하십니다.


4.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에서 '악한 목자들'을 생각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11절)
나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 (14-15절)


5
'선한 목자'와 '악한 목자'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서로에 대한 '앎'에서 차이가 납니다. 목자가 양을 알고 양이 목자를 압니다. 히브리어의 '안다'는 말은 친밀한 인격적인 사귐이 있을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잠자리를 같이 했을 때 '안다'고 말합니다. 서로에게 대한 애정이 있어야만 이러한 앎이 가능해집니다. 목자가 양을 알고 양이 목자를 안다는 말은 그토록 애정 깊은 사랑과 관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10장 서두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서 이끌고 나간다. 자기 양들을 다 불러낸 다음에, 그는 앞서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라간다. 양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3-4절)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예수님 당시에 양을 치던 습관에 대해 조금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목자들은 대개 고용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노동자들 중에서 가장 낮은 계층에 속했습니다. 그들은 주인의 양들을 맡아서 풀밭을 찾아 다니며 기릅니다. 목자들은 서로 도와 가며 떼를 지어 다녔습니다. 낮에는 각기 흩어져서 풀을 뜯기고, 밤이 되면 한 동굴로 모여서 양 떼를 재우고, 목자들은 순번을 정하여 동굴 입구에서 불침번을 섭니다.


아침이 되면, 목자들은 각기 자신의 양들을 불러냅니다. 낯선 사람이 볼 때는 신기하기 짝이 없습니다. 양들이 함께 모여 있으면 그놈이 그놈같습니다. 그런데 목자는 자신이 맡은 양들을 정확하게 골라냅니다. 양들도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아 듣습니다. 서로 알기 때문입니다. 서로 애정을 가지고 함께 지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정확하고 신속하게 자신의 양들을 찾아내느냐에 따라 양에 대한 그 목자의 사랑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선한 목자'와 '악한 목자'의 또 다른 차이는 양에 대한 헌신의 정도에 있습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릴 정도로 양을 위해 헌신해야만 선한 목자로서의 자격이 있다는 뜻입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지점에서 멈추어 질문하게 됩니다. "과연,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잘 하는 일인가?"라는 질문입니다. 만일 그런 목자가 있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을 칭찬하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 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목숨까지 바쳐서 양을 보호할 필요는 없습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양이 목자를 위해 존재하지, 목자가 양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의 속성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진실되게 그리고 뜨겁게 사랑하면 그 사랑이 때로 목숨을 위태롭게 만듭니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다 주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의 속성에 대해 기가막힌 말씀을 남겼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요일 4:18)
사랑이 마음에 가득해지면 아무 것도 두려워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때로 생명도 바치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목숨을 버린다"고 하셨을 때, 주님께서는 사랑을 생각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양들을 돌본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진실하고 뜨겁게 양들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5.


십자가 위에서 참된 사랑이 드러났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윗이 인생 여정 가운데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나서 고백했던 그 사랑, 하나님의 그 변함 없는 사랑, 다윗의 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끝까지 추적해 다니며 부어 주신 그 사랑이 십자가 위에서 드러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삶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목자처럼 주님께서는 온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십자가 위에서 실증해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이 복음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헤세드, 하나님의 아가페, 그분의 계산하지 않는 사랑, 두려움을 내어좇는 사랑,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 사랑과 희생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이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 사랑의 힘으로 살고 또한 이 사랑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선한 목자의 다함 없는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 또한 그 사랑을 품고 선한 목자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그래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서로 사랑합시다"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일 4:7-8)
우리 가운데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 실천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이었습니다. 과거 우리의 어머니들은 자녀들을 알고 자녀들도 어머니를 알았습니다. 어머니의 목소리만 들어도 울던 울음을 뚝 그쳤습니다. 어머니는 자녀의 표정만 보아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아무도 못 알아듣는 옹알이를 어머니만큼은 알아듣고 응답을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친밀하게 알기에 자녀는 어머니를 따랐고, 어머니는 자식을 목숨을 아끼지 않고 사랑했습니다.


그런 어머니들이 서서히 사라지더니 이제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요즈음 엄마들은 아이들의 옹알이를 들어주면서 응답할 시간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표정으로 혹은 몸짓으로 전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자녀들도 어머니를 알지 못하고, 어머니도 자녀들을 알지 못합니다.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랑이 솟아날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들은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공을 위해 자녀들을 닥달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호랑이 엄마들만 많아지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호랑이 소굴로 변하고 있습니다.


7
이 말씀이 어떤 분들에게는 무거운 부담으로 혹은 쓰라린 아픔으로 들릴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삶의 형편이 만만치 않아서 어린 자식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일터에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분들이 이 말씀으로 인해 받을 가책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그런 분들이라면 짧은 시간이라도 내어 자녀들과 함께 하며 진한 사랑의 연대를 만들어 가실 것이라는 믿음이 듭니다. 문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게 하는 이들에게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좀 더 편안하게 사는 것 그리고 자신의 커리어를 키우는 것에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일이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한 영혼을 위해 생명까지도 바쳤는데, 우리가 정말 자녀를 사랑한다면 아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앞에서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이 말씀은 어머니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들에게서 진실한 사랑이 증발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참된 사랑이 증발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 가지의 증상일 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믿는 우리가 가장 먼저 문제 의식을 느껴야 하고 또한 우리가 먼저 사랑의 회복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힘 입은 존재들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 비추어 우리 자신을 돌아 보십시다. 과연 우리는 선한 목자입니까?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는 목자로서의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을 돌보도록 맡겨 주셨고, 어떤 사람에게는 직장에서 사람들을 맡겨 주셨으며, 또 어떤 사람에게는 교회에서 사람들을 맡겨 주셨습니다. 돌아 보면, 목자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합니다. 과연 나는 선한 목자로서 나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있습니까?


또 다시 <세월호>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월호>가 침몰되어 가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어떤 목자인지 그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그들 가운데 '선한 목자'는 별로 없었습니다. 마치 이리가 달려들어 양들을 해치는 것을 보고는 동굴 속으로 숨어버린 목자처럼,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외면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사랑이 메말랐는지를 너무도 똑똑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우리를 감동하게 한 젊은 여성이 있었습니다. 올 해 22세의 여성 승무원 박지영씨가 그 사람입니다. 사고가 나자 선장과 남자 승무원들은 가장 먼저 배를 탈출했는데, 박지영씨는 학생들에게 구명 조끼를 나누어 주면서 대피를 도왔습니다. 위기를 감지한 학생 중 하나가 "왜 언니는 안 입어요?"하고 묻자, "선원은 맨 나중이다. 너희들 다 구하고 난 나중에 갈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박지영씨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고 힘쓰다가 결국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 딸보다더 어린 그 여성에 대해 저는 여러 번 생각했습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행동하게 했을까?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답이 나옵니다. 위기의 순간에 그의 마음에서 솟아나온 사랑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 어린 여성이 죽기를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죽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선택했습니다. 동생같은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 그를 지배했습니다. 사도 요한의 말씀대로 그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몰아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배로부터 빠져나올 때, 그는 배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사랑이 아니고는 그럴 수 없었을 것입니다.


8
박지영씨는 비록 어렸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어른이었습니다. 그는 연약한 여성이었지만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랑이 그의 두려움을 밀어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계약직 말단 직원이었지만, 우리가 아는 한, 그 배 안에 있던 몇 안 되는 선한 목자였습니다. 그의 종교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그는 분명히 하나님 안에 있었고, 지금도 하나님 안에 있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의 말씀 대로입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요일 4:16)
그러므로 다시 한 번 각자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다. 나는 과연 선한 목자입니까?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나에게 있으며, 그 사랑으로 가족과 교우와 이웃을 대하고 있습니까? 선한 목자의 심정으로 세상을 지켜 보고 무엇이든 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삽니까? 자녀들을 대할 때 나는 과연 선한 목자입니까? 직원들을 대할 때 나는 과연 선한 목자입니까? 교인들을 대할 때 나는 과연 선한 목자로서 대하고 있습니까? 이웃을 대할 때 나는 선한 목자입니까?


부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마음을 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우리가 가는 모든 곳에서 선한 목자의 심정으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호랑이 소굴이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직 이 사랑으로만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를 닮아갈 수 있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을 아는 우리가 먼저 그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도 그렇게 따라 살 것입니다. 주님께서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
저희에게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주님의 마음을 품게 하소서.
저희가 만나는 모든 이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대하게 하시어
하나님의 나라가
저희를 통해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속회자료> 2014년 5월 11일 주일 설교
"어머니를 찾습니다"(Mothers In Danger of Extinction)
1. 찬송을 부르며 시작합니다. 569장(통 442)
2. 한 사람이 대표로 기도합니다.
3. 시편 23편과 요한복음 10장 1-18절을 읽습니다. 선한 목자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봅니다. (10분)
4. 말씀의 요약 (웹싸이트에 있는 말씀 요약을 읽습니다. 10분)
5. 말씀의 나눔 (한 질문에 대해 15분 정도를 할애하십시오. 전체 나눔 시간이 90분을 넘지 않게 하십시오.)
1) 오늘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으면 한 가지만 나누어 주십시오.
2) 당신의 어머니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가장 기억에 남은 일화 하나를 말해 보십시오.
3) 어머니가 멸종되고 있다는 진단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느낍니까? 왜 그렇다고 생각합니까?
4) 당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을 대하는 당신은 선한 목자입니까?
6. 기도
1)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2) 선한 목자의 심정으로 사람들을 대하도록 기도하십시오.


7. 중보기도
돌아가면서 기도 제목을 나누십시오. 각자 다른 사람의 기도 제목을 적어 두고 매일 한 번씩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8. 찬송을 부르며 헌금을 드립니다. 503장(통 373)
9.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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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9 요한복음 한번 나면 두번 죽고, 두번 나면 한번 죽는다 요3:1-8  강문호 목사  2013-03-03 2173
788 요한복음 4000년 기다린 3일 요2:19-22  강문호 목사  2013-02-18 1997
787 요한복음 사랑의 3대 정의 요21:11  이한규 목사  2013-02-14 3098
786 요한복음 예수님과 함께 요2:1-11  김삼환 목사  2013-01-29 2799
785 요한복음 와서 보아라(Come and See) 요1:35-39  김영봉 목사  2013-01-24 2349
784 요한복음 하늘에 이르는 층계(Stairs to Heaven) 요1:43-51  김영봉 목사  2013-01-24 2747
783 요한복음 내 안에 있는 두 사람(Two Selves Within Me) 요1:40-42  김영봉 목사  2013-01-24 2870
782 요한복음 무엇을 찾습니까?(What Do You Want?) 요1:35-39  김영봉 목사  2013-01-24 2259
781 요한복음 영적 건강의 두 요소(Two Elements of Spiritual Health) 2011년 1월 23일 주일 설교  김영봉 목사  2013-01-24 2638
780 요한복음 죽임 당하신 어린 양(The Lamb That Was Slain) 요1:29-31  김영봉 목사  2013-01-24 2324
779 요한복음 나 답게 되기(To Be Myself) 요1:19-28  김영봉 목사  2013-01-24 2672
778 요한복음 은혜와 진리가 만날 때(When Grace Meets Truth) 요1:14  김영봉 목사  2013-01-24 2539
777 요한복음 빛이 되신 로고스(The Logos Who Is the Light) 요1:1-5  김영봉 목사  2013-01-24 2427
776 요한복음 텐트 속에 계신 하나님(God Who Abides In A Tent) 요1:14  김영봉 목사  2013-01-24 1898
775 요한복음 하나님의 세상에 눈 뜨다(Opened to See God’s World) 요1:1-5  김영봉 목사  2013-01-24 2578
774 요한복음 영원에서 온 메시지(A Message from Eternity) 요1:1-5  김영봉 목사  2013-01-24 4780
773 요한복음 그리스도의 탁월성과 인간의 의무 요10:18  김남준 목사  2013-01-11 2462
772 요한복음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 요4:23  김남준 목사  2013-01-11 2161
771 요한복음 예배 드리는 태도는 삶의 태도입니다 요4:23  김남준 목사  2013-01-11 3327
770 요한복음 다시 찾는 십자가 요19:34-35  김남준 목사  2013-01-11 2164
769 요한복음 딴 길로 가지 맙시다 요14:6  김동호 목사  2013-01-10 2652
768 요한복음 지혜를 붙드는 사람 요9:1-17  최장환 목사  2013-01-09 3861
767 요한복음 천국을 내 안에서 이뤄가라 요21:10  이한규 목사  2013-01-07 1823
766 요한복음 섬기는 삶 요13:1-15  조용기 목사  2013-01-04 2132
765 요한복음 요한이 이해하는 예수 요10:1-16  허태수 목사  2012-12-16 1776
764 요한복음 네가 바로 그 여자다 요4:16-24  허태수 목사  2012-12-16 1843
763 요한복음 실패 앞에서 정직하라 요21:8-9  이한규 목사  2012-12-08 2575
762 요한복음 다부지게 믿으십시오 요21:7  이한규 목사  2012-12-08 1927
761 요한복음 감사와 기적 요6:1-15  이정원 목사  2012-12-06 2642
760 요한복음 예수의 왕권 요18:33-38  정용섭 목사  2012-12-06 2135
759 요한복음 열매 맺는 삶에 이르도록 요15:1-8  조용기 목사  2012-12-06 2409
758 요한복음 좋은 친구 진정한 친구 요15:13-15  한태완 목사  2012-12-02 3321
757 요한복음 한계로부터 탈출 요4:46-54  김필곤 목사  2012-11-17 2918
756 요한복음 가라, 예수님은 이 말씀만 하셨다 요5:1-14  허태수 목사  2012-11-15 2298
755 요한복음 언제나 주와 함께 요15:1-11  김동호 목사  2012-11-12 2416
754 요한복음 십자가와 구원 요3:16-18  김동호 목사  2012-10-31 2712
753 요한복음 영안이 열린 삶 요21:7  이한규 목사  2012-10-21 2421
752 요한복음 성령의 열매 시리즈 1 예수 나무 예수 열매 요15:1-16  조항목 목사  2012-10-18 3241
751 요한복음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 요1:43-45  강요셉 목사  2012-10-11 2600
750 요한복음 안식과 주일 요5:10-18  하용조 목사  2012-10-10 2233
749 요한복음 나만 별다른 사람이라고 느낄 요7:53-8:11  신대현 목사  2012-09-25 1921
748 요한복음 예수님과의 만남 요4:2-26  한태완 목사  2012-09-22 3975
747 요한복음 참된 예배의 태도 요4:23下  김남준 목사  2012-09-22 2674
746 요한복음 교회 본질을 회복하자 요14:6  한태완 목사  2012-09-14 3001
745 요한복음 너희도 가려느냐? 요6:60-71  정용섭 목사  2012-09-06 2960
744 요한복음 영원한 생명의 밥 요6:52-59  정용섭 목사  2012-09-06 2535
743 요한복음 최고의 예배를 우리 하나님께 요4:23-24  김동호 목사  2012-08-23 2909
742 요한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 요6:1-15  정용섭 목사  2012-08-07 2061
741 요한복음 죽음이 정복된 나라 요11:17-27  김필곤 목사  2012-07-30 2961
740 요한복음 소망. 사랑. 믿음 요14:1-12  허태수 목사  2012-07-27 3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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