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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4대 기독교 영성

요한복음 이한규 목사............... 조회 수 533 추천 수 0 2016.02.06 22:5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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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7:14-19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706) 2015년 10월 5일(월) 

 요한복음 17장 14-19절


14.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건강한 4대 기독교 영성

(요한복음 17장 14-19절)
 
< 나르시시즘을 멀리하십시오 >

 병명 중에 ‘NPD(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나르시시즘 인격 장애)’란 병명이 있습니다. 그 장애를 가진 사람의 2가지 징후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를 대단한 사람으로 착각하는 것이고 둘째는 환상적인 사랑과 능력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자기만 아는 경향이 커지면서 그런 장애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나르시시즘은 나르시스(Narcissus)란 헬라 신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나르시스는 잘생긴 외모로 많은 여인들의 사랑을 받지만 그 자신은 어떤 여인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가 목이 말라 물웅덩이로 갔다가 물에 비친 잘생긴 자기 모습에 도취되어 먹는 것도 잊고 자기 몰입에 빠져 결국 죽었습니다. 그처럼 자기 몰입에 빠지면 결국 망가지고 죽습니다. 병 중에 가장 고치기 힘든 병은 자기도취 병입니다.


 이사야 14장을 보면 왜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 하늘에서 떨어졌습니까? “내가 하늘에 오르겠다! 내가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겠다!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겠다! 내가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겠다! 내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겠다!”고 하면서 자기를 높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교만한 ‘내가’가 문제였습니다. 추락과 타락 전에는 늘 ‘교만한 자기’가 먼저 있습니다. 그러므로 높아질 때 낮추려고 하고 특히 나눔을 통해 낮아짐을 실천해서 사탄의 이기심이 틈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의 가장 반대되는 말은 ‘자기 충만’입니다. 성도답게 살려면 손해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남을 손해 보게 하는 데는 익숙하고 자기는 절대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하면 공동체에 평화와 번영이 임할 수 없습니다. 특히 성도는 세상을 멀리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세상에서 빛을 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기독교의 4대 바른 영성 >


 요새 영성에 관한 관심이 큽니다. 영성이란 말은 다른 종교나 인본적인 사상가들도 많이 사용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영성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른 기독교 영성은 어떤 영성을 말할까요?


1. 성육신의 영성


 기독교 영성은 영혼의 차원뿐만 아니라 육신의 차원에서도 나타나야 합니다. 즉 영혼과 육신을 따로 분리하면 안 됩니다.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게 보는 이원론적 영성은 영혼과 육신을 대립시키고 분리시키는 심각한 오류를 낳습니다. 이원론적 영성 추구는 결국 신비주의나 반지성주의 또는 금욕주의로 흘러 오히려 기독교를 망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요 1:14). 영성의 모델이신 예수님은 ‘육신을 입은 영성’으로 자신을 나타내심으로 영혼과 육신을 분리하는 삶을 살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부활하실 때 몸으로 부활하셨고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 몸을 성전으로 삼고 우리 안에 계십니다.


 성령님이 성도의 몸 안에 계시는 사실은 육체도 소중히 여기라는 교훈을 줍니다. 몸을 떠난 영성은 참된 기독교의 영성이 아닙니다. 몸을 소중히 여기면서 몸을 드릴 줄 아는 성육신의 영성이 참된 영성입니다. 기독교 영성은 삶 속에서 영성을 실현함으로 몸을 입고 사신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사는 필생의 과정입니다. 사랑할 때도 마음으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몸과 물질과 시간도 드리면서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마태복음 20장을 보면 예수님이 두 맹인을 고쳐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은 두 맹인에게 관심을 주셨고 그들의 필요에 귀를 기울여주셨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눈을 직접 만져주심으로 치료해주셨습니다. 그처럼 누군가를 사랑할 때 말과 마음으로만 사랑하지 말고 필요하면 사랑의 터치도 하며 몸과 물질로도 함께 해주는 성육신의 영성을 가지고 사랑해야 합니다.


2. 참여자의 영성


 사람들은 영성을 ‘세상과 격리되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참된 기독교 영성은 ‘세상과 격리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입니다(15-16절). 즉 세상으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세상으로 들어가서 세상 속에서 악에 빠지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것이 참된 기독교 영성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한 세상을 외면하고 버리는 것은 영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본문 18절에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예수님도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기독교는 세상을 외면하고 속세를 떠나 수도하는 종교가 아니고 세상에 들어가서 세상과 함께 고뇌하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물질세계를 무시하거나 외면하거나 분리하지 않습니다. 구별은 하되 분리는 하지 마십시오. 성도는 매일 교회나 기도원에 가는 것만 좋아하지 말고 세상과 일터에서 빛을 발하는 것도 잘해야 합니다. 성과 속을 분리하는 이원론적인 영성을 가지면 어디서든지 분리하는 삶이 영성인 줄 알고 비판과 정죄와 판단도 잘하고 특별한 신앙행위를 해야 신령한 것인 줄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명예욕을 버리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겸손하게 사랑을 실천하는 참여자의 영성을 가진 사람이 진짜 신령한 사람입니다.


 성도는 불신자들과도 잘 지내야 합니다. 창세기 14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아모리 족속과 동맹을 맺습니다. 그때 “아니! 믿는 사람이 하나님만 바라봐야지 어떻게 세상 사람들과 동맹하는가?”라고 한다면 그것은 헛된 교만과 헛된 영성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도 좋았지만 이방인과의 관계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이방 왕인 아비멜렉이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란 말까지 했습니다(창 21:22). 그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얼마나 큰 영광을 받으셨겠습니까?  성도는 ‘신앙’도 있어야 하지만 ‘신의’도 있어서 불신자로부터 “저 사람은 믿는 사람답다! 믿을만하다!”란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3. 공동체의 영성

 
 본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그들’이란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개인적인 영성보다는 공동체의 영성을 가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기독교는 ‘개인적인 영성’보다 ‘교회적인 영성’을 더 중시합니다. 성도는 공동체에 유익을 주는 영성과 믿음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도 중시해야 합니다. 타 종교는 영성을 추구할 때 대부분 가정을 외면하지만 기독교는 가정을 교회만큼 중시합니다.


 가정은 진리의 보화가 무진장 매장된 1차 공동체입니다. 타 종교에서는 가족을 버리고 산에서 수도할 때 영성이 깊어진다고 여기지만 기독교에서는 가정을 영성 훈련의 기초 도장으로 여깁니다. 성도는 가정에서 성도다운 삶을 보여줌으로 가족들도 인정해주는 건강한 영성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예수! 예수!”라고 입으로 많이 말해도 가족의 기본책임을 외면하거나 부모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헛된 영성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 신부들은 결혼하지 않습니다. 성직자가 독신으로 사는 것이 겉으로 볼 때는 거룩하고 고상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결혼 경험도 없이 혼자 살면 부부간의 고뇌와 자녀를 키우며 씨름하는 고뇌를 깊이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가톨릭 신자는 가정 문제로 상담을 하면 신부님이 자기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고 너무 원론적인 말씀만 해서 속상하다고 말합니다. 독신을 더 경건하게 보는 시각은 옳은 시각이 아닙니다.


 최고의 영성은 인간관계의 고뇌를 통해 성숙해진 공동체의 영성입니다. 개인적인 영성을 강조하면 경건을 내세워 분리주의와 자기중심주의에 빠질 가능성도 커집니다. 성도는 자기중심주의를 버리고 자기중심주의가 확대된 개 교회 중심주의와 지나친 교파의식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영성 자랑을 최대한 삼가야 합니다. 영성 자랑은 공동체 분열의 씨앗이 되는 가장 영성이 없는 태도입니다.


4. 십자가의 영성


 본문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참된 기독교 영성은 진리로 거룩하게 되는 성결의 영성입니다. 성도는 중생한 것으로 끝나지 말고 더 차원 높은 성결의 축복을 지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신앙이 왜곡될 수 있습니다.


 독일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진리를 소유했습니다. 그러나 중생 이후의 삶을 등한시해서 오늘날 독일은 생명력을 잃은 기독교 국가가 되었고 자유주의 사상의 온상이 되었다. 반면에 미국과 영국 성도들은 성화와 성결을 추구했던 웨슬레(Wesley), 백스터(Baxter), 휫필드(Whitefield), 무디(Moody), 그리고 심슨(Simpson) 등의 영향으로 보다 깊은 은혜와 축복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성결은 좋은 성품과 도덕성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자기 공로나 노력으로 어떤 성숙단계에 이르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 이르거나 감정적인 황홀경에 빠지는 것도 아닙니다. 성결은 뚜렷한 삶의 목적과 동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과 속성을 따라 자기를 버리거나 자기를 드림으로 실제적인 삶의 변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 바로 성결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거룩하게 한 것은 제자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19절). 그 말은 예수님을 떠나서는 거룩하게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즉 성결하게 되려면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때 지혜와 창조성과 생명력이 넘치게 되고 ‘자기’란 껍질도 깰 수 있게 됩니다. 믿음이란 ‘자기란 껍질을 깨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란 삶의 목적을 뚜렷하게 가지는 것입니다.


< 목적과 동기를 따라 사십시오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한 삶의 목적과 동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선한 목적과 동기도 없이 너무 덩치만 키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부와 권세를 주신 것은 세상을 더 낫게 만들라는 목적을 이루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유’에 관심이 있지 않고 ‘우리의 목적’에 관심이 있습니다. 자녀들도 10권 정도의 교과서를 잘 외우고 습득한 지식으로 서열을 매기는 사회에 매몰되어 찬란하고 다양한 꿈도 없이 살게 하지 마십시오.


 다윗은 목동으로 있다가 왕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당대와 후대도 얼마든지 다윗처럼 될 수 있고 최고의 경제인 될 수 있습니다. 자신 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가능성의 있습니다. 그렇게 믿고 하나님을 붙잡고 나가십시오. 선한 목적과 동기를 발견하면 자신 안의 아브라함과 다윗이 베일을 벗고 나타날 것입니다. 위대한 인물들은 대개 선한 목적과 동기를 따라 현재의 자기보다 더 큰 자기를 추구했기에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믿음을 버리고 자기 너머의 삶을 추구하십시오. 자기를 부인할 줄 알아야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 너머의 삶, 자기보다 큰 것, 자아 이상의 것을 추구하십시오. 그런 목적이 없다면 축복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자신을 너무 사랑하지 마십시오. 자신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영적인 투자를 하시겠습니까? 자기 팬클럽을 만들려고 하지 마십시오. ‘사람 팬’을 추구하지 말고 ‘주님 편’을 추구하십시오.


 어느 날, 양털과 양 배설물과 양 냄새에 젖어 살던 다윗이 전쟁터에 있던 3명의 형들에게 먹을 것을 전해주려고 갔습니다. 거기서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때 거룩한 분노가 생기면서 삶의 목적과 동기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을 죽이면서 점차 영향력과 권세도 얻게 되었습니다.


 살다 보면 어떤 일로 거룩한 분노가 생길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 베일에 가렸던 자신의 복된 운명의 장이 새롭게 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거룩한 분노를 가지면서 삶의 목적과 동기를 발견했고 그때 축복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마침내 왕이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자기 안에 왕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왕재였습니다. 그 왕재가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분노 중에 베일을 벗고 나타난 것입니다.


 살다 보면 불안해서 죽을 것만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사탄은 절망을 부추깁니다. “너 이제 죽는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 그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마음속으로 믿음의 말을 하십시오. “죽으면 죽으리라! 죽을 때까지는 멋지게 살리라! 망하면 망하리라! 망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리라!”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으면 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사명을 찾고 자아 이상의 목적과 동기를 찾으십시오.


 아직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인식한다면 인생이 허무하게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탄에게 말하십시오. “나는 끝나지 않았다!” 마음속의 절망에게 말하십시오. “나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 안에 아브라함과 다윗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 프랜시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실한 강철왕 카네기와 변화된 후의 석유왕 록펠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위대한 인물이 숨어 있습니다. 그 인물이 베일을 벗고 나타나면 세상을 놀랍게 변화시킬 것입니다.


 월새기(월간 새벽기도) 문서선교 사역은 인물이 베일을 벗고 나타나도록 하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월새기 사역을 하면서 가장 기쁠 때는 교정기관의 재소자들로부터 감사편지를 받을 때입니다. 얼마나 감동적인 사연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영어판 월새기>가 발행되면 가장 먼저 영어권의 교정기관으로 무상으로 보내는 일부터 할 것입니다. 그때는 세계 곳곳에서 월새기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인물들이 베일을 벗고 나타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평화가 이 땅에 이뤄진다면 얼마나 멋진 삶입니까?


 일을 위해서 살지 말고 뜻을 위해서 사십시오. 일을 위해서 뜻을 만들지 말고 뜻을 위해서 일을 만드십시오. 하나님은 그저 생존하라고 우리를 이 땅에 보내 여기 있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고 우리를 이 땅에 보내 여기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고 재능과 지식과 권세와 물질도 주신 것입니다. 항상 선한 목적과 동기를 따라 자기 너머의 삶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멋지게 이루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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