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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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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허태수 목사 |
참고 : | 2016.4.30 주일 http://sungamch.net 춘천성암교회 |
지도에 없는 마을, 베르나카
요14:1-3
[지도에 없는 마을]은 비밀을 추적하는 형식의 장편동화입니다.
‘베르나카’ 라는 자작나무 섬에 살고 있는 주인공 소년 보담이는 새로 부임한 교장 선생님을 골탕 먹이려다가 우연치 않게 실종자들에 대해 알게 되죠. 실종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입니다. 여기서 시작한 궁금증은 이혼을 했다면서 엄마에 대해 숨기고 있는 아빠, ‘사물과 교감하는 사람들’이라는 방송을 하는 ‘미스터리 방송’의 실체, 밤마다 특별한 작업이 이루어지는 ‘거대한 고물상’에 숨겨진 비밀,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을 생산해내는 바벨 쇼핑센터의 정체 등으로 퍼져 나갑니다. 그리고 그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친구 소라, 아빠 호돈, 소라의 엄마 리안, 미스터리 방송사의 은 피디, 교장 선생님 구진 등이 차례로 합류합니다. 일종의 등장인물들인 셈이죠. 비밀의 추적 과정을 지켜보는 독자들은 거대한 고물상에 숨겨진 비밀이 무엇인지, 그리고 보담이를 비롯한 인물들이 마침내 그 마지막 비밀을 풀어내고 사라진 사람들을 찾을 수 있을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지도에 없는 마을]은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지만, 책장을 덮고 나면 사물에 대한 인간의 집착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기적인 욕망에 대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소비 사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인 바벨 쇼핑센터는,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을 생산해서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깁니다. 그 일례로 자작나무 섬의 무분별한 개발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에 유지되고 있던 공동체나 자연 환경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이렇게 사물에 대한 인간의 집착을 상징하는 공간인 바벨 쇼핑센터의 대척점에는 ‘거대한 고물상’이 있습니다. 거대한 고물상은 쓸모가 없어서 버려진 물건들을 새로운 물건으로 변화시키는 장소 아닙니까? 그 고물상의 로고가 바로 ‘베르카나’입니다. 베르카나는 고대 룬문자로 회복, 재탄생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자작나무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지도에 없는 마을] 베르카나는 비밀을 풀어내는 중요한 열쇠의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편리한 소비 문명이 맞닥뜨린 문제”라는 묵직한 주제의식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이야기 하나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빈센트 반 고흐가 당시 존경받는 화가이던 에밀 베르나르에게 쓴 편지입니다. 오늘은 설교가 길지 않으니 그 전문을 소개하겠습니다.
“성경은 때로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고 분노하게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될 수 있는 어리석음과 편협함으로 우리를 공격하고 혼란스럽게 하네. 결국 우리를 깊은 슬픔에 잠기게 만들지. 그러나 성경이 주는 위안도 있지 않은가. 딱딱한 껍질 속에 숨어 있는 쌉쌀한 과육과도 같은 위안, 그것은 그리스도라네. 오지 들라쿠루아와 렘브란트만이 내가 아는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얼굴을 그렸네. 그리고 밀레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렸지.
회화적 관점이 아니라 종교적 관점에서 그려진 종교화들은 나를 웃길 뿐이네. 보티첼리같은 초기 이탈리아 화가들, 혹은 반 에이크 같은 초기 플랑드로 화가들, 크라나흐 같은 독일 화가들, 그런 사람들은 그리스 화가들이나 벨라스케스, 그리고 다른 많은 자연주의 화가들과 같은 이유에서만 내 관심을 끈다네.
철학자들과 미술가들이 많이 있었지만, 오직 그리스도만이 영생을 확신 했고, 시간의 무한성, 죽음의 무의미함, 평온과 헌신의 필요성과 의미를 인정했지. 그는 다른 예술가보다 더 위대한 예술가로서, 대리석, 점토, 물감을 경멸하면서 살아 있는 육신으로 일했고 평온하게 살았네. 신경질적이고 둔한 우리 현대인위 두뇌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 이 두려움 없는 예술가는 조각을 하지도, 그림을 그리지도, 글을 쓰지도 않았네. 단지 자신의 말을 통해 살아 있는 사람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었지.
여보게, 베르나르. 이런 생각은 우리를 예술 자체를 넘어서 아주 멀리 있는 세계로 데려가네. 그래서 생명을 창조하는 예술,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있는 예술을 볼 수 있게 해주지. 이 생각은 회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네. 흔히 한 마리 황소로 상징되는 누가는 복음서의 저자인 동시에 물리학자이자 화가였기에 흔히 화가들의 성자라 불리면서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을 빼앗아가는’ 이 냉혹한 행성에서 화가들이 꾸려가는 생활은 정말 초라하지. 그뿐만 아니라 실천하기 힘든 사명 때문에 허리가 부서져라 멍에를 지고 고통에 시달리고 있네.
그래도 무수한 다른 행성이나 태양에도 선과 형태와 색채가 존재한다는 가설을 반박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른 존재가 되어 그림을 그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믿을 자유가 우리에게 있지. 유충이 나비가 되고 굼벵이가 딱정벌레가 되는 것보다 더 놀라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어떤 현상에 의해 완전히 달라진 존재 말일세.
지상에 머무르는 동안 지도 위에 검은 점으로 표시되어 있는 마을이나 도시에 직접 가볼 수 있는 것처럼, 어쩌면 나비가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무수한 별이 있을지도, 그리고 죽은 후에는 우리도 그곳에 갈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 않겠나.”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86~187 페이지
앞의 창작 동화와 고흐의 편지의 공통점은 ‘지도에 없는 마을에서 살고 싶다’입니다. 우리는 지금 지도에 있는 마을에서 제한적이고, 불편부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무한의 행복을 구하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쇼핑센터와 고물상을 오가는 사이에 깨진 꽃 화분처럼 초라해 지기만 할 뿐입니다. 보담이와 고흐는 ‘지도에 없는 마을’을 꿈꾸며 살았습니다. 고흐의 그림들은 이 지도에 없는 마을을 꾼 꿈을 그린 것들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수백 년 후에 고흐의 꿈은 확증이 되었습니다. 지도에 없는 행성을 알게 된 것입니다.
보담이처럼, 반 고흐처럼 지도에 없는 마을을 꿈꾸다가 마침내 지도에 없는 마을로 들어간 존재가 있습니다. 정세환 장로입니다. 그는 지금 베르나카에 있습니다. 자작나무 마을 말입니다. 고흐는 예수가 불멸의 마을에 살면서, 불멸을 꿈꾸며 믿는 사람들을 불멸의 존재로 이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이끌림을 받아 그는 지금 쇼핑센타도 고물상도 없는 베르나카, 불멸에 마을에 당도해 있습니다. 이 마을은 지도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저 그것을 믿는 자들만이 믿음으로 가는 마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지도에 없는 마을, 베르나카’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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