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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온다

요한복음 정경일 형제............... 조회 수 394 추천 수 0 2016.06.21 12:25:00
.........
성경본문 : 요15:13 
설교자 : 정경일 형제 
참고 : http://www.saegilchurch.or.kr/sermon/415896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온다
(요한복음 15:13)
2014년 6월 1일
정경일 형제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 요한복음서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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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도 끔찍한 사고들이 있었습니다. 장성에서 스물한 분의 노인들이 방화로 인한 화재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도곡역에서도 방화가 있어 대형재난이 일어날 뻔 했습니다. 정말 바다에도, 땅에도, 땅 속에도 안전한 곳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곧 [세월호]라는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배우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세월호가 계속 나타날 것입니다. 배움과 변화를 위해서는, 아프고 괴롭더라도,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기억을 지우려는 이들이 있고, 이미 많은 기억이 유실되고 있습니다. 세상이 세월호를 잊으려 할 때 누군가는 세월호의 기억을 보존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기억의 공동체’입니다. 이천 년이 넘도록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고통과 죽음, 부활을 매 주일마다, 아니 삶의 매 순간마다 기억하고 재현해 왔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십자가인 세월호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진도 앞바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세월호 이후’를 살고 있는 제게, 우리 모두에게 무슨 일이 있어 왔는지를 나눔으로써, 기억의 탑에 작은 한 조각을 올려놓고자 합니다.


지난 4월, 부활주일 아침은 참담했습니다. 탁하고 차가운 물속에 십자가처럼 세월호가 잠겨 있었고, 그 안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나마 잿빛 바다 수면 위로 한 조각 희망처럼 떠 있던 푸른 뱃머리마저 물 밑으로 내려가 버렸습니다. 절망하고 분노한 실종자 가족들은 청와대로 가 대통령에게 항의하겠다며 새벽에 행진을 벌였고, 경찰은 시위 진압하듯 그들을 막았습니다. 그 모든 사태를 지켜보며 가슴이 먹먹해진 저는 부활의 기쁨을 말할 수도 노래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활주일 예배 내내 여기저기서 애써 울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부활의 날에도 고난은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능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강함과 뛰어남은 한낱 모래성이었을 뿐임이 드러났습니다. 무려 36000km 상공으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과학강국, 경제대국이 사고 후 여러 날이 지나도록 겨우 37m 수심 바닷속에 갇혀 있는 아이들을 구해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어처구니없다 못해 분노가 치밀어 오를 정도로 무능했습니다. 아무런 대책도 조치도 없이 우왕좌왕하면서 결정적 구조의 기회를 허무하게 놓쳐 버렸습니다. 게다가 선장을 비롯한 사태의 직접적 책임자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책임했습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온통 무능하고 무책임한 현실의 탁류에 휩쓸리며 우리는 바닥 모를 무력감 속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한 월간지로부터 세월호 이전에 청탁 받은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제게 주어진 주제는 ‘기적’이었습니다. 저는 원고마감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 잔인한 4월에 기적에 대해 생각하고 쓴다는 것이 불가능하고 불경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가 견뎌야 했던 하루하루는 기적에 대해 가장 많이, 가장 절실하게 생각하게 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지독한 무력감 속에서 우리 모두는 ‘기적’을 갈망했습니다. 기적은 무력한 이들의 소망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들이 마지막에 바라는 게 기적입니다. 종교적 신앙의 유무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기적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기적을 바랐습니다.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무력했습니다. 소위 생존 가능 시간을 훌쩍 넘겼을 때 저는 여호수아가 기브온에서 해와 달을 멈추었다는 성서의 설화를 떠올렸고, 그런 기적이 일어나 시간이 멈추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기적은 없었습니다. 무심하고 무정한 시간만 흘러갔고, 아이들은 하나 둘 죽어서 뭍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참사가 있은 지 이십 일 가까이 되어, 희생자를 애도하고 유가족의 고통을 함께 하기 위한 [고난함께(同苦) 렉시오 디비나 예배]를 준비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는 가슴에 달 리본의 색을 정해야 했습니다. 그때 우리의 머리는 이제는 애도와 추모의 ‘검은 리본’을 달아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가슴은 여전히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노란 리본’을 달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가슴을 따랐고,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문구가 새겨진 이 노란 리본을 준비했습니다. 이성으로는 이미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우리의 감성은 차마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던 것이지요. 그 잔인한 봄, 우리의 머리와 가슴의 차이는 검정색과 노란색의 채도차 만큼이나 컸습니다.


버릴 수 없는 희망은 괴로움의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희망이 클수록 절망도 컸고, 그 둘 사이의 간극에서 생긴 슬픔에 죄의식, 우울, 분노가 섞이면서 우리는 괴로워했습니다. ‘희망고문’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미세먼지를 마실까봐 걱정하는 것이 야속했고, 우산으로 비 피하며 걷는 것이 미안했고, 예배 후에 소박한 국밥 한 그릇의 맛을 느끼는 게 죄스러웠습니다. 일을 하다가도, 회의를 하다가도, 출퇴근길 버스 안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무력하고 가슴이 미어져서 ‘정상적’ 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비통한 나날을 정상적으로 사는 것, 눈물 없이 사는 것이야말로 ‘비정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온 사회가 고통의 바다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괴로움은 더욱 컸습니다. 하느님은 침묵하셨고, 아이들을 구해주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침몰하는 세월호 안에서 시연이는 기도합니다. “우리 반 아이들 잘 있겠죠? 부디 한 명도 빠짐없이 (수학여행) 갔다 올 수 있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하느님은 시연이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고통의 현실에서 구원자 하느님의 기적을 바라는 것은 실제적이고 강력했지만, 기대했던 신적 기적의 부재는 더 깊은 절망감과 당혹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전지전능하고 전적으로 선하신 하느님을 믿기에 오히려 더 깊은 내상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은 벼랑 끝 같은 물음 앞에 섰습니다. 신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 없이도 신앙을 지킬 수 있는가? 공동체의 한 자매님이 기도를 계속해야 하냐고, 하느님을 계속 믿어야 하는 거냐고 비통하게 물으셨을 때, 저는 '신정론'의 가능한 답들을 말씀 드렸지만, 제가 하는 모든 말이 변명처럼 느껴져 자꾸 말꼬리가 내려갔습니다. 제 말도, 신학도, 신앙도 침몰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릴 때 저를 위로한 것은 ‘신학’이 아니라 ‘시’였습니다. 시는 이성의 언어가 산산이 부서질 때 비로소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탄식과 희망의 언어입니다. 시편의 많은 탄원시들도 죽음 같은 절망을 토해내고, 그 절망의 더미 위에 희망의 꽃을 피웁니다. 김수영 시인의《절망》은 저를 위로한 오늘의 시편이었습니다.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절망에 절망한 시인이지만, 한줄기 바람 같은 구원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그랬습니다. 예기치 않은 순간에 구원의 기적이 바람처럼 왔습니다. 무지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사회가 공모하여 침몰시킨 세월호 안에서, 인간의 악이 가장 참혹하게 드러난 그 배 안에서, 기적처럼 인간의 근원적 선이 가장 찬란하게 드러났습니다.


아이들을 그 검고 차가운 물속에 내버려 두고 자기들만 살겠다며 앞다투어 배에서 탈출한 선장과 승무원들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침몰하는 배 속으로 뛰어 들어간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슈퍼 히어로들이 아니었습니다. 여섯 살(!) 혁규는 자기 구명조끼를 벗어 다섯 살 동생 지연이에게 입혀 주고 부모를 찾아오겠다며 뛰어갔다가 실종되어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작고 여린 몸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혁규가 부모를 찾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의 품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고 그의 짧은 생을 마칠 수 있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고 정차웅 군은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벗어 주고 다른 친구를 구하려고 물속에 뛰어 들었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승무원 고 박지영 씨는 구명조끼가 모자라자 아이들부터 먼저 입혀 물에 뛰어내려 살게 한 후 자기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양대홍 사무장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통장에 있는 돈을 ‘자기 아이’ 등록금으로 쓰라며 유언처럼 말을 남기고 ‘남의 아이들’을 구하러 물이 차오르는 객실로 뛰어간 후 한달 만에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전 세계를 울린 단원고 학생들 최후의 15분 동영상에서 아이들은 가슴 저미게 하는 대화를 나눕니다.


 “나, 구명조끼 입는다.”

 “야, 나도 입어야 돼. 진짜 입어야 돼.”

 “야, ○○야, △△거 없어. 받아와야 돼.”

 “내 거 입어.”

 “너는?”

 “나? 가져와야지.”


모두 하나같이 평범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남을 구원하느라 자기는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는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 고통의 바다에서 그들이 몸으로 보여준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었습니다. 그 사랑이 바로 기적이었습니다. 기적은 평범한 이들이 스스로 남의 ‘십자가’를 져 주는 비범한 사랑이었습니다.


이처럼 악이 드러날 때 선도 함께 드러나듯이, 탁한 절망의 조류 곁으로 맑은 희망의 조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저는 그 모든 비극을 자기 일처럼 애도하고 성찰하고 행동하는 이들에게서 희망을 봅니다. 무력하지만 무정하지는 않은 사람들, 우는 이들과 함께 우는 사람들, “가만히 있지” 않고 함께 아파하며 행동하는 사람들이 바로 기적이고 구원의 바람입니다. 그들은 물속에서 죽어간 아이들을 자기 아이들로, 고통받는 이들을 자기 가족으로 가슴에 품습니다. 팽목항의 [자원봉사자 수칙]은 그 마음을 오롯이 담아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는 가족입니다.”


저희 세 식구는 미국에 있을 때부터 매일 밤 그날의 삶을 감사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4․16 참사가 있은 며칠 후였습니다. 아이가 바다에서 죽어가고 있는 형들과 누나들을 위해 기도하자며 엄마와 아빠의 손을 끌어당겨 자기 가슴에 얹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함께 기도해 왔지만 아이가 먼저 기도의 내용을 제안하는 것은 무척 드문 일입니다. 자매형제 없이 혼자 자라는 아이라 공감능력이 부족할까봐 늘 염려했는데, 고통의 현실은 아이를, 그리고 우리 모두를 ‘공감적 인간’으로 성숙시켜 주었습니다. 아이는 이 고통의 봄에 형들과 누나들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사태를 변화시키지 못했지만 우리를 변화시켰습니다. 우리 모두를 한 가족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서로의 아픔을 자기 것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곁에서 서로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도 여러 가지 애도와 성찰 활동을 통해 ‘가족’의 아픔을 함께 해왔습니다. 특히 지난 주일 오후에 의미 있는 모임이 하나 있었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고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 아파하고, 함께 행동하고, 함께 살 것을 바라는 새길의 자매형제들이 모여 새로운 소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 이름은 [곁]입니다. 그 소모임의 한 형제님이 교회 홈페이지에 올린 [곁] 소개글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곁]은 아픔이 있는 곳에 함께 가서 함께 있자는 뜻입니다. 아파하는 사람들 곁에 머물며 곁을 내어주자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자매형제끼리도 서로 곁에 있자는 뜻입니다."


아파하는 이들의 곁에 다가가 함께 아파하고, 우는 이들의 곁에 다가가 함께 울면서, 한 이웃이 되고 한 가족이 되고자 하는 새길 자매형제들의 소모임입니다. 저는 그 소모임 만이 아니라 우리 새길의 자매형제 모두가 고통받는 이들의 ‘곁’이 되어 줄 거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예수의 고통과 죽음을 기억하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삶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해방의 소식을 선포하신 것이 바로 복음과 선교의 핵심”이라고 믿으며 “고통 당하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새길의 창립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새길공동체가 그런 복음과 창립 정신을 따라 고통받는 이의 곁에 다가가 친구가 되고, 친구를 위해 자기를 아낌없이 내어주며, 예기치 않은 순간에 기적 같은 구원의 바람을 일으키는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다짐합니다.


오늘은 시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늘 고통받는 이들의 곁에서 사랑과 구원의 시를 들려 주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고정희 시인의《눈물샘에 관한 몇 가지 고백》의 일부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너의 수중고혼을 모른다.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너의 바람 부는 광장을 모른다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너의 어두운 골짜기를 모른다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너의 서러운 강기슭을 모른다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너의 눈물샘을 모른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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