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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2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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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허태수 목사 |
참고 : | 2018-03-27성암감리교회 http://sungamch.net |
부활, 그리스도와의 계약을 갱신하라
요21:1-14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지 사흘 만에 일어나셨죠. 그리고 갈릴리로 가셨는데 거기 제자 7명이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밤 새 그물질을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예수는 그런 그들에게 그물을 배의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셨고, 낯선 남자의 말대로 그렇게 했더니 물고기가 많이 잡혔는데 153마리였다는 겁니다.
이 사건에서는 단순하게 넘어가지 못할 몇 가지 요소들이 있습니다. 고기를 잡기 전에는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는데 고기를 잡은 즉시 알아보았다는 것과, 잡은 물고기를 세어 보았다는 것입니다. 보통 물고기를 잡을 때 몇 마리 안 되면 셀 수 있지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히면 셀 수 없는 법인데 어떤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세었다는 것이고, 그 수가 153마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고기의 숫자 153이 우연히 생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죠.
보통 이런 이야기를 ‘아가다-짧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짧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숫자까지 말한다는 건, 이 숫자로 의미 있는 것을 전달하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해석자들은 이 물고기의 숫자 153을 설명하려고 1에서 17까지를 더한 숫자라고 합니다. 이게 맞는 해석인지 아닌지는 둘째 하고라도 왜 17이라는 상징적인 수가 등장했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17이라는 숫자는 노아의 홍수에서 시작됩니다. 창7:11에서 하나님은 홍수가 시작된 게 노아의 나이 육백 살 되던 해 둘째 달 17일이라는 겁니다. 이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다가 150일 동안 비가 내리다가 비가 그친 날도 그 달의 17일이었습니다(창8:3-4). 이렇듯 노아의 홍수 이야기에서 17은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여정의 시작이며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을 맺는 새 삶의 시작을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그래서 17은 새 시대의 서막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 전통에서 17은 배와 연관이 있습니다. 오디세이아 이야기에서 오디세우스가 칼립소를 떠난 뒤 17일 동안 뗏목을 타고 떠다닙니다. 전통에 의하면 뗏목을 만드는 통나무를 베는 날도 그 달 17일이어야 했습니다.
이렇듯 17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역사적인 숫자이고, ‘구원의 배’를 상징하는 숫자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153과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17에서 153이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죠. 그러면 153이라는 숫자는 예수의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구원의 배에서 끌어올린 물고기 153마리는 새 시대를 이끌어 갈 새로운 일꾼에 대한 상징입니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예수가 제자를 물색할 때 처음 제자를 삼은 곳도 갈릴리 바닷가였습니다. 시몬을 거기서 불렀습니다. 이제 예수는 다시 그 처음의 장소에서 새로운 제자를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다만, 153마리의 물고기를 말할 때 그 앞에 ‘큰’이라는 형용사가 붙어있습니다. 이게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보통 물고기를 잡고서 “야, 엄청 커!”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큰 물고기는 모두 큰 사람, 큰일을 맡아야 할 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장면을 보시면 앞에 잡은 물고기 사건이 단순히 소득증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는 153마리의 큰 물고기를 잡도록 한 다음에, 베드로로 하여금 예수를 알아보게 했고 그리고는 ‘빵을 집어 들고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만일 그들이 잡아 온 물고기를 구워 식사를 한다고 하면 구태여 빵을 들어 올리고 그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빵을 들어 올린 다음에 나누어 주는 행위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성찬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153명의 ‘큰 사람들’, ‘큰일을 할 사람들’이 예수 공동체에 들어오는 새 언약의 의례를 행한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시대의 성찬례는 곧 입교식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갈릴리 호수에서 큰 물고기 153마리를 잡는 사건은 단지 ‘물고기 잡는 사건’이 아니라 ‘종교의식’이었습니다. 153명의 제자들이 부활 후 새롭게 예수공동체에 입교하는 의식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 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처음으로 하신 공적인 일입니다. 공생애 처음에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시던 그 장소에서 부활 후 다시 새로운 일을 맡을 제자들 153명을 불러 입교하는 예식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 ‘큰 사람들’에 의해서 오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고, 장차 이와 같은 ‘큰 사람들’로 인하여 교회가 지상에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절은 죽음을 넘어 새로운 생명에 이른 예수의 초월성에 기대는 날이 아닙니다. 그의 부활이 나에게도 어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 그의 공동체에 새롭게 입교식을 하는 날인 동시에 예수가 생애 중에 하시던 그 일을 계승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날입니다.
오늘 사건이 끝나는 지점인 15절을 보세요. 거기 무슨 명령이 등장 하는가 하면 ‘네 양을 먹이라’는 언명이 떨어집니다. 결국 앞의 고기 잡는 이야기는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을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거니와 예수의 부활은 그의 초월적 현상에 기대감을 갖고 내게도 어떤 초월적 선물이 주어질 것을 바라라는 날이 아닙니다. 부활절은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님과 내가 새로운 계약을 맺는 날인 것입니다. 계약을 갱신하는 날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양들을 예수님 대신 먹이는 치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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