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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3: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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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참고 :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
주님이 주목하는 성도
요한 3;1-21.
2018. 1. 14 오전(제직헌신예배)
참 신앙인, 참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주제가 요사이 많이 회자 됩니다. 그런데 생각을 조금 하면 참 신앙인, 참 행복한 사람은 예수님께서 아끼고 생각하고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까 참으로 예수님에게 어떤 사람이 관심이 많은가? 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많이 하실까요? 예수님은 어떤 사람과 깊은 대화를 나누실까요? 물론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에서 어부로 살아가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또 세리를 부르셨습니다. 만나는 사람과 찾아오는 사람 또한 힘들고 어렵고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고민이 많고 생각이 많은 사람들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세워주고 그들과 함께 복음의 귀한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워진 사람들에게 나타난 2가지 특징이 있는데 하나는 꿈을 꾸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나는 ∼다’라는 의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특징이 있는 사람이 이 어려운 세상을 이기고, 이끌어주며 인도하고 나갈 수 있는 사람, 지도자, 영적인 사람이 됩니다. 세광과 함께 <나는 누구이다>가 중요합니다, 나는 주님의 사람이다. 나는 세광교회 목사다. 나는 세광교회 항존직, 장로, 권사, 안수집사이다. 나는 세광교회 집사, 권찰, 교인이다. 이 인식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항존직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교회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배자의 일원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세광교회의 중요한 분들입니다.
오늘 신약성경이 주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을 영적인 사람이라고 합니다. 영적인 사도 요한이 의식을 하고 기록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예수님이 주목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신약의 인물을 주목할 때 제일 먼저 누구를 생각하게 됩니까? 예수님의 수석 제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생각합니다. 믿음의 대상도 확인이 되어야만 신뢰와 믿음을 갖는 도마가 있습니다. 초대 교회를 탄생케 하고 지금 우리에게 까지 복음이 전파 되게 한 사도 바울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바울 되게 했던 바나바, 복음서의 기초를 놓았던 마가 요한, 실라, 여러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니고데모를 귀하게 여기고, 니고데모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생각하고 관심을 가졌다고 말씀하실까요? 몇 가지 특징을 지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최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최고의 대접, 최고의 인격, 최고의 깊은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3절 5절 11절에서‘진실로진실로’ 반복하여 세 번씩이나 말씀을 합니다. 6번 진실로를 반복을 합니다. 그러면 진실로가 무슨 말입니까? 진심으로, 진정으로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마음을 다하여 진심으로 진정으로 내가 너에게 - 니고데모에게 말한다 이 말씀입니다. 그런데 히브리 사람들은 최상급이 없습니다.“내가 너를 가장 좋아한다. 내가 너를 누구보다도 좋아한다.”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가장 좋은, 가장 진심으로, 라는 최상급의 말입니다. 두 번씩 연속하여 3번 반복하면 최상급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최상급으로 이야기한 사람은 니고데모 밖에 없습니다. 제자들이나 어느 누구도 최상급으로 대우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또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편애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예배드리는 저나 여러분을 가장 사랑하고 많은 것으로 복을 주시고 이끌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지만 니고데모를 최상급으로 대해주셨습니다.
2>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가리켜서 지도자라고 했습니다. 1절에“유대인의 지도자라.” 10절에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그러니까 지도자, 선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이스라엘의 선생, 관원, 지도자라고 합니다. 베드로를 가리켜서 지도자라고 선생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이런 표현이 없습니다. 니고데모에게만 지도자, 선생이라고 했습니다.
3>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 대화를 하시는데 대화의 내용이 다릅니다. 거듭남, 하나님의 나라, 영생, 성령, 하늘의 일 뭐 이런 내용입니다. 가장 중요한 진리를 표현했고, 가장 본질적인 말씀만을 하셨습니다. 베드로, 요한, 제자들한테 이런 말을 안 했습니다. 뭐 알아야 하지요! 이야기해도 몰라요. 그냥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뭐 이정도입니다. 본질적인 것, 진리의 내용들을 말씀하지 않았는데 니고데모에게만 했습니다. 내용이 어렵지요. 그래서 은혜를 은혜로 알아야 합니다.
4> 니고데모는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표적을 가지고 니고데모가 해석하기를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 선생이라고 합니다. 니고데모는 공인입니다. 산헤드린 회원입니다. 아무나 선생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 그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물질적인 돈, 모든 유대인과 로마로부터 존경을 받는 명예가 있습니다. 율법에 정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실수가 없고 예의범절과 규모가 갖추어진 인간으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그 가운데 제한된 산헤드린 공회원입니다. 체면과 품위 유지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여러분, 왜 찾아왔을까요? 쉽게 말씀을 드리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다 가져도,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어도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소유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듭남을 이야기 하고 거듭남을 묻습니다. 여러분, 고민 없이 산 사람이 무엇을 가르치겠습니까? 고민 없이 살아온 사람이 어떻게 아픔을 알겠습니까? 고민 없이 살아온 사람이 다른 사람의 질병의 고통을 어떻게 알고 이해하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아픔과 절망과 낙심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니고데모는 인간의 조건을 다 갖추고도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깊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 대하여, 교회에 대하여,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복에 대하여 고민한 사람이 복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깊이가 있고, 참됨이 있고, 진국이 나옵니다. 주어지고 맡겨진 일에 역할을 할 수가 있습니다.
5> 예수님과의 대화의 양이 제일 많습니다. 깊은 대화를 합니다. 어느 누구와도 이렇게 깊고 내용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에게는 많이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극진히 사랑하고 축복을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왜 이렇게 했을까요? 하나님의 진정한 신앙인, 진정으로 복 받은 사람, 영적인 지도자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 아닙니까? 오늘 우리에게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주님은 원칙과 방법과 핵심을 가르쳐주고 참된 목표를 갖게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저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입니다. 아니 주님이 주목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1. 두려움이 없는 사람입니다. 두려움이 있거나 겁쟁이면 아니 됩니다. 니고데모는 영원한 생명 등으로 표현되는 종교의 궁극적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은 갖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결국 밤에라도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 앞에 나오면 거기에 방법과 해답이 있습니다. 주님이 방법과 해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2. 핵심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10절에 너는 선생이라 하면서 이것도 모르느냐? 주님은 니고데모가 핵심지식을 지니기를 바랬습니다. 니고데모는 사람들을 지도하는 잡다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남, 핵심지식을 모릅니다. 우리도 복, 구원, 영생, 사탄,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십자가, 부활, 하나님의 나라, 등 30여 가지 만이라도 분명한 개념정리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 그 것이 복 아닙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신, 고난도 복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눈물도 복입니다. 여러분, 눈물과 고난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것입니다. 결과가 먼저가 아니라, 눈물과 고난이 먼저입니다. 잘못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29;18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결국은 망한다고 말씀합니다. 참 신앙인, 참된 그리스도인은 핵심지식이, 성경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3. 원칙만이 아니라, 방법까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하리라> 말씀을 합니다. 구원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구원의 원칙은 아는데 방법을 모릅니다. 그래서 니고데모가 어떻게, 지금, 이렇게 장성한 사람이 어머니 뱃속에 2차로 들어갈 수 있습니까? 물어 봅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리라. 고 방법을 말해 줍니다. 여러분, 원칙만 가르치고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그건 아닙니다. 얘 야! 공부 잘해야 한다. 알아요. 공부 잘 해야 하는 것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원칙은 다 압니다. 앉아 있는 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방법을 가르쳐 드려야지요! 공부를 잘하려면 TV도 끄고 책상에 앉아서, 뭐 이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가르쳐 줘야지요. 예수님은 언어의 천재입니다. 예수님은 원칙과 동시에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방법까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피로, 예수의 능력으로, 십자가의 능력으로...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4. 인생의 참된 목표가 무엇인지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니고데모는 잘 먹고 잘 삽니다. 니고데모를 보고“당신은 이스라엘의 선생인데 그런 것도 모르는가?”라고 한 것을 보면 산헤드린 회원 중에서도 사람을 가르치는 직분을 맡은 최고 관리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정신문화원이나 카이스트 같은 곳, 서울대나 명문대의 교수입니다. 그런 명예와 실력과 귀함을 갖춘 니고데모가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예수님을 찾아와 가르침을 듣고자 그가 고민하면서 밤에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인생의 참된 목표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니고데모란 이름의 뜻은‘승리’라고 하는데, 그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승리의 길로 이끌었습니다만 그의 이름처럼 자신의 참된 인생에서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참된 인생의 목표,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의 백성 된 영원한 생명 아닙니까? 여러분, 인생의 제일 되는 목표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신앙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에 사람의 제일 되는 인생의 목표가 나와 있는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제일 되는 인생의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저와 여러분, 각자가 처하고 맡겨진 사역에서 위대하고 아름다운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5. 인간, 사람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관계입니다. 사람을 알아야 전도도하고 사람을 알아야 이끌어 줄 것이 아닙니까? 사람에게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면이 다 있습니다. 빛과 어두움이 공존합니다. 사람을 모르면 내 자신도 모르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모르면 다른 사람을 모릅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사람을 가르치겠습니까? 사람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전을 이룰 수 있고,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하여 나아가는 여정 속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러분,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교(Stanford Univ.)을 잘 아실 것입니다. 아이비리그 대학(학문적 우수성, 까다로운 입학 조건, 사회 엘리트주의로 함축)입니다. 그런데 스탠포드 리랜드(Leland Stanford)라는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인생을 정리할 때가 되어서 죽은 아들이 다녔던 하버드대학교에 교육사업으로 전 재산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학교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관리장이 막습니다.“미리 연결이 됐습니까? 아니요. 총장을 뵙고자 왔습니다. 선약이 없으면 아니 됩니다. 학교를 지으려면 얼마나 들어갑니까? 제가 어떻게 압니까?”결국은 부자 노인 분들은 발걸음을 되돌렸습니다. 돌아오면서 기부한다는 그 원칙은 변하지 말자 그러면서 방법을 바꿉니다. 그 노인 부부의 이름을 따서 스탠포드 대학을 세웁니다. 지금 스탠포드 대학에서 배출된 사람들이 미국의 한 부분을 담당합니다. 사람을 몰랐습니다. 그때부터 하버드대학 정문에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는 문구를 붙이게 되었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습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적재적소에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주목하는 사람만 되면 됩니다.
6.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비전을 주시고, 그 비전을 이루게 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요한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딱 축약해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말씀을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지금 주님을 만난 이후로 임마누엘 하나님, 주님과 동행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이 본문 말고도 니고데모는 요한복음에서 두 번 더 나옵니다. 두 번째 등장은 7장 45절부터인데 여기서는 니고데모가 종교재판에서 예수님을 변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에 대해 비방할 때, 그중 한 사람인 니고데모는 예수님에 대해 변호의 말을 했습니다. 산헤드린의 다른 의원들과 반목하기보다는 자신의 위치를 보호하고 동료들의 관계를 깨지 않으려는 모습으로 했습니다. 예수님을 처형하자는 산헤드린의 결정에 대해서 한 번 더 숙고해보자고 합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을 들어 보지도 않고 정죄하는 것에 대해 비난을 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적극적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지는 못했지만 예수를 변호함으로써 예수가 진리가 되심을 간접적으로 시인했습니다. 니고데모가 이와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를 찾아가 직접 말씀의 교훈을 받아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을 바로 알았기에 감당을 합니다.
다음 세 번째는 19장 중반절 이후에 등장을 하는데 38절에 예수님께서 죽은 뒤에 몰약과 침향을 가져와서 장례 치르는 니고데모의 모습이 나옵니다. 아주 귀하고 비싼 물품들입니다.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들 앞에서 본격적으로 시인한 것은 십자가상에서 죽으신 후였습니다. 니고데모는 십자가의 주님을 알았습니다.
주님의 재판에 동참하고 장례까지 함께 한 지식인이요, 정치가이며, 지도자입니다. 주님을 알고 그가 주목하는 자로서 끝까지 배신하지 않는 신앙인, 마지막이 더 아름다운 신앙인, 주님이 주목하는 성도님, 우리 제직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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